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60자)

먹을 것이 없다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 은해록

새벽 두 시⁠, 제어실의 분석관들은 둘만 남고 나머지는 숙소로 들어갔다⁠. 화영은 마이크 앞에서 같은 문장을 열한 번째로 말했다⁠.

“⁠우리는 먹을 것이 없다⁠.⁠”

화면에 점이 찍혔다⁠. 굵은 점 셋⁠, 틈⁠, 굵은 점 둘⁠, 틈⁠, 그리고 낮게 깔리는 점 둘⁠. 끝은 이번에도 떨어졌다⁠. 화영은 목소리를 바꿔 보았다⁠. 담담하게⁠, 당당하게⁠, 아나운서처럼⁠, 군대 보고처럼⁠. 열한 번 모두 「⁠없다⁠」에서 끝이 내려앉았다⁠. 당당하게 말하면 내려앉는 폭이 조금 줄었을 뿐 방향은 같았다⁠. 우리말에서 없다는 말은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

책상 위 귤 껍질이 말라 오그라들었다⁠. 박 대위가 컵라면 두 개에 물을 붓고 하나를 화영 앞에 놓았다⁠.

“⁠자문님⁠, 이거라도 드십시오⁠. 대령님이 자문님 굶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대령님이요⁠?⁠”

“⁠예⁠. 본인은 안 드시면서요⁠.⁠”

화영은 컵라면 뚜껑을 젓가락으로 눌러 두고⁠, 휴대전화의 녹음 폴더를 열었다⁠. 삼백 개가 넘는 파일 이름이 날짜순으로 내려왔다⁠. 「⁠엄마_0814_아침_걱정⁠」 「⁠엄마_0902_점심_반가움⁠」 「⁠엄마_0917_저녁_야단⁠」⁠. 손가락이 한참 내려가다 멈췄다⁠. 「⁠엄마_0611_점심_굶음⁠」⁠. 요양원 점심 배식이 늦어져 어머니가 두 시까지 굶은 날이었다⁠. 늦게 온 딸을 보자 어머니가 물었다⁠. 화영은 6월 11일 점심에 처음으로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이 높이를 들었다⁠.

화영은 파일을 미경의 프로그램에 끌어다 놓았다⁠. 화면 아래에 어머니의 줄이 찍혔다⁠. 「⁠밥은 먹었니⁠?⁠」가 끝까지 오르지 못하고⁠, 마지막 점이 바닥 가까이 깔렸다⁠. 위의 줄은 화영의 「⁠우리는 먹을 것이 없다⁠」였다⁠. 두 줄의 끝이 같은 높이에서 같은 길이로 머물렀다⁠.

화영은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면이 불어 있었다⁠. 화영은 불은 면을 다 먹고 국물까지 마셨다⁠.

*

새벽 세 시 반⁠, 편정훈이 제어실로 들어왔다⁠. 머리가 젖어 있었다⁠. 찬물로 세수만 하고 온 얼굴이었다⁠. 화영은 책상 위에 헤드폰을 올려놓았다⁠.

“⁠약속하셨어요⁠. 끝까지 들으세요⁠.⁠”

편정훈은 말없이 헤드폰을 썼다⁠. 화영이 첫 파일을 틀었다⁠. 화영 자신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먹을 것이 없다⁠. 이어서 두 번째 파일을 틀었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밥은 먹었니⁠. 두 파일 다 점과 틈의 소리로 바꾼 것이었다⁠. 말은 사라지고 박자와 높이만 남았다⁠.

편정훈은 두 번을 더 들었다⁠. 이윽고 헤드폰을 벗었다⁠.

“⁠뒤의 것은 어머님입니까⁠?⁠”

“⁠네⁠. 점심을 두 시까지 굶은 날이에요⁠. 엄마가 굶으면 끝이 이렇게 깔려요⁠. 그 높이로 남한테 밥 먹었냐고 물으면⁠, 뜻은 하나예요⁠. 나 굶었다⁠.⁠” 화영은 화면의 두 줄을 손끝으로 따라 그었다⁠. “⁠대령님 문장은 저쪽 귀에 이렇게 가요⁠. 우리 굶었다⁠. 배고픈 사람이 굶었다고 하면⁠, 대령님 어머님은 뭐라고 하세요⁠?⁠”

