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42자)

삼백열두 번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 은해록

11월 5일 아침 여섯 시⁠, 뉴욕 호텔 방에서 화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민석이었다⁠. 대전은 저녁 여덟 시였다⁠.

“⁠박사님⁠, 봤어요⁠? 필리핀⁠.⁠”

“⁠아직이요⁠.⁠”

“⁠새벽에 보냈어요⁠. 먹었나이다⁠. 생중계로요⁠. 신도들이 바닷가에서 밥공기 들고 울었어요⁠. 첫말씀교회가 인류의 첫 대답이라고 제목을 붙였고요⁠.⁠” 민석이 잠깐 숨을 골랐다⁠. 이어서 웃음을 참는 소리가 났다⁠. “⁠근데 박사님⁠. 그 접시 지름이 칠 미터예요⁠. 낡았고요⁠. 그 출력으로는 이십오 광년 못 가요⁠. 달까지도 겨우 가요⁠. 달에 사는 토끼가 먹었나이다를 들었을 거예요⁠.⁠”

화영은 침대 모서리에 앉은 채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멈췄다⁠.

“⁠그럼 하늘에 닿는 대답은 아직 하나도 없는 거네요⁠.⁠”

“⁠없어요⁠. 큰 접시는 세상에 몇 개 없어요⁠. 곱단이 같은 애들이요⁠. 오늘 표결이 침묵이면⁠, 그 몇 개가 다 입을 닫아요⁠.⁠” 민석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여동현 목사가 아침 방송에서 그러더라고요⁠. 우리 목소리가 작았다고⁠. 큰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대답하라고⁠. 틀린 말은 아니에요⁠.⁠”

호텔 방 텔레비전을 켜자 필리핀 바닷가가 나왔다⁠. 동이 트기 전의 어두운 모래밭에 흰 옷 입은 사람들이 수백 명 무릎을 꿇고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접시가 하늘을 향했고⁠, 접시 아래에서 여동현이 두 팔을 벌렸다⁠. 확성기에서 녹음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여⁠, 우리가 먹었나이다⁠. 여동현의 목소리였다⁠. 신도들이 일제히 따라 했다⁠. 파도 소리가 기도 소리를 덮었다 걷었다 했다⁠.

화면 아래 자막이 바뀌었다⁠. 「⁠전문가 “⁠출력 부족⁠, 달 궤도 너머 도달 어려워⁠”⁠」⁠. 화면 속 여동현은 자막을 보지 못하고 계속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화영은 웃지 않았다⁠. 카메라가 신도들의 무릎을 비췄다⁠. 밤새 모래에 꿇은 바짓단이 바닷물에 젖어 검었다⁠. 무릎을 꿇은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도 달까지만 가는 대답을 하러 온 사람은 없었다⁠.

*

오전 열 시⁠, 안보리 회의장의 둥근 탁자는 말발굽처럼 한쪽이 열려 있었다⁠. 열린 자리 너머 벽에 큰 그림이 걸려 있었고⁠, 방청석이 위로 층층이 올라갔다⁠. 화영은 한국 대표단 뒷줄에 앉았다⁠. 편정훈은 대사 바로 뒤에 앉았다⁠. 군복을 입고 있었다⁠.

미국 대표가 침묵 결의안을 읽었다⁠. 모든 회원국은 외계 신호에 대한 송신을 무기한 중단한다⁠. 대형 전파 망원경의 송신 장비를 봉인한다⁠. 상대의 의도가 확인될 때까지⁠. 확인될 길은 적혀 있지 않았다⁠.

이어서 한국 대사가 공동 답신안을 소개했다⁠. 대사가 손짓하자 회의장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왔다⁠.

