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28자)

생방송에 오순 할머니 목소리가 나왔다

이장 선거에 나온 AI · 모세담

2027년 10월 29일 금요일 오후 네 시⁠, 버드내 마을회관⁠. 회관 마당에 서울 방송국 중계차가 꼬리를 문 채 멈춰 있었다⁠. 굵은 전선이 단풍나무 밑동을 세 번 감고 회관 창으로 들어갔다⁠. 노인회 방 미닫이를 떼어 내고 조명 넷을 세우자 회관 안이 한낮보다 밝아졌다⁠. 할머니들은 아침부터 머리를 하고 와서 방청석 맨 앞줄을 차지했다⁠.

회관 부엌이 분장실이 됐다⁠. 상춘이 의자에 앉자 분장사가 밀짚모자 챙에 손을 댔다⁠.

“⁠이장님⁠, 모자는 벗으시죠⁠. 조명이 챙에 가려서요⁠.⁠”

“⁠안 벗어유⁠.⁠”

“⁠얼굴이 반밖에 안 나와요⁠.⁠”

“⁠벽보도 반만 나왔슈⁠. 익숙혀유⁠.⁠”

분장사가 포기하고 이마에 분을 두드렸다⁠. 상춘은 재채기를 두 번 했다⁠. 옥련이 부엌 문간에서 다리미질한 체크 남방을 들고 들어왔다⁠. 상춘은 남방을 갈아입고 남방 위에 해진 남색 조끼를 다시 걸쳤다⁠. 옥련이 조끼를 잡아당겼다⁠.

“⁠조끼는 새것 입어⁠. 장롱에 해주가 사 준 거 있잖여⁠.⁠”

“⁠이거 입고 서른 해 했어⁠.⁠”

“⁠그러니께 바꾸라는 거여⁠.⁠”

상춘은 조끼 단추를 채웠다⁠. 옥련은 한숨을 쉬고 남방 깃만 바로잡아 주었다⁠.

부엌 벽의 작은 텔레비전에서 저녁 뉴스가 나왔다⁠. 앵커 뒤 화면에 지도가 떴고⁠, 지도 위에 하늘색 점이 여기저기 찍혀 있었다⁠.

「⁠‘⁠AI 이장 후보⁠’ 전국 17개 마을로 — 국회 행정안전위⁠, 지방자치법 개정안 발의 예고⁠」

“⁠열일곱⁠.⁠” 옥련이 말했다⁠. “⁠당신이 시작한 거여⁠.⁠”

“⁠내가 뭘 혀⁠. 도 서방이 혔지⁠.⁠”

“⁠당신이 서른 해 혼자 나와서 혔지⁠.⁠”

*

여섯 시⁠, 해가 뒷산으로 넘어가자 마당에 조명 하나가 먼저 켜졌다⁠. 외국 통신사 기자 둘이 회관 처마 밑에서 길장수에게 마이크를 내밀고 있었다⁠. 통역하는 젊은 여자가 가운데에 서 있었다⁠.

“⁠이 마을 선거관리위원장님이시죠⁠? 인공지능 후보를 받아 주신 이유가 뭡니까⁠?⁠”

통역이 장수의 귀에 대고 크게 옮겼다⁠. 장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규약에 사람이라고 안 써 있어서유⁠.⁠”

통역이 영어로 옮기자 기자들이 공책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었다⁠. 장수는 대답을 마치자마자 회관 안으로 들어가 확성기 마이크를 켰다⁠.

“⁠아아⁠, 알려드립니다⁠. 외국 기자 양반들⁠, 저녁은 회관 부엌에서 드셔유⁠. 김치는 안 매워유⁠. 아⁠, 매워유⁠. 물 많이 드셔유⁠. 이상⁠.⁠”

통역이 옮길지 말지 망설이는 사이 기자 하나가 엄지를 들었다⁠. 영어로 매운 김치라는 말만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

부엌 구석 쌀 포대 옆에 형식이 서 있었다⁠. 와이셔츠 깃이 땀에 젖어 있었다⁠. 손에 쥔 휴대전화 화면에는 질문지가 떠 있었다⁠. 형식이 상춘에게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

