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342자)

너도 먹어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 은해록

밤 열 시⁠, 관측소 부엌 컨테이너는 사람으로 꽉 찼다⁠. 가스레인지 두 개에 주전자 두 개가 올라가 있었고⁠, 바닥에 깐 돗자리 위에 쌀국수집의 여덟 사람이 다리를 포개고 앉았다⁠. 민석은 냉장고에 등을 기대 졸았고⁠, 미경은 노트북으로 송신 프로그램을 몇 번이고 시험했다⁠. 김제 할머니는 부엌 구석 간이침대에서 코를 골았다⁠. 코 고는 소리가 일정해서 미경이 박자를 셌다⁠. 크게 둘⁠, 쉬고⁠, 작게 셋⁠.

“⁠막내님⁠, 할머님 코 고는 거 밥은 먹었니 박자예요⁠.⁠”

“⁠선배⁠, 그거 녹음하지 마요⁠.⁠”

“⁠벌써 했는데요⁠.⁠”

응옥이 웃다가 사레가 들렸다⁠. 사무차장이 부엌 문간에서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고개를 저었다⁠. 서울 국방부와 세 번째 통화였다⁠. 대답은 세 번 다 같았다⁠. 장비는 대한민국의 것이고⁠, 봉인은 장관의 결정이다⁠. 통화를 끝낸 사무차장이 돗자리 끝에 앉아 부영철이 남겨 둔 몸국을 데워 먹었다⁠. 세 그릇째였다⁠. 화영과 눈이 마주치자 사무차장이 숟가락을 든 채 어깨를 으쓱했다⁠. 화가 나면 많이 먹는 사람이 대령 말고도 있었다⁠.

편정훈은 부엌에 없었다⁠. 저녁을 먹고 나간 뒤로 들어오지 않았다⁠. 화영은 창문으로 밖을 보았다⁠. 송신동 철문 앞 작은 백열등 아래에 사람 둘이 앉아 있었다⁠. 군복 하나⁠, 고무장화 하나⁠.

*

밤 열한 시 반⁠, 송신동 철문 앞에서 부영철이 보온병 뚜껑에 보리차를 따라 편정훈에게 건넸다⁠. 편정훈은 받아서 마셨다⁠. 두 사람은 철문을 등지고 콘크리트 턱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빨간 봉인 띠가 두 사람 뒤에서 바람에 바스락거렸다⁠.

화영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쪼그려 앉았다⁠. 두 사람이 화영을 보았지만 아무도 오라고도 가라고도 하지 않았다⁠.

“⁠장관이 전화했수다⁠.⁠” 부영철이 화영에게 말했다⁠. “⁠열쇠 들고 서울로 올라오래⁠. 아침 첫 비행기로⁠.⁠”

“⁠대령님⁠, 올라가세요⁠?⁠”

편정훈은 보리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대답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엄니가 낮에 하신 말씀 들으셨지요⁠. 우리 아버지 얘기⁠.⁠”

“⁠네⁠.⁠”

“⁠아버지는 아무한테도 대답을 안 하셨습니다⁠. 동네 사람이 인사를 해도 고개만 까딱하고⁠, 엄니가 밥 먹었냐고 물어도 밥상에 앉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셨습니다⁠. 나쁜 분은 아니었습니다⁠. 말을 아끼면 실수가 없다고 믿으셨습니다⁠.⁠” 편정훈이 보온병 뚜껑을 손바닥 안에서 돌렸다⁠. “⁠장례 때 동네 사람이 일곱 명 왔습니다⁠. 엄니는 그날 하루 종일 일곱 명한테 밥을 차렸습니다⁠. 일곱 명이 다 먹고 갈 때까지요⁠.⁠”

억새 들판에서 바람이 한 번 크게 지나갔다⁠.

“⁠저는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대답 안 하는 게 지키는 거라고 배웠고⁠, 그렇게 서른 해 군대에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게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편정훈이 하늘을 보았다⁠. 접시가 가리키는 자리였다⁠. “⁠다만 오늘 엄니가 미국 대표 밥그릇에 김치 얹는 걸 보면서⁠, 아버지 장례 때 생각이 났습니다⁠. 일곱 명이요⁠.⁠”

부영철이 편정훈의 보온병 뚜껑에 보리차를 더 따랐다⁠.

