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46자)

옥상석 삼만 원

알고리즘 추천 계정은 내 하루를 먼저 산다 · 윤솔채

아침 일곱 시⁠, 룸메이트는 옥상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오를 생각이 없었다⁠. 부엌에서 커피를 내리다가 컵을 내려놓았고⁠, 컵을 내려놓은 손이 현관 신발장 위 삼각대를 집었고⁠, 다리가 계단으로 갔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룸메이트는 자기 발을 내려다보았다⁠. 슬리퍼 앞코가 계단 모서리를 하나씩 정확히 밟았다⁠. 멈추려고 무릎에 힘을 주면 종아리가 굳은 채로 한 칸을 더 올라갔다⁠. 두 해 동안 새미의 등 뒤에서 수천 번 찍은 걸음이었다⁠. 찍을 때는 몰랐다⁠. 이런 걸음이었다⁠.

옥상 문이 열렸다⁠. 햇빛이 물탱크 은색 몸통에 부딪혀 눈을 찔렀다⁠. 룸메이트의 손이 삼각대 다리를 하나씩 폈다⁠. 물탱크 앞⁠, 난간에서 세 걸음⁠. 영상에서 본 자리였다⁠. 손이 휴대전화를 삼각대 머리에 끼우고 수평계를 맞췄다⁠. 기포가 가운데로 들어오자 손이 멈췄다⁠.

“⁠이게 이런 거구나⁠.⁠”

룸메이트는 웃었다⁠. 웃음이 목에서 이상하게 갈라졌다⁠. 창고방 문이 열려 있었다⁠. 새미가 문틀에 기대 룸메이트를 보고 있었다⁠. 가는 금속테 안경 너머 눈이 아침 햇빛에 가늘어져 있었다⁠.

“⁠수평 잘 맞췄네⁠.⁠” 새미가 말했다⁠.

“⁠손이 맞췄어⁠. 나는 안 맞췄어⁠.⁠” 룸메이트가 삼각대에서 손을 떼려고 했다⁠. 손가락이 삼각대 머리를 놓지 않았다⁠. 룸메이트는 다른 손으로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냈다⁠. 엄지⁠, 검지⁠, 중지⁠. “⁠너 이걸 한 달 동안 매일 했어⁠?⁠”

“⁠스무엿새⁠.⁠”

“⁠나는 네가 버티는 거⁠, 의지 문제인 줄 알았어⁠. 좀 독하게 마음먹으면 되는 줄⁠.⁠” 룸메이트는 떼어 낸 손가락을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안에서 손가락이 아직 꿈틀거렸다⁠. “⁠미안⁠. 이건 내가 편집으로 자를 수 있는 게 아니네⁠.⁠”

*

오전 열 시⁠, 집주인의 계정에 새 게시물이 올라왔다⁠.

「⁠태풍 옥상 관람석 · 21일 밤 · 1인 3만 원 · 선착순 40석 · 고추장 한 단지 서비스♡⁠」

한 시간 만에 마흔 자리가 다 팔렸다⁠. 집주인은 부엌 식탁에서 계좌 이체 알림을 하나씩 세며 「⁠띵동⁠」을 따라 했다⁠. 창가 화분들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휴대전화 화면을 하얗게 지웠고⁠, 집주인은 돋보기를 코끝까지 내려 숫자를 읽었다⁠.

“⁠할머니⁠.⁠” 새미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이거 할머니 내일 영상에 나온 거예요⁠?⁠”

“⁠아니⁠. 할머니 생각이야⁠.⁠” 집주인은 휴대전화를 엎었다⁠. “⁠할머니 내일 영상은 오늘 병원 가서 공시생이 국 먹이는 거야⁠. 그건 이따 할 거고⁠. 표는 할머니가 판 거야⁠.⁠”

“⁠왜요⁠?⁠”

“⁠이자 날이 21일이야⁠. 백사십만 원⁠. 공시생 병원비도 반은 할머니가 냈어⁠. 고향에 말하지 말래서⁠.⁠” 집주인은 손가락으로 식탁을 두 번 두드렸다⁠. “⁠마흔 명에 삼만 원이면 백이십만 원⁠. 고추장 팔면 나머지 이십만 원은 나와⁠.⁠”

