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70자)

검은 일 분

알고리즘 추천 계정은 내 하루를 먼저 산다 · 윤솔채

아침 여섯 시⁠, 빗소리에 창고방 지붕이 울었다⁠. 새미가 문을 열자 옥상 바닥에 빗물이 얇게 깔려 있었다⁠. 집주인이 우비를 입고 고추 화분을 물탱크 그늘로 하나씩 옮기고 있었다⁠. 화분을 내려놓을 때마다 허리를 짚었다가⁠, 새미를 보고는 손을 뗐다⁠.

“⁠할머니⁠, 제가 할게요⁠.⁠”

“⁠너는 국회 간다며⁠. 옷 젖어⁠.⁠” 집주인은 화분 하나를 더 끌었다⁠. “⁠국회 가면 높은 사람들한테 우리 고추장 얘기도 해 줘⁠.⁠”

“⁠거기서 고추장 얘기를 왜 해요⁠.⁠”

“⁠높은 사람들도 밥은 먹잖아⁠.⁠”

창고방 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병원의 공시생이었다⁠. 목소리 뒤로 링거대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새미 씨⁠, 오늘 국회 가시죠⁠. 제 행정법 기본서 들고 가세요⁠. 삼층 책상 위에 있어요⁠.⁠”

“⁠국회에서 그걸 어디 써요⁠?⁠”

“⁠두꺼우니까요⁠. 그리고 거기 있는 분들 중에 행정법 시험 본 분은 없을 겁니다⁠. 한 번은 기 싸움에서 이길 수 있어요⁠.⁠”

“⁠오빠⁠, 다리는요⁠?⁠”

“⁠쇠 세 개가 오늘 비 온다고 먼저 알려 줬어요⁠. 아침부터 쑤셨어요⁠. 일기 예보보다 빨랐습니다⁠.⁠”

아홉 시 십사 분⁠, 새미의 휴대전화가 떨었다⁠. 「⁠새미의내일 · 8월 21일⁠」 밑에 회색 글자가 붙었다⁠. 「⁠수정됨 · 09⁠:14⁠」

영상이 길어져 있었다⁠. 화면 속 새미가 무릎 하나를 난간 위에 올리는 데까지는 어제와 같았다⁠. 이어서 새미의 젖은 손이 난간을 놓았다⁠. 화면이 크게 흔들렸다⁠. 링라이트 불빛이 빗줄기를 하얗게 비추며 아래로 미끄러졌다⁠. 화면 아래 시각이 22⁠:14로 바뀌는 순간⁠, 화면이 검어졌다⁠.

검은 화면이 일 분 동안 이어졌다⁠. 소리는 바람뿐이었다⁠. 쇠 난간을 훑는 바람⁠, 물탱크를 울리는 바람⁠, 멀리 골목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가 바람에 섞여 들어왔다가 끊겼다⁠. 일 분이 지나자 영상이 끝났다⁠.

조회수는 2⁠,300만이었다⁠. 댓글이 초 단위로 쌓였다⁠. 「⁠검은 화면 뭐임⁠?⁠」「⁠새미 죽는 거⁠?⁠」「⁠22시 14분 알람 맞춤⁠」「⁠이거 보고 잠 못 잠 근데 또 봄⁠」

룸메이트가 창고방 문틀을 붙잡고 서 있었다⁠. 어젯밤 젖은 머리를 말리지 않고 자서 갈색 웨이브가 한쪽으로 눌려 있었다⁠.

“⁠검은 화면은 끝이야⁠.⁠” 룸메이트가 말했다⁠. “⁠편집에서 검은 화면은 다음이 없을 때 넣어⁠.⁠”

“⁠다음이 없으면 영상도 안 만들어지잖아⁠.⁠”

“⁠그러니까 무서운 거야⁠.⁠”

집주인이 우비 모자를 벗었다⁠. 빗물이 모자 챙에서 주르륵 떨어졌다⁠. 집주인은 자기 휴대전화를 꺼내 「⁠태풍 옥상 관람석⁠」 게시물을 열었다⁠. 마흔 자리가 다 팔린 채였다⁠. 집주인의 엄지가 「⁠환불⁠」 글자 위에서 한참 머물다가⁠, 화면을 껐다⁠.

