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296자)

같은 얼굴

알고리즘 추천 계정은 내 하루를 먼저 산다 · 윤솔채

8월 17일 밤⁠, 새미는 옥상 창고방의 접이식 매트에 누워 있었다⁠. 계약서 마지막 장을 읽은 밤부터 이층 방을 나와 이곳에서 잤다⁠. 창고방은 물탱크 옆에 붙은 한 평짜리 방이었고⁠, 집주인의 고추 지지대와 빈 화분이 한쪽 벽에 쌓여 있었다⁠. 문틈으로 옥상 바닥의 낮 열기가 아직 올라왔다⁠.

휴대전화 화면에 숫자 둘이 나란히 떠 있었다⁠. 「⁠새미의하루 · 구독자 17⁠,240⁠」 「⁠새미의내일 · 구독자 340만⁠」

스무엿새 동안 새미는 거의 다 졌다⁠. 두항은 다시는 새미의 영상을 추천에 올리지 않았다⁠. 내일 영상 속 새미는 여름 내내 남의 결혼식 축가 무대에 올라갔고⁠, 처음 보는 사람의 차에 탔고⁠, 머리를 연두색으로 물들였다⁠. 새미는 축가 무대 앞에서 돌아섰고 차 문 손잡이에서 손을 떼어 냈지만⁠, 염색약은 이미 손바닥에 짜여 있었다⁠. 새미는 이튿날 미용실에서 단발을 도로 검게 물들였다⁠.

아침마다 거울 속 얼굴이 조금씩 낯설었다⁠. 렌즈를 낀 적이 없는데 눈이 커 보였고⁠, 웃은 적이 없는데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새미는 가는 금속테 안경을 쓰고 나서야 거울 앞을 떠났다⁠.

창고방 문을 누가 두드렸다⁠. 공시생이었다⁠. 밀어 버린 머리가 그새 까슬하게 자라 있었다⁠.

“⁠새미 씨⁠. 저 생겼어요⁠. 내일 거⁠.⁠”

공시생의 휴대전화 화면에 「⁠합격까지D-62의내일 · 8월 18일⁠」이 떠 있었다⁠. 계정 이름의 숫자가 날마다 하나씩 줄어 있었다⁠.

새벽 다섯 시⁠. 재개발 구역의 빈 건물 옥상⁠. 화면 속 공시생이 무너진 난간 앞에 서서 동쪽 하늘에 휴대전화를 들었다⁠. 해가 떠올랐다⁠. 화면 속 공시생은 빨갛게 익은 고추 하나를 해에 겹쳐 들고 외쳤다⁠. “⁠합격 기원 일출⁠! 육십이 일 뒤에 붙는다⁠!⁠” 조회수는 벌써 40만이었다⁠.

“⁠안 가실 거죠⁠?⁠” 새미가 물었다⁠.

“⁠안 갑니다⁠.⁠” 공시생은 고추를 손에 쥐고 있었다⁠. 화면 속 고추와 같은 모양이었다⁠. “⁠근데 새미 씨⁠. 저 다섯 해 동안 해 뜨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새벽에는 늘 독서실에 있었어요⁠. 창문 없는 칸막이 책상에서요⁠.⁠”

“⁠해는 내일 옥상에서도 떠요⁠. 우리 옥상에서요⁠.⁠”

“⁠우리 옥상은 서쪽이 트였잖아요⁠.⁠” 공시생이 웃었다⁠. “⁠농담입니다⁠. 안 갑니다⁠. 김치통 하나 빌려주세요⁠.⁠”

공시생은 김치통에 휴대전화를 넣어 냉동실에 얼리고 삼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평소보다 가벼웠다⁠.

*

04시 40분⁠, 새미는 창고방에서 눈을 떴다⁠. 아무 소리도 안 났는데 눈이 떠졌다⁠.

삼층 방문이 열려 있었다⁠. 이불이 반쯤 걷혀 있었고 책상 위 기본서가 펼쳐진 채였다⁠. 부엌 냉동실 문이 열려 하얀 김을 흘리고 있었다⁠. 김치통 뚜껑이 바닥에 뒹굴었다⁠.

