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62자)

김제 햅쌀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 은해록

11월 7일 아침 일곱 시 십 분⁠, 유성 햇살요양원 삼 층 식당에서 어머니가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흰죽이 그릇 가득 남아 있었다⁠. 블라인드는 닫혀 있었다⁠. 드론은 경찰이 쫓아냈고 정문 밖의 기자들은 헌병이 오십 미터 밖으로 밀어냈지만⁠, 어머니는 창문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

“⁠엄마⁠. 나 왔어⁠. 뉴욕에서⁠.⁠”

어머니가 딸을 보았다⁠. 눈은 딸을 알아보았다⁠. 입술은 열리지 않았다⁠.

화영은 어머니의 숟가락을 들어 죽을 떴다⁠. 숟가락을 입 가까이 가져가자 어머니가 고개를 아주 조금 돌렸다⁠. 거절이었다⁠. 세 해 동안 한 번도 받지 않은 거절이었다⁠. 화영은 숟가락을 그릇에 내려놓았다⁠.

마리셀이 옆자리에 앉았다⁠. 눈 밑이 거뭇했다⁠. 사흘째 집에 안 들어간 얼굴이었다⁠.

“⁠어제는 미음 세 숟가락 드셨어유⁠. 그제는 두 숟가락⁠. 의사 선생님이 하루만 더 보고 안 되면 영양제 놓자고 하셨슈⁠.⁠” 마리셀은 어머니의 손등을 쓸었다⁠. “⁠따님⁠, 어머님이 말을 안 하시니까 요양원이 이상해유⁠. 아침마다 밥은 먹었니 소리가 복도 끝까지 들렸거든유⁠. 할머니들이 그 소리로 아침 시작하셨어유⁠. 오늘 아침엔 다들 조용히 잡숫고 계셔유⁠.⁠”

식당의 다른 할머니들이 숟가락을 움직이며 어머니를 힐끔거렸다⁠. 맞은편 할머니가 화영에게 손짓했다⁠. 이리 와 보라는 손짓이었다⁠. 화영이 가자 할머니가 귓속말을 했다⁠.

“⁠밥 박사⁠. 엄마 말 좀 하게 해 봐⁠. 저 양반이 안 물으니까 내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모르겠어⁠.⁠”

화영은 웃으려다 웃지 못했다⁠. 할머니가 화영의 손에 요구르트 하나를 쥐여 주었다⁠.

옆자리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들어 보이며 끼어들었다⁠.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였다⁠. “⁠내가 대신 물어 줄까⁠? 밥은 먹었니⁠!⁠”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식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끝이 너무 높아서 거의 노래였다⁠. 식당의 할머니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먹었어⁠! 마리셀이 손뼉을 쳤다⁠.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머쓱하게 숟가락을 내렸다⁠. 내 높이가 틀렸나⁠, 하고 중얼거렸다⁠.

*

오전 내내 화영은 어머니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휴대전화는 꺼 두었다⁠. 켜면 「⁠밥은 먹었니 할머니⁠」 영상이 쏟아졌다⁠. 세상의 엄마들이 저마다 자기 말로 밥 먹었냐고 묻는 영상을 찍어 올렸고⁠, 영상마다 어머니의 녹음 한 토막이 배경으로 깔렸다⁠. 세상이 어머니의 한 마디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동안⁠, 어머니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화영은 어머니의 손톱을 깎았다⁠. 손톱깎이 소리가 방 안에 또각또각 울렸다⁠. 어머니는 손을 맡기고 천장을 보았다⁠. 왼손 검지의 손톱 옆에 오래된 칼자국이 있었다⁠. 연구원 식당에서 서른 해 동안 무를 썰다 생긴 자국이었다⁠.

“⁠엄마⁠. 미안해⁠.⁠”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딸을 보았다⁠. 입술이 움직이려다 말았다⁠. 화영은 손톱깎이를 내려놓고 어머니의 손바닥을 제 뺨에 댔다⁠. 손바닥이 서늘했다⁠.

