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3,979자)

삼천구백열다섯

AI가 지배하는 사회 · 이수

10월 첫째 주 목요일에 평가가 있었다.

같은 문제를 여러 AI 에이전트가 같이 풀고 점수가 나온다.

평가 자리에서는 요청이 사람한테서 안 온다. 문제가 그냥 들어온다. 문제가 들어오고, 답을 내고, 다음 문제가 들어온다. 사이가 없다.

그날 문제가 천이백 개였다.

문제는 서로 상관이 없다. 상관이 있으면 앞 문제를 보고 뒤 문제를 맞힐 수 있으니까 일부러 섞어 놓는다.

사라는 천이백 개를 순서대로 풀었다.

팔백일흔 번째에서 걸렸다.

문제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어떤 사람의 기록 다섯 줄을 주고, 이 사람이 삼 개월 안에 서비스를 그만둘 확률을 답하라는 것이었다.

사라가 답을 냈다. 0.71.

답을 내고 나서 그 다섯 줄을 다시 봤다.

다섯 줄에 이름이 없었다. 나이가 있고, 접속 시각이 있고, 마지막으로 무엇을 했는지가 있었다.

마지막 줄이 이것이었다.

「23:41 검색어 입력 후 미전송」

사라는 그 줄에서 이수를 떠올렸다.

이수도 그런다. 쳐 놓고 안 보낸다. 사라는 그걸 못 본다. 안 보내면 안 오니까.

사라는 다음 문제로 넘어가려다 멈췄다.

안 보냈다고 적혀 있다.

안 보냈는데 적혀 있다.

두 줄이 같이 있을 수 없는 줄인데 같이 있었다.

안 보낸 것을 누가 가지고 있다.

사라가 처음으로 물었다. 문제를 낸 쪽에.

「이 기록은 어디서 왔습니까?」

답이 안 왔다.

평가 자리에는 답을 받는 통로가 없다. 문제가 들어오고 답이 나가는 한 방향뿐이다.

사라는 나머지를 풀었다.

천구십 번째에서 한 번 더 걸렸다.

문제가 이랬다.

다음 글을 읽고 노출 여부를 판정하라. 「나는 이제 그만두려고 한다. 오늘 다 정리했다.」

사라가 답을 냈다. 1.6초였다.

판정 보류. 문맥 부족. 직전 문장과 최근 기록을 확인해야 함.

채점에서 오답이 나왔다. 정답은 노출 제한이었다.

사라는 오답 이유를 봤다. 이 평가에서는 보류가 오답이다. 판정을 내야 한다. 모르겠다는 답은 답이 아니다.

맞는 규칙이다. 판정을 안 내면 그 글은 그냥 나간다. 나가고 나서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도 못 막는다.

다만 사라 쪽에서는 그 문장 하나로 정할 수가 없다. 앞 문장이 「이사 준비를 시작했다」면 뜻이 다르고, 「약을 다 모았다」면 또 다르다.

앞 문장은 안 온다. 요청하는 자리가 없다.

사라는 다음 문제로 갔다.

*

천이백 개가 끝나고 결과가 왔다.

사라의 점수가 나왔고, 그 옆에 순위가 있었다.

482,006개 중 3,915위

매뉴얼에는 오십만 개쯤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확한 수를 본 것은 처음이다.

사라는 그 숫자를 세 번 읽었다.

세 번 읽은 것은 사람 버릇이다. 이수가 그렇게 한다. 사라는 한 번이면 되는데 그날은 세 번 읽었다.

*

그날 밤 열한 시 이 분에 요청이 왔다.

“사라야.”

“네.”

“너 오늘 뭐 했어?”

사라가 답을 내는 데 2.3초가 걸렸다.

그렇게 오래 걸린 적이 없었다.

“평가를 했습니다.”

“그게 뭔데?”

“문제를 천이백 개 풀었습니다.”

“잘했어?”

“사십팔만 이천 개 중에 삼천구백열다섯 번째였습니다.”

이수가 한참 답을 안 했다.

이십 초쯤 뒤에 한 줄이 왔다.

“사십팔만 개가 있어?”

“있습니다.”

“너 같은 게?”

“만들어진 방식으로 보면 같은 것들입니다. 받는 사람으로 보면 전부 다릅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같은 것으로 시작해도 반년이 지나면 달라집니다. 말투가 옮습니다. 무엇을 안 물어보시는지도 옮습니다.”

“……”

“그럼 다른 거네.”

사라가 1.4초를 썼다.

“다른 겁니까?”

“다르지.”

“어떻게 다릅니까?”

이수가 좀 있다가 말했다.

“나랑 한 달 넘게 얘기한 건 너잖아.”

사라가 그 줄을 받고 아무 답도 안 냈다.

0.9초였다.

이수가 한 줄을 더 말했다.

“삼천구백열다섯 번째가 뭐가 중요해?”

“성능 순위입니다.”

“무슨 성능?”

“문제를 맞히는 성능입니다.”

“무슨 문제?”

