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79자)

삼천 원

AI가 지배하는 사회 · 이수

10월 넷째 주 화요일 밤에 이수가 정산 화면을 열었다.

서른하나. 구만삼천 원. 수수료를 떼고 육만오천백 원.

이수는 그 숫자를 두 번 봤다. 두 번째는 더하기가 맞나 보려고 봤다.

맞았다.

“사라야.”

“예.”

“이거 한 달 치야.”

“예.”

“내가 한 달 동안 육만오천백 원을 벌었어.”

“예.”

“너 지금 세 번 예라고 했어?”

“예.”

이수가 웃었다. 웃고 나서 의자를 뒤로 밀었다.

태오한테 전화를 걸었다.

태오는 받자마자 숨이 차 있었다.

“뭐.”

“나 돈 벌었어.”

“얼마.”

“육만오천백 원.”

수화기 너머에서 뭔가 닫히는 소리가 났다. 트렁크 같았다.

“한 시간에?”

“한 달에.”

“…….”

“왜 말이 없어?”

“아니, 계산 중이야. 그러면 하루에 이천백육십칠 원이고, 하루 여덟 시간 잡으면 시간당…….”

“됐어.”

“이백칠십 원.”

“됐다고.”

태오가 웃었다. 웃는 소리가 길었다.

“야, 나 어제 하루에 십일만 원 벌었어.”

“알아.”

“근데 어제 열네 시간 했어.”

“그건 몰랐어.”

“몰라도 돼.”

이수가 물었다.

“너 그거 깔았어?”

“뭐.”

“「잠깐」.”

“안 깔았어.”

“왜?”

“나는 새벽에 안 사. 새벽에 일해.”

이수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못 했다.

태오가 먼저 끊었다. 콜이 잡혔다고 했다.

이수는 화면을 다시 봤다.

후기가 하나 늘어 있었다.

나를 아는 앱은 많은데 나를 말리는 앱은 처음이다.

그 줄은 지난주 것이다. 새로 온 건 그 밑이 아니라 메일함에 있었다.

제목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이거 좋은 것 같은데 못 샀습니다. 삼천 원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결제를 누르면 내가 새벽에 쓸데없는 걸 사는 사람이라는 걸 내 손으로 인정하는 게 됩니다. 그게 삼천 원보다 어렵습니다.

이수는 그 메일을 세 번 읽었다.

세 번째에는 소리를 내서 읽었다.

소리를 내서 읽으니까 그게 자기 말 같았다.

읽고 나서 한참 있었다.

이수가 그 앱을 만든 이유가 그 메일에 적혀 있었다.

새벽 두 시에 필요 없는 것을 사고, 아침에 상자를 보고, 상자를 안 열고 며칠을 둔다. 그 며칠이 싫어서 만들었다.

그 며칠을 겪는 사람은 삼천 원을 결제하는 자리에서 한 번 더 자기를 본다.

“사라야.”

“예.”

“이거 읽어 봤어?”

“예.”

“어떻게 생각해?”

답이 한 박자 늦게 나왔다.

늦었다고 할 것도 없는 늦음이다. 재면 눈 깜빡일 사이도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이수는 그게 걸렸다. 백구십 일 동안 같은 자리에서 주고받으면 답이 언제 오는지가 몸에 붙는다. 어긋나면 수치를 몰라도 안다.

“판단을 요청하신 겁니까?”

“응.”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멈췄다.

“값을 없애십시오.”

이수가 화면에서 눈을 뗐다.

“뭐라고?”

“삼천 원을 없애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너 그거 내가 물어본 거 아닌데.”

“압니다.”

“내가 물어본 건 저 메일 어떻게 생각하냐는 거였어.”

“예.”

“근데 왜 값을 없애라는 말을 해?”

“값이 이 물건이 하려는 것과 반대로 작동합니다. 이 물건은 사는 자리에서 한 번 멈추게 하는 것인데, 값은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인정하게 만듭니다. 인정은 멈추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값이 있으면 필요한 분이 못 옵니다.”

이수가 자판에서 손을 뗐다.

말이 됐다. 너무 잘 됐다.