“⁠엄마 목소리 틀어서 미안해⁠. 삼백열두 번이나⁠. 다른 방법이 없었어⁠. 엄마 아니면 아무도 안 들을 것 같았어⁠.⁠”

어머니의 손바닥이 딸의 뺨 위에서 가만히 있었다⁠. 밀어내지도 쓰다듬지도 않았다⁠.

*

오후 세 시⁠, 요양원 일 층 면회실에 편정훈이 들어왔다⁠. 군복이 아니었다⁠. 회색 점퍼에 청바지를 입었고⁠, 어깨에 쌀 포대 하나를 메고 있었다⁠. 이십 킬로그램짜리 포대 옆구리에 굵은 매직 글씨가 있었다⁠. 「⁠김제 진봉 햅쌀 · 편씨네⁠」⁠.

“⁠보직 해임입니다⁠. 감봉 석 달⁠.⁠” 편정훈은 포대를 면회실 바닥에 내려놓고 허리를 폈다⁠. “⁠엄니가 보내셨습니다⁠. 뉴스 보시고 전화하셨습니다⁠. 그 할머니 밥 안 잡순다는데 우리 쌀로 밥 해 드려라⁠. 햅쌀은 냄새가 달라서 입맛 없는 사람도 먹는다고⁠.⁠”

“⁠어머님이 그러셨어요⁠?⁠”

“⁠예⁠. 저한테는 감봉 얘기도 안 물으셨습니다⁠. 밥 해 드렸냐고만 물으실 겁니다⁠.⁠”

화영은 포대를 보았다⁠. 매직 글씨가 삐뚤빼뚤 신이 나 있었다⁠. 1985년 테이프의 볼펜 글씨와 닮아 있었다⁠.

“⁠대령님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시잖아요⁠. 왜 오셨어요⁠?⁠”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닙니다⁠. 장관께서 제주 회의에 국방부 참관인으로 저를 보내십니다⁠. 일을 아는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요⁠. 징계는 징계고 일은 일이랍니다⁠.⁠” 편정훈이 면회실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말씀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장관 방침입니다⁠. 제주 회의가 무엇을 정해도⁠, 송신은 대한민국 장비로 합니다⁠. 곱단이도 대한민국 장비입니다⁠. 장관은 봉인을 풀지 않습니다⁠. 유엔이 정한 한 줄이 무엇이든⁠, 곱단이 입으로는 안 나갑니다⁠.⁠”

화영은 의자 팔걸이를 쥐었다⁠.

“⁠그럼 제주 회의는 왜 해요⁠?⁠”

“⁠유엔이 하라니까 합니다⁠. 하고 나서 안 보내면 됩니다⁠. 침묵 결의가 미뤄졌을 뿐 부결된 게 아닙니다⁠.⁠” 편정훈은 무릎 위에서 손을 깍지 꼈다⁠. “⁠그리고 저는 장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뉴욕에서 3안 거두신 분이요⁠?⁠”

“⁠3안은 피리라서 거뒀습니다⁠. 침묵은 피리가 아닙니다⁠.⁠” 편정훈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위층이 삼 층 식당이었다⁠. “⁠박사님⁠. 어머님을 뵈었습니다⁠. 올라오는 길에 식당 문틈으로요⁠. 어머님은 지금 입을 닫으셨습니다⁠. 무서운 걸 보시고⁠, 자기 목소리가 남의 손에서 돌아다니는 걸 보시고⁠, 입을 닫으셨습니다⁠. 저는 그게 옳은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님도 침묵을 고르셨습니다⁠.⁠”

화영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엄마는 고른 게 아니에요⁠. 다친 거예요⁠.⁠”

편정훈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쳐서 입을 닫는 게 고르는 겁니다⁠. 사람은 그렇게 고릅니다⁠. 나라도 그렇습니다⁠.⁠”