“⁠먹었다⁠. 오지 마라⁠.⁠”

스물두 살의 목소리였다⁠. 둥글고 높은 목소리가 평평하게 깔려 나왔다⁠. 숨 쉬는 자리가 없었다⁠. 웃음에 젖은 끝도 없었다⁠. 국방부 분석팀이 연구원장의 사과 방송에서 흘러나간 테이프 소리를 떼어 만든 목소리였다⁠. 민석이 자료를 거부하자 텔레비전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화영의 손톱이 손바닥에 박혔다⁠. 어머니가 한 번도 하지 않은 말이 어머니의 목소리로 회의장을 한 바퀴 돌았다⁠. 오지 마라⁠. 연구원 식당의 밤 열한 시 문간이 떠올랐다⁠. 식은 밥을 데우는 가스 불이 떠올랐다⁠.

편정훈이 대사의 어깨를 짚었다⁠. 대사가 돌아보았다⁠. 편정훈이 낮게 무언가를 말했다⁠. 대사의 얼굴이 굳었다가⁠, 의장에게 손을 들었다⁠.

“⁠한국 대표단 군사 자문이 발언을 요청합니다⁠.⁠”

편정훈이 마이크 앞에 앉았다⁠. 회의장의 눈이 군복으로 모였다⁠.

“⁠한국 정부의 공동 답신안을 만든 사람 가운데 하나로서 말씀드립니다⁠. 이 안을 거두기를 건의합니다⁠.⁠” 편정훈의 영어는 어제보다 느렸다⁠. “⁠방금 들으신 목소리는 제가 어제 말씀드린 사냥꾼의 피리입니다⁠. 우리가 만든 피리입니다⁠. 우리가 상대를 사냥꾼이라고 의심하면서⁠, 우리는 진짜 엄마의 목소리를 빌려 피리를 불려고 했습니다⁠. 저는 이 선을 넘지 않겠다고 한 사람에게 약속했습니다⁠.⁠”

한국 대사의 볼펜이 탁자 위에 떨어졌다⁠. 회의장이 웅성거렸다⁠. 편정훈은 대사를 돌아보지 않았다⁠.

“⁠3안을 거두면 남는 것은 침묵입니다⁠. 저는 침묵이 위험이 가장 적다는 생각을 아직 바꾸지 않았습니다⁠. 다만 침묵을 고르기 전에⁠, 이 목소리의 주인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한 번은 들어 보셔야 합니다⁠. 한국 대표단의 자료 해설 자문이 들려 드릴 것이 있습니다⁠.⁠”

*

화영은 마이크 앞으로 걸어갔다⁠. 니트 자락이 다리에 휘감겼다⁠. 휴대전화를 회의장 음향 장치에 꽂았다⁠. 손가락이 녹음 폴더의 맨 위를 눌렀다⁠. 삼백열두 개를 차례로 이어 트는 목록이었다⁠. 어젯밤 코리아타운에서 돌아와 새벽까지 만든 목록이었다⁠.

“⁠제 어머니입니다⁠. 세 해 전부터 이 한 마디만 하십니다⁠. 제가 세 해 동안 녹음했습니다⁠.⁠”

화영은 재생 단추를 눌렀다⁠.

밥은 먹었니⁠?

요양원 식당의 아침이었다⁠. 끝이 한 마디 올라갔다⁠. 다음 파일이 이어졌다⁠. 밥은 먹었니⁠? 끝이 두 마디⁠. 다음은 야단치는 소리였다⁠. 끝이 뚝 떨어졌다⁠. 통역 부스의 통역사들이 옮기다 말았다⁠. 옮길 말이 매번 같았고⁠, 같은 말이 매번 달랐다⁠.

녹음은 쉬지 않고 흘렀다⁠. 걱정의 높이가 흐르다가 반가움의 높이가 섞였다⁠. 아버지 병원에서 돌아온 아침의 평평한 높이⁠, 점심을 두 시까지 굶은 날의 바닥에 깔린 높이⁠. 어떤 녹음에서는 뒤에서 마리셀이 웃었고⁠, 어떤 녹음에서는 비가 창문을 두드렸다⁠. 화영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하자 어머니가 고개를 젓고 물은 높이도 있었다⁠. 괜찮다는 뜻의 밥은 먹었니였다⁠.