“⁠이따 생각할게⁠.⁠”

*

열한 시⁠, 이층 방에서 룸메이트가 지도 앱을 열어 새미에게 내밀었다⁠.

“⁠도망가자⁠. 오늘 밤만⁠. 부천에 할머니 조카 집 있대⁠. 옥상 없는 아파트야⁠. 십오 층⁠.⁠”

“⁠지난주에 해 봤어⁠.⁠” 새미가 말했다⁠. “⁠축가 무대 영상 나온 날⁠. 지하철 타고 반대로 갔어⁠. 인천까지⁠. 저녁에 정신 차려 보니까 결혼식장 앞이었어⁠. 인천에서 거기까지 택시를 탔더라⁠. 내 카드로⁠.⁠”

“⁠얼마 나왔어⁠?⁠”

“⁠육만 이천 원⁠.⁠”

룸메이트는 지도 앱을 껐다⁠. “⁠멀리 갈수록 비싸지기만 하네⁠.⁠”

“⁠그리고 조회수가 더 올랐어⁠. 내일 새미가 인천에서 택시 타고 돌아오는 장면이 붙어서⁠.⁠” 새미는 안경을 벗어 카디건 자락으로 닦았다⁠. 맨눈으로 보는 방이 뿌옇게 번졌다⁠. “⁠도망가면 영상이 길어져⁠. 사람들은 긴 영상을 더 오래 봐⁠.⁠”

“⁠그럼 어떡해⁠.⁠”

“⁠옥상에 있을게⁠. 대신 다 같이 있자⁠. 언니⁠, 할머니⁠, 다 같이⁠.⁠”

룸메이트는 새미가 다시 쓰는 안경을 보았다⁠. 가는 금속테가 귀 뒤로 넘어가 자리를 잡았다⁠.

“⁠나 오늘 밤에 카메라 안 들어⁠.⁠” 룸메이트가 말했다⁠. “⁠두 손 다 비워 둘게⁠. 너 잡게⁠.⁠”

“⁠언니 손도 끌려⁠.⁠”

“⁠그럼 왼손으로 잡을게⁠. 왼손은 오늘 아침에 처음 써 봤는데 생각보다 말을 잘 들어⁠.⁠”

*

오후 두 시⁠, 여의도 국회 본관의 한 회의실⁠. 창밖에 비가 사선으로 그어졌다⁠. 긴 탁자 한가운데에 상임위원장이 앉았고⁠, 양옆으로 의원들이 앉았다⁠. 맞은편에 증언석이 두 개 있었다⁠. 새미가 왼쪽 증언석에⁠, 두항이 오른쪽 증언석에 앉았다⁠. 두항은 회색 반팔 티셔츠 대신 남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정장 소매 밑으로 손목시계가 보였다⁠.

회의실 벽 화면에 생중계 댓글창이 떠 있었다⁠. 시청자는 이십만을 넘겼다⁠. 「⁠검은 화면 새미다⁠」「⁠안경 썼네⁠」「⁠팀장 정장 안 어울림⁠」

“⁠증언자 온새미 씨⁠, 말씀하시죠⁠.⁠” 상임위원장이 말했다⁠.

새미는 마이크를 당겼다⁠. 마이크 끝의 빨간 불이 켜졌다⁠.

“⁠내일 영상에 나온 일은⁠, 제가 버티지 않으면 그대로 일어나요⁠. 무릎이 먼저 일어나고 엄지가 먼저 눌러요⁠. 많은 사람이 볼수록 더 세게 끌려가요⁠. 지난주에 저희 집에 사는 사람이 내일 영상을 따라 빈 건물에 올라갔다가 다리가 부러졌어요⁠. 오늘 밤 제 영상은 옥상 난간에서 끝나고⁠, 그다음은 일 분 동안 검은 화면이에요⁠. 지금 2⁠,300만 명이 그 영상을 봤어요⁠.⁠”

의원 하나가 손을 들었다⁠.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는 건⁠, 과학적으로 확인된 겁니까⁠?⁠”

“⁠제 몸으로 확인했어요⁠. 스무엿새 동안요⁠.⁠”

“⁠의학적 소견서 같은 건 없고요⁠?⁠”

“⁠정형외과 소견서는 있어요⁠. 다리 부러진 사람 거요⁠.⁠”

생중계 댓글창에 「⁠ㅋㅋㅋ⁠」가 쏟아졌다⁠. 상임위원장이 헛기침을 했다⁠.

