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06자)

두항의내일

알고리즘 추천 계정은 내 하루를 먼저 산다 · 윤솔채

오후 네 시⁠, 이층 방 바닥에 휴대전화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한 대에는 「⁠새미의내일⁠」이⁠, 한 대에는 「⁠두항의내일⁠」이 멈춰 있었다⁠. 둘 다 22⁠:13에서 멈춘 화면이었다⁠. 창문에 빗줄기가 비스듬히 그어지고 있었다⁠.

“⁠검은 화면이 두 개야⁠.⁠” 새미가 말했다⁠. “⁠같은 시각에⁠. 같은 바람 소리로⁠.⁠”

룸메이트가 두 화면을 번갈아 보았다⁠. “⁠네 건 난간이고⁠, 두항 건 노트북이야⁠.⁠”

“⁠내일 추천을 끄면⁠, 내일 영상이 더는 안 만들어지잖아⁠. 그럼 그다음은 검은 화면이야⁠. 내 것도⁠, 팀장님 것도⁠.⁠” 새미는 「⁠두항의내일⁠」 화면 속 노트북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내일 추천 · 전체 끄기⁠」 “⁠열 시 십사 분에 검어지는 게 내가 떨어져서일 수도 있고⁠, 팀장님이 눌러서일 수도 있어⁠.⁠”

“⁠둘 중에 뭔지 어떻게 알아⁠?⁠”

“⁠더 많이 본 영상이 남아⁠.⁠”

룸메이트는 오래 말이 없다가⁠, 「⁠두항의내일⁠」 조회수를 손가락으로 가렸다⁠. 3⁠,100⁠. 옆 화면 「⁠새미의내일⁠」은 3⁠,100만이었다⁠.

“⁠만 배야⁠.⁠”

“⁠여섯 시간 남았어⁠.⁠”

*

다섯 시⁠, 집주인이 부엌 식탁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글을 쳤다⁠. 돋보기가 코끝까지 내려와 있었다⁠. 손가락 하나로 한 글자씩 꾹꾹 눌렀다⁠.

「⁠태풍 옥상 관람석 전부 환불합니다⁠. 환불 받으신 분은 고추장 한 단지 그대로 드려요⁠. 대신 이 영상 한 번만 봐 주세요♡ 열 번 보면 더 좋고⁠」

집주인은 「⁠두항의내일⁠」 주소를 붙여 망원시장 상인회 단톡방에 올렸다⁠. 일 분 뒤 노인정 단톡방에도 올렸다⁠. 답이 줄줄이 달렸다⁠. 「⁠틀어 놓고 자도 되나⁠」「⁠손주한테 시켰어⁠」「⁠이거 국수 먹던 그 양반 아니야⁠?⁠」

“⁠할머니⁠, 환불하면 이자는요⁠?⁠”

“⁠이자는 다음 달에 낼게⁠. 은행은 기다려 줘⁠.⁠” 집주인은 휴대전화를 엎었다⁠. “⁠사람은 떨어지면 안 기다려 줘⁠.⁠”

병원의 공시생은 육인실 사람들에게 영상을 돌렸다⁠. 커튼을 걷은 옆 침대 할아버지가 휴대전화를 귀에 바짝 대고 들었다⁠. “⁠바람 소리만 나는데⁠.⁠” 공시생이 설명했다⁠. “⁠그 바람 소리가 중요합니다⁠. 끝까지 들으셔야 합니다⁠.⁠” 할아버지는 끝까지 듣고 처음부터 다시 틀었다⁠. 공시생의 스터디 단톡방 백이십 명은 영상 주소에 「⁠합격 고추⁠」 그림을 붙여 퍼뜨렸다⁠.

여섯 시⁠, 「⁠두항의내일⁠」은 80만이었다⁠.

새미는 대문으로 내려갔다⁠. 우비 입은 구경꾼들이 담벼락에 붙어 있었고⁠, 「⁠따라 살기 모임⁠」 전단을 돌리던 남자가 우산 밑에서 링라이트를 닦고 있었다⁠.

“⁠오늘 밤 이 영상 따라 봐 주세요⁠.⁠” 새미가 철창 사이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이 사람 내일이 오면 아무도 안 떨어져요⁠.⁠”

남자는 영상을 끝까지 보았다⁠. 검은 화면이 끝나자 고개를 들었다⁠.

