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55자)
군청 감사팀, 배수로에 줄자를 대다
이장 선거에 나온 AI · 모세담
2027년 10월 21일 목요일 아침 열 시, 버드내 아랫들. 군청 하얀 승합차가 농로 끝에 멈추고, 괴산군 감사팀장이 줄자를 들고 내렸다. 쉰 줄의 여자였다. 등산화에 형광 조끼를 입었고, 조끼 등판에 「감사」 두 글자가 붙어 있었다. 주무관 둘이 측량 막대와 서류 상자를 들고 뒤따랐다.
해주는 면 차에서 내리다가 감사팀장의 손짓에 다시 차 문을 잡았다.
“염 주무관은 차에 계세요. 가족이시잖아요.”
“네.” 해주는 차 안으로 도로 들어갔다. 앞 유리 너머로 아버지와 남편이 배수로 양옆에 하나씩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감사팀장이 줄자 끝을 회관 아래 배수로 시작점에 대고 주무관에게 넘겼다. 오십 미터짜리 줄자였다.
“육백사십 미터 맞는지 봅시다.”
“위성사진으로 재면 일 초면 돼유.” 형식이 들고 있는 노트북에서 마을이가 말했다. “지가 벌써 쟀슈. 육백삼십팔 미터유.”
“감사는 발로 하는 거예요.” 감사팀장이 노트북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사진은 사진이고요.”
상춘이 처음으로 감사팀장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팀장은 줄자를 당기며 걸었다. 주무관이 오십 미터마다 분필로 배수로 턱에 금을 그었다. 형식과 상춘은 양옆에서 말없이 따라 걸었다. 열세 번째 금을 그었을 때 둑이 나왔다.
“육백삼십구 미터.” 감사팀장이 수첩에 적었다. “일 미터는 봐 드립니다.”
“지가 일 미터 틀렸슈.” 마을이가 말했다.
“사진이 틀린 거예요.”
둑길로 할머니 셋이 쟁반을 이고 내려왔다. 덕님 할머니가 보행기에 막걸리 주전자를 얹고 맨 뒤에서 따라왔다. 쟁반에는 삶은 고구마와 김치가 담겨 있었다.
“감사하시느라 욕보셨슈. 새참 드셔유.”
감사팀장이 두 손을 내저었다.
“어머님, 저희 이런 거 받으면 안 돼요.”
“고구마가 무슨 뇌물이여. 우리 밭에서 캔 거여.”
“밭에서 캔 거라도요.”
“그럼 버려?”
감사팀장이 난처한 얼굴로 주무관들을 돌아보았다. 주무관 하나가 침을 삼켰다. 마을이가 노트북에서 끼어들었다.
“할머니, 감사하는 분들은 고구마 한 알도 못 받으셔유. 그 대신 지가 감사팀장님 이름으로 고맙다는 말씀은 받아 둘게유.”
“그런 것도 받어?”
“다 받어유. 말은 공짜유.”
할머니들이 쟁반을 도로 이고 둑 위에 앉았다. 감사팀이 일하는 동안 할머니들은 둑에 앉아 고구마를 까먹으며 구경했다. 막걸리는 덕님 할머니가 혼자 반 주전자를 비웠다.
*
수문 앞에서 감사팀장이 걸음을 멈췄다. 쇠 수문은 둑 밑에 박혀 있었고, 수문 너머로 달천이 낮게 흘렀다. 감사팀장이 수문 손잡이를 잡아 보았다. 손잡이가 소리 없이 돌았다.
“기름칠이 잘돼 있네요.”
“지가 혀유.”
“누가 시켰어요?”
“아무도 안 시켰슈.”
감사팀장이 수문에서 돌아서서 배추밭을 보았다. 배추가 퍼렇게 속을 채우고 있었다. 감사팀장은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배수로 턱에 대고, 다음에는 배추밭 고랑 위에 대었다. 화면 속 물방울 모양의 수평 표시가 한쪽으로 쏠렸다.
“이상하네요. 배추밭이 배수로 바닥보다 낮아요. 이 정도면 배수로 물이 밭으로 넘어가지, 밭 물이 배수로로 안 빠질 텐데요.”
형식이 노트북을 고쳐 안고 다가왔다. 상춘이 한 발 다가갔다. 장화 밑창이 감사팀장의 줄자 끝을 밟았다.
“배추밭 물은 잘 빠져유. 고랑을 깊게 쳐서.”
“그럼 배수로는 왜 이 높이로 냈어요?”
“설계는 군에서 혔슈.”
“설계 도면에 이장님 의견서가 붙어 있던데요. 수문 위치는 이장님이 정하셨다고.”