“⁠다음⁠, 플랫폼 추천팀장 제두항 씨⁠.⁠”

두항은 마이크를 당기기 전에 증언석 탁자에 태블릿을 세웠다⁠. 벽 화면이 두항의 태블릿 화면으로 바뀌었다⁠. 선 두 개가 그려진 그래프⁠. 높은 선이 7월 중순부터 솟아 있었다⁠.

“⁠내일 계정이 생긴 뒤로 이용자들의 체류 시간은 세 배가 됐습니다⁠. 숫자보다 먼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두항은 그래프를 넘겼다⁠. 이용자 편지들이 떠올랐다⁠. 「⁠내일 영상 속 나는 엄마한테 전화를 했어요⁠. 그래서 오늘 했어요⁠.⁠」「⁠석 달 만에 방 밖에 나갔어요⁠.⁠」 두항은 한 통씩 또박또박 읽었다⁠.

“⁠내일 영상은 예측입니다⁠. 따라갈지 말지는 이용자가 고릅니다⁠. 많은 분이 따라가서 조금 더 용감한 하루를 살았습니다⁠. 혼자 사는 청년들이 특히 그렇습니다⁠. 저희 지역 본부도 같은 입장입니다⁠. 싱가포르 본부는 어제 성명에서⁠, 내일 계정이 아시아 이용자의 외로움 지표를 낮췄다고 밝혔습니다⁠.⁠”

“⁠오늘 밤 저 옥상 영상은 어떻게 할 겁니까⁠?⁠” 다른 의원이 물었다⁠.

“⁠안전 요원을 보내고⁠, 라이브는 막지 않습니다⁠. 막으면 사람들은 더 위험한 곳에서 봅니다⁠. 저희가 보고 있는 곳이 제일 안전합니다⁠.⁠”

새미가 마이크를 당겼다⁠. 상임위원장이 손짓으로 허락했다⁠.

“⁠저는 라이브 안 켜요⁠. 근데 영상에서는 1⁠,200만 명이 봐요⁠. 그 사람들 눈이 저를 옥상에 올려요⁠.⁠”

“⁠새미 씨가 오늘 밤 옥상에 안 올라가시면 됩니다⁠.⁠” 두항이 새미를 보지 않고 말했다⁠. “⁠그건 새미 씨가 고르는 일이에요⁠.⁠”

“⁠고를 수 있으면⁠, 공시생 오빠는 왜 다리를 다쳤어요⁠?⁠”

“⁠그분도 고르셨습니다⁠. 해 뜨는 걸 보기로요⁠.⁠” 두항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다섯 해 동안 못 본 해였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 선택을 바보 같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벽 화면의 댓글창만 움직였다⁠. 「⁠팀장 말 맞는 듯⁠」「⁠내일 계정 덕에 엄마랑 화해함 없애지 마⁠」「⁠없애면 나 다시 방에 있음⁠」「⁠검은 화면 새미는 안 따라가면 되잖아⁠」

의원 하나가 댓글창을 소리 내어 읽었다⁠. “⁠없애면 나 다시 방에 있음⁠.⁠” 읽고 나서 새미를 보았다⁠. “⁠증언자는 이분들한테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새미는 마이크 앞에서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지난겨울 넉 달이 혀끝에 있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영상 수백 개⁠. 겨울에 내일 영상이 있었다면⁠, 새미도 따라 일어났을 것이다⁠.

“⁠저도 넉 달 방에 있었어요⁠.⁠” 새미가 말했다⁠. “⁠그때 저를 일으킨 건 영상이 아니었어요⁠. 귤 한 상자였어요⁠.⁠”

댓글창에 「⁠?⁠?⁠?⁠」가 올라왔다⁠. 「⁠귤⁠?⁠」「⁠뭔 소리임⁠」 상임위원장이 시계를 보았다⁠.

뒷줄의 한 의원이 고개를 꾸벅꾸벅 떨구고 있었다⁠. 옆자리 의원이 휴대전화 화면을 몰래 들여다보고 쿡쿡 웃었다⁠. 화면에 「⁠내일 계정 · 간담회에서 조는 의원⁠」 영상이 떠 있었다⁠. 졸던 의원이 퍼뜩 깨어 넥타이를 고쳤다⁠. 댓글창에 「⁠영상대로 졸았다ㅋㅋㅋ⁠」가 수천 개 올라갔다⁠.

