6화(5,448자)
젓가락 박자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 은해록
아침 아홉 시, 제어실 벽의 큰 화면에 두 번째 답장이 여덟 토막으로 나뉘어 떠 있었다. 토막마다 1985년 목록의 자리 표시가 붙어 있었다. 분석관들이 밤새 목록과 맞춰 본 결과였다. 박 대위가 레이저 지시기로 화면을 짚었다.
“열아홉 번째 한국어는 첫 답장과 같습니다. 나머지 일곱 개는 전부 아시아 말 자리입니다. 중국어에서 네팔어까지요. 1985년 목록에 적힌 문장을 옮기면 다 비슷합니다. 밥 먹었어요, 식사하셨어요, 밥 먹었니.”
“한국어 자리만 목록에 안녕하세요로 적혀 있고요.” 화영이 말했다.
“예. 그것도 이상합니다.”
편정훈이 지도 화면을 옆에 띄웠다. 빨간 점 열아홉 개가 아시아의 강을 따라 흩어져 있었다. 편정훈은 점과 토막을 차례로 짚었다. 메콩 삼각주 옆에는 베트남어가, 자바 섬 옆에는 인도네시아어가 놓였다. 강마다 말 하나가 짝을 지었다.
“밥 먹었냐고 묻는 말을 쓰는 사람들과, 벼를 심는 땅이 정확히 겹칩니다. 저쪽은 이 말을 쓰는 사람이 어디 사는지 압니다.”
“목소리 듣고 고향 맞히는 거잖아요. 사투리 들으면 어디 사람인지 알듯이요.”
“박사님. 우리 동네에서 ‘너 어디 사는지 안다’는 협박입니다.”
분석관 하나가 웃음을 참다 기침을 했다. 편정훈은 웃지 않았다. 화영도 웃지 않았다. 둘 다 같은 문장이 두 가지로 들린다는 것을 알았다.
“여덟 토막의 높낮이는 누가 들어요?” 화영이 물었다. “한국어는 제가 들어요. 나머지 일곱은 기계가 듣죠. 기계는 반가운지 걱정인지 몰라요.”
“기계가 모르면 아무도 모르는 걸로 합니다. 이건 기밀입니다.”
“그럼 대령님은 반쯤 귀 막고 판단하시는 거예요.”
편정훈의 엄지가 바지 솔기 위에서 멈췄다. 대답은 없었다.
*
저녁 일곱 시, 제주시 동문시장 뒷골목의 쌀국수집은 손님이 반쯤 차 있었다. 간판에 「하노이 엄마 국수」라고 적혀 있었다. 휴가를 받은 날이었다. 휴가라기보다 편정훈이 하루 쉬라고 등을 떠민 날이었다. 화영은 창가 자리에 앉아 쌀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국수를 가져온 사람은 사장이었다. 마흔 남짓의 여자였고, 앞치마에 고수 잎이 붙어 있었다. 사장은 그릇을 내려놓다가 화영의 머리 위 안경을 보았다.
“어, 텔레비 밥 박사님.”
“아니에요.”
“맞는데요. 안경이 머리에 있어요. 텔레비에서도 머리에 있었어요.” 사장이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저 응옥이에요. 제주 산 지 열다섯 해. 남편이 제주 사람이에요. 우리 시어머니가 외계인 뉴스 보고 그래요. 거봐라, 우주도 밥 먹었냐고 묻잖아. 너는 왜 나 밥 먹었냐고 안 묻냐.”
화영은 웃다가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고수 향이 코로 올라왔다. 이어서 젓가락 두 짝을 쥐고 식탁 모서리를 두드렸다. 새벽에 수십 번 들은 베트남어 토막이었다. 똑, 똑똑, 틈, 똑똑. 마지막 똑을 조금 세게 쳤다.
응옥의 손이 앞치마 위에서 멈췄다.
“다시 해 봐요.”
화영이 다시 두드렸다. 응옥이 입술을 달싹였다.
“Ăn cơm chưa? 밥 먹었니. 이거 우리 엄마가 나 학교 갔다 오면 하던 거예요. 대문에서.” 응옥이 손바닥을 식탁에 대고 같은 박자를 쳤다. 화영보다 마지막이 부드러웠다. “근데 박사님 끝을 너무 세게 쳐요. 엄마는 이렇게 안 해. 세게 하면 화난 거예요. 엄마는 끝을 이렇게, 조금 올려. 기다리는 거예요. 내가 대답하는 거.”
화영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기계는 모르는 것이었다.
“응옥 씨. 이런 박자가 일곱 개 더 있어요. 다 아시아 말이에요. 제주에 그 말 하는 분들 아세요?”