상춘은 대답하지 않았다. 장화가 아직 줄자를 밟고 있었다. 감사팀장이 줄자를 살짝 당겼다가 놓았다.
“발 좀요.”
상춘이 발을 뗐다. 감사팀장이 줄자를 감으며 상춘의 얼굴을 한동안 보았다. 형식도 보았다. 형식의 눈에 처음으로 의심 말고 다른 것이 스쳤다.
“장인어른, 배추밭이 왜 낮아요?”
“원래 낮어.”
“원래 낮은 밭 옆에 배수로를 높게 내면……”
“도 서방, 니 고추밭이나 봐.”
“장인어른.” 노트북에서 마을이가 말했다. “2017년 7월 비 자료랑 이 밭 높이를 겹쳐 보면 지가 금방……”
“꺼.”
형식이 노트북 덮개에 손을 얹었다. 덮지는 않았다.
“마을이, 그건 감사팀장님이 물으시면 해.”
“알겄슈. 안 물으시면 안 할게유.”
감사팀장은 묻지 않았다. 수첩 귀퉁이에 짧게 무언가를 적고 줄자를 마저 감았다.
감사팀장이 수첩을 덮었다.
“동의서에 서명하신 분들 면담은 11월 1일 월요일에 군청에서 합니다. 이장님도 오세요. 염 주무관도요.”
*
오후 두 시, 상춘은 옥련의 낡은 소형차 조수석에 앉아 괴산읍으로 갔다. 상춘은 승용차 면허가 없었다. 서른 해를 경운기와 트럭 짐칸으로 살았다.
“군청엔 왜 가.” 옥련이 핸들을 잡고 물었다.
“군수 만나러.”
“군수가 당신을 왜 만나.”
“전국 첫 AI 이장 후보 맞수잖여. 반은 내 덕이여.”
옥련이 코웃음을 쳤다. 차는 달천을 따라 내려갔다. 강가 둔치에 2023년 물난리 뒤에 새로 쌓은 제방이 하얗게 이어졌다. 옥련이 앞만 보고 말했다.
“배추밭 높이 얘기, 감사팀장이 했다며. 덕님이 형님이 회관에서 다 들었댜. 마을이가 하소연 시간에 얘기해 줬댜.”
“그게 그런 걸 떠들어?”
“묻는 사람한테는 다 말해 준댜. 숨기는 건 없댜.”
상춘은 창밖을 보았다. 둔치에서 경운기 한 대가 볏짚을 싣고 가고 있었다.
“당신 그 밭, 2017년 지나고 일부러 낮췄지.” 옥련이 말했다. “흙 퍼다 윗들 밭에 부어 주고. 나 그해 가을에 다 봤어.”
상춘은 대답하지 않았다. 옥련도 더 묻지 않았다. 차는 괴산읍으로 들어갔다.
*
군청 로비에 들어서자 정면 벽에 커다란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인공지능 행정, 괴산이 앞서갑니다」. 글자 옆에 하늘색 동그란 얼굴이 웃고 있었다. 마을이였다. 상춘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저거 누가 붙였어?” 상춘이 안내 창구에 물었다.
“홍보팀이요. 군수님 지시로요.”
“군수는 어디 있어?”
“오늘 청주에서 인공지능 행정 포럼 발표하세요.”
“무슨 발표.”
창구 직원이 책상 위 안내문을 내밀었다. 발표 제목은 「전국 첫 AI 이장 후보 마을, 괴산 버드내의 실험」이었다. 상춘은 안내문을 접어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로비 한편에서 조명이 켜졌다. 지역 방송 카메라 앞에 형식이 앉아 있었다. 기자가 마이크를 내밀고 있었다. 형식은 감사 현장에서 바로 군청으로 온 모양이었다. 바지 무릎에 아랫들 흙이 묻어 있었다.
“……마을이는 누구 편도 아니에요. 들은 걸 전할 뿐이에요.” 형식이 말했다.
“장인과의 갈등은 어떻게……”
기자가 고개를 돌리다 상춘을 보았다. 카메라도 따라 돌았다. 상춘은 밀짚모자를 벗지 않고 카메라 앞으로 걸어갔다.
“도 서방, 저 현수막 봤어?”
형식이 벽을 보았다. 형식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제가 붙인 거 아니에요. 군청에서 마을이 얼굴 써도 되냐고 저한테 물은 적도 없어요.”
“물어보는 게 그렇게 중혀?”
“장인어른한테는 안 중하시겠죠.”
“니 노트북이잖여. 군수가 니 노트북 들고 청주 가서 자랑혀. 이게 버드내 일이여, 군수 일이여?”
“장인어른, 카메라 돌아가요.”