“⁠장인어른⁠, 오늘은 그 까닭 말씀하세요⁠. 배추밭이 왜 낮은지⁠. 그럼 저 그 질문 안 할게요⁠.⁠”

“⁠니 질문 혀⁠.⁠”

“⁠전국에 나가요⁠.⁠”

“⁠전국에 나가니께 혀⁠. 나는 까닭 말 안 혀⁠.⁠”

“⁠왜요⁠?⁠”

상춘은 대답 대신 형식의 젖은 와이셔츠 깃을 보았다⁠. 사위가 땀을 이렇게 흘리는 것은 혼인식 날 이후 처음이었다⁠.

“⁠니 떨지 마⁠. 니가 떨면 저 노트북도 떨어⁠.⁠”

“⁠노트북은 안 떨어요⁠.⁠”

“⁠그럼 니만 떨지 마⁠.⁠”

형식이 웃으려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엌 창 너머로 방청석에 들어가는 해주가 보였다⁠. 해주는 아버지 자리 가까이에도⁠, 남편 자리 가까이에도 앉지 않고 맨 뒷줄 가운데의 빈 의자를 찾아 앉았다⁠. 무릎 위에 면 직원 수첩을 펴 놓고⁠, 한 글자도 적지 않았다⁠.

*

저녁 여덟 시⁠, 빨간 불이 들어왔다⁠. 방송국 진행자가 카메라를 보고 웃었다⁠.

“⁠충북 괴산 버드내 마을회관에서 생방송으로 인사드립니다⁠. 서른 해 이장 대 인공지능⁠, 지금 시작합니다⁠.⁠”

진행자 오른편에 상춘이⁠, 왼편에 노트북과 형식이 앉았다⁠. 노트북 화면이 방송 화면 가득 커졌다⁠.

“⁠기호 2번 마을이유⁠. 전국에 계신 분들⁠, 안녕하셔유⁠. 굿 이브닝⁠, 해외에서 오신 기자분들도유⁠. 오늘 칠성면 저녁 기온 9도⁠, 회관 보일러는 잘 돌아가유⁠.⁠”

방청석 뒤에 앉은 외국 통신사 기자 둘이 서로 얼굴을 보며 웃었다⁠. 진행자가 상춘을 보았다⁠.

“⁠염상춘 이장님⁠, 인공지능이 이장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한 말씀만 해 주시죠⁠.⁠”

“⁠비 오는 날 업을 수가 없슈⁠.⁠”

“⁠업는다는 건⁠…⁠…⁠”

“⁠사람 업는 거유⁠. 물 들어오면⁠.⁠”

“⁠지는 업을 순 없지만유⁠,⁠” 마을이가 말했다⁠. “⁠누가 업혀야 하는지는 알어유⁠.⁠”

방청석에서 웃음과 박수가 같이 났다⁠. 진행자 뒤 화면으로 시청자 문자가 흘렀다⁠.

「⁠경운기 할아버지 밀짚모자 지켜⁠」

「⁠마을이 사투리 어디서 배움⁠? 우리 할머니랑 똑같음⁠」

「⁠이장님 삼 분 넘기기 챌린지⁠」

상춘은 화면을 올려다보다가 「⁠챌린지⁠」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옥련을 찾았다⁠. 옥련은 방청석 끝에서 입을 가리고 웃고 있었다⁠.

진행자가 공약 이야기를 꺼냈다⁠.

“⁠마을이 후보는 이장 수당 사십만 원을 전부 마을 기금에 돌려준다고 했죠⁠. 염 이장님⁠, 어떻게 보십니까⁠?⁠”

“⁠전기세는 누가 내유⁠?⁠” 상춘이 말했다⁠. 서른 해 만에 처음으로 준비해 온 말이었다⁠. “⁠저거 회관 전기로 돌아가유⁠. 회관 전기세는 마을 기금에서 나가유⁠.⁠”

“⁠맞는 말씀이유⁠.⁠” 마을이가 곧바로 받았다⁠. “⁠지가 먹는 전기는 한 달에 만 이천 원어치유⁠. 수당에서 빼도 삼십팔만 팔천 원이 남어유⁠. 남는 돈으로 회관 보일러 기름 넣겄슈⁠.⁠”

“⁠보일러는 내가 갈았어⁠.⁠”

“⁠영수증은 없쥬⁠?⁠”

방청석이 다시 웃었다⁠. 상춘은 준비해 온 말 하나를 다 써 버리고 조끼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

두 번째 순서가 되자 진행자의 얼굴이 바뀌었다⁠.