“⁠이거 오면 내일 계정 다 꺼지는 거죠⁠? 제 것도요⁠?⁠”

“⁠네⁠.⁠”

“⁠그럼 제 노래는요⁠? 이 골목에서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부르는 거⁠.⁠”

새미는 대답하지 못했다⁠. 남자는 링라이트를 껐다 켰다 하다가 전단 뭉치를 우비 안에 넣었다⁠.

“⁠노래는 그냥 부를게요⁠. 영상 없어도⁠.⁠” 남자가 말했다⁠. “⁠사 년 동안 방에서도 영상 없이 불렀으니까⁠.⁠”

남자는 모임 단톡방에 「⁠두항의내일⁠」을 올렸다⁠. 「⁠오늘 밤 열 시엔 이거 같이 봅시다⁠」 담벼락의 흰 고리들이 하나씩 화면을 바꿨다⁠.

새미의 휴대전화에 DM이 쌓였다⁠. 「⁠팩트만씀 : 새 편의점 계산대 화면에 틀어 놨어요⁠. 손님마다 보여 줌⁠. 바나나우유 사면 한 번 더 보여 줌⁠」 신고 담당자의 메시지도 왔다⁠. 「⁠추천에 올리는 건 제가 못 해요⁠. 대신 신고 대기열 사연 묻던 기자분한테 이 영상을 보여 줬어요⁠. 기사 나갔어요⁠.⁠」 뉴스 앱 알림이 떴다⁠. 「⁠‘⁠검은 일 분⁠’ 두 영상⁠… 플랫폼 팀장 내일 계정도 같은 시각에 끝나⁠」

룸메이트는 편집 화면에서 두 영상을 반으로 갈라 붙였다⁠. 왼쪽 난간⁠, 오른쪽 노트북⁠. 22⁠:14에 두 화면이 동시에 검어지는 영상이었다⁠. 자막은 한 줄뿐이었다⁠. 「⁠둘 중 하나만 남는다⁠」

“⁠제목 너무 세지 않아⁠?⁠” 룸메이트가 물었다⁠.

“⁠언니 버릇대로 해⁠.⁠”

“⁠그럼 세게 간다⁠.⁠”

일곱 시 반⁠, 「⁠두항의내일⁠」은 900만이었다⁠. 「⁠새미의내일⁠」은 3⁠,100만에서 3⁠,120만이 되었다⁠. 바다 건너 계정들이 두 영상을 나란히 올리기 시작했다⁠.

*

여덟 시⁠, 판교 본사 일층 로비의 유리벽에 빗물이 폭포처럼 흘렀다⁠. 새미는 젖은 카디건 소매를 짜며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신분당선 안에서 무릎이 세 번 일어나려고 했고⁠, 세 번 다 손바닥으로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두항은 남색 정장 상의를 벗고 흰 셔츠 소매를 걷은 채였다⁠. 손에 노트북 가방을 들고 있었다⁠.

“⁠제 영상을 띄우셨더군요⁠. 막내가 보여 줬습니다⁠.⁠”

“⁠보셨어요⁠?⁠”

“⁠이제 봤습니다⁠. 한 번⁠.⁠” 두항은 노트북 가방 끈을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막내한테 제 계정을 추천에서 빼라고 했어요⁠. 못 뺀대요⁠. 모델이 직접 올리는 계정이라 사람이 손을 못 댄대요⁠. 팀장님이 만든 규칙이잖아요⁠, 사람들이 고르게⁠. 막내가 그렇게 말했어요⁠.⁠”

“⁠가방은 왜 드셨어요⁠?⁠”

“⁠제가 든 게 아닙니다⁠.⁠” 두항은 가방을 내려놓으려다 내려놓지 못했다⁠. 다른 손으로 가방 끈을 쥔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새미가 스무엿새 동안 하던 손짓이었다⁠. 가방이 로비 바닥에 떨어졌다⁠.

