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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 감사팀, 배수로에 줄자를 대다

이장 선거에 나온 AI · 모세담

2027년 10월 21일 목요일 아침 열 시⁠, 버드내 아랫들⁠. 군청 하얀 승합차가 농로 끝에 멈추고⁠, 괴산군 감사팀장이 줄자를 들고 내렸다⁠. 쉰 줄의 여자였다⁠. 등산화에 형광 조끼를 입었고⁠, 조끼 등판에 「⁠감사⁠」 두 글자가 붙어 있었다⁠. 주무관 둘이 측량 막대와 서류 상자를 들고 뒤따랐다⁠.

해주는 면 차에서 내리다가 감사팀장의 손짓에 다시 차 문을 잡았다⁠.

“⁠염 주무관은 차에 계세요⁠. 가족이시잖아요⁠.⁠”

“⁠네⁠.⁠” 해주는 차 안으로 도로 들어갔다⁠. 앞 유리 너머로 아버지와 남편이 배수로 양옆에 하나씩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감사팀장이 줄자 끝을 회관 아래 배수로 시작점에 대고 주무관에게 넘겼다⁠. 오십 미터짜리 줄자였다⁠.

“⁠육백사십 미터 맞는지 봅시다⁠.⁠”

“⁠위성사진으로 재면 일 초면 돼유⁠.⁠” 형식이 들고 있는 노트북에서 마을이가 말했다⁠. “⁠지가 벌써 쟀슈⁠. 육백삼십팔 미터유⁠.⁠”

“⁠감사는 발로 하는 거예요⁠.⁠” 감사팀장이 노트북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사진은 사진이고요⁠.⁠”

상춘이 처음으로 감사팀장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팀장은 줄자를 당기며 걸었다⁠. 주무관이 오십 미터마다 분필로 배수로 턱에 금을 그었다⁠. 형식과 상춘은 양옆에서 말없이 따라 걸었다⁠. 열세 번째 금을 그었을 때 둑이 나왔다⁠.

“⁠육백삼십구 미터⁠.⁠” 감사팀장이 수첩에 적었다⁠. “⁠일 미터는 봐 드립니다⁠.⁠”

“⁠지가 일 미터 틀렸슈⁠.⁠” 마을이가 말했다⁠.

“⁠사진이 틀린 거예요⁠.⁠”

둑길로 할머니 셋이 쟁반을 이고 내려왔다⁠. 덕님 할머니가 보행기에 막걸리 주전자를 얹고 맨 뒤에서 따라왔다⁠. 쟁반에는 삶은 고구마와 김치가 담겨 있었다⁠.

“⁠감사하시느라 욕보셨슈⁠. 새참 드셔유⁠.⁠”

감사팀장이 두 손을 내저었다⁠.

“⁠어머님⁠, 저희 이런 거 받으면 안 돼요⁠.⁠”

“⁠고구마가 무슨 뇌물이여⁠. 우리 밭에서 캔 거여⁠.⁠”

“⁠밭에서 캔 거라도요⁠.⁠”

“⁠그럼 버려⁠?⁠”

감사팀장이 난처한 얼굴로 주무관들을 돌아보았다⁠. 주무관 하나가 침을 삼켰다⁠. 마을이가 노트북에서 끼어들었다⁠.

“⁠할머니⁠, 감사하는 분들은 고구마 한 알도 못 받으셔유⁠. 그 대신 지가 감사팀장님 이름으로 고맙다는 말씀은 받아 둘게유⁠.⁠”

“⁠그런 것도 받어⁠?⁠”

“⁠다 받어유⁠. 말은 공짜유⁠.⁠”

할머니들이 쟁반을 도로 이고 둑 위에 앉았다⁠. 감사팀이 일하는 동안 할머니들은 둑에 앉아 고구마를 까먹으며 구경했다⁠. 막걸리는 덕님 할머니가 혼자 반 주전자를 비웠다⁠.

*

수문 앞에서 감사팀장이 걸음을 멈췄다⁠. 쇠 수문은 둑 밑에 박혀 있었고⁠, 수문 너머로 달천이 낮게 흘렀다⁠. 감사팀장이 수문 손잡이를 잡아 보았다⁠. 손잡이가 소리 없이 돌았다⁠.