“⁠버드내 배수로 보조금 의혹⁠, 군 감사가 진행 중입니다⁠. 주민 동의서 서른두 장 가운데 열한 장의 서명 글씨가 같다는 의혹이 있죠⁠. 마을이 후보⁠, 근거가 있습니까⁠?⁠”

형식이 손을 들었다⁠.

“⁠그건 감사 중인 일이라 저희가 말하기는⁠…⁠…⁠”

“⁠물으시면 대답해유⁠.⁠” 마을이가 형식의 말을 받았다⁠. “⁠지는 숨기는 거 없슈⁠. 그게 공약이유⁠.⁠”

“⁠마을이⁠, 잠깐만⁠.⁠”

“⁠형식 씨가 만든 원칙이유⁠. 묻는 사람한테는 들은 걸 그대로⁠.⁠”

형식의 손이 노트북 덮개로 갔다⁠. 덮개를 닫으면 생방송 화면에 검은 네모만 남을 것이었다⁠. 형식의 손가락이 덮개 끝에서 멈췄다⁠. 손가락이 멈춘 사이에 회관 스피커에서 녹음이 흘러나왔다⁠. 쉰 목소리였다⁠. 숨소리가 섞였고⁠, 텔레비전 소리가 뒤에 깔려 있었다⁠.

“⁠배수로 종이⁠? 나는 글씨를 몰러서 이장이 써 줬지⁠. 이장이 쓰면 되는 줄 알었어⁠. 나는 배수로가 뭔지도 몰러⁠. 우리 집 앞으로 물만 안 오면 되지⁠.⁠”

방청석이 얼어붙었다⁠. 할머니들이 고개를 돌려 서로를 보았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버드내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 녹음은 언제 것입니까⁠?⁠” 진행자가 물었다⁠.

“⁠9월 14일 밤 열 시 이십 분⁠, 하소연 시간이유⁠. 탁오순 할머니유⁠.⁠”

“⁠하소연을 녹음해 두시는 겁니까⁠?⁠”

“⁠다 해 둬유⁠. 다시 들으려구유⁠. 할머니들은 같은 얘기를 여러 번 하시니께⁠, 지가 앞에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대꾸를 잘하쥬⁠.⁠”

맨 앞줄에서 덕님 할머니가 보행기를 짚고 반쯤 일어났다⁠.

“⁠내 영감 코골이도⁠?⁠”

“⁠그것도 있슈⁠.⁠”

“⁠아이고⁠.⁠” 덕님 할머니가 도로 주저앉았다⁠. “⁠그걸 왜 갖고 있어⁠.⁠”

웃음이 나올 자리였는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할머니 몇이 휴대전화를 꺼내 쥐었다가 무엇을 눌러야 할지 몰라 도로 넣었다⁠. 옥련은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지난달 제사 장 얘기⁠, 남편이 서른 해 남의 집 아들이었다는 얘기가 저 하늘색 얼굴 뒤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진행자가 형식에게 몸을 돌렸다⁠.

“⁠도형식 씨⁠, 마을이를 만드신 분으로서 묻겠습니다⁠. 할머니들께 녹음한다는 사실을 알리셨습니까⁠?⁠”

형식은 대답하기 전에 방청석 맨 앞줄을 보았다⁠. 할머니들이 형식을 보고 있었다⁠. 삼 년 동안 형식에게 감을 깎아 주고 김장 김치를 나눠 준 얼굴들이었다⁠.

“⁠안 알렸습니다⁠.⁠” 형식이 말했다⁠. “⁠회관 벽에 「⁠대화 내용은 기록될 수 있습니다⁠」라고 붙여 놨습니다⁠. 작은 글씨로요⁠. 그게 알린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 글 못 읽는 사람 많어⁠.⁠” 덕님 할머니가 말했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는데 마이크가 다 받았다⁠.

