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85자)
팩트만씀
알고리즘 추천 계정은 내 하루를 먼저 산다 · 윤솔채
00시 10분, 초록 대문 앞의 흰 고리는 열넷으로 늘어 있었다. 「새미의내일 · 7월 23일」이 올라온 지 십 분 만이었다. 사람들은 골목 담벼락에 등을 붙이고 서서 휴대전화를 같은 높이로 들었다. 몇은 벌써 홍대 편의점 위치를 찾아 지도 화면을 서로 보여 주고 있었다.
“두 시까지 기다릴 거예요?” 담벼락 끝의 남학생 둘이 이층 창문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내일 새미 언제 나와요?”
“오늘 새미는 자요!” 공시생이 삼층 창문에서 대답했다. 밀어 버린 머리가 가로등 아래 하얗게 빛났다.
“저 사람은 누구야?”
“합격 고추 아저씨잖아.”
새미는 이층 방에서 연두색 카디건 단추를 끝까지 잠갔다. 영상 속 귀걸이가 서랍 안에 있는지 한 번 더 열어 확인하고 닫았다.
“언니, 홍대 가자. 두 시 되기 전에.”
“지금? 저 사람들 다 따라와.”
“뒷문으로.”
룸메이트가 연보라 니트 위에 바람막이를 걸쳤다. 두 사람은 부엌 뒷문으로 나가 옆집 담 사이 좁은 길을 지났다. 집주인이 뒷문 앞에서 고추장 빈 단지를 씻다가 고무장갑 낀 손을 흔들었다. “편의점 가면 할머니 바나나우유 하나.”
*
00시 50분, 홍대 골목의 편의점은 형광등 빛이 바닥까지 하얬다. 냉장고 모터 소리와 계산대 스캐너가 삑삑대는 소리가 번갈아 났다. 계산대 뒤에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서른 중반쯤, 편의점 조끼, 졸린 눈. 계산대 위에 엎어 둔 휴대전화 뒷면에 금이 가 있었다.
남자는 새미를 보자마자 한 걸음 물러났다. 등이 담배 진열장에 닿았다.
“왜 벌써 와요. 두 시라며.”
“두 시 전에 얘기하려고요.” 새미가 계산대 앞으로 다가갔다. “팩트만씀 맞으시죠?”
남자는 대답 대신 휴대전화를 집어 화면을 켰다. 「팩트만씀」 프로필이 떠 있었다. 남자가 화면을 새미에게 돌렸다. 자기 이름으로 된 계정이 하나 더 있었다.
「팩트만씀의내일 · 7월 23일」
화면 속 남자가 계산대 너머로 손을 뻗어 누군가의 손목을 잡아챘다. 잡아챈 손목에 연두색 니트 소매가 말려 있었다. 남자가 손목을 비틀며 밀쳤고, 밀린 사람이 진열대에 부딪혔다. 컵라면이 쏟아졌다.
“나도 이거 오늘 처음 봤어요.” 남자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조회수 8만이에요. 사 년 동안 밤마다 여기 서 있었는데, 나를 8만 명이 본 적은 없어요.”
“필터 빼면 볼 거 없다고 쓰셨잖아요.”
“내일 새미한테 쓴 거예요. 걔는 가짜니까.” 남자는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 “가짜한테는 욕해도 되잖아요. 다들 그래요. 오늘 새미한테는 쓴 적 없어요.”
“얼굴은 제 거예요.”
남자는 새미의 안경을 보았다. 가는 금속테 안쪽의 눈을 오래 보았다. 계산대 스캐너가 저 혼자 한 번 삑 울었다.
“오늘 새미는 안경 쓰네요.”
“네. 매일 써요.”
“내일 새미는 안 쓰던데.” 남자는 목덜미를 문질렀다. “나 진짜로 사람 밀어 본 적 없어요. 근데 손이 자꾸 근질거려요. 아까부터. 영상 보고 나서부터.”
“저도요. 제 손은 아저씨 휴대전화를 쳐요.”
두 사람은 계산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손을 보았다. 룸메이트가 바나나우유를 냉장고에서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남자가 습관처럼 바코드를 찍었다. 삑.
“두 시에 둘 다 안 움직이면 되는 거죠?” 남자가 물었다.
“사람들이 영상을 많이 보면 몸이 따라가요. 지금 300만이에요.”
“그럼 어떻게 해요?”
“붙잡아요. 자기 손을.”
*
01시 40분, 새미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무릎이 먼저 일어났다.