“⁠대령님⁠. 열쇠는 문 여는 데 쓰는 거우다⁠. 잠그는 데 쓰는 건 자물쇠고⁠.⁠”

“⁠어르신⁠,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열쇠로 잠급니다⁠.⁠”

“⁠잠그는 건 손으로 딸깍 하면 되우다⁠. 열쇠 없어도 잠겨⁠. 열쇠가 있어야 하는 건 열 때뿐이우다⁠.⁠”

편정훈이 부영철을 보았다⁠. 이윽고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짧고 낮은 웃음이 철문에 부딪쳐 돌아왔다⁠.

*

새벽 한 시⁠, 숙소 방에서 화영은 마리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리셀은 야간 근무였다⁠. 목소리를 낮춰 받았다⁠.

“⁠어머님 안 주무셔유⁠. 휴게실 테레비 앞에 계셔유⁠. 뉴스에서 제주 접시를 계속 비추거든유⁠. 불 켜진 철문이랑 그 앞에 앉은 대령님이랑⁠.⁠”

“⁠엄마가 뭐 하세요⁠?⁠”

“⁠숟가락 쥐고 계셔유⁠. 저녁 드시고 나서 숟가락을 안 놓으셔유⁠. 제가 가져가려니까 손을 꼭 쥐셨슈⁠.⁠” 마리셀이 잠깐 말을 멈췄다⁠. “⁠따님⁠. 말씀은 아직 안 하셔유⁠. 근데 테레비에 따님 나오면 숟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켜유⁠. 저거⁠, 하고⁠.⁠”

화영은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창밖의 백열등을 보았다⁠. 철문 앞의 군복과 고무장화가 작게 보였다⁠. 대전의 휴게실 텔레비전에도 같은 그림이 떠 있었다⁠. 어머니는 숟가락으로 같은 그림을 가리키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미경과 민석이 송신 프로그램 앞에서 손가락을 꼽고 있었다⁠.

“⁠이게 닿으면 저는 쉰한 살이에요⁠.⁠” 미경이 말했다⁠.

“⁠나는 여든하나⁠.⁠” 민석이 말했다⁠. “⁠대답이 돌아오면 백여섯⁠.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해독실에 휠체어 타고 갈 거예요⁠. 안녕하세요 지우러⁠.⁠”

응옥이 국자를 들고 끼어들었다⁠. “⁠팀장님⁠, 그거 지운 지 언젠데요⁠.⁠”

“⁠다시 쓰고 지우러요⁠. 오십 년 걸려서 고친 오타는 두 번 지워야 돼요⁠.⁠”

*

새벽 세 시⁠, 화영은 혼자 송신동 앞으로 갔다⁠. 부영철은 부엌으로 들어가 쌀을 씻고 있었다⁠. 편정훈은 철문 앞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이 밤새 앉아 있던 콘크리트 턱에는 먼지가 엉덩이 모양으로 두 군데 쓸려 있었다⁠. 점퍼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손바닥에 올려 두었다⁠. 빨간 꼬리표가 백열등 빛에 검붉었다⁠.

“⁠대령님⁠.⁠”

편정훈의 발치에는 보온병 뚜껑이 놓여 있었다⁠. 보리차가 반쯤 식어 김이 오르지 않았다⁠. 밤새 한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답게 군복 무릎이 구겨져 있었다⁠.

“⁠박사님⁠. 하나만 빼 주십시오⁠.⁠” 편정훈이 먼저 말했다⁠. “⁠너는⁠? 을 빼면 열겠습니다⁠. 먹었어⁠. 거기까지만 보냅시다⁠. 대답은 합니다⁠. 하지만 묻지 않습니다⁠. 묻지 않으면 상대를 부르지 않습니다⁠.⁠”

화영은 열쇠를 보았다⁠.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였다⁠. 뻗지 않았다⁠.