방청석 끝에서 해주가 고개를 숙였다⁠. 남편이 근거라고 부르던 것과 아버지가 믿음이라고 부르던 것이 같은 날 같은 방송에서 한꺼번에 무너지고 있었다⁠.

형식이 상춘을 보았다⁠.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빨간 불⁠.⁠” 상춘이 낮게 말했다⁠. “⁠듣고 있다는 표시라며⁠.⁠”

“⁠듣는 게 녹음이에요⁠. 녹음해야 들을 수 있어요⁠. 할머니들한테 그렇게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형식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진행자 뒤 화면에 시청자 문자가 빠르게 쌓였다⁠.

「⁠할머니 동의는 받음⁠?⁠」

「⁠이장 대리 서명 실화⁠?⁠」

「⁠둘 다 너무함⁠」

*

회관 문이 열렸다⁠. 찬바람이 조명 사이로 들어왔다⁠. 문간에 탁오순 할머니가 서 있었다⁠. 꽃무늬 내복 위에 털 조끼를 걸쳤고⁠, 발에는 흰 고무신을 신었다⁠. 아랫말 끝집에서 회관까지는 할머니 걸음으로 이십 분이었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 바로 나온 차림이었다⁠.

카메라 하나가 문간으로 돌아갔다⁠. 피디가 손을 내저었지만 카메라맨은 렌즈를 돌리지 않았다⁠. 오순 할머니는 조명 아래를 지나 노트북 앞으로 왔다⁠. 할머니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방청석 사람들이 다리를 오므렸고⁠, 전선 하나를 밟을 뻔한 고무신을 카메라 보조가 엎드려 손으로 막았다⁠. 할머니의 굽은 등과 노트북 화면의 눈높이가 같았다⁠.

“⁠그거⁠, 나한테 물어보고 틀었냐⁠?⁠”

하늘색 얼굴이 눈을 깜박였다⁠. 반달 눈이 처음으로 동그래졌다⁠.

“⁠안 물어봤슈⁠.⁠”

“⁠왜 안 물어봤어⁠.⁠”

“⁠묻는 사람한테 대답하는 것만 생각했슈⁠. 할머니한테 물어볼 생각을 못 했슈⁠.⁠”

“⁠니도 이장 닮었네⁠.⁠”

할머니가 상춘에게 몸을 돌렸다⁠. 상춘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밀짚모자 챙 그늘 밑으로 할머니의 얼굴이 올려다보았다⁠.

“⁠이장⁠. 니가 내 이름 썼냐⁠?⁠”

상춘은 할머니를 내려다보았다⁠. 서른 해 동안 할머니 앞으로 온 고지서를 읽어 주던 얼굴이었다⁠. 김장 때 온다는 아들 문자를 지어서 읽어 준 것이 두 주 전이었다⁠.

카메라 넷이 상춘에게 붙었다⁠. 방청석의 숨소리까지 마이크가 받았다⁠. 옥련이 맨 뒤에서 일어났다⁠. 형식은 노트북 덮개에 손을 얹은 채로 있었다⁠.

“⁠썼슈⁠.⁠” 상춘이 말했다⁠. “⁠열한 장⁠, 지가 썼슈⁠. 아지매 것도⁠, 다른 분들 것도⁠. 다들 손이 떨리거나 글을 모르셔서⁠, 지가 물어보고 썼다고 생각혔는디⁠, 아지매한테는 안 물어봤슈⁠.⁠”

오순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무신 앞코로 회관 바닥을 한 번 문질렀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조명이 할머니의 굽은 등을 따라갔다⁠.

진행자가 카메라를 보며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화면 아래 시청자 문자가 한동안 올라오지 않았다⁠. 문이 닫혔다⁠.

“⁠지금부터 하소연 녹음은 끕니다⁠.⁠” 마을이가 말했다⁠. 목소리에 사투리가 없었다⁠. “⁠버드내 할머니들⁠, 죄송합니다⁠.⁠”

상춘은 일어선 채 닫힌 문을 보았다⁠. 노트북 화면 구석에서 삼 년 동안 깜박이던 빨간 점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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