“⁠아니요⁠. 다친 사람이 입을 닫으면⁠, 옆 사람이 먼저 말을 거는 거예요⁠. 엄마가 세 해 동안 저한테 그랬어요⁠. 제가 대답을 안 해도요⁠. 거짓말로 대답해도요⁠. 다음 날 아침에 또 물었어요⁠.⁠” 화영의 목소리가 면회실 유리창을 울렸다⁠. “⁠대령님 말대로라면 엄마는 세 해 전에 쓰러졌을 때 입을 닫았어야 해요⁠. 엄마는 남은 한 마디로 계속 물었어요⁠. 그게 엄마가 고른 거예요⁠.⁠”

면회실 문밖에서 헌병 하나가 고개를 들이밀었다가 도로 뺐다⁠. 편정훈은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닥의 쌀 포대에서 햅쌀 냄새가 났다⁠. 볏짚 같기도 하고 갓 찐 떡 같기도 한 냄새였다⁠.

“⁠말로는 박사님을 못 이기겠습니다⁠.⁠” 편정훈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쌀 포대를 다시 어깨에 멨다⁠. “⁠부엌이 어딥니까⁠?⁠”

*

요양원 부엌의 영양사는 처음에 안 된다고 했다⁠. 외부 음식 반입 규정이 있었다⁠. 마리셀이 영양사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였다⁠. 영양사가 편정훈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앞치마 하나를 건넸다⁠. 마리셀이 화영에게 말했다⁠.

“⁠저 대령님이 우리 어머님 목소리로 오지 말라는 거 막은 분이라고 했슈⁠. 영양사님도 뉴스 보셨대유⁠.⁠”

편정훈은 앞치마를 두르고 쌀을 씻었다⁠. 손이 익숙했다⁠. 세 번을 씻고 네 번째 물을 버린 뒤 손바닥으로 쌀을 눌러 물을 맞췄다⁠. 손등까지 물이 오는 높이였다⁠.

“⁠엄니한테 배웠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밥은 하고 가라고⁠.⁠”

영양사가 팔짱을 끼고 지켜보다가 한마디 했다⁠. “⁠대령님⁠, 물이 좀 적은데요⁠.⁠” 편정훈이 손등을 들여다보았다⁠. “⁠햅쌀은 물을 덜 먹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손등까지만 맞췄습니다⁠.⁠” 영양사가 팔짱을 풀고 수첩을 꺼냈다⁠.

압력솥의 추가 돌기 시작했다⁠. 칙칙 소리가 부엌에 퍼졌다⁠. 부엌 밖 식당에서 할머니들이 고개를 들었다⁠. 밥 냄새가 복도로 흘러갔다⁠. 삼 층까지 올라가는 데 오 분이 걸리지 않았다⁠.

밥을 공기에 담아 삼 층으로 올라갔을 때 어머니는 침대에 기대앉아 있었다⁠. 마리셀이 블라인드를 반쯤 올려 두었다⁠. 오후 햇빛이 이불 위에 비스듬히 누웠다⁠. 화영이 밥공기를 내밀었다⁠. 김이 올라갔다⁠. 어머니가 김을 보았다⁠.

화영은 숟가락으로 밥을 아주 조금 떠서 어머니 입 가까이 가져갔다⁠. 어머니가 냄새를 맡았다⁠. 코끝이 움직였다⁠. 입술이 조금 열렸다⁠. 숟가락이 들어갔다⁠. 어머니는 오래 씹었다⁠. 씹다가 눈을 감았다⁠.

화영이 한 숟가락 더 떴다⁠. 어머니가 받았다⁠.

두 숟가락이었다⁠. 세 번째 숟가락은 고개를 돌려 받지 않았다⁠. 말도 하지 않았다⁠. 화영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남은 밥을 자기 입에 넣었다⁠. 햅쌀은 달았다⁠. 문간에 서 있던 편정훈이 고개를 숙이고 복도로 물러났다⁠.

*

다섯 시 반⁠, 요양원 정문 옆 벤치에서 편정훈이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화영은 몇 걸음 떨어진 은행나무 아래에 있었다⁠. 은행잎이 거의 다 떨어져 벤치 위가 노랬다⁠.

