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40자)

해 뜨는 차례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 은해록

새벽 네 시⁠, 관측소 제어실은 컴퓨터 팬 소리로 가득했다⁠. 분석관 다섯이 화면 앞에 앉아 있었고⁠, 편정훈은 뒷짐을 진 채 벽에 등을 대고 서 있었다⁠. 부영철은 구석 접이식 의자에 앉아 보온병 뚜껑에 보리차를 따랐다⁠. 군인들이 들어오지 말라고 한 자리였지만⁠, 부영철은 이십팔 년 동안 이 시각에 이 의자에 앉았다며 끝내 비키지 않았다⁠.

화영은 헤드폰을 썼다⁠. 해독실에서 미경의 프로그램으로 듣던 소리와는 달랐다⁠. 접시가 받은 하늘을 그대로 귀에 옮기면 먼저 바람 같은 소리가 들렸다⁠. 싸아⁠, 하고 끝없이 흐르는 잡음이었다⁠. 이십오 광년 동안 쌓인 먼지가 귓속으로 쏟아지는 것 같아 화영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네 시 십이 분이 되자 잡음 속에서 박자가 솟았다⁠.

똑똑⁠, 틈⁠, 똑똑똑⁠.

미경의 프로그램이 다듬어 준 소리보다 거칠었다⁠. 대신 숨이 있었다⁠. 틈은 비어 있지 않았다⁠. 아주 낮은 떨림이 틈을 채웠다⁠. 사람이 말하다 쉴 때 목에 남는 떨림과 닮아 있었다⁠. 화영은 눈을 감고 다섯 박자를 끝까지 들었다⁠. 마지막 똑이 올라가는 높이는 대전에서 들은 것과 같았다⁠. 반가울 때의 두 마디⁠.

줄 뒤로 덧붙임이 따라왔다⁠. 이번에는 소리 대신 화면에 점이 하나씩 찍혔다⁠. 분석관 하나가 지도를 겹쳤다⁠.

“⁠호남평야 하나⁠, 메콩 둘⁠, 갠지스 셋⁠…⁠.⁠”

화영은 헤드폰을 반쯤 벗었다⁠. 점이 찍히는 차례가 귀에 들어왔다⁠. 호남평야가 먼저 왔고⁠, 메콩과 갠지스가 뒤를 이었다⁠. 흑해 북쪽과 나일은 거의 붙어서 왔고⁠, 팜파스와 북미 대평원이 맨 끝이었다⁠.

“⁠잠깐만요⁠. 처음부터 다시 띄워 주세요⁠.⁠”

분석관이 편정훈을 보았다⁠. 편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점 일곱 개가 다시 하나씩 찍혔다⁠. 화영은 손가락으로 화면의 지도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쓸었다⁠.

“⁠동쪽에서 서쪽이에요⁠. 해 뜨는 차례요⁠.⁠”

제어실이 조용해졌다⁠. 부영철이 보리차를 마시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해가 호남평야에 먼저 뜨고⁠, 다음에 메콩에 떠요⁠. 그다음이 갠지스고요⁠. 사람은 해 뜨면 아침을 먹어요⁠.⁠” 화영은 마지막 점을 짚었다⁠. “⁠아침밥 차례예요⁠. 지구에서 아침밥을 먹는 차례대로 곳간을 짚었어요⁠. 저쪽 하늘에서 지구를 이십오 년 내려다보면 이게 보이겠죠⁠. 해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연기가 올라가고 사람들이 모이는 거요⁠.⁠”

분석관 하나가 소리 없이 입을 벌렸다⁠. 편정훈은 벽에서 등을 떼지 않았다⁠. 대신 한참 지도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박사님⁠. 새벽 공격도 해 뜨는 차례로 합니다⁠.⁠”

화영이 돌아보았다⁠.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방심하는 때입니다⁠. 동쪽부터 차례로 치고 들어가면 상대는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무너집니다⁠. 육군 사관학교 이 학년 때 배웁니다⁠.⁠” 편정훈의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아침밥 차례와 새벽 공격 차례는 지도 위에서 같은 줄입니다⁠. 박사님도 아시고 저도 압니다⁠. 지도는 아무 편도 들지 않습니다⁠.⁠”

“⁠그럼 왜 꼭 나쁘게 읽으세요⁠?⁠”

“⁠나쁘게 읽는 게 제 일이니까요⁠. 좋게 읽는 건 박사님 같은 분들이 해 주십니다⁠. 두 사람이 다 좋게만 읽으면⁠, 나머지 칠십억은 누가 지킵니까⁠?⁠”

부영철이 보온병 뚜껑을 탁 내려놓았다⁠.

