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61자)
토론회 떡은 누가 돌렸나
이장 선거에 나온 AI · 모세담
2027년 10월 16일 토요일 오후 다섯 시, 버드내 마을회관 마당. 천막 아래 접이식 탁자 셋을 붙여 토론회 자리를 만들었다. 탁자 한가운데에 노트북, 오른편에 상춘의 의자, 왼편에 형식의 의자. 마을이는 직접 말하고, 형식은 마을이의 대리인으로 묻고 답하기로 했다. 회관 처마 밑에는 노인회 텔레비전을 내다 놓고 형식의 노트북과 줄로 이었다. 줄을 잇기 전까지 텔레비전에서는 저녁 뉴스가 흘렀고, 화면 아래로 자막 한 줄이 지나갔다.
「행정안전부 “인공지능 이장 후보, 법적 검토 착수”」
“행정안전부도 버드내를 아네.” 장수가 돋보기를 올리며 말했다.
부엌에서 시루떡 김이 마당까지 흘러나왔다. 옥련과 할머니 셋이 아침부터 찐 떡이었다. 옥련이 떡 쟁반을 들고 나오자 길장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아, 알려드립니다. 후보는 떡 돌리면 안 돼유.”
“나 후보 아녀. 후보 마누라여.”
“후보 마누라도 안 돼유.”
“그럼 형식이가 갖고 온 커피는?”
마당 구석 탁자에 형식이 집에서 들고 온 캡슐 커피 기계가 있었다. 귀촌한 젊은 부부들이 종이컵을 들고 줄을 서 있었다. 장수가 마이크를 든 채 커피 기계와 떡 쟁반을 번갈아 보았다.
“둘 다 노인회 이름으로 돌려유. 떡도 커피도 노인회가 내는 걸로 혀유. 이상.”
“노인회 돈이 어디 있어.” 옥련이 말했다.
“없으니께 이름만 빌려준다는 거여.”
할머니들이 떡을 들고 웃었다. 떡은 상춘 집 쌀로 쪘고, 커피는 형식 집 캡슐로 내렸다. 사람들은 둘 다 받아 들고 천막 아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예순 명 남짓이 마당을 채웠다. 버드내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2023년 여름 회관 바닥에 이불을 깔던 밤 뒤로 처음이었다.
*
장수가 부엌 타이머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빨간 플라스틱 토마토였다.
“후보 한 분당 삼 분이여. 토마토가 울리면 끝이여.”
“시간은 지가 재 드릴 수 있어유.” 마을이가 말했다. “초 단위로유.”
“시계는 내가 혀. 후보가 시계까지 차면 안 돼.”
장수가 토마토를 비틀었다. 째깍째깍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확성기로 나갔다.
마을이가 먼저였다. 하늘색 얼굴이 텔레비전 화면에 크게 떴다.
“기호 2번 마을이유. 지는 삼 년 동안 버드내 하소연을 들었슈. 보일러, 무릎, 아들 전화, 영감 코골이, 마을발전기금, 윗들 물난리. 다 들었슈. 공약은 셋이유. 수당은 마을에 돌려드리구, 하소연은 밤 열한 시까지 받구, 보조금은 한 푼까지 회관 벽에 붙이겄슈. 오늘 칠성면 저녁 기온 11도, 떡 식기 전에 드셔유.”
박수가 나왔다. 토마토가 울리기 전에 끝났다. 장수가 아쉬운 얼굴로 토마토를 멈췄다.
“기호 1번.”
상춘이 마이크를 받았다. 타이머가 다시 째깍거렸다.
“염상춘이유. 서른 해 했슈.”
마당이 조용했다. 상춘은 마이크를 내려놓으려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다들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른 해 동안 박수만 받던 자리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무언가를 더 기다렸다.
“2017년 7월 16일 아침이었슈.” 상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침에만 비가 백육십 미리 넘게 왔슈. 댐 수문을 늦게 열었다고 나중에 말이 많었는디, 그런 건 나중 얘기고. 여덟 시에 아랫말 마당에 물이 무릎까지 찼슈. 오순 아지매를 업고 나왔슈. 2023년엔 댐이 넘쳤슈. 세 시간 가까이 넘었댜. 그날 밤 회관 바닥에 이불 마흔 채 깔았슈. 그 담에……”
토마토가 울렸다.
“끝이여.” 장수가 말했다.
“아직 안 끝났슈.”
“토마토가 울렸어.”
“형님, 이건 서른 해 얘기유. 삼 분에 어떻게 혀.”
