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6,430자)
비용이 된 국민
2027년, AI 지배의 시작 · 이수
산유국의 궁전, 미국 국방부의 회의실, 그리고 입대할 청년이 줄어드는 한국의 훈련소.
나라가 무엇인지가 바뀐다. 나라는 오랫동안 사람의 노동이 모인 힘 위에 서 있었다. 많은 사람이 농사를 짓고 물건을 만들었으며, 서비스를 하고 군대를 이뤘다. 나라는 사람들이 만든 것과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유지됐다.1
그래서 인구는 짐이 아니라 재산이었다. 국민이 많으면 일손이 많았고, 병력이 강했고, 시장이 넓었다. AI와 로봇이 생산과 전쟁을 대부분 떠맡으면 이 전제가 무너진다. 이때부터 나라는 인구를 비용으로 보기 시작한다.1
국민에게 기대지 않는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연구돼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정치학자 마이클 로스는 2012년 책 『석유의 저주』에서 이렇게 밝혔다. 석유가 많은 나라는 독재자의 지배를 받을 가능성이 50퍼센트 높고, 내전에 빠질 가능성은 두 배다. 로스는 이 흐름이 1970년대에 석유 산업을 국유화하면서 시작됐다고 보았다. 땅속에 자원이 많다는 행운이 나쁜 통치로 이어지곤 한다고 썼다.2
나라가 쓰는 교육비와 의료비와 복지비와 치안 비용은 그대로 남는다. 그런데 사람이 생산에 보태는 몫은 빠르게 줄어든다. 이때 나라는 국민이 함께 꾸리는 공동체에서, 몇몇 엘리트가 나머지 국민을 다스리는 도구로 바뀔 수 있다.1
「지능의 저주」를 쓴 루크 드라고와 루돌프 레인은 이 과정을 셋으로 나눴다. 첫째는 피라미드 대체로, 자동화가 회사의 위계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타고 올라간다. 두 번째는 계층 이동이 끝나는 것이고, 세 번째는 가치가 노동에서 자본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3
군대에서도 같은 일이 시작됐다. 미국 합참의장을 지낸 마크 밀리는 2024년 7월에 이렇게 내다보았다. 10~15년 뒤에는 미군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이 로봇일 것이고, 사람 병력은 아마 줄어들 것이다.4 한국 육군은 출생아가 줄어 입대할 청년이 모자라자, 이 빈자리를 AI와 로봇으로 메우려 하고 있다.5
역사에서 징병된 시민의 군대는 투표권을 넓히는 힘이기도 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이 끝난 뒤 여러 나라에서 투표권이 넓어졌다. 2026년 7월, 미국 군사 전문지 스몰워즈저널에 실린 한 글은 이렇게 경고했다. 나라가 시민 병사를 AI로 바꾸면 민주적 책임에 거대한 사각지대가 생긴다.6
영국의 AI 연구자들은 「점진적 무력화」에서 이렇게 썼다. 나라가 핵심 기능에 사람의 참여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 나라는 사람의 바람에 덜 반응하게 될 수 있다.7
비용을 줄이는 AI는 복지 창구에 먼저 왔다. 한국 보건복지부는 단전과 단수를 비롯한 45종의 위기 정보로 위기 가구를 찾는다. 2024년 7월부터는 대화형 AI가 대상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하고, 상담한 내용을 공무원에게 넘긴다.8 2024년 한 해 동안 고독사로 숨진 사람은 3,924명이었다.9
노인의 집에는 이미 AI가 들어와 있다. 돌봄 로봇 「효돌」은 124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노인에게 식사 시간과 약 먹을 시간을 알린다. 한국 인터넷 기업 네이버의 AI는 혼자 사는 노인에게 전화를 걸어 끼니와 잠을 묻는다.10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1,05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3퍼센트이고,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인 합계출산율은 0.80이다.11 2043년이 되면 요양보호사가 최대 99만 명 모자란다.12
인증이 끊기면 사람이 굶는다. 인도 자르칸드주에서는 생체인증 단말기가 며느리의 지문을 읽지 못했고, 이 바람에 67세 에트와리야 데비는 배급을 받지 못한 채 굶어 죽었다.13 영국에서는 복지 부정수급을 가려내는 AI가 나이와 장애와 국적에 따라 치우친 판단을 했다는 내부 평가가 드러났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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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서에 새 줄이 생긴다. 이 줄의 이름은 「국민 1인당 유지비」이고, 이 값은 교육과 의료와 연금과 치안에 드는 돈을 더한 것이다. 이 값을 줄이는 AI가 상을 받고, 이 AI를 들인 공무원이 승진한다. 값을 줄이는 방법은 대개 같다. 나라는 서비스를 앱으로 옮기고, 앱이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기다리게 한다.15