편정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목시계를 한 번 보았다⁠. 세 시 사십일 분이었다⁠. 바지 솔기 위의 엄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밥 묵으러 오니라⁠, 하십니다⁠.⁠”

“⁠곳간 짚은 데다 대고 우리 굶었다고 하면요⁠?⁠”

“⁠밥 먹으러 오라는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편정훈이 천천히 말했다⁠. “⁠초대장이 됩니다⁠.⁠”

편정훈은 휴대전화를 들고 제어실 밖 복도로 나갔다⁠. 유리문 너머로 편정훈의 등이 보였다⁠. 통화가 길었다⁠. 한 번은 목소리가 높아졌고⁠, 한 번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세 시 오십팔 분에 편정훈이 돌아왔다⁠. 상황판 앞에 서서 「⁠대응 2안⁠」 글씨에 매직으로 줄을 두 번 그었다⁠. 지우지 않고 줄만 그었다⁠. 해독실의 민석이 「⁠안녕하세요⁠」에 하던 것과 같은 손짓이었다⁠.

“⁠2안은 접습니다⁠. 장관께 말씀드렸습니다⁠.⁠”

“⁠고마워요⁠.⁠”

“⁠고마워하실 일 아닙니다⁠.⁠” 편정훈은 「⁠대응 1안⁠」 아래에 동그라미를 쳤다⁠. 「⁠침묵⁠. 송신 장비 봉인⁠」⁠. “⁠제가 2안을 접은 건 박사님 말이 맞아서가 아닙니다⁠. 초대장이 될 수 있는 거짓말은 거짓말로서 실패라서 접은 겁니다⁠. 그러면 남는 건 하나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네 시 십이 분⁠, 하늘의 줄이 또 왔다⁠. 똑똑⁠, 틈⁠, 똑똑똑⁠. 끝이 두 마디 올라갔다⁠. 송신 창은 아무것도 보내지 않은 채 닫혔다⁠.

*

오전 열 시⁠, 접시 아래 송신동 앞에 군인 넷이 봉인 띠와 자물쇠를 들고 줄지어 왔다⁠. 송신동은 접시 받침대 옆의 작은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철문 위에 「⁠송신실 —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적힌 판이 붙어 있었다⁠. 철문 앞에 부영철이 쭈그려 앉아 있었다⁠.

“⁠어르신⁠, 비켜 주십시오⁠.⁠”

“⁠못 비켜⁠.⁠”

“⁠명령입니다⁠.⁠”

“⁠나한테 내린 명령이우꽈⁠? 나는 군인이 아니우다⁠.⁠” 부영철이 땅바닥에서 엉덩이를 들지 않았다⁠. “⁠곱단이 입을 막으면⁠, 이 아이는 평생 듣기만 해야 되우다⁠. 이십팔 년 동안 하늘 소리만 들었는데⁠, 이제 처음으로 하늘이 말을 걸었어⁠. 근데 입을 막아⁠?⁠”

편정훈이 다가왔다⁠. 화영도 뒤따랐다⁠. 부영철이 화영을 올려다보았다⁠.

“⁠밥 박사⁠. 박사도 입 막자는 편이우꽈⁠?⁠”

화영은 쭈그려 앉아 부영철과 눈높이를 맞췄다⁠. 콘크리트 바닥이 무릎에 차가웠다⁠.

“⁠영철 선생님⁠. 입은 막아도 귀는 열려 있어요⁠. 곱단이는 계속 들어요⁠. 오늘 새벽에도 들었고요⁠. 거짓말 내보내는 것보다는 입 다무는 게 나아요⁠. 오늘은요⁠.⁠”

“⁠오늘은⁠?⁠”

“⁠네⁠. 오늘은요⁠.⁠”

부영철이 한참 화영의 얼굴을 보았다⁠. 이어서 편정훈을 보았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조건이 있수다⁠. 봉인하는 동안 군인들 밥은 내가 해⁠. 라면 먹이지 말고⁠.⁠”

편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 넷이 철문에 봉인 띠를 둘렀다⁠. 빨간 띠에 「⁠국방부 봉인 · 무단 해제 시 처벌⁠」이라는 글자가 반복해서 찍혀 있었다⁠. 마지막 자물쇠가 딸깍 잠기는 소리를 부영철은 등을 돌린 채 들었다⁠. 등이 작아 보였다⁠. 점심때 부영철은 군인 넷에게 고기국수를 곱빼기로 말아 주고⁠, 자물쇠 채운 병장에게만 고기를 두 점 덜 얹었다⁠.