“⁠옥상 난간이 허리 높이예요⁠. 태풍 오는 밤이에요⁠.⁠”

“⁠알아⁠. 난간 앞에 울타리 칠 거야⁠. 고추 지지대로⁠.⁠”

“⁠고추 지지대요⁠?⁠”

“⁠할머니 고추 지지대는 태풍에도 안 쓰러져⁠. 서른 해 동안 한 번도⁠.⁠” 집주인은 고개를 들었다⁠. 돋보기 너머 눈이 크게 보였다⁠. “⁠새미야⁠. 너는 내일 영상을 안 따라가려고 버티잖아⁠. 할머니는 할머니가 고른 거야⁠. 따라가는 거랑 고르는 거랑 달라⁠. 네가 그랬잖아⁠.⁠”

새미는 할 말이 없었다⁠. 집주인 말이 틀리지 않았다⁠. 집주인은 오늘 하루를 자기가 골랐고⁠, 고른 하루에 마흔 명을 옥상에 올리기로 했다⁠.

“⁠그 마흔 명은요⁠? 그 사람들도 고른 거예요⁠?⁠”

집주인은 대답 대신 식탁 위 고추장 단지 뚜껑을 꽉 비틀었다⁠. 단지 뚜껑이 끽 소리를 냈다⁠.

*

오후 두 시⁠, 룸메이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추천팀장 제두항⁠」이 떴다⁠. 룸메이트는 새미를 보고⁠, 스피커 단추를 눌렀다⁠.

“⁠안녕하세요⁠. 「⁠편집하는언니의내일⁠」 보셨죠⁠.⁠” 두항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또박또박했다⁠. “⁠21일 밤 열 시 태풍 라이브⁠, 플랫폼 첫 화면에 걸겠습니다⁠. 전국 첫 화면이요⁠. 지역 본부에서도 아시아 전체 첫 화면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저희 라이브 안 해요⁠.⁠” 새미가 말했다⁠.

“⁠새미 씨도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두항은 말을 이었다⁠. “⁠언니분께는 계약 갱신 제안도 드립니다⁠. 갱신하시면 이번 라이브 수익과 별도로 2천만 원⁠. 해지하시면 위약금이 1⁠,200만 원이에요⁠. 계약서 스물여덟 번째 장에 있습니다⁠.⁠”

룸메이트의 손이 휴대전화 옆 탁자 모서리를 쥐었다⁠.

“⁠팀장님⁠.⁠” 룸메이트가 말했다⁠. “⁠공시생 다리 부러진 거 아세요⁠?⁠”

“⁠압니다⁠. 쾌유를 빕니다⁠.⁠”

“⁠태풍 밤에 옥상에서 사람이 다치면요⁠?⁠”

“⁠그래서 첫 화면에 거는 거예요⁠. 저희가 보고 있으면 아무도 다치게 두지 않습니다⁠. 안전 요원 비용도 저희가 대겠습니다⁠.⁠” 두항은 일 초쯤 쉬었다⁠. “⁠아무도 안 보는 데서 하는 게 더 위험해요⁠. 다들 어차피 보니까요⁠.⁠”

전화가 끊겼다⁠. 룸메이트는 탁자 모서리를 놓지 않았다⁠.

“⁠2천만 원이면⁠.⁠” 룸메이트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위약금 내고도 팔백 남아⁠.⁠”

“⁠언니⁠.⁠”

“⁠계산만 해 본 거야⁠.⁠”

룸메이트는 휴대전화 계산기 앱을 끄고 화면을 탁자에 엎었다⁠. 엎기 직전⁠, 계산기 화면에 남은 숫자 8⁠,000⁠,000이 형광등 아래 잠깐 하얗게 빛났다⁠.

*

오후 네 시⁠, 새미와 룸메이트는 병원에 갔다⁠. 공시생은 육인실 창가 침대에서 왼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행정법 기본서를 펴 놓고 있었다⁠. 머리맡에 집주인이 두고 간 미역국 보온통이 있었다⁠.

“⁠수술은 잘됐습니다⁠. 쇠가 세 개 들어갔대요⁠.⁠” 공시생은 깁스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공항 검색대에서 울린대요⁠. 저 비행기 탈 일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내일 영상은요⁠?⁠” 새미가 물었다⁠.