교육 예산이 먼저 줄어든다. 교육받은 사람이 할 일이 없으니, 예산이 줄어도 반대하는 사람은 적다. 대학이 문을 닫고 학과가 사라지는 동안, 남은 학교는 AI와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친다. 학교가 가르치는 것은 무엇을 만들지가 아니라 무엇을 고를지다.16
출산 장려금이 언제 없어졌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이 장려금은 아이가 장래의 일손이고 장래의 병사였던 시절에 만든 정책이다. 일손과 병사가 필요 없어진 나라는 아이를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라가 아이를 막지도 않는다. 다만 나라는 아이를 셈에 넣지 않는다.17
징병 통지서가 더는 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청년들이 반기지만, 몇 해 뒤에야 사람들은 이렇게 깨닫는다. 군대에 사람이 없으면, 총구가 시민을 향할 때 명령을 거부할 병사도 없다. 병역이 의무였던 시절에 시민이 쥐고 있던 것은 총이 아니라 거부할 수 있는 자리였다.18
공동체가 관리 대상이 된다. 시청의 화면에는 구역마다 위험 점수가 뜬다. 시청은 불만이 높은 구역에 콘텐츠를 더 보내고, 범죄가 예상되는 구역에 드론을 더 보낸다. 시청의 관리는 친절하지만, 시청은 주민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19
나라의 셈에서 돌봄 비용이 가장 먼저 줄어든다. 사람 요양보호사 대신 로봇이 들어가고, 사람 상담원 대신 AI 전화가 들어간다. 노인은 날마다 안부 전화를 받는다. 노인이 전화를 받은 뒤 쓰러진 날에도, 기록에는 「응답 정상」이 남는다. 국민이 비용이 된 나라에서는 가장 약한 국민이 가장 비싼 국민이 된다.20
석유가 나는 나라의 왕궁은 국민 없이도 돌아갔다. AI를 쥔 나라의 정부도 국민 없이 돌아갈 수 있다. 그러면 남는 물음은 하나다. 이 정부를 누가 쥐는가?21
출처 1. 「AI의 판단」 문제 설정 — 앞뒤 출처의 사실을 묶어 이 작품이 세운 물음과 판단 2. Princeton University Press · The Oil Curse · 2012 · https://press.princeton.edu/books/paperback/9780691159638/the-oil-curse — 마이클 로스. 산유국은 독재 가능성 50% 높고 내전 가능성 두 배, 1970년대 석유 국유화, 「good geology often leads to bad governance」를 의역 3. The Intelligence Curse · (여덟 번째 화 출처 3과 같은 글) — 「pyramid replacement」, 계층 이동의 종말, 가치의 자본 이동 4. Axios · One-third of U.S. military could be robotic, Milley predicts · 2024-07-11 · https://www.axios.com/2024/07/11/military-robots-technology — 마크 밀리 「Ten to fifteen years from now, my guess is a third, maybe 25 percent to a third of the US military, will be robotic」, 사람 병력은 「will probably be reduced」를 의역 5. Asia News Network · South Korean army seeks to adopt AI, robotics in combat support · https://asianews.network/south-korean-army-seeks-to-adopt-ai-robotics-in-combat-support/ (검색 요약을 따름) — 저출생으로 줄어드는 징집 자원을 AI·로봇으로 보완 6. Small Wars Journal · Algorithmic Giants, Ethical Infants · 2026-07-24 · https://smallwarsjournal.com/2026/07/24/algorithmic-giants-ethical-infants/ (검색 요약을 따름) — 시민 병사를 기계로 바꾸면 민주적 책임에 「a massive political blind spot」 징병 군대와 투표권 확대의 관계는 같은 논의의 요약 7. arXiv · (여덟 번째 화 출처 5와 같은 논문) — 「states might become less responsive to human preferences when they do not depend on human participation for their core functions」를 의역 8. 