*

오후 네 시⁠, 화영은 철조망 안쪽의 억새 들판을 걸었다⁠. 억새가 허리까지 올라와 걸을 때마다 니트 소매를 스쳤다⁠. 접시 아래에서 편정훈이 걸어왔다⁠.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바람에 눈을 가늘게 뜬 얼굴이었다⁠.

“⁠장관께 한 소리 들으셨어요⁠?⁠”

“⁠두 소리 들었습니다⁠. 거짓말 하나 접는 데 두 소리면 싼 편입니다⁠.⁠” 편정훈이 억새 이삭 하나를 손바닥으로 훑었다⁠. 흰 털이 바람에 날렸다⁠. “⁠박사님⁠. 봉인을 풀어도 된다고 하면⁠, 무슨 말을 보내시겠습니까⁠?⁠”

“⁠먹었어⁠. 그게 다예요⁠.⁠”

“⁠그게 다입니까⁠?⁠”

“⁠엄마한테 제일 많이 한 말이 그거예요⁠. 거짓말로 한 날이 더 많았지만요⁠.⁠” 화영은 걸음을 멈췄다⁠. “⁠대령님은요⁠? 대령님은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세요⁠? 곳간 짚은 게 무서워서요⁠?⁠”

“⁠무서운 건 따로 있습니다⁠.⁠” 편정훈은 접시를 올려다보았다⁠. 하얀 접시가 오후 햇빛을 받아 눈부셨다⁠. “⁠우리가 대답하면 여기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해 주는 겁니다⁠. 그 대답은 이십오 년 뒤에 닿습니다⁠. 저쪽이 길을 나서면 그보다 더 걸리겠지요⁠. 그때 김제 논에 모를 심는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제 조카의 아이쯤 되겠지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입니다⁠.⁠”

억새가 한꺼번에 한 방향으로 누웠다가 일어났다⁠.

“⁠저는 그 아이 대신 입을 다무는 겁니다⁠. 그 아이가 커서 저를 원망하더라도⁠, 살아서 원망하는 편이 낫습니다⁠.⁠”

화영은 할 말을 찾다가 찾지 못했다⁠. 대신 니트 주머니에서 귤 하나를 꺼내 편정훈에게 내밀었다⁠. 부영철이 아침마다 주머니에 넣어 주는 귤이었다⁠. 편정훈은 귤을 받아 들고 한참 보다가 껍질을 깠다⁠.

“⁠박사님⁠. 이건 아침입니까⁠, 점심입니까⁠?⁠”

“⁠대령님한테는 아침이겠죠⁠.⁠”

*

침묵의 사흘은 시끄러웠다⁠. 국방부는 「⁠송신 장비 잠정 봉인⁠, 당분간 답신 계획 없음⁠」이라고 발표했고⁠, 유엔은 한국의 결정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냈다⁠. 쌀값은 조금 내려갔다⁠. 철조망 바깥의 「⁠외계인님 밥 드시러 오세요⁠」 종이 위에는 누가 덧붙였는지 「⁠답장 안 함 — 국방부⁠」라는 종이가 붙었다⁠. 구좌읍 부녀회는 이튿날 국방부 종이 위에 다시 「⁠그래도 오세요⁠」를 붙였다⁠. 미경은 해독실 소식을 문자로 보냈다⁠. 「⁠막내님 팀장님이 줄 받을 때마다 화이트보드에 안녕하세요 썼다 지웠다 하세요 ㅠ 오늘은 지우고 밥이라고 한 글자 쓰셨다가 또 지우심⁠」⁠. 화영은 답장 칸에 「⁠밥 한 글자면 됐어요⁠」라고 쳤다⁠.

사흘째 저녁⁠, 부엌 텔레비전에 흰 양복의 여동현 목사가 나왔다⁠. 여동현은 커다란 기자회견장 연단에 서 있었다⁠.

