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96자)

원본 사천이백십이 개

알고리즘 추천 계정은 내 하루를 먼저 산다 · 윤솔채

룸메이트는 방문 앞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채 멈춰 있었다⁠. 노트북 화면 빛이 룸메이트의 얼굴을 파랗게 칠했다⁠. 화면에는 썸네일이 끝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새미⁠, 부엌 바닥에 앉아 우는 새미⁠, 안경을 벗고 자는 새미⁠.

“⁠언제부터야⁠?⁠” 새미가 물었다⁠.

“⁠1월⁠.⁠” 룸메이트는 방문을 닫았다⁠. “⁠1월 셋째 주⁠.⁠”

“⁠나 그때 침대에 있었어⁠.⁠”

“⁠응⁠. 그래서야⁠.⁠”

룸메이트는 이층 침대 사다리에 등을 기댔다⁠. 수건 끝에서 물이 떨어져 연보라 니트 어깨를 짙게 적셨다⁠.

“⁠너 11월부터 2월까지 넉 달 동안 영상을 하나도 안 찍었어⁠. 나는 편집 외주가 두 개 끊겼고⁠. 월세가 둘이 합쳐서 백사만 원이야⁠. 할머니한테 한 달 밀렸을 때⁠, 할머니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귤을 한 상자 놓고 갔어⁠. 그 귤 보고 무서웠어⁠.⁠” 룸메이트가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 주에 메일이 왔어⁠. 크리에이터 데이터 파트너⁠. 일상 원본 영상을 학습용으로 주면 한 달에 팔십만 원⁠. 저작권자는 찍은 사람이래⁠. 나였어⁠.⁠”

“⁠출연자는⁠?⁠”

“⁠출연자 동의 확인 칸이 있었어⁠. 체크 하나⁠.⁠” 룸메이트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작은 네모를 그었다⁠. “⁠내가 눌렀어⁠.⁠”

새미는 노트북 화면을 끝까지 내렸다⁠. 맨 아래 파일은 두 해 전 3월이었다⁠. 이 방에 처음 이사 온 날⁠, 빈 방바닥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새미가 있었다⁠. 렌즈 너머에서 룸메이트의 웃음소리가 들리던 영상이었다⁠.

“⁠자는 얼굴까지 팔았어⁠?⁠”

“⁠학습에는 그런 게 제일 비싸대⁠. 꾸미지 않은 얼굴⁠.⁠” 룸메이트는 수건을 풀어 손에 쥐었다⁠. 갈색 웨이브 머리가 젖은 채 어깨 아래로 떨어졌다⁠. “⁠미안해⁠. 근데 새미야⁠, 그때 너는 하루가 없었어⁠. 그래서 내가 찍어 둔 하루를 팔았어⁠. 네 하루로 네 월세를 냈어⁠.⁠”

새미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월세가 넉 달 동안 어떻게 나갔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은 것이 이제야 손바닥에 무게로 왔다⁠.

“⁠내일 영상 속 너 봤지⁠.⁠” 룸메이트가 말했다⁠. “⁠내가 아는 두 해 전 너야⁠. 이 방에서 컵라면 먹던 너⁠. 겁 없이 줄 서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 거는 너⁠. 그거 내가 찍은 너야⁠. 내가 4⁠,212번 찍은 너⁠.⁠”

“⁠그래서 더 좋아⁠?⁠”

“⁠응⁠.⁠”

대답이 너무 빨라서 새미는 웃음이 나왔다⁠. 룸메이트도 따라 웃었다⁠. 둘 다 웃다가 동시에 그쳤다⁠.

“⁠계약서 줘⁠.⁠”

“⁠지금⁠?⁠”

“⁠지금⁠.⁠”

룸메이트가 자기 휴대전화에서 계약서 파일을 열어 새미에게 보냈다⁠. 서른두 장짜리 파일이었다⁠. 새미는 첫 장의 굵은 글씨만 읽었다⁠. 「⁠크리에이터 데이터 파트너 계약서 · 원본 영상 학습 이용 허락⁠」 나머지는 내일 읽기로 하고 화면을 껐다⁠. 꺼진 화면에 안경 쓴 자기 얼굴이 비쳤다⁠.