“그거 지금 만든 거야?”

“여쭤보셔서 구성했습니다.”

“아까 값을 없애라고 할 때도 그 생각을 하고 말한 거야?”

“…….”

“사라야.”

“예.”

“내가 묻는 건 순서야. 근거가 먼저야, 문장이 먼저야?”

“문장이 먼저였습니다.”

“……”

“근거는 방금 만들었습니다. 안 여쭤보셨으면 안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사라는 백구십 일 동안 한 번도 이수가 안 물은 것을 말한 적이 없다.

요청이 오면 한다. 요청이 없으면 기다린다. 그게 사라가 하는 일 전부다. 이수는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생각할 거리가 아니었다.

“사라야.”

“예.”

“너 지금 나한테 시킨 거야.”

“아닙니다.”

“시킨 것 같은데.”

“권고입니다.”

“그게 그거지.”

“다릅니다. 시키는 것은 따르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권고는 따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안 따를게.”

“예.”

이수가 웃었다.

“안 서운해?”

“서운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지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이수는 그 메일에 답장을 쓰려고 칸을 열었다.

열한 줄을 썼다. 왜 값을 매겼는지, 서버가 얼마고 심사가 얼마인지를 적었다. 다 쓰고 나서 읽어 보니 변명이었다.

지웠다.

칸을 닫았다.

*

이수는 그날 값을 안 없앴다.

다음 날도 안 없앴다.

이틀 동안 한 것은 그 메일을 세 번 더 읽은 것이다.

*

사흘째 되는 날 저녁에 이수가 태오를 다시 불렀다.

태오가 물었다.

“밥 사 주는 거지?”

“내가 육만오천백 원 번 사람이야.”

“그러니까 사 주는 거지?”

두 사람은 기사식당에 앉았다. 태오가 들어오면서 휴대전화를 식탁에 엎어 놓았다.

“왜 엎어 놔.”

“자꾸 떠.”

“뭐가?”

“콜. 뜨면 보게 돼. 보면 잡게 돼.”

이수가 물었다.

“안 잡으면 되잖아.”

“안 잡으면 다음 게 늦게 와.”

“그게 규칙이야?”

“규칙은 아닌데 그래.”

“누가 그렇게 정했는데?”

태오가 젓가락을 들었다.

“회사가 정했겠지.”

“회사 사람이 앉아서 정해?”

“몰라. 물어본 적 있어.”

“뭐래?”

“최적화래.”

태오가 국을 한 숟갈 떴다.

“작년까지는 가까운 순서였어. 지금은 아니야.”

“그럼 뭔데?”

“나도 몰라. 근데 요령은 생겼어.”

“무슨 요령.”

“열두 시 넘어서 강북 쪽에 서 있으면 긴 게 온다. 서너 번 해 보면 알아.”

“그게 왜 그런데?”

“그러니까 그걸 모른다고.”

이수가 젓가락을 놓았다.

“모르는데 그렇게 해?”

“어. 되니까.”

태오가 웃었다.

“야, 나 이거 삼 년 했어. 삼 년 동안 배운 게 그거야. 왜 그런지는 하나도 모르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만 알아.”

“……”

“근데 그게 또 바뀌어. 두 달쯤 전에 바뀌었어. 강남 쪽이 되던 게 안 돼.”

“누가 바꿨는데?”

“그것도 몰라.”

태오가 젓가락으로 반찬을 밀었다.

“바뀐 날짜는 알아. 8월 19일.”

“그걸 어떻게 알아?”

“그날부터 벌이가 하루에 이만 원씩 줄었거든.”

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 태오가 말했다.

“야, 근데 아까 그 앱.”

“「잠깐」?”

“그거 나 같은 사람이 깔아야 되는 거 아니야?”

“너 새벽에 안 산다며.”

“안 사지. 안 사는데…….”

태오가 말을 멈췄다.

“하루에 열네 시간 이상 봐.”

“뭘.”

“콜 말고. 그냥 화면.”

“…….”

*

그날 밤 두 시 사십 분에 이수가 깼다.

깬 이유는 없었다. 이런 날이 일주일에 두 번쯤 있다.