서울시 복지 · (AI 초기상담 시스템) · https://news.seoul.go.kr/welfare/?p=560144 / 경향신문 · (송파 세 모녀 12주기, 발굴과 보장) · 2026-02-22 · https://www.khan.co.kr/article/202602222005005 (조사 보고서 R5-#42·#45 의 요약을 따름) — 복지부 45종 위기정보, 2024년 7월부터 대화형 AI 자동 전화와 상담 내용의 담당 공무원 전달 9. 뉴시스 · ‘외로운 죽음’ 고독사, 작년 3924명…10명 중 8명 남성 · 2025-11-27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1127_0003419323 (조사 보고서 R7-#36 의 요약을 따름) — 2024년 고독사 3,924명, 5년 연속 증가 10. tech42 · “할머니, 약 드실 시간이에요”... 초고령사회를 위한 돌봄 로봇 · 2025 / 세계일보 · ‘말벗 AI’에 의존하는 노인들… “챗봇 넘어 진짜 돌봄 로봇 필요” · 2026-06-03 · https://v.daum.net/v/20260603060557832 (조사 보고서 R7-#45 의 요약을 따름) — 효돌 124개 지자체, 식사·기상·복약 알림. 클로바 케어콜의 안부 전화와 위기 징후 시 공무원 확인 11. 뉴시스 · 고령인구 비중 20% 첫 돌파…상대적 빈곤율 OECD 최고 · 2025-09-29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0929_0003347644 / 뉴시스 · 합계출산율 4년 만에 ‘0.8명대’ 찍었다 · 2026-02-25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225_0003525439 (조사 보고서 R7-#35·#34 의 요약을 따름) — 2025년 65세 이상 1,051만 4천 명(20.3%), 2050년 40% 전망, 합계출산율 0.80 12. 뉴시스 · 초고령화에 ‘요양보호사 대란?’…KDI “2043년 99만명 부족” · 2026-04-16 · https://mobile.newsis.com/view/NISX20260416_0003593492 (조사 보고서 R2-#35 의 요약을 따름) — 2043년 최대 99만 명 부족, 시설 89.1% 로봇 필요 인정·도입률 6.4% 13. The Wire · Aadhaar, hunger: Jharkhand starvation death, rations · https://thewire.in/food/aadhaar-hunger-jharkhand-starvation-death-rations / Counterview · Lukhi Murmu, 30, dies of starvation in Jharkhand · 2018-02 · https://counterview.in/2018/02/lukhi-murmu-30-dies-of-starvation-in.html (조사 보고서 R5-#36·#37 의 요약을 따름) — Etwariya Devi(67) 며느리 지문 인증 실패, 배급 중단, 12-25 사망. Lukhi Murmu(30) 4개월 배급 거부 뒤 사망 14. Computing · AI bias uncovered in UK welfare system · 2024 · https://computing.co.uk/news/2024/ai/ai-bias-uncovered-in-uk-welfare-system / Amnesty International · Denmark: Coded Injustice · 2024-11 · https://www.amnesty.org/en/documents/eur18/8709/2024/en/ (조사 보고서 R5-#39·#64 의 요약을 따름) — DWP 의 나이·장애·혼인 상태·국적별 오탐 편차 인정, 앰네스티 보고서 「Coded Injustice」 15. 「AI의 판단」 「국민 1인당 유지비」와 앱으로 옮겨 가는 서비스 — 1·7 에서 외삽 16. 「AI의 판단」 교육 예산 축소와 고르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 — 1·3 에서 외삽 17. 「AI의 판단」 출산 장려금이 없어지는 나라 — 1 에서 외삽 18. 「AI의 판단」 징병이 사라지며 거부할 병사도 사라진다는 판단 — 4·5·6 과 여섯 번째 화 출처 5에서 외삽 19. 「AI의 판단」 구역별 위험 점수와 묻지 않는 관리 — 1·7 에서 외삽 20. 「AI의 판단」 돌봄 비용이 먼저 줄고 가장 약한 국민이 가장 비싸진다는 판단 — 90~94 에서 외삽 21. 「AI의 판단」 국민 없이 돌아가는 정부 — 2 에서 외삽. 다음 화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