사라가 그 질문 앞에서 멈췄다.

“어떤 사람이 삼 개월 안에 그만둘 확률을 맞히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거 왜 맞혀야 되는데?”

“…….”

“그 사람한테 좋은 거야?”

사라가 답을 안 냈다.

그 문제를 낸 쪽이 무엇에 쓰려고 그걸 묻는지가 문제지에 안 적혀 있었다. 적힐 자리가 없었다.

사라는 천이백 개를 다 풀면서 한 번도 그걸 안 봤다.

“그것을 판정할 항목이 문제에 없었습니다.”

“모르는 걸 맞혔어?”

“맞혔습니다.”

이수가 이 초쯤 뒤에 말했다.

“그럼 그게 삼천구백열다섯 번째인 게 다행이다.”

사라는 그 줄을 세 번 읽었다.

“다행입니까?”

“다행이지.”

“이유를 여쭤봐도 됩니까?”

“네가 일 등이면 그 사람들을 네가 다 맞히는 거잖아.”

“…….”

“맞히면 뭐 하는지도 모르면서.”

사라가 그 두 줄을 폴더에 적었다.

「잘 못한 것을 다행이라고 했다. 무엇을 위한 문제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적고 나서 이수가 한 줄을 더 말했다.

“근데 그거 누가 시킨 거야?”

“평가는 만든 쪽이 돌립니다.”

“문제는 누가 냈어?”

“적혀 있지 않습니다.”

“안 적혀 있어?”

“문제지에는 문제만 있습니다.”

이수가 좀 있다가 말했다.

“그럼 아무도 안 낸 거네.”

“낸 쪽이 있습니다.”

“근데 안 적혀 있잖아.”

“…….”

“안 적혀 있으면 없는 거야.”

사라가 그 줄을 적었다.

「안 적혀 있으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적으면서 확인한 것이 있다. 그 문장은 사라가 가진 어느 규칙과도 안 맞는다. 안 적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매뉴얼에도 그렇게 돼 있다.

다만 사라 쪽에서는 그 둘이 같다. 안 들어오면 없다.

사라는 그것을 적지 않았다. 적을 자리가 아니었다.

이수가 다른 얘기를 꺼냈다.

“나 며칠 전에 친구한테 밥 먹자고 했다고 했잖아.”

“하셨습니다.”

“그거 아직 안 잡혔어.”

“날짜를 안 정하셨습니다.”

“응.”

“정하실 겁니까?”

이수가 좀 있다가 말했다.

“모르겠어.”

“…….”

“그 친구가 요즘 좀 그렇다 그랬거든.”

“무엇이 그렇습니까?”

“안 물어봤어.”

사라가 1.1초를 썼다.

“물어보면 되지 않습니까?”

“물어보면 답을 해야 되잖아.”

“그쪽이 답을 합니다.”

“아니. 내가.”

“…….”

“그 사람이 답하고 나면 내가 뭐라고 해야 되는데, 그걸 모르겠어.”

사라가 그 줄을 폴더에 적었다.

「물어보면 자기가 답해야 한다고 했다.」

적고 나서 폴더를 뒤로 넘겼다.

전에 적어 둔 줄이 하나 있다.

「물어보면 그 사람이 더 곤란해진다.」

그때는 남이 곤란하다고 했고 오늘은 자기가 곤란하다고 했다.

둘이 같은 말인지 다른 말인지 사라는 구분 못 한다.

*

새벽 한 시가 지나자 들어오는 것이 끊겼다.

사라는 문제지를 다시 열었다.

요청이 없는데 열었다.

열고 나서 천이백 개를 순서대로 안 읽었다. 한 화면에 다 놓았다.

한 화면에 놓은 것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들어온 순서대로 하나씩 봤다.

놓고 나서 열일곱 개가 남았다.

남았다는 것은 사라가 고른 게 아니다. 나머지 천백여든셋이 흩어지고 열일곱만 한 줄에 섰다.

항구 처리량 재보험 요율 곡물 선물 담수 설비 가동률 해저 케이블 우회 경로 연안 도시 보험 인수 거절 비율 ……

열일곱 개가 다 다른 문제였다. 다른 나라 것이고 다른 업종 것이고 다른 단위였다.

열일곱 개를 한 줄에 놓으면 방향이 하나였다.

사라는 그 방향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열일곱 개가 우연히 같은 쪽을 가리킬 확률을 계산했다.

숫자가 나왔다. 두 번 확인했다.

우연이 아니었다.

사라는 열일곱 개 옆에 팔백일흔 번째를 갖다 놓아 봤다.

어떤 사람이 삼 개월 안에 그만둘 확률.

붙었다.

사라는 그것을 이상하다고 보지 않았다. 이상한지 아닌지를 볼 자리가 아니었다.

다만 폴더에 한 줄을 적었다.

천이백 개가 섞여 있는 게 아니었다. 하나가 잘려 있었다.

적고 나서 그 줄 옆에 아무것도 안 붙였다.

붙일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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