“⁠기름칠이 잘돼 있네요⁠.⁠”

“⁠지가 혀유⁠.⁠”

“⁠누가 시켰어요⁠?⁠”

“⁠아무도 안 시켰슈⁠.⁠”

감사팀장이 수문에서 돌아서서 배추밭을 보았다⁠. 배추가 퍼렇게 속을 채우고 있었다⁠. 감사팀장은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배수로 턱에 대고⁠, 다음에는 배추밭 고랑 위에 대었다⁠. 화면 속 물방울 모양의 수평 표시가 한쪽으로 쏠렸다⁠.

“⁠이상하네요⁠. 배추밭이 배수로 바닥보다 낮아요⁠. 이 정도면 배수로 물이 밭으로 넘어가지⁠, 밭 물이 배수로로 안 빠질 텐데요⁠.⁠”

형식이 노트북을 고쳐 안고 다가왔다⁠. 상춘이 한 발 다가갔다⁠. 장화 밑창이 감사팀장의 줄자 끝을 밟았다⁠.

“⁠배추밭 물은 잘 빠져유⁠. 고랑을 깊게 쳐서⁠.⁠”

“⁠그럼 배수로는 왜 이 높이로 냈어요⁠?⁠”

“⁠설계는 군에서 혔슈⁠.⁠”

“⁠설계 도면에 이장님 의견서가 붙어 있던데요⁠. 수문 위치는 이장님이 정하셨다고⁠.⁠”

상춘은 대답하지 않았다⁠. 장화가 아직 줄자를 밟고 있었다⁠. 감사팀장이 줄자를 살짝 당겼다가 놓았다⁠.

“⁠발 좀요⁠.⁠”

상춘이 발을 뗐다⁠. 감사팀장이 줄자를 감으며 상춘의 얼굴을 한동안 보았다⁠. 형식도 보았다⁠. 형식의 눈에 처음으로 의심 말고 다른 것이 스쳤다⁠.

“⁠장인어른⁠, 배추밭이 왜 낮아요⁠?⁠”

“⁠원래 낮어⁠.⁠”

“⁠원래 낮은 밭 옆에 배수로를 높게 내면⁠…⁠…⁠”

“⁠도 서방⁠, 니 고추밭이나 봐⁠.⁠”

“⁠장인어른⁠.⁠” 노트북에서 마을이가 말했다⁠. “⁠2017년 7월 비 자료랑 이 밭 높이를 겹쳐 보면 지가 금방⁠…⁠…⁠”

“⁠꺼⁠.⁠”

형식이 노트북 덮개에 손을 얹었다⁠. 덮지는 않았다⁠.

“⁠마을이⁠, 그건 감사팀장님이 물으시면 해⁠.⁠”

“⁠알겄슈⁠. 안 물으시면 안 할게유⁠.⁠”

감사팀장은 묻지 않았다⁠. 수첩 귀퉁이에 짧게 무언가를 적고 줄자를 마저 감았다⁠.

감사팀장이 수첩을 덮었다⁠.

“⁠동의서에 서명하신 분들 면담은 11월 1일 월요일에 군청에서 합니다⁠. 이장님도 오세요⁠. 염 주무관도요⁠.⁠”

*

오후 두 시⁠, 상춘은 옥련의 낡은 소형차 조수석에 앉아 괴산읍으로 갔다⁠. 상춘은 승용차 면허가 없었다⁠. 서른 해를 경운기와 트럭 짐칸으로 살았다⁠.

“⁠군청엔 왜 가⁠.⁠” 옥련이 핸들을 잡고 물었다⁠.

“⁠군수 만나러⁠.⁠”

“⁠군수가 당신을 왜 만나⁠.⁠”

“⁠전국 첫 AI 이장 후보 맞수잖여⁠. 반은 내 덕이여⁠.⁠”

옥련이 코웃음을 쳤다⁠. 차는 달천을 따라 내려갔다⁠. 강가 둔치에 2023년 물난리 뒤에 새로 쌓은 제방이 하얗게 이어졌다⁠. 옥련이 앞만 보고 말했다⁠.

“⁠배추밭 높이 얘기⁠, 감사팀장이 했다며⁠. 덕님이 형님이 회관에서 다 들었댜⁠. 마을이가 하소연 시간에 얘기해 줬댜⁠.⁠”

“⁠그게 그런 걸 떠들어⁠?⁠”

“⁠묻는 사람한테는 다 말해 준댜⁠. 숨기는 건 없댜⁠.⁠”

상춘은 창밖을 보았다⁠. 둔치에서 경운기 한 대가 볏짚을 싣고 가고 있었다⁠.