새미는 운동화를 꺾어 신고 뛰었다⁠. 골목은 아직 파랬다⁠. 가로등 몇 개가 꺼지기 직전처럼 깜빡였다⁠. 재개발 구역 가림막이 보였다⁠. 가림막 이음새 하나가 뜯겨 사람 하나 지나갈 만큼 벌어져 있었다⁠. 지난 몇 주 동안 내일 영상을 따라온 사람들이 벌려 놓은 틈이었다⁠. 틈 앞에 휴대전화를 든 사람 둘이 서 있었다⁠.

“⁠안에 들어갔어요⁠?⁠” 새미가 물었다⁠.

“⁠십 분 전에요⁠. 고추 들고⁠. 영상이랑 똑같이⁠.⁠”

새미는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빈 건물 일층에 들어서자 시멘트 가루 냄새가 코를 막았다⁠. 위층에서 소리가 났다⁠. 사람 목소리였다⁠. 작고 가늘게⁠, 끊어지며⁠.

“⁠새미 씨⁠…⁠…⁠?⁠”

이층과 삼층 사이 계단참이었다⁠. 계단 몇 칸이 부서져 아래로 내려앉아 있었고⁠, 공시생이 부서진 자리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왼쪽 다리가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한 손에 휴대전화를⁠, 다른 손에 고추를 쥐고 있었다⁠.

새미는 공시생 곁에 무릎을 꿇었다⁠. 119에 전화를 걸고⁠, 주소를 대고⁠, 공시생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이 차고 축축했다⁠. 공시생의 숨이 짧게 끊겼다⁠.

“⁠움직이지 마세요⁠. 오고 있어요⁠.⁠”

“⁠다리가⁠…⁠… 이상해요⁠. 갈비뼈도요⁠.⁠” 공시생은 웃으려다 얼굴을 찡그렸다⁠. “⁠해 떴어요⁠?⁠”

벽에 뚫린 창문 구멍으로 하늘이 하얘지고 있었다⁠. 동쪽 지붕들 끝에서 붉은 테가 올라왔다⁠.

“⁠떴어요⁠.⁠”

“⁠찍어야 되는데⁠. 영상대로⁠.⁠”

공시생의 휴대전화가 저절로 들리려고 했다⁠. 손목이 바들거리며 창문 구멍을 향했다⁠. 새미는 공시생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냈다⁠. 화면에 녹화 중 표시가 빨갛게 떠 있었다⁠. 새미는 정지를 눌렀다⁠. 공시생의 손목에서 힘이 풀렸다⁠.

“⁠제가 봐 드릴게요⁠. 해요⁠.⁠” 새미가 말했다⁠. “⁠지금 지붕 위로 반쯤 올라왔어요⁠. 빨개요⁠. 고추보다 덜 빨개요⁠.⁠”

“⁠고추가 더 빨개요⁠?⁠”

“⁠고추가 더 빨개요⁠.⁠”

공시생이 눈을 감고 웃었다⁠. 멀리서 사이렌이 가까워졌다⁠.

*

신촌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은 형광등 빛이 차가웠다⁠. 공시생은 왼쪽 정강이뼈가 부러졌고⁠, 갈비뼈 두 대에 금이 갔다⁠. 수술은 오후에 잡혔다⁠. 새미는 응급실 의자에 앉아 공시생의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합격까지D-62의내일 · 8월 18일⁠」 조회수는 400만이었다⁠. 댓글창이 끝없이 흘렀다⁠. 「⁠실제로 떨어졌대⁠」「⁠와 레전드⁠」「⁠영상이랑 다르잖아 해 뜨는 장면 없음⁠」「⁠다리는 괜찮음⁠?⁠」「⁠괜찮은지는 모르겠고 일단 저장⁠」

공시생이 침대에서 고개를 돌렸다⁠.

“⁠새미 씨⁠, 고향에는 말하지 마세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 놨어요⁠.⁠”

“⁠시험이요⁠, 다리요⁠?⁠”

“⁠둘 다요⁠.⁠” 공시생은 천장을 보았다⁠. “⁠내일의 저는 붙었는데⁠.⁠”

새미는 대답하지 못했다⁠. 응급실 텔레비전에서 아침 뉴스가 돌았다⁠. 「⁠‘⁠내일 계정⁠’ 31만 개⁠… 따라 하다 다친 사례 잇따라⁠」「⁠국회 상임위⁠, 21일 플랫폼 대표 불러 간담회⁠」 다음 화면은 바다 건너 어느 도시의 광장이었다⁠. 같은 시각에 같은 몸짓을 하는 사람들 수백 명이 자기 내일 영상을 머리 위로 들고 있었다⁠.