“⁠지키긴 뭘 지켜⁠. 곱단이는 듣는 아이우다⁠. 듣는 아이한테 거짓말을 시키니까 그렇주⁠.⁠”

*

아침 아홉 시⁠, 관측소 부엌의 식탁 위에 노트북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화영은 미경이 몰래 넘겨준 저장 장치로 미경의 프로그램을 깔았다⁠. 화면에 상황판의 문장을 옮겨 적었다⁠. 「⁠우리는 먹을 것이 없다⁠」⁠.

문장을 소리로 바꾸려면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야 했다⁠. 화영은 부엌 문간을 지키던 군인 셋을 불렀다⁠. 편정훈이 협조하라고 해 둔 터라 셋은 쭈뼛거리며 마이크 앞으로 나왔다⁠.

“⁠한 분씩 해 주세요⁠. 우리는 먹을 것이 없다⁠.⁠”

첫 번째 상병은 국어책을 읽듯 말했다⁠. 화면에 점이 줄줄이 찍혔다⁠. 두 번째 일병은 긴장해서 「⁠우리는⁠」에서 목소리가 뒤집혔다⁠. 세 번째 병장은 경상도 사람이었다⁠.

“⁠우리는 묵을 끼 없다⁠.⁠”

부엌에 웃음이 터졌다⁠. 부영철이 가스레인지 앞에서 국자를 든 채 허리를 접고 웃었다⁠. 병장의 얼굴이 빨개졌다⁠.

“⁠표준어로 하라 캐서 표준어로 한 깁니더⁠.⁠”

“⁠괜찮아요⁠. 오히려 좋아요⁠.⁠” 화영은 웃음을 참으며 화면을 보았다⁠. 세 사람의 줄을 겹치자 공통점이 하나 보였다⁠. 「⁠없다⁠」에서 끝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상병도 일병도 병장도 마찬가지였다⁠. 떨어지는 끝은 내려앉은 뒤에 한참 머물렀다⁠. 화영이 아는 높이였다⁠. 어머니가 끼니를 거른 날 딸을 보며 물을 때의 높이⁠, 밥은 먹었니 가운데 가장 낮게 깔리는 높이였다⁠.

화영은 노트북을 덮었다⁠.

“⁠영철 선생님⁠. 배고픈 사람이 배고프다고 하면⁠, 선생님은 뭐라고 하세요⁠?⁠”

“⁠그걸 말이라고 햄수과⁠? 밥 먹으러 오라고 하주⁠.⁠”

*

오후 세 시⁠, 부영철이 화영을 트럭 조수석에 태우고 관측소 철조망 바깥으로 나갔다⁠. 억새 들판 사이로 난 흙길을 따라가자 철조망 바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과 관광객이 반씩 섞였다⁠. 접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 돗자리를 펴고 귤을 까는 사람⁠, 휴대전화를 하늘로 들고 무언가를 녹음하는 사람이 있었다⁠.

철조망에는 손으로 쓴 종이가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외계인님 밥 드시러 오세요 — 구좌읍 부녀회⁠」⁠. 손글씨 종이들 옆에서는 인쇄한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주여⁠, 우리가 먹었나이다 — 첫말씀교회 제주지교회⁠」⁠. 조금 떨어진 곳에는 누가 붙였는지 모를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우리 집엔 쌀 없음⁠. 이 동네 아님⁠」⁠.

“⁠저건 누가 붙였을까요⁠?⁠”

“⁠서울 사람이우다⁠. 어제 렌터카로 와서 붙이고 갔수다⁠.⁠” 부영철이 혀를 찼다⁠. “⁠곳간 짚었다고 하니까 자기 집은 빼 달라는 거라⁠.⁠”

마을 할머니 하나가 트럭 창문으로 다가와 귤 한 봉지를 밀어 넣었다⁠.