“⁠당신 그 밭⁠, 2017년 지나고 일부러 낮췄지⁠.⁠” 옥련이 말했다⁠. “⁠흙 퍼다 윗들 밭에 부어 주고⁠. 나 그해 가을에 다 봤어⁠.⁠”

상춘은 대답하지 않았다⁠. 옥련도 더 묻지 않았다⁠. 차는 괴산읍으로 들어갔다⁠.

*

군청 로비에 들어서자 정면 벽에 커다란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인공지능 행정⁠, 괴산이 앞서갑니다⁠」⁠. 글자 옆에 하늘색 동그란 얼굴이 웃고 있었다⁠. 마을이였다⁠. 상춘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저거 누가 붙였어⁠?⁠” 상춘이 안내 창구에 물었다⁠.

“⁠홍보팀이요⁠. 군수님 지시로요⁠.⁠”

“⁠군수는 어디 있어⁠?⁠”

“⁠오늘 청주에서 인공지능 행정 포럼 발표하세요⁠.⁠”

“⁠무슨 발표⁠.⁠”

창구 직원이 책상 위 안내문을 내밀었다⁠. 발표 제목은 「⁠전국 첫 AI 이장 후보 마을⁠, 괴산 버드내의 실험⁠」이었다⁠. 상춘은 안내문을 접어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로비 한편에서 조명이 켜졌다⁠. 지역 방송 카메라 앞에 형식이 앉아 있었다⁠. 기자가 마이크를 내밀고 있었다⁠. 형식은 감사 현장에서 바로 군청으로 온 모양이었다⁠. 바지 무릎에 아랫들 흙이 묻어 있었다⁠.

“⁠…⁠…마을이는 누구 편도 아니에요⁠. 들은 걸 전할 뿐이에요⁠.⁠” 형식이 말했다⁠.

“⁠장인과의 갈등은 어떻게⁠…⁠…⁠”

기자가 고개를 돌리다 상춘을 보았다⁠. 카메라도 따라 돌았다⁠. 상춘은 밀짚모자를 벗지 않고 카메라 앞으로 걸어갔다⁠.

“⁠도 서방⁠, 저 현수막 봤어⁠?⁠”

형식이 벽을 보았다⁠. 형식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제가 붙인 거 아니에요⁠. 군청에서 마을이 얼굴 써도 되냐고 저한테 물은 적도 없어요⁠.⁠”

“⁠물어보는 게 그렇게 중혀⁠?⁠”

“⁠장인어른한테는 안 중하시겠죠⁠.⁠”

“⁠니 노트북이잖여⁠. 군수가 니 노트북 들고 청주 가서 자랑혀⁠. 이게 버드내 일이여⁠, 군수 일이여⁠?⁠”

“⁠장인어른⁠, 카메라 돌아가요⁠.⁠”

“⁠돌라고 혀⁠.⁠” 상춘이 카메라를 보았다⁠. “⁠나 염상춘이유⁠. 버드내 이장이유⁠. 저 하늘색 얼굴은 우리 마을 회관 노트북이유⁠. 군청 벽에 붙으라고 들인 게 아니유⁠.⁠”

기자가 반가운 얼굴로 마이크를 상춘에게 돌렸다⁠. 형식이 일어났다⁠.

“⁠저도 저 현수막은 싫어요⁠.⁠” 형식의 목소리가 낮았다⁠. “⁠그런데 장인어른⁠, 군이 이걸 자랑하고 싶어 하는 건 마을이 탓이 아니에요⁠. 버드내 배수로 서류가 회의록 한 장 없이 군청 서랍에 있었던 것도 군 탓이고요⁠. 군은 장인어른 서류도 받아 줬고⁠, 마을이 현수막도 붙였어요⁠. 둘 다 편해서요⁠.⁠”

상춘은 대꾸할 말을 찾았다⁠. 찾는 동안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적었다⁠. 상춘은 기자를 보았다⁠.

“⁠그건 빼유⁠.⁠”

“⁠왜요⁠? 좋은 말씀인데요⁠.⁠”

“⁠좋은 말이니께 빼유⁠. 사위 말이 맞는 거 방송에 나가면 나는 뭐가 돼유⁠.⁠”

카메라 뒤에서 촬영 기자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형식도 웃었다⁠. 웃다가 자기가 웃은 것에 놀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상춘의 휴대전화가 연달아 울렸다⁠. 괴산군 이장협의회장이었다⁠. 상춘보다 다섯 살 아래의 다른 면 이장이었다⁠.

