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52자)

이천 상자

공항 탐지견 콩떡이 · 채이안

2027년 8월 22일 일요일 새벽 네 시⁠, 영종도 탐지견훈련센터 견사 문이 열리기 전에 귤 냄새가 먼저 왔다⁠. 오늘은 제복 냄새가 같이 왔다⁠. 다림질한 남색 천⁠, 세탁소 비닐⁠, 그리고 소매 끝에 붙은 내 털⁠. 귤 크림을 새로 발랐다⁠. 아주 많이 발랐다⁠. 문을 열자 귤 냄새가 쏟아졌다⁠.

조끼가 내 등에 얹혔다⁠. 조끼에서 비누 냄새가 났다⁠. 어젯밤에 귤 냄새 손이 빨았다⁠. 비누 밑에 내 냄새가 아직 조금 남아 있었고⁠, 더 밑에 지난 삼 년의 벨트와 가방과 버터가 남아 있었다⁠. 조끼 끈이 배 밑에서 조여졌다⁠. 귤 냄새 손이 목덜미를 두 번 쓸었다⁠.

일하자는 뜻이다⁠. 오늘은 진짜로⁠.

차 안에서 귤 냄새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숨에서 빈속 냄새가 났다⁠. 나도 아침을 반만 먹었다⁠. 둘 다 빈속이었다⁠. 콩고물 냄새가 운전석에 있었고⁠, 오늘은 콩떡이 없었다⁠. 콩고물 냄새도 빈속이었다⁠.

*

새벽 다섯 시 사십 분⁠, 공항 화물터미널 수입 검사장은 냉방이 너무 세서 맹소리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제복을 다시 입은 지 열두 시간째였다⁠. 소매에서 크림색 털 세 가닥을 떼어 내지 않았다⁠. 오늘은 떼지 않아도 됐다⁠.

검사장 가운데 대형 화물 검색기가 놓여 있었다⁠. 트럭 한 대가 통째로 들어가는 엑스레이였다⁠. 옆에 새온테크 장비가 한 대 더 있었고⁠, 조끼를 입은 직원 둘이 노트북을 켜 놓고 하품을 참고 있었다⁠. 표상민은 오지 않았다⁠. 계원철은 검색기 모니터 앞에 서서 박하사탕 봉지를 뜯었다⁠.

“⁠기계부터 돌리고⁠, 개는 그다음⁠.⁠” 원철이 말했다⁠. “⁠지침대로⁠.⁠”

“⁠지침 고친다면서요⁠.⁠”

“⁠오늘까지는 지침대로⁠. 고치는 건 내일부터⁠.⁠”

마약조사과 반장은 등산화를 신고 출입문 옆에 서 있었다⁠. 출발장 카페 앞에는 문오석과 번개가 아침부터 커피를 사 들고 앉아 있을 것이었다⁠. 기현이 열한 시 오십 분에 상자를 두고 갈 자리였다⁠.

여섯 시 사십 분⁠, 방콕발 화물기가 내렸다⁠. 일곱 시 십 분⁠, 팔레트가 검사장으로 들어왔다⁠. 팔레트 스무 개⁠, 한 팔레트에 상자 백 개⁠. 상자마다 연두색 달콤창고 상표와 망고 그림이 찍혀 있었다⁠. 냉방 바람을 타고 버터 냄새가 검사장을 한 번 돌았다⁠. 콩떡이가 소리 옆에서 코를 높이 들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아직이에요⁠, 주무관님⁠.⁠” 소리가 콩떡이 목덜미를 잡았다⁠. “⁠기계 먼저래요⁠.⁠”

팔레트가 하나씩 검색기를 지났다⁠. 모니터에 상자들이 회색 벽돌처럼 줄지어 떴다⁠. 여덟 시까지 붉은 네모가 열두 개 떴다⁠. 직원이 열두 상자를 내려 뜯었다⁠. 쿠키 깡통이었다⁠. 둥근 쇠 깡통에 버터 쿠키를 담은 선물용이었다⁠. 쇠가 엑스레이에 짙게 찍힌 것이었다⁠. 열두 깡통을 다 열었다⁠. 쿠키뿐이었다⁠.

새온테크 직원 하나가 귀까지 빨개졌다⁠. 원철은 깡통 하나를 들어 무게를 가늠하고 내려놓았다⁠.