“다 알죠. 제주에 우리 같은 사람 많아요.” 응옥이 휴대전화를 꺼냈다. “잠깐만요. 오늘 생선 들어오는 날이라 다 시내에 있어요.”
*
밤 아홉 시 반, 쌀국수집 셔터는 반쯤 내려가 있었고 안쪽 식탁 두 개를 붙인 자리에 사람이 여덟 모였다. 한림항 어선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청년 둘이 생선 비린내를 묻힌 채 왔고, 감귤밭에서 일하는 태국 여자가 귤 한 상자를 들고 왔다. 양돈장에서 온 네팔 남자는 모자를 벗자 머리에 짚이 붙어 있었다. 중국인 관광 안내사는 깃발을 접어 가방에 꽂은 채 들어왔다. 미얀마 남자는 양식장 장화를 문밖에 벗어 두었다.
“여러분, 이분이 텔레비 밥 박사예요.” 응옥이 말했다. “박사님이 젓가락 치면, 자기 나라 말이면 손 들어요.”
화영은 젓가락을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첫 토막을 두드렸다. 중국인 안내사가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들었다.
“吃了吗? 츠러마. 우리 할머니요. 근데 할머니는 끝을 내려요. 당연히 먹었지, 하고 대답할 줄 아니까.”
다음 토막에서 태국 여자가 손을 들었다. 귤을 까던 손이었다. 그다음 토막에서는 인도네시아 청년 둘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가 서로 자기가 먼저라고 다퉜다. 네팔 남자는 박자를 다 듣기도 전에 손을 들고 일어나서, 양돈장 사장님이 아침마다 자기한테 하는 한국말도 이 박자라고 말했다. 사장님 흉내까지 냈다. 배를 내밀고 장화를 끌며, 굵은 목소리로. 밥 먹언? 밥 먹언? 식당 안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인도네시아 청년 하나가 웃다가 의자에서 떨어졌고, 다른 청년이 일으켜 주면서 그것도 자기 나라 박자로 물었다. 괜찮아? 밥은 먹었어?
중국인 안내사가 깃발을 꺼내 흔들었다. “요즘 우리 손님들이 접시 보러 와요. 버스에서 다들 물어요. 외계인은 밥 먹고 왔대? 내가 대답해요. 아직 몰라요, 대답을 안 했대요. 그러면 손님들이 화내요. 왜 대답을 안 해? 할머니가 물으면 대답해야지!”
미얀마 토막이 남았다. 화영이 두드리자 미얀마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한참 손을 들지 않았다. 응옥이 어깨를 툭 쳤다.
“모르겠어요?”
“알아요.” 미얀마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우리 엄마 박자예요. 엄마는 끝을 길게 해요. 내가 집에 안 오니까. 여기 온 지 여섯 해 됐어요.”
식당이 조용해졌다. 응옥이 미얀마 남자 앞에 쌀국수 한 그릇을 말없이 놓았다. 남자는 숟가락을 들었다.
마지막 타갈로그어 토막은 요양원의 마리셀이 영상 통화로 들었다. 화면 속 마리셀이 박자를 듣고 손뼉을 쳤다.
“Kumain ka na? 우리 엄마 거여유! 근데 박사님, 이 박자 끝이 올라가잖아유. 이거 걱정하는 거여유. 우리 엄마는 내가 한국 온다고 했을 때 이렇게 물어봤슈.”
여덟 토막이 다 지나갔다. 화영은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어 둔 것을 보았다. 높낮이는 말마다 달랐다. 끝을 내리는 할머니도 있었고 길게 끄는 엄마도 있었다. 하지만 여덟 사람 모두 같은 말을 했다. 이건 엄마들 박자예요. 화난 박자가 아니에요.
응옥이 식탁 가운데 큰 냄비를 내려놓았다. 국물이 끓었다.
“박사님. 우리 베트남 사람은 엄마가 밥 먹었냐고 물으면, 안 먹었어도 먹었다고 해요. 엄마 걱정할까 봐.”
인도네시아 청년이 손을 들었다. “우리도요.”
태국 여자도 들었다. 네팔 남자도, 미얀마 남자도, 화면 속의 마리셀도. 화영은 코를 만지려다 그만두고 손을 들었다. 손 아홉 개가 냄비 위로 올라갔다. 응옥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
밤 열두 시, 관측소 정문에 들어서자 제어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편정훈이 상황판 앞에 서 있었다. 손에 휴대전화를 들었고, 화면에 사진 한 장이 떠 있었다. 냄비 위로 손 아홉 개가 올라간 사진이었다. 사진 아래 글이 붙어 있었다. 「밥 박사님 우리 가게 왔어요 ❤ 외계인 박자 우리 엄마 박자래요 — 하노이 엄마 국수」.