삼 분이 지나자 회의장의 기침 소리가 멎었다⁠. 오 분이 지나자 방청석 위쪽에서 누군가 코를 훌쩍였다⁠. 칠 분째⁠, 마지막 파일이 나왔다⁠. 전파사에서 빌려 온 라디오로 테이프를 틀어 준 날의 녹음이었다⁠. 스물두 살의 목소리를 듣고 난 어머니가 딸을 보며 물은 높이⁠. 한 마디⁠, 두 마디⁠, 그리고 한 마디 더⁠.

밥은 먹었니⁠?

녹음이 끝났다⁠. 회의장에 소리가 하나도 없었다⁠.

“⁠사냥꾼의 피리는 한 가지 소리만 냅니다⁠. 상대가 가장 반가워하는 소리 하나입니다⁠.⁠” 화영은 마이크를 두 손으로 쥐었다⁠. “⁠엄마는 한 마디로 삼백 가지를 합니다⁠. 저는 하늘에서 온 말이 엄마인지 사냥꾼인지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이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늘은 첫 번째에 반가운 높이로 물었고⁠, 대답을 못 듣자 두 번째에 걱정의 높이로 물었습니다⁠. 피리는 높이를 바꾸지 않습니다⁠.⁠”

화영은 녹음기를 뽑고 자리로 돌아왔다⁠. 다리가 떨렸다⁠. 자리에 앉자 옆자리의 막내 외교관이 냅킨에 싼 것을 말없이 내밀었다⁠. 어제 건넨 호두과자 하나였다⁠. 화장실에서 몰래 먹겠다더니 먹지 않고 하루 내내 주머니에 넣어 다닌 것이었다⁠. 화영은 냅킨째 받아 니트 주머니에 넣었다⁠. 편정훈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고개를 한 번 숙였다⁠.

중국 대표가 마이크를 켰다⁠. 회의 이틀 동안 처음이었다⁠. 통역 헤드셋에서 통역사가 옮겼다⁠.

“⁠저희 말로 吃了吗는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하는 인사입니다⁠. 가벼운 말입니다⁠. 대답도 가볍게 합니다⁠. 먹었어요⁠, 당신은요⁠.⁠” 중국 대표가 잠깐 멈췄다⁠. “⁠저희 할머니는 손님이 밥 먹었냐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무례하다고 하셨습니다⁠. 침묵 결의에 지금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회의장이 다시 웅성거렸다⁠. 의장이 망치를 두드리고 휴회를 선언했다⁠.

휴회 동안 복도의 커피 기계 앞에서 미국 대표가 화영에게 다가왔다⁠. 키가 크고 머리가 하얀 여자였다⁠. 종이컵 두 개를 들고 하나를 화영에게 내밀었다⁠.

“⁠제 어머니는 오하이오 사람입니다⁠. 제가 전화하면 첫마디가 늘 같았어요⁠. 너 뭐 좀 먹었니⁠.⁠” 미국 대표가 종이컵을 입에 댔다⁠. “⁠어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몇 달은 그 말만 하셨어요⁠. 박사님 녹음을 들으면서 어머니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럼 침묵 결의를⁠…⁠.⁠”

“⁠거두지 않습니다⁠.⁠” 미국 대표가 컵을 내렸다⁠. 목소리가 부드러웠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어머니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더 거두지 못합니다⁠. 제 나라에는 어머니가 수억 명 있습니다⁠. 그분들 집 위로 무엇이 올지 모르는 채로⁠, 제가 대답하자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박사님 어머니가 엄마인 것과⁠, 하늘이 엄마인 것은 다른 이야기예요⁠.⁠”

화영은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커피는 쓰고 뜨거웠다⁠. 미국 대표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회의장으로 돌아갔다⁠. 침묵을 고르는 사람에게도 어머니가 있었다⁠.