이번에는 뒷문이 아니었다. 다리가 대문으로 나갔다. 빗장이 열리자 담벼락의 흰 고리들이 한꺼번에 새미에게로 쏠렸다. 사람은 어느새 팔십 명이 넘었다.
“나왔다! 렌즈 꼈어?”
“안경이잖아! 오늘 거 나왔어!”
“괜찮아, 따라가면 돼!”
사람들이 새미의 양옆과 뒤를 둘러쌌다. 누구도 새미를 만지지 않았는데 새미는 떠밀렸다. 휴대전화를 든 팔꿈치들이 새미의 어깨 높이에서 길을 만들었고, 다리는 팔꿈치들이 만든 길로 걸었다. 룸메이트와 공시생이 인파 맨 뒤에서 뛰어왔다. 누군가 박자를 맞춰 외치기 시작했다. “내일! 내일! 내일!”
합정에서 홍대까지 이십 분, 새미는 한 번도 자기 걸음으로 걷지 않았다. 홍대 골목에 들어서자 편의점 형광등이 멀리서 하얗게 떴다. 유리문 안쪽에 남자가 계산대를 붙잡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02시. 유리문이 열렸다. 문에 달린 차임이 띵동 울렸다. 사람들은 유리문 밖에서 걸음을 멈췄다. 팔십 개의 화면이 유리 너머로 새미의 등을 비췄다.
새미의 오른손이 올라갔다. 손바닥이 펴졌다. 계산대 위 남자의 휴대전화를 향했다. 새미는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잡았다. 같은 순간 남자의 오른손이 계산대 너머로 뻗어 왔다. 남자의 왼손이 자기 오른손목을 낚아챘다.
두 사람은 계산대를 사이에 두고 각자 자기 손목을 붙잡은 채 서로를 보았다. 남자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새미의 손목 안쪽 핏줄이 왼손 엄지 밑에서 뛰었다. 오른손이 앞으로 밀고 나갔고, 왼손이 뒤로 끌었다. 팔이 계산대 위에서 떨렸다.
유리문 밖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뭐 해?」「서로 손잡는 거야?」「아니 자기 손 잡는데?」
“이거 얼마나 버텨요?” 남자가 이를 악문 채 물었다.
“영상 끝날 때까지요. 일 분.”
“일 분이 이렇게 길어요?”
새미의 오른손이 방향을 틀었다. 휴대전화 대신 계산대 옆 진열대로 갔다. 무언가를 잡아야 멈추는 손이었다. 손이 잡은 것은 컵라면이었다. 남자의 손도 진열대로 갔다. 남자의 손도 컵라면을 잡았다.
두 사람의 손이 컵라면을 하나씩 쥐고 멈췄다. 팔에서 힘이 빠졌다. 새미는 컵라면을 계산대에 올렸다. 남자가 바코드를 찍었다. 삑. 자기 것도 찍었다. 삑.
“이천육백 원이요.”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하나에 천삼백.”
“같이 드실래요?”
“근무 중이라.” 남자는 뜨거운 물 버튼을 누르며 덧붙였다. “근무 중에 먹어도 돼요.”
창가 테이블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컵라면 뚜껑을 덮고 삼 분을 기다렸다. 유리문 밖의 사람들이 하나둘 화면을 내렸다. 「노잼」「컵라면 먹방이냐」「내일 새미 돌려줘」 사이렌 없이 경찰차 한 대가 골목에 들어왔다. 순찰을 돌던 경찰관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싸움 났다고 신고가 들어와서요.”
“컵라면 먹어요.” 남자가 말했다.
경찰관은 컵라면을 들여다보고, 유리문 밖의 팔십 명을 돌아보고, 무전기에 짧게 말했다. “여기 아무 일 없습니다. 사람만 많습니다.”
룸메이트는 유리문 밖에서 모든 것을 찍고 있었다. 이번에는 렌즈를 내리지 않았다.
*
7월 23일 오전 아홉 시, 「새미의하루」에 편의점 영상이 올라갔다. 새미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올라가 있었다. 제목은 「악플러 참교육」이었다.
영상은 새벽의 일과 달랐다. 새미의 손이 올라가는 대목에서 화면이 느려졌다. 계산대 위 휴대전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확대되었다. 남자가 손목을 낚아채던 순간은 잘려 나갔다. 컵라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에 남자가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붙어 있었다. 남자는 뜨거운 물을 받으려고 고개를 숙였을 뿐이었다.
“언니.”
룸메이트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밤새 잠을 안 잔 눈이었다.
“휴대전화 떨어진 거, 저 아저씨가 자기 손목 잡다가 친 거잖아.”
“화면에선 네가 친 걸로 보여.”