“그러니께 서른 해 동안 말을 좀 하지 그랬어.”
마당에서 웃음이 터졌다. 상춘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2023년 얘기의 뒤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
묻고 답하는 시간이 됐다. 형식이 일어나 텔레비전 옆으로 갔다. 화면에 버드내 지도가 떴다. 회관에서 둑까지 파란 줄 하나가 아랫들을 가로질렀다.
“2025년 배수로 정비 사업입니다. 군 보조금 구천만 원. 이 사업을 정한 마을 회의 회의록이 없습니다. 윗들에는 배수로가 한 뼘도 안 갔습니다. 윗들 고추밭은 해마다 장마 때 잠깁니다. 저희 밭도 잠깁니다.”
윗말 젊은 부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배수로가 지나는 땅입니다.” 형식이 화면을 넓혔다. 파란 줄 양옆으로 필지가 네모나게 나뉘어 있었다. “여기, 염상춘 후보님 배추밭. 여기, 염상춘 후보님 논. 그리고 여기.”
형식의 손가락이 배추밭 옆 네모 하나에서 멈췄다. 소유자 칸이 비어 있었다.
“이 논은 소유자를 아직 못 찾았습니다. 그런데 장인어른, 아니 염상춘 후보님이 짓고 계십니다.”
“그건 지가 알어유.” 노트북에서 마을이가 말했다.
형식이 노트북을 돌아보았다. 장수가 마이크를 노트북 앞에 들이밀었다.
“말혀 봐. 임자가 누구여.”
“등기부에 염해주 씨 명의유. 2025년 3월에 증여로 옮겨졌구유. 지금 짓는 분은 염상춘 후보님이유.”
마당이 일 초쯤 조용했다. 이어서 뒷줄부터 웃음이 번졌다. 덕님 할머니가 보행기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니 마누라 논이잖여!”
형식이 화면 앞에서 굳었다. 맨 뒷줄에서 해주가 일어났다.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결혼할 때 아버지가 주신 거예요. 저는 농사 안 지어요. 아버지가 지으세요.”
“알고 있었어?” 형식이 해주를 보았다.
“말할 일이 없었잖아요.”
“이건 말할 일이지.”
“형식 씨가 안 물어봤잖아요.”
사람들이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부부의 목소리에 섞인 것을 다들 알아들었다. 상춘은 의자에 앉은 채 팔짱을 끼었다. 사위가 장인을 몰아세우려다 제 집 논을 짚었다. 이기는 기분이 들 줄 알았는데 그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
형식이 숨을 한 번 고르고 화면을 넘겼다. 주민 동의서 사본이 떴다. 이름과 서명이 서른 줄 넘게 이어졌다.
“논 얘기는 제가 몰랐습니다. 그건 제 잘못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보셔야 합니다.” 형식이 서명 몇 개를 동그라미로 묶었다. “서른두 장 가운데 열한 장의 글씨가 같습니다. 획이 꺾이는 데가 같고, 받침 ㅇ을 그리는 방향이 같습니다.”
마당에 웅성거림이 일었다. 상춘이 일어났다.
“다 내 앞에서 쓴 거여.”
“후보님 앞에서 누가 썼는데요?”
“마을 사람들이 썼지.”
“그럼 다들 글씨가 똑같으세요?”
“나는 내 손으로 썼어!” 덕님 할머니가 손을 들었다. “삐뚤빼뚤하게. 나는 그 열한 장에 없을 거여. 내 글씨는 아무도 못 따라 써.”
웃음이 조금 났다가 금방 꺼졌다. 할머니 몇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동그라미 안의 이름 가운데 몇은 마당에 없었다. 몇은 마당에 앉은 채 고개를 숙였다. 탁오순 할머니는 저녁 일곱 시면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라 오지 않았다.
“후보님.” 형식이 상춘을 똑바로 보았다. “왜 아랫들이에요? 왜 윗들은 안 되고 아랫들이에요? 그것만 말씀해 주세요.”
상춘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당의 눈이 다 상춘에게 와 있었다. 해주도 보고 있었다. 옥련도 떡 쟁반을 든 채 보고 있었다.
“물이 그리 가니께.”
“물이 왜 그리 가는데요?”
“땅이 낮으니께.”
“그럼 회의에서 그렇게 설명하셨으면 되잖아요.”
“설명하면 다들 자기 밭 앞으로 끌어 달랬을 거여. 구천만 원으로 마흔 집 밭 앞을 다 지나가?”
“그러니까 회의를 해야죠. 다 같이 정하라고 회의가 있는 거예요.”