“⁠쇠 깡통을 열두 개 섞었네⁠. 우리가 기계부터 돌리는 걸 아는 거야⁠.⁠” 원철이 이온 스캐너를 가리켰다⁠. “⁠상자 겉 훔쳐 봐⁠. 아무 데나 다섯 개⁠.⁠”

직원이 다섯 상자 겉을 훔쳤다⁠. 기계가 다섯 번 다 울었다⁠. 직원이 열 개를 더 훔쳤다⁠. 열 번 다 울었다⁠.

“⁠전부 묻어 있어요⁠.⁠” 직원이 목소리를 낮췄다⁠. “⁠창고에서 다 묻혀 온 거예요⁠. 기계로는 어느 상자인지 못 가려요⁠.⁠”

원철은 대답하지 않고 소리를 봤다⁠.

*

버터였다⁠. 이천 개의 버터였다⁠.

코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이켜서 머리가 띵했다⁠. 진짜 버터⁠, 밀가루⁠, 설탕⁠, 종이 상자⁠, 비닐 랩⁠, 팔레트 나무⁠, 비행기 화물칸의 쇠⁠. 그리고 시큼함⁠. 시큼함이 상자마다 얇게 있었다⁠. 상자 겉에⁠. 창고 바닥에 깔려 있던 시큼함이 상자 이천 개 겉에 똑같이 묻어 있었다⁠. 시큼함이 어디에나 있으니 아무 데도 없는 것과 같았다⁠.

나는 걸었다⁠. 귤 냄새 손이 목줄을 길게 풀어 주었다⁠. 첫 번째 팔레트⁠, 버터⁠. 두 번째⁠, 버터⁠. 다섯 번째 팔레트 앞에서 엉덩이가 내려가려 했다⁠. 버터가 너무 맛있었다⁠. 일곱 번째 가방의 버터⁠, 은색 가방 손잡이의 버터⁠, 항공유 냄새 상자의 버터⁠. 다 같은 버터였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냄새⁠. 엉덩이를 들었다⁠. 지나갔다⁠. 귤 냄새 숨이 길게 나갔다⁠.

일곱 번째 팔레트에서 이상한 버터가 났다⁠.

버터인데 버터가 아니었다⁠. 버터보다 더 버터 같았다⁠. 너무 진하고 너무 달고⁠, 밀가루 냄새가 없었다⁠. 오븐에 들어간 적이 없는 버터였다⁠. 버터를 흉내 낸 냄새⁠. 공장에서 병에 담아 뿌리는 냄새였다⁠. 나는 버터를 안다⁠. 세 번의 평가와 열네 봉지와 이천 상자 동안 버터만 맡았다⁠. 진짜 버터와 가짜 버터는 다르다⁠.

가짜 버터 밑에서 시큼함이 났다⁠. 상자 겉의 얇은 시큼함이 아니었다⁠. 상자 속에서⁠, 종이 이음새 틈으로 새어 나오는 시큼함⁠. 더미에서 맡던 냄새보다 백 배는 진했다⁠.

나는 앉았다⁠. 꼬리를 바닥에 붙였다⁠. 버터 앞에서 꼬리를 흔들지 않았다⁠. 귤 냄새 손에서 땀이 멈췄다⁠.

*

맹소리는 일곱 번째 팔레트 앞에 앉은 콩떡이를 내려다보며 숨을 참았다⁠. 상자 더미 한가운데⁠, 위에서 네 번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 상자였다⁠. 붉은 네모가 뜨지 않은 상자였다⁠. 콩떡이 코끝이 상자 이음새에서 손가락 하나만큼 떨어져 있었고⁠, 꼬리는 바닥에 붙어 있었고⁠, 귀는 앞으로 모여 있었다⁠. 다섯 번째 팔레트 앞에서 엉덩이를 들었다 놓던 개가 아니었다⁠. 소리는 원철에게 손을 들어 보이려다 멈췄다⁠. 출입문 쪽에서 구두 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맹 주무관님⁠, 그 상자 앞에서 앉으면 안 되죠⁠.⁠”

방도열이 검사장 입구에 서 있었다⁠. 여덟 시 사십 분이었다⁠. 옆에 관세사라는 사람이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도열은 반소매 셔츠 대신 회색 정장을 입었고⁠, 손목의 금속 시계는 오늘도 헐렁하게 돌았다⁠.