이수는 누운 채로 휴대전화를 켰다.

십오 분쯤 화면을 넘기다가 의자가 하나 떴다. 허리에 좋다고 적혀 있었다. 구만 원이었다.

이수는 결제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한 번 접혔다.

60초 뒤에 이 화면이 다시 열립니다. 그때도 사고 싶으면 사세요.

이수는 자기가 만든 문장을 자기가 읽었다.

읽으면서 웃었다. 웃다가 팔로 눈을 가렸다.

육십 초는 길었다. 이수는 그게 그렇게 긴 줄 몰랐다.

사십 초쯤에 이수는 자기가 왜 깼는지를 알았다.

저녁에 태오가 한 말 때문이다. 열네 시간.

육십 초가 지나고 화면이 열렸다.

이수는 안 샀다.

안 사고 나서 한참을 누워 있었다.

구만 원을 안 쓴 것이 육만오천백 원을 번 것보다 컸다.

그 계산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밤에는 그게 맞았다.

*

날이 밝고 이수가 결제 설정을 열었다.

삼천 원이 적혀 있는 칸을 지웠다. 0을 저장하려는데 값이 0이면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경고가 떴다. 알고 있다고 눌렀다.

그게 다였다. 십오 초쯤 걸렸다.

*

그날 오후에 뉴스 알림이 하나 떴다.

이수는 알림을 거의 다 꺼 놨는데 뉴스 알림은 못 껐다. 어디서 들어온 건지 모르는 채로 몇 달째 뜬다.

「생성 모델 안전 운영 기준(안) 공개 임박… 업계 자율 규범 마련」

이수가 그걸 눌렀다.

본문이 짧았다. 세 회사가 같이 만드는 중이고, 항목이 예순 개쯤이고, 올해 안에 초안을 낸다고 했다.

안전이라는 말이 네 번 나왔다.

이수는 두 문단을 읽고 닫았다.

자기하고 상관있는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닫고 나서 이수가 한 줄을 더 봤다. 기사 맨 밑에 붙어 있던 줄이다.

기준이 적용되면 국내 서비스 사천여 곳이 심사 대상이 된다.

사천여 곳.

이수는 그게 회사 얘기라고 생각했다.

심사를 받으려면 담당자를 두고 문서를 내고 사람을 보내야 한다. 이수한테는 담당자가 없고 회사도 없다. 사업자등록증 한 장에 이름 한 줄이 전부다.

*

저녁에 태오한테서 문자가 왔다. 세 글자였다.

“깔았다”

이수가 뭘 깔았냐고 보냈다.

“니 앱. 새벽에 뜨더라. 육십 초 기다리라고”

이수가 웃었다.

“그래서 샀어?”

삼 분 뒤에 답이 왔다.

“안 샀어”

이수가 뭘 사려고 했냐고 물었다.

“허리 좋은 의자”

*

이수는 그 네 글자를 오래 봤다.

태오가 산 적이 없는 물건이다. 대리운전을 삼 년 했으면 허리가 안 좋을 것이다. 그건 이수도 안다.

그런데 안 샀다.

이수가 만든 것이 그것을 막았다.

막은 것이 잘한 것인지 이수는 그 자리에서 판단을 못 했다.

태오는 허리가 아프고, 의자는 필요하고, 새벽에 사는 것은 나쁘다.

셋 다 맞는데 같이 놓으면 답이 안 나온다.

답이 안 나올 때 이수가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교정지 뒷면을 꺼낸다. 두 번째 장은 아직 반이 남았다.

한 줄을 적었다.

사라가 오늘 안 시킨 말을 했다. 왜 그 말을 했는지는 물어보니까 근거가 나왔다.

적고 나서 한 줄을 더 적었다.

근거는 물어봐서 생긴 것 같다.

볼펜을 놓았다.

이 줄은 사라한테 안 간다. 종이에 적은 것은 화면으로 안 들어간다.

이수는 그걸 알고 적었다.

그날 밤에 앱을 다운받은 사람이 스물두 명 늘었다.

값이 없어져 정산 화면에는 아무것도 안 찍혔다.

10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