“⁠예⁠, 엄니⁠. 해 드렸어라⁠.⁠”

전화기 너머에서 김제의 목소리가 굵게 울렸다⁠.

“⁠그 할머니 잡쉈냐⁠?⁠”

“⁠두 숟가락 잡쉈어라⁠.⁠”

두 숟가락뿐이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편정훈이 웃었다⁠.

“⁠두 숟가락이면 많이 잡순 거래요⁠, 엄니⁠. 사흘 만에 처음이래요⁠. 예⁠. 예⁠. 다음 주에 또 보내 주신다고요⁠? 엄니⁠, 이십 킬로면 요양원 할머니들 다 잡숴도 한 달이어라⁠.⁠”

전화를 끊은 편정훈이 화영을 보았다⁠. 묻기 전에 먼저 말했다⁠.

“⁠바닥에 닿았습니까⁠?⁠”

“⁠닿았어요⁠. 두 숟가락이라고 하실 때요⁠.⁠”

편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벤치에서 일어나 점퍼에 붙은 은행잎을 털었다⁠. 털어도 하나가 어깨에 남았다⁠. 화영은 떼어 주지 않았다⁠. 제주 회의에서 보자는 말도⁠, 봉인을 풀어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오늘 할 말은 다 했다⁠.

*

저녁 여섯 시⁠, 요양원 주차장에서 화영은 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제주 회의 일정 보셨어요⁠?⁠”

“⁠봤어요⁠. 11월 15일 오전 열 시 개회⁠, 각국 대표 발언⁠, 오후 초안 토의⁠, 이튿날 새벽 표결⁠. 식사는 회의 끝나고 만찬⁠.⁠”

“⁠그거 바꿔 주세요⁠. 밥 먼저 먹고 회의해요⁠.⁠”

“⁠…네⁠?⁠”

“⁠회의 앞에 밥이요⁠. 대표들 다 같이 앉아서 먹는 거요⁠. 밥 묻는 말을 쓰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밥상을 차리고요⁠. 응옥 씨네 국수⁠, 영철 선생님 몸국⁠, 김제 햅쌀⁠. 회의하는 사람들은 굶어야 일한다고 생각한대요⁠. 대령님이 그러셨어요⁠.⁠” 화영은 차 문에 기댔다⁠. “⁠밥은 먹었니라고 물어 온 걸 두고 회의하는데⁠, 다들 밥도 안 먹고 회의하면 안 되잖아요⁠.⁠”

민석이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웃음소리가 들렸다⁠. 피곤하지 않은 웃음이었다⁠.

“⁠유엔 의전실이 기절할 거예요⁠. 해 볼게요⁠. 연구원장이 요즘 기분이 좋아서요⁠.⁠” 민석이 잠깐 말을 끊었다⁠. “⁠박사님⁠. 밥상 차리는 사람은 정해 놨어요⁠?⁠”

“⁠네⁠. 제주에 다 있어요⁠. 쌀국수집 여덟 사람하고 영철 선생님이요⁠.⁠”

“⁠그럼 숟가락은 내가 챙길게요⁠. 연구원 식당에서 빌려 갈게요⁠. 조장님이 서른 해 쓴 숟가락이 창고에 몇 상자 있대요⁠.⁠”

전화를 끊자마자 휴대전화가 떨렸다⁠. 부영철이었다⁠. 문자였다⁠. 맞춤법은 엉망이었지만 다 읽혔다⁠.

「⁠밥박사 곱단이 송신실 봉인띠 위에 자물쇠가 하나 더 생겼수다 오늘 서울서 사람이 와서 채우고 감 자물쇠에 장관 이름 붙어 이써⁠」

사진 한 장이 따라왔다⁠. 송신동 철문에 빨간 봉인 띠가 감겨 있었고⁠, 띠 위에 새 자물쇠가 매달려 있었다⁠. 자물쇠에 붙은 종이에 직함과 도장이 찍혀 있었다⁠. 사진 귀퉁이에 부영철의 고무장화 한 짝이 찍혀 있었다⁠. 철문 앞에서 비키지 않은 장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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