“⁠나라가 입을 닫았습니다⁠. 하늘이 물으시는데 대답을 안 하는 것은 불순종입니다⁠. 첫말씀교회는 성도 여러분의 헌금으로 해외의 민간 위성 기지를 빌렸습니다⁠. 이번 달 안에 우리가 대답하겠습니다⁠. 주여⁠, 우리가 먹었나이다⁠!⁠”

자막이 흘렀다⁠. 「⁠첫말씀교회 “⁠해외 기지서 독자 답신⁠” … 정부 “⁠법적 대응 검토⁠”⁠」⁠. 부영철이 국자를 내려놓았다⁠.

“⁠저 양반이 곱단이 대신 말을 한다고⁠?⁠”

편정훈은 텔레비전을 보며 밥을 씹었다⁠. 씹는 속도가 느려졌다⁠. 화영은 처음으로 편정훈이 밥을 끝까지 다 먹는 것을 보았다⁠. 화가 났을 때 다 먹는 사람이었다⁠.

밤 열 시⁠, 화영의 계좌에 국방부 자문료 첫 달 치가 들어왔다⁠. 화영은 요양원 고지서의 계좌로 백팔십만 원을 보냈다⁠. 마리셀이 영상을 보냈다⁠. 어머니가 저녁밥을 다 먹고 빈 그릇을 화면에 들어 보였다⁠. 밥은 먹었니⁠, 하고 물을 때 끝이 두 마디 올라갔다⁠. 화영은 영상을 세 번 돌려 보았다⁠.

*

10월 16일 새벽 네 시⁠, 제어실에는 사람이 다 모여 있었다⁠. 첫 답장이 온 지 스무하루째였다⁠. 편정훈⁠, 분석관 다섯⁠, 화영⁠, 그리고 구석 의자의 부영철⁠. 아무도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도 자러 가지 않았다⁠.

네 시 십이 분⁠, 헤드폰 속의 싸아 하는 잡음이 갑자기 바뀌었다⁠.

똑똑⁠, 틈⁠, 똑똑똑⁠. 여기까지는 같았다⁠. 다섯 박자 뒤에 줄이 끝나지 않았다⁠. 박자가 이어졌다⁠. 처음 듣는 박자였다⁠. 똑⁠, 똑똑⁠, 틈⁠, 똑똑⁠. 또 다른 박자가 뒤를 이었다⁠. 높낮이가 다르고 길이가 다르고⁠, 틈이 앉는 자리가 다른 박자들이었다⁠. 줄이 사 분 넘게 흘렀다⁠. 첫 답장의 열 배가 넘는 길이였다⁠.

분석관 하나가 덧붙임을 띄웠다⁠. 지도 위에 빨간 점이 하나씩 찍혔다⁠. 일곱에서 멈추지 않았다⁠. 여덟⁠, 아홉⁠, 열⁠.

“⁠열아홉 개입니다⁠. 새 점 열두 개가 다 아시아에 있습니다⁠. 메콩 위쪽⁠, 짜오프라야 강⁠, 루손 섬 가운데⁠, 자바 섬⁠, 에야와디 강⁠, 양쯔강 아래쪽⁠…⁠.⁠”

“⁠전부 논이지요⁠.⁠” 편정훈이 말했다⁠. 질문이 아니었다⁠.

“⁠예⁠. 전부 벼농사 지대입니다⁠.⁠”

화영은 헤드폰을 귀에 꽉 눌렀다⁠. 낯선 박자들 사이로 귀에 익은 박자가 또 한 번 지나갔다⁠. 똑똑⁠, 틈⁠, 똑똑똑⁠. 이번에는 끝이 한 마디만 올라갔다⁠. 걱정의 높이였다⁠.

“⁠우리가 아무 대답도 안 했는데요⁠.⁠” 박 대위가 중얼거렸다⁠. “⁠대답도 안 듣고 다시 물은 겁니까⁠?⁠”

부영철이 보온병 뚜껑을 손에 쥔 채 의자에서 일어났다⁠.

“⁠또 물엄수다⁠. 대답 안 하니까 또 물엄수다⁠. 우리 어멍도 그랬수다⁠.⁠”

편정훈은 지도의 빨간 점 열아홉 개를 오래 보았다⁠. 이윽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새벽 네 시 이십 분이었다⁠. 화영은 편정훈이 장관이 아니라 다른 번호를 누르는 것을 보았다⁠. 화면에 「⁠엄니⁠」라고 떠 있었다⁠. 신호가 가는 소리가 제어실의 정적 속에서 또렷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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