“그러니까 지우자고.”
“지금 300만이야. 내일 영상보다 앞서.” 룸메이트가 모니터를 돌렸다. 「새미의내일 · 7월 23일」 밑에 회색 글자가 붙어 있었다. 「수정됨 · 7월 23일 08:52」 룸메이트가 재생을 눌렀다. 고쳐진 내일 영상은 룸메이트가 자른 영상과 똑같았다. 휴대전화가 떨어지고,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컵라면은 없었다.
새미는 화면 속 자기 손을 보았다. 손은 남자의 휴대전화를 정확히 내리쳤다.
“이게 남는 하루야?” 새미가 말했다. “내가 안 한 일이?”
“이겼잖아. 네가 원한 거잖아. 더 많이 본 하루가 남는다며.”
“저건 내가 아니야.”
“내일 영상도 네가 아니라며.” 룸메이트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근데 둘 다 너 얼굴이야. 사람들은 얼굴만 봐. 나는 두 해 동안 네 얼굴로 먹고살았어. 어느 컷이 남는지 나만큼 아는 사람 없어.”
오후 세 시, 새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새미 씨.” 편의점 남자의 목소리였다. “나 잘렸어요. 본사에 민원이 육백 건 들어왔대요. 손님한테 대들다 맞은 알바라고.”
“제가 올린 게 아니에요.”
“알아요. 컵라면 같이 먹었잖아요.” 남자는 잠깐 말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버스 안내 방송이 들렸다. “근데 새미 씨. 너도 똑같네요. 남는 건 영상이에요.”
전화가 끊겼다. 뉴스 앱 알림이 떴다. 「‘내일 계정’ 따라 하다 시비… 서울 마포서 하루 신고 마흔 건」 해외 기사도 같은 화면에 겹쳐 있었다. 남의 나라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이 자기 내일 영상을 따라 같은 시각에 같은 노래를 부르는 사진이었다.
*
해 질 무렵, 골목 입구 동네 카페 유리창에 새 메뉴판이 붙었다. 「내일 라떼 · 오늘 마시면 내일 맛이 납니다」 카페 사장은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꽂고 줄 선 사람들에게 컵을 건넸다. 새미는 모자를 눌러쓰고 줄 끝에 붙었다가 메뉴판을 다시 읽고 줄에서 빠져나왔다.
초록 대문 앞 담벼락에는 종이 팻말이 생겨 있었다. 「내일 새미 사랑해」「참교육 레전드」 팻말을 든 여자 하나가 모자 밑 새미의 안경을 알아보았다.
“어, 오늘 새미다.”
“안녕하세요.”
“같이 사진 찍어도 돼요? 아, 근데 렌즈 끼면 안 돼요? 내일 새미처럼.”
“오늘 새미도 좋아해 주시면 안 돼요?”
여자는 진심으로 곤란한 얼굴을 했다. “오늘 새미는 영상 보면 다 아는 얘기라서요. 내일 새미는 뭘 할지 몰라서 좋고요.”
“내일 새미가 뭘 할지는 자정에 다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자정까지 기다리는 게 좋은 거예요.” 여자는 팻말을 고쳐 들었다. “오늘은 기다릴 게 없잖아요.”
새미는 대답하지 않고 대문 빗장을 열었다. 빗장 쇠가 손바닥에 미지근했다. 마당에서 집주인이 빈 단지를 다시 채우고 있었다. 오늘 팔 단지가 스물넷으로 늘어 있었다.
*
밤 열한 시, 룸메이트가 샤워하러 내려간 사이 새미는 편집용 노트북을 열었다. 편의점 영상을 내리려는 것이었다. 비밀번호는 둘이 같이 쓰는 번호였다. 화면이 열렸다.
바탕화면 한구석에 처음 보는 폴더가 있었다.
「데이터파트너_새미_원본」
폴더를 열자 파일이 끝없이 내려갔다. 맨 아래 숫자는 4,212개였다. 썸네일마다 새미의 얼굴이 있었다. 아침에 눈곱 낀 얼굴, 부엌에서 우는 얼굴, 안경을 벗고 자는 얼굴. 한 번도 올린 적 없는 얼굴들이었다. 지난겨울, 침대 위에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영상도 수백 개였다.
마지막으로 올린 날짜가 파일 목록 맨 위에 떠 있었다. 「업로드 완료 · 7월 21일」
계단에서 젖은 슬리퍼 소리가 올라와 방문 앞에서 멈췄다. 문이 열렸다. 수건을 두른 갈색 웨이브 머리 끝에서 물방울이 하나씩 바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