“⁠영철이⁠, 이 사람이 그 밥 박사가⁠?⁠”

“⁠예⁠, 삼춘⁠.⁠”

“⁠밥 박사⁠, 하늘에서 진짜 밥 먹었냐고 물어⁠?⁠”

“⁠네⁠. 물어요⁠.⁠”

“⁠경허믄 먹었다고 해 줘⁠. 묻는 사람한테는 대답을 해야지⁠. 대답 안 하면 계속 물어⁠. 우리 손주도 그래⁠.⁠”

할머니가 돌아서자 부영철이 귤을 하나 까서 화영에게 건넸다⁠. 귤껍질에서 쌉싸름한 냄새가 났다⁠.

“⁠마을 사람들은 겁도 나고 궁금도 하우다⁠. 쌀값 오른다고 겁나고⁠, 곱단이 옆에 군인 들어왔다고 겁나고⁠. 근데 다들 궁금해서 와⁠. 겁만 나면 안 오주⁠.⁠” 부영철이 핸들을 돌렸다⁠. “⁠나는 곱단이가 거짓말하는 거 싫수다⁠. 이십팔 년 동안 하늘 소리만 들은 아이가⁠, 처음 입 여는 말이 거짓말이면 되겠수과⁠?⁠”

*

저녁 여섯 시⁠, 관측소 숙소의 좁은 방에서 화영의 휴대전화가 떨렸다⁠. 마리셀이 보낸 영상이었다⁠. 요양원 삼 층 식당⁠, 저녁 식판 앞의 어머니가 화면 안에 있었다⁠. 어머니는 숟가락으로 두부조림을 반으로 갈라 한쪽을 먼저 먹었다⁠. 마리셀의 목소리가 화면 밖에서 들어왔다⁠.

“⁠어머님⁠, 따님한테 한 말씀 하세유⁠.⁠”

어머니가 휴대전화를 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 너머의 딸을 찾는 얼굴이었다⁠.

“⁠밥은 먹었니⁠?⁠”

끝이 한 마디 올라갔다⁠. 걱정의 높이였다⁠. 영상 끝에 마리셀이 글자를 덧붙여 보냈다⁠. 「⁠따님도 보내유⁠. 진지 드시는 거⁠. 약속했잖아유⁠」⁠. 화영은 숙소 책상 위에 남은 귤 하나를 까서 반을 입에 넣고⁠, 휴대전화를 들어 제 얼굴을 찍었다⁠. 「⁠엄마⁠, 귤 먹었어⁠」⁠. 귤은 반찬이 아니라고 마리셀이 바로 답장을 보냈다⁠.

전송을 누르자마자 전화가 걸려 왔다⁠. 오민석이었다⁠.

“⁠박사님⁠, 거기서 뭐 해요⁠?⁠”

“⁠팀장님⁠. 저 잘렸잖아요⁠.⁠”

“⁠잘린 사람이 국방부 자문이에요⁠? 오늘 아침 줄이 하루 늦게 왔는데⁠, 국방부 공문에 박사님 이름이 있었어요⁠.⁠” 민석의 목소리 뒤로 해독실의 똑똑⁠, 틈⁠, 똑똑똑이 희미하게 흘렀다⁠. “⁠국방부가 답장을 보낸다는 소문이 돌아요⁠. 유엔은 어느 나라도 혼자 답하지 말라고 했고요⁠. 거기 정말 보내요⁠?⁠”

화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지자 민석이 한숨을 쉬었다⁠.

“⁠우리 한 번 보내면 끝이에요⁠. 이십오 광년 동안 무를 수가 없어요⁠.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제일 무서운 게 그거예요⁠. 말 한 번 잘못하면⁠, 사과하러 가는 데도 이십오 년이 걸려요⁠.⁠”

“⁠팀장님은 안녕하세요라고 하셨잖아요⁠.⁠”

“⁠안녕하세요는 아무 데도 안 걸리는 말이라서요⁠.⁠” 민석이 잠깐 말을 멈췄다⁠. “⁠나도 듣긴 들었어요⁠, 스물다섯 번⁠. 그러니까 거기서 박사님 귀를 쓰는 사람이 무슨 말을 시키는지 똑바로 들어요⁠.⁠”

*

밤 아홉 시⁠, 제어실 상황판 앞에서 화영은 노트북을 편정훈에게 내밀지 않았다⁠.