“⁠아홉 시 통관 예정이에요⁠. 과자는 유통기한이 있어요⁠. 오늘 오후에 전국 마흔두 개 매장에 깔려야 하고요⁠.⁠” 도열이 일곱 번째 팔레트 앞의 콩떡이를 보고 웃었다⁠. “⁠이천 상자가 다 쿠키예요⁠. 저 개는 어디 앉아도 쿠키 앞이에요⁠. 국회 영상에도 나왔잖아요⁠. 쿠키 앞에서 앉는 개⁠.⁠”

“⁠콩떡이는 쿠키 앞에서는 꼬리부터 흔들어요⁠.⁠” 소리가 말했다⁠. “⁠보세요⁠. 꼬리가 바닥에 붙어 있어요⁠.⁠”

“⁠그건 주무관님 말이죠⁠. 주무관님은 이 개를 지키려고 감찰까지 받으신 분이고요⁠.⁠” 도열이 관세사를 돌아봤다⁠. 관세사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기계가 열두 상자 표시했죠⁠? 다 쿠키였죠⁠? 스캐너는 전부 울었죠⁠? 우리 창고가 오래돼서 바닥 청소를 잘 못 했나 봐요⁠. 그건 제가 사과드립니다⁠. 근데 기계로도 안 나오는 걸⁠, 쿠키 좋아하는 개가 앉았다고 열자고 하시면⁠.⁠”

관세사가 종이를 원철에게 내밀었다⁠. 「⁠통관 지연에 따른 손해 산정서⁠」⁠. 이천 상자⁠, 마흔두 개 매장⁠, 성수기 주말 매출⁠.

“⁠상자를 열어서 아무것도 안 나오면⁠, 이 금액은 세관이 물어 주셔야 합니다⁠. 국가 배상으로 가면 몇 년 걸리고요⁠.⁠” 도열이 부드럽게 말했다⁠. “⁠과장님⁠, 지금 기계 결과대로 내보내 주시면 아무 일도 없어요⁠. 기계 들이자고 하셨던 분이잖아요⁠.⁠”

원철은 손해 산정서를 받아 한 번 읽었다⁠. 박하사탕을 입에 넣었다⁠. 깨물지 않았다⁠. 일곱 번째 팔레트 앞의 콩떡이를 봤다⁠. 콩떡이는 꼬리를 바닥에 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상자 이음새 높이에 두고⁠, 눈을 상자에서 떼지 않았다⁠.

“⁠기계 들이자고 한 건 맞아요⁠.⁠” 원철이 말했다⁠. “⁠기계가 못 보는 걸 보는 놈이 옆에 있을 때요⁠.⁠”

원철은 손해 산정서를 반으로 접어 제 윗주머니에 넣었다⁠.

“⁠열어⁠. 아무것도 안 나오면 손해는 내가 물어⁠. 세관 말고 계원철이⁠.⁠”

“⁠과장님 개인 이름으로요⁠?⁠” 도열의 웃음이 처음으로 한 박자 늦게 왔다⁠.

“⁠네⁠. 적어 가세요⁠. 계원철⁠. 원할 원⁠, 쇠 철⁠.⁠”

직원이 칼로 일곱 번째 팔레트의 상자 테이프를 잘랐다⁠. 쿠키 봉지가 가득했다⁠. 버터 냄새가 확 퍼졌는데⁠, 소리 코로도 어딘가 달랐다⁠. 너무 달았다⁠. 봉지를 한 층 들어내자 봉지 사이에 투명 비닐로 진공 포장한 하얀 덩어리가 납작하게 깔려 있었다⁠. 덩어리마다 망고 그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반장이 출입문에서 걸어왔다⁠. 걸음이 빠르지 않았다⁠. 도열 옆에 서서 등산화 끈을 한 번 내려다보고⁠, 도열을 봤다⁠.

“⁠방도열 씨⁠.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도열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다만 손목시계를 한 번 바로 돌려 찼다⁠. 반장이 수갑을 꺼내는 동안 도열은 소리를 보며 말했다⁠.