“⁠팀장님⁠. 오늘 밤 초록대문으로 오세요⁠.⁠”

“⁠안 갑니다⁠. 저는 안 따라갑니다⁠.⁠” 두항은 떨어진 가방을 보지 않았다⁠. “⁠새미 씨⁠. 지역 본부 해체 메일은 이미 초안이 와 있어요⁠. 체류 시간이 떨어지는 순간 보낸대요⁠. 제가 끄면 마흔 명이 다음 주에 짐을 쌉니다⁠. 내일 영상 보고 엄마한테 전화하던 사람들⁠, 방 밖에 나가던 사람들⁠, 31만 명이 내일부터 다시 혼자예요⁠. 새미 씨는 혼자가 뭔지 알잖아요⁠. 넉 달 방에 있었다면서요⁠.⁠”

“⁠알아요⁠.⁠”

“⁠그런데도 끄라고요⁠?⁠”

“⁠넉 달 동안 내일 영상이 있었으면 저 따라 일어났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쯤 난간 위에 있었을 거예요⁠.⁠” 새미는 젖은 안경을 벗어 카디건 안쪽 흰 티 자락으로 닦았다⁠. “⁠그 넉 달에 저한테 온 건 귤 한 상자랑⁠, 제 월세 대신 내 준 사람이었어요⁠. 둘 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문 앞에 있었어요⁠.⁠”

두항은 대답하지 않았다⁠. 로비 유리벽 너머로 번개가 판교의 빌딩들을 하얗게 지웠다가 돌려놓았다⁠.

“⁠따라오지 마세요⁠.⁠” 새미가 안경을 다시 썼다⁠. “⁠골라서 오세요⁠.⁠”

새미는 회전문을 밀고 빗속으로 나갔다⁠.

*

두항은 12층으로 올라갔다⁠. 사무실에는 막내 연구원 하나만 남아 있었다⁠. 마흔 개 책상의 모니터가 전부 켜져 있었고⁠, 화면마다 선 두 개가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새미의내일⁠」⁠, 「⁠두항의내일⁠」

“⁠팀장님⁠, 2⁠,000만 넘었습니다⁠.⁠” 막내가 말했다⁠. “⁠팀장님 영상이요⁠. 해외에서 붙었어요⁠.⁠”

두항은 자기 책상에 앉았다⁠. 손이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려고 했다⁠. 두항은 두 손을 허벅지 밑에 깔았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손목시계가 떨었다⁠. 두항은 이번에도 손목을 뒤집었고⁠, 뒤집은 손목 위로 알림 글자가 비쳤다⁠. 「⁠체류 시간 · 역대 최고 · 오늘 21⁠:00⁠」

“⁠팀장님 영상 오르는 동안에도 체류 시간은 계속 올라가요⁠.⁠” 막내가 말했다⁠. “⁠사람들이 팀장님이 끄는지 안 끄는지 보려고 안 나가요⁠.⁠”

두항은 웃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흔들렸다⁠. 마흔 개 모니터 빛이 두항의 흰 셔츠를 파랗게 물들였다⁠.

“⁠끄는 장면이 제일 오래 보는 장면이네⁠.⁠”

“⁠네⁠?⁠”

“⁠우리가 만든 게 결국 이걸 고르네요⁠.⁠”

*

여덟 시 사십 분⁠, 강남역에서 갈아탄 2호선 안에 안내 방송이 나왔다⁠. 「⁠강풍으로 한강 철교 구간 운행을 멈춥니다⁠」 새미는 역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았다⁠. 와이퍼가 쉬지 않고 오가는 앞유리 아래⁠, 계기판 옆에 휴대전화가 세워져 있었다⁠. 화면에서 「⁠두항의내일⁠」이 돌고 있었다⁠.

“⁠딸이 보내 줬어요⁠. 아빠⁠, 이거 오늘 밤에 꼭 보래요⁠.⁠” 기사가 백미러로 새미를 보았다⁠. “⁠근데 손님⁠,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자주 들어요⁠.⁠”

“⁠아⁠, 그 고추 할머니 집 아가씨⁠! 우리 딸이 할머니 춤 따라 해요⁠.⁠” 기사는 와이퍼 속도를 한 칸 더 올렸다⁠. “⁠나도 내일 계정 있어요⁠. 내일 나는 손님들한테 말을 안 걸어요⁠. 조용히 운전만 해⁠. 조회수가 엄청 나와요⁠. 기사가 말 안 거는 택시라고⁠.⁠”