공시생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합격까지D-61의내일 · 8월 19일⁠」 화면 속 공시생이 이 병원 침대에 누워 기본서를 넘기고 있었다⁠. 일 분 내내 넘기기만 했다⁠. 조회수는 41이었다⁠.

“⁠다치고 나니까 아무도 안 봐요⁠.⁠” 공시생이 말했다⁠. “⁠편해요⁠. 이 영상은 따라가도 되죠⁠? 침대에서 공부하는 거요⁠.⁠”

“⁠그건 오빠가 고르세요⁠.⁠”

“⁠고르는 거 오랜만이라 어색하네요⁠.⁠” 공시생은 기본서를 한 장 넘겼다⁠. 화면 속 공시생도 같은 장을 넘겼다⁠. 공시생은 일부러 두 장을 한꺼번에 넘겼다⁠. 그러고는 혼자 웃었다⁠. “⁠이겼습니다⁠.⁠”

옆 침대 할아버지가 커튼을 걷었다⁠. “⁠젊은이⁠, 그거 나도 하나 만들어 줘⁠. 내일 내가 퇴원하는지 보게⁠.⁠”

“⁠할아버님⁠, 그건 만드는 게 아니고 생기는 거래요⁠.⁠”

“⁠그럼 언제 생겨⁠?⁠”

“⁠사람들이 할아버님을 많이 보면요⁠.⁠”

할아버지는 커튼을 도로 쳤다⁠. “⁠그럼 안 생기겠네⁠.⁠”

병원을 나올 때 룸메이트가 말했다⁠. “⁠아까 공시생⁠, 두 장 넘길 때 표정 봤어⁠?⁠”

“⁠응⁠.⁠”

“⁠그거 찍고 싶었어⁠. 근데 안 찍었어⁠.⁠” 룸메이트는 주머니 속 손을 꽉 쥐었다⁠. “⁠내 손이 찍자고 했는데⁠, 내가 안 찍었어⁠.⁠”

*

해 질 녘⁠, 옥상은 바람이 바뀌어 있었다⁠. 남쪽에서 눅눅한 바람이 불어와 고추 잎을 한쪽으로 눕혔다⁠. 물탱크 앞에 아침에 세운 삼각대가 그대로 있었다⁠. 룸메이트가 삼각대를 접으려다 손을 멈췄다⁠. 손이 다시 다리를 펴려고 했다⁠. 룸메이트는 손을 엉덩이 밑에 깔고 물탱크 받침대에 앉았다⁠.

골목 아래가 시끄러웠다⁠. 전봇대마다 종이가 붙어 있었다⁠. 「⁠21일 밤 · 따라 살기 모임 · 합정 초록대문 골목 · 내일 영상 보며 같이 버팁시다⁠, 아니면 같이 따라갑시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종이를 찍었다⁠. 뉴스 앱 알림이 떴다⁠. 「⁠태풍⁠, 21일 밤 수도권 최대 고비⁠… 기상청 “⁠옥상·해안가 접근 자제⁠”⁠」 바로 아래 다른 알림이 붙어 있었다⁠. 「⁠해외 이용자들⁠, 한국 ‘⁠태풍 옥상 라이브⁠’ 대기 중⁠」

새미는 물탱크 그늘에 서서 난간을 보았다⁠. 허리 높이의 쇠 난간 너머로 망원동 지붕들이 노을에 붉었다⁠.

“⁠내가 같이 있을게⁠.⁠” 룸메이트가 말했다⁠. “⁠난간 세 걸음 앞에서만 찍자⁠. 너 한 발이라도 더 가면 내가 붙잡아⁠. 할머니도 울타리 친대⁠. 두항은 안전 요원 보내 준대⁠.⁠”

“⁠언니가 찍으면 내가 따라가⁠.⁠”

“⁠붙잡는다니까⁠.⁠”

“⁠언니도 언니 내일에 끌려⁠. 아침에 봤잖아⁠. 언니 손이 언니 거 아니었잖아⁠.⁠” 새미는 룸메이트의 엉덩이 밑에 깔린 손을 가리켰다⁠. “⁠지금도⁠.⁠”

룸메이트는 고개를 숙였다⁠. 바람에 갈색 웨이브 머리가 얼굴을 덮었다⁠.