“⁠주무관님⁠, 개 하나 때문에 이천 상자가 묶였네요⁠. 근데 방콕 창고에는 상자가 이천 개 더 있어요⁠. 다음 달에도 비행기는 뜨고요⁠.⁠”

“⁠그럼 다음 달에도 열게요⁠.⁠” 소리가 말했다⁠. “⁠다른 개가요⁠.⁠”

“⁠그 개도 쿠키 좋아해요⁠?⁠”

“⁠콩떡이만큼은 아니에요⁠.⁠”

도열이 처음으로 웃음소리를 냈다⁠. 웃음 끝에 쇠붙이 부딪는 소리가 겹쳤다⁠. 수갑이 채워지는 소리였다⁠.

*

하얀 덩어리 하나의 비닐 모서리가 칼끝에 찢겨 있었다⁠. 시큼함이 터졌다⁠. 코 안으로 바로 들어왔다⁠. 따가웠다⁠. 쇠를 핥은 것처럼⁠, 불에 덴 것처럼⁠. 귤 냄새 손이 목줄을 세게 당겼다⁠. 목이 뒤로 젖혔다⁠. 재채기가 났다⁠. 또 났다⁠. 코 안이 뜨거웠다⁠. 침이 줄줄 흘렀다⁠.

귤 냄새가 나를 안아 들었다⁠. 33킬로를⁠. 귤 냄새 팔이 떨렸다⁠. 떨리는 팔에서 무서운 땀이 났다⁠. 지금까지 맡은 땀 가운데 제일 짰다⁠.

구두약 냄새가 옆에서 뛰었다⁠. 박하가 바닥에 떨어졌다⁠.

*

열한 시 오십 분⁠, 공항 근처 동물병원 대기실에서 소리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반장이었다⁠.

“⁠우 부기장⁠, 출발장 카페 앞 의자에 상자 두고 나한테 걸어왔어⁠. 제 발로⁠. 체포했고⁠, 상자에는 쿠키만 들었어⁠.⁠” 반장이 잠깐 말을 끊었다⁠. “⁠맹 주무관한테 전해 달래⁠. 콩떡이한테 쿠키는 이제 안 사 온다고⁠.⁠”

소리는 대답을 못 하고 전화를 내렸다⁠. 진료실 문이 열렸다⁠. 수의사가 장갑을 벗으며 나왔다⁠.

“⁠코 점막이 좀 데었어요⁠. 들이마신 양이 아주 적어서 몸에는 큰 문제 없어요⁠. 사흘 정도 지켜보고요⁠.⁠” 수의사가 콩떡이를 돌아봤다⁠. 콩떡이는 진료대 위에서 혀를 내밀고 웃는 얼굴로 소리를 보고 있었다⁠. 코끝이 조금 벌겠다⁠. “⁠다만⁠, 코가 한 번 다친 개는 현장에 다시 안 보내는 게 좋아요⁠. 다음엔 더 예민해지거나 더 무뎌지거나 둘 중 하나예요⁠. 어느 쪽이 될지는 몰라요⁠.⁠”

“⁠내일 은퇴예요⁠.⁠” 소리가 말했다⁠.

“⁠그럼 잘됐네요⁠.⁠” 수의사가 웃었다⁠. “⁠좋은 날 은퇴하네⁠.⁠”

대기실 의자에 원철이 앉아 있었다⁠. 제복 윗옷은 무릎에 접어 놓았고⁠, 셔츠 윗주머니에 손해 산정서가 반으로 접힌 채 꽂혀 있었다⁠. 옆자리에서 고양이 이동장을 든 할머니가 제복 차림의 원철을 자꾸 힐끔거렸다⁠. 원철은 콩떡이가 진료실에서 걸어 나오자 일어나지 않고 손만 내밀었다⁠. 콩떡이가 원철 손바닥에 코를 댔다⁠. 원철이 주머니에서 육포 한 조각을 꺼냈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수의사 선생님⁠, 이거 줘도 됩니까⁠?⁠” 원철이 물었다⁠.

“⁠소금 적은 거면요⁠.⁠”

“⁠적은 겁니다⁠.⁠” 원철이 육포를 콩떡이 입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소리를 올려다봤다⁠. “⁠내일 아홉 시⁠. 센터에서 은퇴식이야⁠. 조끼는 깨끗하게 빨아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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