“⁠못 만들겠어요⁠.⁠”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말로 「⁠먹을 것이 없다⁠」를 하면 끝이 떨어져요⁠. 누가 해도 떨어져요⁠. 그 높이는 배고프다는 높이예요⁠. 우리 엄마가 이 높이로 말할 때는 자기가 굶었다는 거예요⁠. 이걸 저 줄의 박자로 보내면⁠, 저쪽 귀에는 배고프다는 말로 들려요⁠.⁠”

“⁠저쪽에 귀가 있는지 박사님도 모르십니다⁠.⁠”

“⁠귀가 없으면 박자를 따라 하지도 못했겠죠⁠.⁠”

편정훈은 팔짱을 꼈다⁠. 분석관들이 화면 앞에서 숨을 죽였다⁠. 편정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장관⁠」이라고 떠 있었다⁠. 편정훈은 전화를 받고 짧게 대답했다⁠. 예⁠, 예⁠, 내일 새벽까지는 준비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에 편정훈은 분석관 하나를 불렀다⁠.

“⁠박 대위⁠. 문장을 음성 합성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높낮이는 평평하게⁠. 감정 넣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화영의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기계로요⁠?⁠”

“⁠박사님이 안 만드시면 기계가 만듭니다⁠. 기계는 높낮이를 모릅니다⁠. 그러니 배고픈 높이도 안 들어갑니다⁠.⁠” 편정훈이 화영을 보았다⁠. “⁠박사님 걱정은 해결됐습니다⁠.⁠”

“⁠아니요⁠. 더 나빠졌어요⁠.⁠”

화영은 상황판 앞으로 걸어갔다⁠. 손바닥으로 「⁠2안⁠」 글씨 옆을 짚었다⁠.

“⁠평평하게 말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예요⁠. 화가 났거나⁠, 숨기는 게 있거나⁠. 우리말에서 높낮이를 다 지우고 말하면 그렇게 들려요⁠. 대령님이 오늘 아침에 어머님한테 「⁠묵었어라⁠」 하실 때도 끝이 평평했어요⁠. 이십오 광년 저편에서 우리 박자를 따라 하는 귀라면⁠, 평평한 거짓말도 알아들어요⁠.⁠”

편정훈의 엄지가 바지 솔기를 한 번 문질렀다⁠. 화영은 그것을 보았다⁠. 편정훈도 화영이 본 것을 알았다⁠.

“⁠그럼 박사님이 만드십시오⁠. 높낮이 들어간 거짓말로⁠. 그게 제일 덜 나쁜 거짓말이라면요⁠.⁠”

“⁠하나만 약속해 주세요⁠. 제가 만든 걸 보내기 전에⁠, 대령님이 한 번은 귀로 들으세요⁠. 헤드폰 쓰고⁠, 끝까지요⁠.⁠”

“⁠듣는다고 제 판단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바뀌라는 거 아니에요⁠. 대령님 이름으로 나가는 말이니까 대령님 귀에도 한 번은 들어가야죠⁠. 엄마들은 남의 집 애한테 말 전할 때도 그렇게 해요⁠. 한 번 소리 내서 해 보고 보내요⁠.⁠”

편정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벽에 걸린 헤드폰 하나를 내려 제 자리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부영철이 구석 의자에서 혀를 끌끌 찼다⁠. 이 양반도 귀는 있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 대위가 합성 프로그램을 띄운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화면에 평평한 점이 일곱 개⁠, 줄을 맞춰 기다리고 있었다⁠. 화영은 부엌에서 들고 온 귤 하나를 노트북 옆에 내려놓고 의자를 끌어당겼다⁠. 마이크를 제 입 높이로 내렸다⁠. 송신 창까지는 일곱 시간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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