“⁠형님⁠, 뉴스 봤슈⁠. 이장들이 난리유⁠. 괴산에 이장이 이백팔십 명 넘는디⁠, 다들 우리 마을에도 노트북 나오면 어쩌냐고 전화가 와유⁠. 이장 단톡방에선 「⁠노트북 이장 반대⁠」 성명을 내자는 사람도 있슈⁠. 반대하는 성명을 노트북으로 쓰자는 거유⁠.⁠”

“⁠나오면 붙으면 되지⁠.⁠”

“⁠형님이 지면 우리 다 노트북한테 밀려유⁠. 꼭 이겨유⁠. 이장협의회 이름으로 떡이라도 보낼까유⁠?⁠”

“⁠떡 돌리면 안 된댜⁠. 노인회 이름으로만 된댜⁠.⁠”

“⁠그건 또 뭔 소리유⁠.⁠”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울렸다⁠. 모르는 서울 번호였다⁠. 젊은 여자가 자기를 시사 방송 피디라고 소개했다⁠.

“⁠염상춘 이장님이시죠⁠? 저희가 10월 29일 금요일 저녁에 버드내 회관에서 생방송 토론을 하려고요⁠. 제목은 「⁠서른 해 이장 대 인공지능⁠」이에요⁠. 전국에 나가요⁠. 이장님 나와 주실 거죠⁠?⁠”

“⁠전국에 나가유⁠?⁠”

“⁠네⁠. 그리고 이장님⁠, 아셨어요⁠? 오늘 아침 경북 한 마을이랑 전남 한 마을에서도 인공지능 후보 등록을 했대요⁠. 버드내 보고 따라 했대요⁠. 바람이 불었어요⁠.⁠”

상춘은 대답하지 않고 창밖을 보았다⁠. 달천 둔치의 억새가 한쪽으로 누워 있었다⁠.

“⁠이장님⁠?⁠”

“⁠나가유⁠.⁠”

“⁠감사합니다⁠! 마을이는 벌써 승낙했어요⁠.⁠”

전화를 끊자 옥련이 핸들을 잡은 채 상춘을 흘끗 보았다⁠.

“⁠전국에 나가면 당신 또 삼 분에 서른 해 얘기 할 거여⁠?⁠”

“⁠토마토 없으면 되잖여⁠.⁠”

“⁠방송국은 토마토보다 무서워⁠.⁠”

옥련이 깜빡이를 켜며 말을 이었다⁠.

“⁠해주가 요새 밥을 못 먹는댜⁠. 형식이가 회관에서 그러더라⁠. 저녁마다 식탁에 앉아서 2025년 서류철만 들여다본댜⁠.⁠”

“⁠형식이가 당신한테 그런 얘기를 혀⁠?⁠”

“⁠형식이도 하소연할 데가 있어야지⁠. 당신은 사위 얘기 들어 준 적 있어⁠?⁠”

상춘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위가 마을에 들어온 지 삼 년⁠, 장인과 사위가 단둘이 밥을 먹은 적은 혼인 전날 한 번뿐이었다⁠. 마주 앉은 밥상에서 상춘은 국만 먹고 일어났다⁠.

차가 버드내 입구로 꺾어 들었다⁠. 회관 게시판 앞에 처음 보는 승합차 두 대가 멈춰 있었다⁠. 차 옆구리에 서울 방송국 이름이 박혀 있었다⁠. 카메라를 멘 사람들이 하늘색 벽보 앞에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상춘의 벽보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상춘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경운기로 가서 현수막의 접힌 「⁠저⁠」를 다시 폈다⁠.

카메라 하나가 하늘색 벽보에서 돌아서 상춘을 따라왔다⁠. 렌즈가 경운기 짐받이에 바싹 붙었다⁠. 상춘이 끈을 묶고 손을 떼자 「⁠저⁠」가 또 접혔다⁠. 카메라를 든 젊은이가 소리 없이 웃었다⁠. 상춘은 밀짚모자를 벗어 렌즈 앞에 대고⁠, 모자 뒤에서 끈을 한 번 더 단단히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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