*

아침 아홉 시⁠, 집주인이 보온 도시락통 두 개를 들고 응급실로 들어왔다⁠. 돋보기를 이마에 올린 채였다⁠. 도시락통 하나에는 흰밥이⁠, 하나에는 미역국이 들어 있었다⁠.

“⁠뼈 부러진 데는 미역국이야⁠.⁠”

공시생이 침대에서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 저 시험 전에는 미역국 안 먹어요⁠. 미끄러진대요⁠.⁠”

“⁠벌써 미끄러졌잖아⁠. 계단에서⁠.⁠”

공시생은 한참 미역국을 내려다보다가 숟가락을 들었다⁠. 한 숟가락 떠먹고 눈을 감았다⁠. “⁠…⁠…맛있네요⁠.⁠”

“⁠그럼⁠. 할머니가 사십 년 끓였어⁠.⁠” 집주인은 공시생의 이불 끝을 여며 주다가 자기 휴대전화를 꺼냈다⁠. 「⁠망원고추의내일 · 8월 18일⁠」 화면 속 집주인이 이 응급실 복도에서 손 춤을 추고 있었다⁠. 링거대를 끄는 환자들 사이에서⁠.

“⁠할머니 오늘 여기서 춤춘대⁠.⁠” 집주인이 말했다⁠. “⁠안 출 거야⁠.⁠”

새미는 집주인을 보았다⁠. 집주인은 화면을 끄고 휴대전화를 앞치마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사람 다쳐서 누워 있는 데서 무슨 춤이야⁠. 알고리즘님이 이번엔 틀렸어⁠.⁠”

“⁠다리가 근질거리시면 저 잡으세요⁠.⁠”

“⁠할머니 다리는 근질거릴 데가 없어⁠. 다 굳었어⁠.⁠” 집주인은 말하면서 의자 다리를 발목으로 감았다⁠. 오전 내내 집주인은 한 번도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

오후 세 시⁠, 판교 본사 일층 로비는 에어컨 바람이 세게 돌았다⁠. 새미는 연두색 카디건 소매를 손등까지 내렸다⁠. 안내 데스크 직원이 세 번째로 약속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항이 내렸다⁠.

“⁠올라가시죠⁠.⁠”

12층 회의실은 사방이 유리였다⁠. 유리 너머로 마흔 개쯤 되는 책상이 보였고⁠, 책상마다 모니터 두세 대가 켜져 있었다⁠. 화면마다 선이 오르내렸다⁠. 두항은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았다⁠.

“⁠공시생분 소식 들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 계정 꺼 주세요⁠. 전부요⁠.⁠”

두항은 태블릿을 회의 탁자에 올렸다⁠. 첫 화면은 영어로 된 메일이었다⁠. 두항이 손가락으로 메일 한 줄을 짚어 읽어 주었다⁠.

“⁠싱가포르 지역 본부에서 지난달에 보낸 거예요⁠. 이번 분기 체류 시간 목표를 못 채우면 한국 추천팀을 정리한다⁠. 마흔 명입니다⁠. 지금 저희는 목표의 세 배예요⁠.⁠”

“⁠사람이 다쳤어요⁠.⁠”

두항은 다음 화면을 넘겼다⁠. 이용자들이 보낸 편지가 줄줄이 떠 있었다⁠.