“돌라고 혀.” 상춘이 카메라를 보았다. “나 염상춘이유. 버드내 이장이유. 저 하늘색 얼굴은 우리 마을 회관 노트북이유. 군청 벽에 붙으라고 들인 게 아니유.”
기자가 반가운 얼굴로 마이크를 상춘에게 돌렸다. 형식이 일어났다.
“저도 저 현수막은 싫어요.” 형식의 목소리가 낮았다. “그런데 장인어른, 군이 이걸 자랑하고 싶어 하는 건 마을이 탓이 아니에요. 버드내 배수로 서류가 회의록 한 장 없이 군청 서랍에 있었던 것도 군 탓이고요. 군은 장인어른 서류도 받아 줬고, 마을이 현수막도 붙였어요. 둘 다 편해서요.”
상춘은 대꾸할 말을 찾았다. 찾는 동안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적었다. 상춘은 기자를 보았다.
“그건 빼유.”
“왜요? 좋은 말씀인데요.”
“좋은 말이니께 빼유. 사위 말이 맞는 거 방송에 나가면 나는 뭐가 돼유.”
카메라 뒤에서 촬영 기자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형식도 웃었다. 웃다가 자기가 웃은 것에 놀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상춘의 휴대전화가 연달아 울렸다. 괴산군 이장협의회장이었다. 상춘보다 다섯 살 아래의 다른 면 이장이었다.
“형님, 뉴스 봤슈. 이장들이 난리유. 괴산에 이장이 이백팔십 명 넘는디, 다들 우리 마을에도 노트북 나오면 어쩌냐고 전화가 와유. 이장 단톡방에선 「노트북 이장 반대」 성명을 내자는 사람도 있슈. 반대하는 성명을 노트북으로 쓰자는 거유.”
“나오면 붙으면 되지.”
“형님이 지면 우리 다 노트북한테 밀려유. 꼭 이겨유. 이장협의회 이름으로 떡이라도 보낼까유?”
“떡 돌리면 안 된댜. 노인회 이름으로만 된댜.”
“그건 또 뭔 소리유.”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울렸다. 모르는 서울 번호였다. 젊은 여자가 자기를 시사 방송 피디라고 소개했다.
“염상춘 이장님이시죠? 저희가 10월 29일 금요일 저녁에 버드내 회관에서 생방송 토론을 하려고요. 제목은 「서른 해 이장 대 인공지능」이에요. 전국에 나가요. 이장님 나와 주실 거죠?”
“전국에 나가유?”
“네. 그리고 이장님, 아셨어요? 오늘 아침 경북 한 마을이랑 전남 한 마을에서도 인공지능 후보 등록을 했대요. 버드내 보고 따라 했대요. 바람이 불었어요.”
상춘은 대답하지 않고 창밖을 보았다. 달천 둔치의 억새가 한쪽으로 누워 있었다.
“이장님?”
“나가유.”
“감사합니다! 마을이는 벌써 승낙했어요.”
전화를 끊자 옥련이 핸들을 잡은 채 상춘을 흘끗 보았다.
“전국에 나가면 당신 또 삼 분에 서른 해 얘기 할 거여?”
“토마토 없으면 되잖여.”
“방송국은 토마토보다 무서워.”
옥련이 깜빡이를 켜며 말을 이었다.
“해주가 요새 밥을 못 먹는댜. 형식이가 회관에서 그러더라. 저녁마다 식탁에 앉아서 2025년 서류철만 들여다본댜.”
“형식이가 당신한테 그런 얘기를 혀?”
“형식이도 하소연할 데가 있어야지. 당신은 사위 얘기 들어 준 적 있어?”
상춘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위가 마을에 들어온 지 삼 년, 장인과 사위가 단둘이 밥을 먹은 적은 혼인 전날 한 번뿐이었다. 마주 앉은 밥상에서 상춘은 국만 먹고 일어났다.
차가 버드내 입구로 꺾어 들었다. 회관 게시판 앞에 처음 보는 승합차 두 대가 멈춰 있었다. 차 옆구리에 서울 방송국 이름이 박혀 있었다. 카메라를 멘 사람들이 하늘색 벽보 앞에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상춘의 벽보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상춘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경운기로 가서 현수막의 접힌 「저」를 다시 폈다.
카메라 하나가 하늘색 벽보에서 돌아서 상춘을 따라왔다. 렌즈가 경운기 짐받이에 바싹 붙었다. 상춘이 끈을 묶고 손을 떼자 「저」가 또 접혔다. 카메라를 든 젊은이가 소리 없이 웃었다. 상춘은 밀짚모자를 벗어 렌즈 앞에 대고, 모자 뒤에서 끈을 한 번 더 단단히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