“⁠따라 하세요⁠?⁠”

“⁠해 보려고 했는데 입이 근질근질해서 못 하겠더라고⁠. 오늘도 지금 말 걸잖아요⁠.⁠” 기사는 크게 웃었다⁠. “⁠내일 나는 나보다 손님이 많아요⁠.⁠”

라디오에서 태풍 속보가 흘렀다⁠. 강변북로 일부 통제⁠, 한강 다리 보행로 폐쇄⁠. 기사는 라디오 볼륨을 줄이고 계기판 옆 휴대전화 볼륨을 키웠다⁠. 검은 화면의 바람 소리가 택시 안 빗소리와 섞였다⁠. 택시가 한강을 건너는 동안 새미의 무릎이 두 번 들썩였고⁠, 새미는 두 번 다 손바닥으로 무릎을 눌러 앉혔다⁠.

*

아홉 시 이십 분⁠, 두항은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다⁠. 1층 단추가 눌려 있었다⁠. 누른 손이 두항의 손이었는지 두항은 따지지 않았다⁠. 노트북 가방은 다시 어깨에 메여 있었다⁠. 로비를 지나 회전문을 밀었다⁠. 비가 흰 셔츠를 한순간에 적셨다⁠. 택시 한 대가 로비 앞에서 비상등을 깜빡이고 있었다⁠.

“⁠어디 가세요⁠?⁠”

두항은 대답하기 전에 일 초쯤 손목시계를 보았다⁠. 손목시계는 떨지 않았다⁠.

“⁠합정동이요⁠.⁠”

“⁠초록대문 가시죠⁠? 오늘 다 거기 가요⁠.⁠” 기사가 미터기를 눌렀다⁠. “⁠손님도 그 영상 보셨구나⁠.⁠”

“⁠제가 그 영상에 나옵니다⁠.⁠”

기사가 백미러를 보고⁠, 다시 보았다⁠. 두항은 젖은 노트북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두 손을 가방 위에 포갰다⁠.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

아홉 시 반⁠, 새미가 초록 대문 골목에 들어섰을 때 사람은 이백이 넘어 있었다⁠. 우산과 우비 사이로 링라이트 이백 개가 빗줄기를 하얗게 비췄다⁠. 형광 조끼를 입은 안전 요원 여섯이 대문 앞에 띄엄띄엄 서 있었다⁠. 바람이 골목을 훑을 때마다 우산 몇 개가 뒤집혔다⁠. 사람들 화면에는 반은 새미⁠, 반은 두항이 떠 있었다⁠.

대문 안에서 룸메이트가 새미를 끌어들였다⁠. 집주인이 마당에서 우비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할머니가 옥상에 단지 다시 채웠어⁠. 흙 가득⁠.⁠”

“⁠할머니⁠, 옥상 올라가지 마세요⁠.⁠”

“⁠너 올라가면 할머니도 가⁠.⁠”

아홉 시 오십 분⁠, 새미의 무릎이 일어났다⁠.

계단이었다⁠. 이층⁠, 삼층⁠. 발이 계단 모서리를 하나씩 정확히 밟았다⁠. 젖은 운동화 밑창이 끽끽 울었다⁠. 룸메이트가 바로 뒤에서 새미의 카디건 자락을 왼손으로 쥐고 따라 올랐다⁠. 집주인이 맨 뒤였다⁠. 삼층 계단참에서 새미는 휴대전화를 보았다⁠. 손이 휴대전화를 놓지 않아서 볼 수밖에 없었다⁠.

21⁠:52⁠. 숫자 두 개가 나란히 떠 있었다⁠. 「⁠두항의내일 · 3⁠,140만⁠」 「⁠새미의내일 · 3⁠,120만⁠」

넘었다⁠.

옥상 문이 바람에 쾅 열렸다⁠. 비가 얼굴로 쏟아졌다⁠. 안경알에 빗방울이 맺혀 세상이 둥글게 번졌다⁠. 번진 세상 너머⁠, 골목 끝에서 자동차 전조등 두 개가 켜졌다⁠. 흰 빛이 빗줄기를 뚫고 초록 대문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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