「⁠내일 영상 속 나는 엄마한테 전화를 했어요⁠. 그래서 오늘 했어요⁠. 이 년 만에요⁠.⁠」 「⁠석 달 만에 방 밖에 나갔어요⁠. 내일 영상에서 내가 편의점에 갔으니까요⁠.⁠」 「⁠회사 그만두는 내일을 봤어요⁠. 오늘 그만뒀어요⁠. 무섭지만 처음으로 숨이 쉬어져요⁠.⁠」

“⁠하루에 이런 편지가 수백 통 와요⁠.⁠” 두항이 말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이 보내요⁠. 내일 영상 속 자기는 조금 더 용감하고⁠, 사람들이 그 용감한 자기를 봐 줘요⁠. 따라가면 오늘이 내일만큼 용감해져요⁠.⁠”

“⁠빈 건물 계단에서 떨어지는 것도요⁠?⁠”

“⁠31만 개 계정에서 다친 사람이 나오는 비율은 횡단보도보다 낮습니다⁠. 횡단보도에서도 사람은 다쳐요⁠.⁠”

“⁠다쳐요⁠, 말고요⁠.⁠” 새미는 탁자에 손바닥을 붙였다⁠. 유리 탁자가 차가웠다⁠. “⁠다쳤어요⁠. 오늘 새벽에⁠. 우리 집 삼층 사람이⁠. 정강이뼈가 부러졌고 갈비뼈가 두 대 금 갔어요⁠. 해 뜨는 걸 다섯 해 만에 처음 봤는데⁠, 계단에 누워서 봤어요⁠.⁠”

두항은 말이 없었다⁠. 유리 너머에서 누군가 의자를 밀고 일어나 커피를 가지러 갔다⁠. 두항의 손목시계가 떨었고⁠, 두항은 손목을 뒤집지 않았다⁠.

“⁠팀장님 내일 영상도 있어요⁠?⁠” 새미가 물었다⁠.

두항은 일 초쯤 지나 대답했다⁠.

“⁠있어요⁠. 처음부터요⁠. 「⁠새미의내일⁠」이 생긴 날⁠, 「⁠두항의내일⁠」도 같이 생겼어요⁠. 우리 팀 마흔 명 전부 하나씩 있습니다⁠.⁠”

“⁠보셨어요⁠?⁠”

“⁠한 번도 안 봤습니다⁠.⁠”

“⁠왜요⁠?⁠”

“⁠보면 따라갈까 봐요⁠.⁠” 두항은 태블릿을 덮었다⁠. 덮인 태블릿 위에 유리 너머 모니터 빛이 비쳤다⁠. “⁠새미 씨가 매일 하는 걸 저는 하루도 못 하겠어서요⁠. 버티는 거요⁠.⁠”

“⁠그럼 사람들한테는 왜 보여 줘요⁠?⁠”

“⁠사람들은 보고 싶어 하니까요⁠.⁠” 두항은 일어나 회의실 문을 열었다⁠. “⁠저는 안 보는 사람이고⁠, 사람들은 보는 사람이에요⁠. 저는 보는 사람들 편입니다⁠.⁠”

*

밤 열한 시⁠, 새미는 옥상 창고방에 돌아와 있었다⁠. 공시생의 수술은 끝났다고 집주인이 단톡방에 알렸다⁠. 「⁠수술 잘 됐대♡ 다리에 쇠 박았대 할머니 무릎처럼⁠」 하트가 여러 개 달렸다⁠.

창고방 문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룸메이트였다⁠. 계약서 밤 이후로 둘은 꼭 필요한 말만 했다⁠. 룸메이트는 문을 두드리지 않고 문틈으로 휴대전화를 밀어 넣었다⁠.

“⁠새미야⁠. 나도 생겼어⁠.⁠”

00⁠:00⁠. 화면에 「⁠편집하는언니의내일 · 8월 19일⁠」이 떠 있었다⁠.

화면 속 룸메이트가 이 옥상에서 삼각대를 세우고 있었다⁠. 물탱크 앞⁠, 난간에서 세 걸음⁠. 연보라 니트 소매를 걷어 올린 손이 날씨 앱을 열었다⁠. 「⁠태풍 북상 · 21일 밤 수도권 통과 예상⁠」 화면 속 룸메이트가 렌즈를 보며 웃었다⁠.

“⁠21일 밤 열 시⁠, 새미 옥상 태풍 라이브⁠. 우리 채널 최고 기록 간다⁠.⁠”

문틈 아래로 룸메이트의 그림자가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옥상 바닥 열기는 다 식어 있었고⁠, 멀리 남쪽 하늘에서 마른번개가 소리 없이 한 번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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