“박사님. 이 사진이 두 시간 만에 삼십만 명한테 갔습니다.”
“아.”
“사진에는 박자가 없습니다. 다행입니다.” 편정훈이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박사님이 젓가락으로 두드린 박자를 이제 여덟 사람이 압니다. 내일이면 여덟 나라가 압니다. 국방부 기밀을 쌀국수집 식탁에 두드리셨습니다.”
“기계가 못 듣는 걸 들으러 간 거예요. 대령님 귀가 반만 열려 있어서요.”
“제 귀가 반만 열린 건 제가 압니다. 그래서 기밀입니다.” 편정훈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박사님 귀는 국방부가 돈을 주고 산 귀입니다. 귀가 들은 것은 국방부 겁니다. 그걸 마음대로 남의 식탁에 내려놓으시면, 다음에는 무엇을 내려놓으실 겁니까?”
화영은 니트 소매를 손등까지 끌어내렸다.
“여덟 명이 다 그랬어요. 엄마 박자라고요. 화난 박자는 하나도 없었어요.”
“엄마들이 아이를 부르는 박자를 흉내 낼 줄 아는 상대라는 뜻도 됩니다.” 편정훈이 상황판에 새로 붙은 종이를 짚었다. 국방부 공문이었다. 「밥을 묻는 언어권과 벼농사 지대의 일치 — 표적 목록 가능성. 동아시아 각국과 군사 협의 착수」. “국방부는 오늘 밤 이렇게 올렸습니다. 박사님이 쌀국수집에 계실 때요.”
“그 공문, 제 번역 없이 올리신 거예요?”
“박사님이 휴가셨으니까요.” 편정훈은 한숨을 쉬었다. “내일 아침 비행기로 대전에 올라가십시오. 정직 두 주입니다. 자문 계약은 살려 두었습니다. 장관께서는 해지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살려 두셨어요?”
“제 귀가 반만 열려 있다고 하셨지요.” 편정훈은 상황판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나머지 반을 아주 버리지는 않겠다는 겁니다. 두 주 뒤에 다시 쓸지는 그때 정합니다.”
제어실 문간에 부영철이 서 있었다. 언제부터 듣고 있었는지 몰랐다. 손에 은박지로 싼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밥 박사, 내일 비행기에서 먹읍서. 빙떡이우다. 메밀 부침에 무 넣고 만 거.” 부영철이 꾸러미를 화영의 손에 쥐여 주고 편정훈을 흘겨보았다. “대령님. 사람을 밥 먹다 말고 쫓아내는 법은 제주에 없수다.”
“쫓아내는 게 아닙니다. 두 주입니다.”
“두 주면 억새 다 집니다.”
편정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은박지 꾸러미가 화영의 손바닥에서 아직 따뜻했다.
*
새벽 한 시, 숙소 방에서 화영은 가방에 옷을 접어 넣었다. 늘어난 니트 두 벌, 머리끈 일곱 개, 부영철이 넣어 준 귤 다섯 개. 휴대전화 메모장에는 여덟 사람의 말이 적혀 있었다. 엄마들 박자예요.
메모를 다시 읽다가 손이 멈췄다. 여덟 토막 가운데 일곱은 1985년 목록에 밥 먹었냐는 말로 정직하게 적혀 있었다. 한국어 하나만 「안녕하세요」로 적혀 있었다. 하늘은 안녕하세요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밥은 먹었니를 돌려보냈다. 목록이 틀렸다면, 1985년에 대전에서 녹음한 진짜 목소리는 무슨 말을 했을까?
1985년 대덕의 천문대. 지금 연구원의 옛 이름이었다. 어머니는 1984년 봄부터 연구원 식당에서 일했다.
화영은 시계를 보았다. 새벽 한 시 십 분이었다. 연구원 식당 조장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다섯 번 가고 잠긴 목소리가 받았다.
“누구여, 이 밤중에?”
“조장님, 화영이에요. 봉애 엄마 딸이요. 죄송해요. 하나만 여쭤볼게요.” 화영은 침대 모서리를 붙잡았다. “1985년 가을에요. 연구소 식당에 누가 녹음하러 온 적 있어요?”
전화기 너머가 한참 조용했다. 이불 스치는 소리가 났다.
“녹음? 내가 들어가기 전인디.” 조장이 하품을 삼켰다. “근데 언니가 옛날에 자랑한 적은 있어. 연구소 높은 양반들이 자기 목소리를 하늘에 띄웠다고. 다들 웃었지. 언니가 테이프 하나 받았다고 했는디. 장롱에 있을걸, 언니 집 장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