“⁠그건 제가 엄마한테 못 한 말이에요⁠.⁠”

“⁠압니다⁠. 그래서 빼자는 겁니다⁠.⁠” 편정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피하지 않았다⁠. “⁠박사님 집 일은 박사님이 어머님께 직접 하십시오⁠. 대전에 가셔서⁠, 어머님 앞에서요⁠. 하늘에는 칠십억이 다 감당할 수 있는 말만 보냅시다⁠. 너는⁠? 은 대답을 기다리는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이 그 대답을 받아야 합니다⁠. 그 아이들이 원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먹었어만 보내면요⁠?⁠”

“⁠보내면요⁠?⁠”

“⁠엄마들은 또 물어요⁠.⁠” 화영이 한 걸음 다가갔다⁠. “⁠대답만 하고 끊는 애한테 엄마들은 계속 물어요⁠. 제가 세 해 동안 먹었어 하고 끊었어요⁠. 엄마는 다음 날 아침에 또 물었어요⁠. 하늘도 그럴 거예요⁠. 먹었어만 받으면⁠, 세 번째 네 번째로 물을 거예요⁠. 그때마다 우리는 또 이렇게 철문 앞에서 싸우고요⁠.⁠”

편정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열쇠를 쥔 손가락이 오므라들었다가 펴졌다⁠.

“⁠대령님은 부르는 말이 무서우신 거죠⁠. 너는⁠? 은 여기 와서 말해 달라는 말 같으니까⁠.⁠”

“⁠예⁠.⁠”

“⁠저는 끊는 말이 무서워요⁠. 먹었어로 끝나면⁠, 엄마 얼굴 안 보고 현관문 닫는 소리 같으니까⁠.⁠”

두 사람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봉인 띠가 철문에 탁탁 부딪혔다⁠. 화영은 니트 소매를 손등까지 끌어내렸다가 도로 걷어 올렸다⁠. 소매 끝에는 어머니가 뜯어 준 보풀 자리만 남아 있었다⁠.

“⁠엄마들이 전화 끊을 때 하는 말이 있어요⁠.⁠”

“⁠무슨 말입니까⁠?⁠”

“⁠너도 먹어⁠.⁠” 화영이 말했다⁠. “⁠먹었어⁠. 너도 먹어⁠. 묻지 않아요⁠. 오라는 말도 아니에요⁠. 오라는 말은 밥 먹으러 와예요⁠. 너도 먹어는 거기서 먹으라는 말이에요⁠. 너는 너 있는 데서⁠, 나는 나 있는 데서⁠. 그리고 걱정은 돌려줘요⁠. 끊는데 현관문을 쾅 닫지는 않아요⁠.⁠”

편정훈이 화영을 오래 보았다⁠. 이윽고 철문의 자물쇠를 보았다⁠. 다음에 하늘을 보았다⁠.

“⁠각자 자기 집에서⁠.⁠”

“⁠네⁠. 각자 자기 집에서요⁠.⁠”

“⁠엄니가 저한테 전화 끊을 때마다 하시는 말입니다⁠.⁠” 편정훈이 말했다⁠. “⁠밥 묵어라⁠. 니 있는 데서⁠.⁠”

*

새벽 세 시 이십 분⁠, 사무차장이 부엌 컨테이너에서 대표 서른다섯 명에게 단체 영상 통화를 걸었다⁠. 근처 호텔과 민박에서 자다 깬 얼굴들이 화면에 바둑판처럼 떴다⁠. 잠옷 차림⁠, 머리에 수건을 감은 얼굴⁠, 안경을 이마에 올린 얼굴⁠. 사무차장이 새 한 줄을 읽었다⁠. 통역사가 자다 깬 목소리로 여러 말로 옮겼다⁠.

「⁠먹었어⁠. 너도 먹어⁠.⁠」

미국 대표가 화면 속에서 안경을 고쳐 썼다⁠.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통역이 옮겼다⁠. 이 말이라면 제 나라의 어머니들에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대답은 하되⁠, 부르지는 않는 말이니까요⁠.