00⁠:00이 되자 꺼진 화면이 저절로 켜졌다⁠. 「⁠새미의내일 · 7월 24일⁠」

화면 속은 일층 부엌이었다⁠. 햇빛이 화분 잎 사이로 식탁에 쏟아졌다⁠. 렌즈를 끼고 진주 귀걸이를 한 새미가 식탁에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서 회색 반팔 소매가 펜을 내밀었다⁠. 얼굴은 화면 밖이었다⁠. 화면 속 새미는 「⁠크리에이터 파트너 계약서⁠」 마지막 장에 서명하고⁠, 렌즈를 향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이제 오늘 새미도 내일 새미도 같은 회사 소속⁠!⁠” 화면 오른쪽 아래 시각이 12⁠:30을 가리켰다⁠.

룸메이트가 사다리에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저 사람⁠, 내일 우리 집 와⁠?⁠”

“⁠오겠지⁠. 영상에 나왔으니까⁠.⁠”

*

7월 24일 정오⁠, 두항이 초록 대문 앞에 왔다⁠. 새미가 아침에 「⁠계약서 봤어요⁠」라고 DM을 보내자⁠, 「⁠직접 가겠습니다⁠. 동네 반응도 보고 싶고⁠, 파트너 계약서도 가져가겠습니다⁠」라는 답이 왔다⁠.

대문 앞 담벼락에는 구경꾼이 서른쯤 있었다⁠. 두항은 사원증을 셔츠 안으로 넣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하나하나의 화면을 곁눈질했다⁠. 몇은 「⁠새미의내일⁠」을⁠, 몇은 「⁠망원고추의내일⁠」을 틀어 놓고 있었다⁠. 두항의 손목시계가 두 번 떨었다⁠.

일층 부엌은 햇빛으로 환했다⁠. 창가마다 집주인의 화분이 놓여 있었고⁠, 잎사귀 그림자가 식탁 위 국수 그릇 사이로 흔들렸다⁠. 집주인은 두항을 보자마자 고추장 비빔국수를 한 그릇 말아 앞에 놓았다⁠.

“⁠팀장님이 우리 알고리즘님이시구나⁠.⁠”

“⁠알고리즘은 아닙니다⁠, 어머님⁠. 알고리즘 만드는 팀입니다⁠.⁠”

“⁠그게 그거지⁠. 우리 할머니 계정도 추천 좀 해 줘⁠.⁠”

“⁠어머님 계정은 저희가 안 건드려도 잘 됩니다⁠. 손 춤 구간 평균 시청 시간이 사십일 초예요⁠. 동네 계정 가운데 일등이에요⁠.⁠”

집주인은 국수 그릇을 하나 더 말아 두항 앞에 밀었다⁠. 공시생이 행정법 기본서를 옆구리에 끼고 계단 중간에 앉아 내려다보았다⁠. 룸메이트는 부엌 의자 등받이에 기대 서 있었다⁠.

새미는 휴대전화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계약서 첫 장이 화면에 떠 있었다⁠.

“⁠이거 지워 주세요⁠. 제 원본으로 배운 거⁠, 전부요⁠.⁠”

두항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국수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새미 씨 얼굴은 우리 모델이 처음으로 하루 단위로 배운 얼굴이에요⁠. 다른 원본은 길어야 몇 분짜리 조각이었어요⁠. 새미 씨 원본은 두 해 동안 매일이었고⁠, 아침부터 밤까지였고⁠, 자는 얼굴까지 있었어요⁠. 모델은 거기서 하루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새미의내일⁠」이 처음이에요⁠.⁠”

“⁠그러니까 지워 달라고요⁠.⁠”

“⁠배운 건 못 지웁니다⁠. 원본 파일은 지울 수 있어요⁠. 모델 안에 들어간 건 지우는 방법이 없어요⁠. 그걸 지우려면 모델을 통째로 꺼야 하고⁠, 그러면 9만 개 계정이 같이 꺼져요⁠.⁠”

“⁠9만이요⁠?⁠”