간담회는 「⁠추후 논의⁠」로 끝났다⁠.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 새미의 휴대전화가 떨었다⁠. 신고 담당자였다⁠.

「⁠간담회 보고 있어요⁠. 지금 신고 대기열이 41만 건이에요⁠. 오늘 밤 열 시 옥상 라이브 신고만 3만 건이요⁠. 위에서는 오늘 밤 전부 자동으로 닫으래요⁠. 저는 안 닫을 거예요⁠. 41만 건을 손으로 열어 볼 수는 없지만⁠, 하나는 열어 둘게요⁠.⁠」

새미는 「⁠무슨 하나요⁠?⁠」라고 쳤다⁠. 답이 왔다⁠. 「⁠새미 씨 거요⁠. 첫 번째 신고⁠. 웃는 얼굴 하나 붙어 있던 거⁠.⁠」

*

회의실 밖 복도에 긴 나무 의자가 있었다⁠. 두항은 의자에 앉아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의자 위에 화면을 위로 한 채 놓여 있었다⁠. 추천 피드가 켜져 있었다⁠.

「⁠두항의내일 · 8월 21일 · 추천⁠」

조회수는 3⁠,100이었다⁠. 두항의 엄지가 화면을 밀어 넘겼다⁠. 강아지 영상이 나왔다⁠. 두항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것을 보지도 않고 화면을 껐다⁠.

새미는 의자 끝에 앉았다⁠.

“⁠열어 보세요⁠.⁠”

“⁠안 봅니다⁠.⁠”

“⁠팀장님 영상도 오늘 밤이에요⁠?⁠”

“⁠모릅니다⁠. 안 봤으니까요⁠.⁠” 두항은 휴대전화를 정장 안주머니에 넣었다⁠. “⁠새미 씨⁠. 오늘 밤 옥상에 올라가지 마세요⁠. 진심입니다⁠. 저희 안전 요원 여섯 명이 일곱 시부터 골목에 있을 겁니다⁠.⁠”

“⁠여섯 명이 1⁠,200만 명을 막아요⁠?⁠”

두항은 대답 대신 일어났다⁠. 복도 끝 창문으로 빗줄기가 거세게 들이쳤다⁠. 두항은 우산을 펴지 않고 복도를 걸어 나갔다⁠. 정장 등판에 창문 빛이 길게 미끄러졌다⁠.

*

국회의사당역 승강장은 젖은 우산 냄새로 가득했다⁠. 새미는 지하철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켰다⁠. 검색창에 「⁠두항의내일⁠」을 쳤다⁠. 계정은 하나였다⁠. 프로필 사진은 회색 반팔 티셔츠를 입은 두항이었다⁠.

「⁠두항의내일 · 8월 21일⁠」

밤⁠. 비⁠. 바람⁠. 초록 대문이 보였다⁠. 화면 속 두항이 우비를 뒤집어쓰고 대문 빗장을 열었다⁠. 계단을 올랐다⁠. 옥상 문이 열렸다⁠. 이 옥상이었다⁠. 물탱크⁠, 고추장 단지 울타리⁠, 쓰러진 화분⁠. 화면 속 두항이 물탱크 그늘에 쪼그려 앉아 우비 안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노트북 화면에 관리자 페이지가 떴다⁠. 「⁠내일 추천 · 전체 끄기⁠」 두항의 검지가 자판 위에 떠 있었다⁠.

화면 아래 시각이 22⁠:13에서 22⁠:14로 넘어갔다⁠. 화면이 검어졌다⁠.

검은 화면 속에서 바람 소리만 일 분 동안 이어졌다⁠. 쇠 난간을 훑는 바람⁠, 물탱크를 울리는 바람⁠, 골목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

새미는 「⁠새미의내일⁠」을 열어 두 영상을 나란히 틀었다⁠. 두 화면이 같은 순간에 검어졌다⁠. 바람 소리가 겹쳐 한 소리가 되었다⁠. 22⁠:14⁠. 지하철 창밖은 터널 벽뿐이었다⁠. 깜깜한 유리창에 휴대전화 두 대의 검은 화면과⁠, 가는 금속테 안경을 쓴 새미의 얼굴이 함께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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