중국 대표는 웃으며 숟가락을 화면에 들어 보였다⁠. 호텔 방에서 가져온 숟가락이었다⁠. 베트남 대표도⁠, 필리핀 대표도 숟가락을 들었다⁠. 손에 숟가락이 없는 대표는 칫솔을 들었다⁠. 사무차장이 셌다⁠. 서른한 명이었다⁠. 유럽의 몇 사람은 끝까지 침묵에 남았다⁠. 남는 사람에게도 이유가 있었고⁠, 이유를 말할 시간이 모자랐다⁠.

통화가 끝나자 응옥이 화영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언니⁠. 그 말⁠, 누구 목소리로 보내요⁠? 국방부 기계는 안 되잖아요⁠. 할머니 목소리도 안 되고⁠.⁠”

“⁠우리 목소리로요⁠.⁠” 화영이 대답했다⁠. “⁠하늘이 여덟 나라 말로 물었잖아요⁠. 여덟 나라 말로 대답해요⁠. 응옥 씨네 여덟 사람하고⁠, 한국말은 제가 할게요⁠. 아홉이요⁠.⁠”

응옥이 다른 일곱을 돌아보았다⁠. 인도네시아 청년 둘이 서로 자기가 하겠다고 다투다가⁠, 화영이 한 사람만이라고 하자 가위바위보를 했다⁠. 미얀마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목을 가다듬었다⁠.

부엌 간이침대에서 김제 할머니가 눈을 떴다⁠. 화면 속 칫솔 든 대표들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응옥이 대답했다⁠. 할머니 말이 이겼어요⁠. 할머니는 무슨 말이 이겼는지 모르는 채 그럼 됐다고 하고 도로 누웠다⁠.

*

새벽 세 시 오십 분⁠, 송신동 철문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민석이 철문 옆에 섰고⁠, 미경이 노트북을 끌어안았다⁠. 부영철이 맨 앞에서 고무장화를 신은 발로 콘크리트를 디뎠다⁠. 쌀국수집의 여덟 사람이 뒤에서 반원을 그렸다⁠. 박 대위와 병장이 철문 양쪽에서 경례 자세로 서 있다가 편정훈이 고개를 젓자 손을 내렸다⁠.

편정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장관⁠」이 떠 있었다⁠. 편정훈은 화면을 한 번 보고⁠, 휴대전화를 뒤집어 콘크리트 턱 위에 엎어 놓았다⁠. 진동이 콘크리트를 타고 웅웅 울렸다⁠. 편정훈은 진동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열쇠가 자물쇠에 들어갔다⁠. 돌아가는 소리는 작았다⁠. 딸깍⁠. 편정훈은 자물쇠를 빼서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장관의 직함이 찍힌 꼬리표가 바람에 흔들렸다⁠.

“⁠제 이름으로 엽니다⁠. 박 대위⁠, 기록해 둬⁠. 시각과 내 이름⁠.⁠”

“⁠…예⁠, 대령님⁠.⁠”

부영철이 빨간 봉인 띠의 매듭을 손가락으로 풀었다⁠. 이십팔 년 동안 접시의 볼트를 조이던 손가락이었다⁠. 띠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철문이 열렸다⁠. 안에서 기계들의 초록 불빛이 새어 나왔다⁠. 오래 잠든 방의 먼지 냄새가 났다⁠.

편정훈이 엎어 둔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편정훈이 집어 들었다⁠. 화면을 보고 받았다⁠. 「⁠엄니⁠」였다⁠. 부엌 컨테이너의 창문에 할머니 얼굴이 비쳤다⁠. 오십 미터 떨어진 부엌에서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아들을 내다보고 있었다⁠.

“⁠예⁠, 엄니⁠. 안 주무시고⁠. 예⁠. 열었어라⁠.⁠”

편정훈의 끝이 바닥에 닿았다⁠. 화영은 철문 앞에서 바닥에 닿는 목소리를 들었다⁠. 송신까지 이십이 분이 남아 있었다⁠.

1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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