“다 같이 정하다가 비 오면?”
“장인어른 혼자 정하셨다가 틀리면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마이크도 없이 마당 끝까지 갔다. 장수가 토마토를 비틀었다가 도로 놓았다. 째깍 소리 하나만 나고 멎었다. 둘 다 삼 분 같은 것은 잊고 있었다.
맨 앞줄의 할머니 하나가 노트북을 향해 손을 들었다.
“마을이, 니는 비 오면 뭐 혀? 이장은 업고 뛰잖여.”
“지는 업지는 못해유.” 마을이가 대답했다. “대신 기상청 특보랑 댐 방류 알림을 일 분 안에 집집이 문자로 보내 드려유. 글 모르시는 분은 전화로 읽어 드리구유. 누가 혼자 사시는지, 누가 계단을 못 오르시는지, 누가 밤에 약을 드시는지 지가 다 알어유.”
“그건 이장도 알어.” 상춘이 말했다.
“알면 왜 2023년에 덕님이 할머니 혈압약을 회관에 안 챙겨 오셨어유?”
덕님 할머니가 보행기를 짚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에 약 못 먹었어. 이장이 업고만 나왔지.”
상춘은 입을 다물었다. 업고 나오는 것까지가 이장 일이라고 서른 해를 믿었다. 약봉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윗말 젊은 부부의 아내가 손을 들었다. 지난주 보일러를 고쳐 준 집이었다.
“저도 하나만요. 마을발전기금 영수증도 공개해 주세요. 저희는 못 냈지만, 낸 분들은 아셔야죠.”
“보일러 고쳐 줬잖여.”
“그건 고맙고요, 이건 이거예요.”
상춘은 젊은 아내를 보았다. 아내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상춘이 고친 펌프 날개에서 쇳소리가 멎던 아침이 떠올랐다. 젊은 부부 집 보일러는 지금도 잘 돌 것이었다. 고맙다는 말과 영수증을 달라는 말이 한 사람 입에서 같이 나왔다.
*
토론회가 끝나자 사람들은 떡 접시와 종이컵을 버리고 흩어졌다. 형식은 해주를 데리고 먼저 돌아갔다. 둘은 나란히 걸었지만 손을 잡지 않았다. 옥련이 천막 아래에서 접이 의자를 접다가 상춘을 보았다.
“왜 말을 안 혀?”
“할 말 없어.”
“아랫들로 끌어온 까닭이 있잖여. 당신이 그렇게 고집부리는 건 까닭이 있을 때여. 서른다섯 해 살았으면 그건 알어.”
“까닭 말하면 지는 거여.”
“뭐를 져?”
상춘은 대답하지 않았다. 옥련이 의자를 탁 소리 나게 접었다.
“당신은 이기려고 이장 했어? 서른 해를?”
옥련은 의자를 회관 창고로 들고 들어갔다. 상춘은 천막 기둥을 뽑았다. 기둥 끝에 흙이 덩어리로 붙어 나왔다. 처마 밑 텔레비전에는 아직 배수로 지도가 떠 있었다. 파란 줄이 상춘의 배추밭 옆을 지나 둑에서 끝났다. 끝나는 자리에 수문 표시가 작은 네모로 찍혀 있었다.
*
이튿날 아침 여덟 시, 해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요일인데 해주의 목소리는 사무실 목소리였다.
“아버지, 군청에서 연락 왔어요. 어젯밤 형식 씨가 군청 누리집에 민원을 넣었고, 오늘 아침에 군수님이 바로 감사하라고 하셨대요.”
“일요일 아침에?”
“기사가 나갔잖아요. 전국 첫 AI 이장 후보 마을에서 보조금 의혹, 그렇게요. 감사팀이 목요일에 현장 보러 온대요. 배수로 길이랑 동의서 서명한 분들 확인한대요.”
상춘은 마당에 서서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아랫들을 내려다보았다. 아침 안개가 배수로를 따라 하얗게 깔려 있었다.
“아버지, 열한 장, 아버지가 쓰셨어요?”
상춘은 대답하지 않았다.
“감사팀한테는 대답하셔야 해요. 저한테 안 하셔도.”
해주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상춘은 휴대전화를 조끼 주머니에 넣고 창고로 갔다. 경운기 짐받이의 현수막은 밤이슬에 젖어 「서른 해 맨 먼」에서 축 처져 있었다. 상춘은 접힌 「저」를 손바닥으로 펴서 끈을 다시 묶었다. 펴 놓아도 끈을 놓으면 다시 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