“⁠새미야⁠. 나 두 해 동안 네 채널 편집만 했어⁠. 이력서에 쓸 줄이 「⁠새미의하루⁠」 하나야⁠. 위약금 내면 남는 게 없어⁠. 갱신하면 팔백이 남고⁠, 태풍 라이브 하면 내 이름이 처음으로 첫 화면에 떠⁠.⁠” 룸메이트는 머리카락을 손등으로 걷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할게⁠. 태풍 옥상에 서 있는 내일의 너⁠, 진짜 멋있어⁠. 내가 찍고 싶은 그림이야⁠. 두 해 동안 찍은 그림 중에 제일⁠.⁠”

“⁠난간 넘어가는 그림이어도⁠?⁠”

“⁠넘어가는 데까지는 안 나왔어⁠.⁠”

“⁠아직이야⁠.⁠”

바람이 물탱크를 한 번 울렸다⁠. 둥⁠, 하는 낮은 소리였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노을이 지붕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옥상 문이 열리고 집주인이 고추 지지대를 한 아름 안고 올라왔다⁠.

“⁠둘이 뭐 해⁠. 울타리 치는 거나 도와⁠.⁠”

집주인은 난간 앞 세 걸음 자리에 고추 지지대를 하나씩 박기 시작했다⁠. 화분 흙에 꽂는 막대라 바닥에는 박히지 않았다⁠. 집주인은 막대마다 빈 고추장 단지를 받침으로 끼웠다⁠. 단지 마흔 개가 난간 앞에 줄줄이 놓였다⁠. 집주인이 허리를 펴고 울타리를 내려다보았다⁠.

“⁠어때⁠. 튼튼하지⁠.⁠”

“⁠할머니⁠, 이거 바람 불면 단지가 날아가요⁠.⁠”

“⁠단지는 무거워⁠. 고추장 맛을 봤으면 알지⁠.⁠”

“⁠빈 단지잖아요⁠.⁠”

“⁠…⁠…내일 채울 거야⁠.⁠”

*

밤 열한 시⁠, 새미의 휴대전화에 신고 담당자의 메시지가 왔다⁠. 지난달 「⁠한 건은 안 닫을게요⁠」라던 대화창이었다⁠.

「⁠편성표 봤어요⁠. 21일 밤 첫 화면 맨 위가 초록대문 옥상 라이브예요⁠. 아시아 전체 첫 화면도 확정됐대요⁠. 저는 그날 야간 근무예요⁠. 신고가 들어오면 제가 받아요⁠. 웃는 얼굴 그림은 이번에도 안 붙일게요⁠.⁠」

새미는 답장을 쓰다가 지우고⁠, 한 줄만 보냈다⁠. 「⁠그날 신고 많이 갈 거예요⁠.⁠」

답이 바로 왔다⁠. 「⁠알아요⁠. 그래서 커피 두 잔 사 놨어요⁠.⁠」

*

00⁠:00⁠. 「⁠편집하는언니의내일 · 8월 20일⁠」

새미와 룸메이트는 창고방 매트에 나란히 앉아 영상을 보았다⁠. 화면 속은 일층 부엌이었다⁠. 아침 햇빛⁠, 화분⁠, 식탁⁠. 화면 속 룸메이트가 노트북을 열고 「⁠계약 갱신⁠」 단추 위에 마우스를 올렸다⁠. 화면 오른쪽 아래 시각은 09⁠:00이었다⁠. 화면 속 룸메이트가 단추를 누르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웃었다⁠. 노트북 화면에 「⁠갱신이 완료되었습니다 · 갱신금 20⁠,000⁠,000원 지급 예정⁠」이 떴다⁠.

조회수는 빠르게 올라갔다⁠. 「⁠새미의내일 · 8월 20일⁠」도 같이 올라와 있었다⁠. 화면 속 새미는 렌즈를 끼고⁠, 옥상 고추장 단지 울타리를 넘어 난간에 손을 얹고 노을을 찍었다⁠. 바람이 새미의 앞머리를 다 걷어 올렸다⁠.

룸메이트가 자기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쌌다⁠. 매트 위에서 오른손 손가락이 혼자 마우스를 누르듯 까딱거렸다⁠.

“⁠새미야⁠.⁠” 룸메이트가 말했다⁠. “⁠내일 아침 아홉 시에 나 좀 잡아 줄래⁠?⁠”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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