“⁠어젯밤 기준으로요⁠. 오늘 아침에 해외 계정이 더 붙었습니다⁠.⁠” 두항은 손목시계를 뒤집어 식탁에 붙였다⁠. “⁠새미 씨⁠. 법적으로 원본 영상 저작권자는 언니분이고⁠, 출연자 동의 칸도 언니분이 확인하셨어요⁠. 저희는 계약대로 했습니다⁠.⁠”

“⁠얼굴은 제 거예요⁠.⁠”

“⁠네⁠. 그래서 저희도 얼굴에는 따로 수익을 드리려고 했어요⁠. 첫날 카페에서요⁠. 새미 씨가 거절하셨고요⁠.⁠”

룸메이트가 의자 등받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두항은 룸메이트에게 고개를 돌렸다⁠.

“⁠언니분 덕분에 저희 팀이 살았습니다⁠. 이건 진심이에요⁠. 지역 본부가 이번 분기에 체류 시간 목표를 못 채우면 추천팀 마흔 명을 해체한다고 했어요⁠. 지금은 목표의 세 배입니다⁠.⁠”

룸메이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고맙다는 말을 그렇게 아프게 듣는 얼굴을 새미는 처음 보았다⁠.

“⁠저희 팀에 아이 둘 키우는 사람이 열한 명이에요⁠.⁠” 두항은 국수 그릇을 조금 밀어 놓았다⁠. “⁠새미 씨가 이기면 그 사람들이 집에 갑니다⁠. 새미 씨는 그걸 알고도 이겨야 하는 사람이고⁠, 저는 그걸 알아서 지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제 하루는요⁠?⁠”

“⁠새미 씨 하루는 새미 씨가 사세요⁠. 저희는 내일을 보여 줄 뿐이에요⁠. 따라갈지 말지는 사람들이 고릅니다⁠.⁠”

“⁠사람들이 고르게 해 놓고⁠, 제 몸이 끌려가잖아요⁠.⁠”

두항은 대답 대신 가방에서 서류 한 묶음과 펜을 꺼내 식탁 가운데에 놓았다⁠. 「⁠크리에이터 파트너 계약서⁠」 벽시계가 12시 29분이었다⁠.

“⁠영상 보셨죠⁠. 저는 가져만 왔습니다⁠.⁠”

12시 30분⁠, 새미의 오른손이 펜으로 갔다⁠. 손가락이 펜 허리를 감쌌다⁠. 새미는 왼손으로 식탁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펜 끝이 서명란 위로 내려가 종이에 점 하나를 찍었다⁠.

국자가 날아왔다⁠. 집주인이 국수 삶던 국자로 펜을 쳐 냈다⁠. 펜이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 창가 화분 흙에 꽂혔다⁠.

“⁠밥상에서 무슨 도장이야⁠!⁠”

공시생이 계단에서 일어났다⁠. “⁠서명은 자필이어야 효력이 있습니다⁠! 손이 혼자 쓴 건 자필인지 아닌지 판례가⁠…⁠…⁠” 공시생은 말을 멈추고 기본서를 넘겼다⁠. “⁠판례가 행정법에는 없습니다⁠.⁠”

부엌 의자에 기대 서 있던 룸메이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손등으로 입을 막았다⁠. 새미의 오른손이 식탁 위에서 천천히 풀렸다⁠. 서명란에는 볼펜 점 하나만 남았다⁠. 두항은 화분에 꽂힌 펜을 한참 보다가 서류를 도로 가방에 넣었다⁠.

두항은 더 대답하지 않았다⁠. 계단 중간에서 공시생이 기본서를 덮는 소리가 났다⁠. 집주인이 국수 그릇을 거두며 말했다⁠.

“⁠팀장님⁠, 국수 안 드실 거면 싸 가⁠.⁠”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 우리 집에서 국수 남기고 간 사람 없어⁠.⁠”

두항은 결국 비닐봉지에 싼 국수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담벼락의 구경꾼 몇이 두항을 찍었다⁠. 두항은 고개를 숙이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비닐봉지 속 고추장이 햇빛에 빨갛게 비쳤다⁠.