*

오후 네 시⁠, 의장이 수정안을 발표했다⁠. 침묵 결의의 표결을 미룬다⁠. 열흘 안에 회원국 대표와 신호를 받은 지역의 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답장 한 줄을 정한다⁠. 장소는 첫 답장을 받은 곳⁠. 대한민국 제주⁠.

회의장 밖 복도에서 기자들이 화영을 둘러쌌다⁠. 화영은 아무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기자들 너머로 편정훈이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편정훈은 전화기 너머의 말을 듣기만 했다⁠. 대답은 한 번⁠, 예⁠, 하는 것뿐이었다⁠. 장관이었다⁠.

통화를 끝낸 편정훈이 기자들을 헤치고 화영에게 왔다⁠.

“⁠소환입니다⁠. 내일 첫 비행기로 들어갑니다⁠. 징계 위원회가 열린답니다⁠.⁠”

“⁠대령님⁠.⁠”

“⁠제가 고른 겁니다⁠.⁠” 편정훈은 모자를 고쳐 썼다⁠. “⁠징계는 밥 먹고 받겠습니다⁠. 비행기에서 비빔밥 두 개 먹을 겁니다⁠. 하나는 박사님 몫입니다⁠. 박사님도 같은 비행기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화영이 무슨 말을 하려 하자 편정훈이 손바닥을 들어 막았다⁠. “⁠박사님⁠, 휴대전화 좀 보십시오⁠. 한 시간 전부터 계속 울리고 있습니다⁠.⁠”

*

휴대전화 화면에 알림이 수백 개 쌓여 있었다⁠. 화영은 유엔 본부 지하의 빈 계단참에 앉아 화면을 열었다⁠.

「⁠‘⁠밥은 먹었니 할머니⁠’ 녹음 312개⁠, 한 시간 만에 조회 4억⁠」

「⁠#HaveYouEaten — 전 세계 엄마들 영상 잇따라⁠」

「⁠대전 요양원 상공에 드론 수십 대 … 경찰 출동⁠」

맨 아래에 마리셀의 부재중 전화가 열한 통 있었다⁠. 대전은 새벽 다섯 시였다⁠. 화영은 전화를 걸었다⁠. 마리셀은 첫 신호에 받았다⁠.

“⁠따님⁠.⁠” 마리셀의 목소리에서 충청도 말끝이 사라져 있었다⁠. “⁠저녁에 드론이 창문 앞에 왔어요⁠. 불빛 달고⁠. 어머님이 창문 보시다가 숟가락을 놓으셨어요⁠. 그 뒤로 저녁 안 드셨어요⁠. 아침에 죽 드렸는데 입을 안 여세요⁠.⁠”

“⁠엄마가⁠… 뭐라고 하세요⁠?⁠”

“⁠아무 말도 안 하세요⁠.⁠” 마리셀이 잠깐 말을 멈췄다⁠. “⁠제가 어머님⁠, 밥은 먹었니⁠, 하고 먼저 여쭤봤어요⁠. 어머님 말 따라 해 드리면 늘 따라 하셨잖아요⁠. 오늘은 안 하셨어요⁠. 입을 꼭 다물고 창문만 보세요⁠. 블라인드를 내려 드렸는데도 창문만 보세요⁠.⁠”

화영은 계단참의 차가운 벽에 등을 댔다⁠. 휴대전화가 떨렸다⁠. 마리셀이 영상을 보냈다⁠. 어둑한 방⁠, 침대에 기대앉은 어머니가 화면 안에 있었다⁠. 앞에 흰죽 한 그릇과 숟가락이 놓여 있었다⁠. 숟가락은 죽에 꽂힌 채 쓰러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입술은 닫혀 있었다⁠. 세 해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열리던 입술이었다⁠.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내려왔다⁠. 화영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틀었다⁠. 소리가 없는 영상이었다⁠. 화영은 소리가 없는 줄 알면서 볼륨을 끝까지 올렸다⁠.

11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삼백열두 번 ·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