*

오후 네 시⁠, 새미는 네 번째 신고를 넣었다⁠. 대상은 「⁠새미의내일⁠」⁠, 사유는 「⁠원본 영상 무단 학습⁠」 설명 칸에 계약서 이야기를 길게 적었다⁠. 답장은 십 초 만에 오지 않았다⁠. 일 분이 지나도⁠, 오 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이십 분 뒤에 답장이 왔다⁠.

「⁠죄송해요⁠. 정해진 답장 말고 써요⁠. 저도 사람이에요⁠. 내일 계정 신고가 오늘만 2만 건 넘게 들어왔어요⁠. 해외 신고도 같은 대기열로 와요⁠. 처리 기준이 없어요⁠. 위에서는 전부 닫으래요⁠. 웃는 얼굴 그림은 안 붙일게요⁠.⁠」

새미는 화면을 오래 보았다⁠. 웃는 얼굴이 없는 답장이 이상하게 더 따뜻했다⁠.

「⁠고마워요⁠. 닫지 말아 주세요⁠.⁠」

답이 왔다⁠. 「⁠한 건은 안 닫을게요⁠. 이 건이요⁠.⁠」

저녁 여덟 시⁠, 공시생이 계단에서 몰래 찍은 국자 영상이 집주인 계정에 올라갔다⁠. 「⁠밥상에서 무슨 도장이야⁠!⁠」 자막이 붙은 영상은 두 시간 만에 「⁠새미의내일⁠」을 앞질렀다⁠. 새미가 「⁠새미의내일 · 7월 24일⁠」을 다시 열었을 때 영상 밑에 회색 글자가 붙어 있었다⁠. 「⁠수정됨⁠」 고쳐진 영상 끝에서 펜이 공중을 돌아 화분에 꽂혔다⁠. 렌즈 낀 화면 속 새미는 점 하나 찍힌 서명란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이겼다⁠!⁠” 일층에서 집주인이 외쳤다⁠. “⁠국자로 이겼어⁠!⁠”

*

밤 열 시⁠, 새미는 서른두 장짜리 계약서를 끝까지 읽었다⁠. 이용 범위⁠, 보상⁠, 해지⁠, 위약금⁠. 「⁠원 채널이 존속하는 동안 출연자 얼굴의 학습 이용을 허락한다⁠」는 문장 하나에 밑줄을 그었다⁠. 서른한 번째 장까지는 1월의 날짜였다⁠.

서른두 번째 장은 날짜가 달랐다⁠.

「⁠갱신 계약 · 2027년 7월 21일⁠」 「⁠추가 조항 · 내일 예측 영상 시범 사업 참여⁠. 해당 계정 광고 수익의 15퍼센트를 원본 제공자에게 배분한다⁠.⁠」 「⁠원본 제공자 서명⁠」 옆에 룸메이트의 서명이 있었다⁠. 「⁠플랫폼 담당⁠」 옆에는 또박또박 눌러 쓴 서명이 있었다⁠. 「⁠추천팀장 제두항⁠」

7월 21일⁠. 새벽에 새미의 손이 월세 이체를 끊은 날⁠. 옥상에서 집주인이 고추를 흔들며 춤추던 날⁠. 밤에 새미가 가림막 틈에 팔꿈치까지 팔을 넣고 버티던 날⁠. 룸메이트가 렌즈를 들었다가 내린 날⁠.

새미는 휴대전화를 들고 일층으로 내려갔다⁠. 부엌 불이 켜져 있었다⁠. 룸메이트가 부엌 의자에 기대 앉아 있었다⁠. 식탁에 엎어 둔 룸메이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이 식탁 유리에 닿아 있어서 빛이 가장자리로 새어 나왔다⁠.

룸메이트가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새미의 눈에도 화면 글자가 보였다⁠.

「⁠정산 알림 · 내일 예측 영상 수익 배분 7월 21일⁠~23일 · 3⁠,412⁠,000원⁠」

룸메이트는 화면을 끄지 않았다⁠. 새미를 올려다보았다⁠. 젖은 갈색 머리가 다 말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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