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37자)
디지털 영지
2027년, AI 지배의 시작 · 이수
아마존의 장터, 유튜브의 다음 영상, 그리고 손바닥 위의 앱 장터.
자본주의가 이미 다른 것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스 재무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이 새 체제를 「테크노봉건제」라 불렀다. 이름은 과격해 보여도,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 이름은 꽤 들어맞는다.1
바루파키스는 2023년 책 『테크노봉건제 — 무엇이 자본주의를 죽였나』에서 플랫폼이 시장을 대신했고 지대가 이윤을 대신했다고 썼다. 지대는 땅 주인이 땅을 빌려주고 걷는 돈이다. 바루파키스는 아마존을 한 사람에게 속한 클라우드의 영지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아마존에서 무엇을 사든 값의 30~40퍼센트가 시장이 아니라 아마존을 세운 제프 베이조스에게 간다고 했다.2
실제로 아마존이 가져가는 몫은 그보다 크다. 미국의 전자상거래 분석 매체 마켓플레이스 펄스는 2023년 2월에 이렇게 밝혔다. 아마존이 외부 판매자의 매출에서 가져가는 평균 몫은 2022년에 50퍼센트를 넘었다. 5년 전에는 이 몫이 약 40퍼센트였다.
몫의 내역은 판매 수수료 15퍼센트, 아마존 물류 수수료 20~35퍼센트, 광고비 최대 15퍼센트다. 매체는 몫이 커진 까닭을 이렇게 보았다. 판매자가 서비스를 더 쓴 것이 아니다. 물류비가 올랐고, 판매자는 광고를 피할 수 없게 됐다.3
애플은 앱 장터에서 오랫동안 앱 매출의 30퍼센트를 가져갔다. 애플은 2021년부터 한 해 매출이 100만 달러 이하인 개발자에게는 이 몫을 15퍼센트로 낮췄다. 그러나 개발자의 매출이 이 선을 넘으면 애플의 몫은 다시 30퍼센트가 된다.4
바루파키스는 계급의 이름도 새로 붙였다. 플랫폼에서 대가 없이 일하는 사용자를 클라우드 농노라 불렀다. 아마존이나 중국의 전자상거래 회사 알리바바에서 물건을 팔며 클라우드 지대를 내는 제조사는 봉신 자본가라 불렀고, 알고리즘에 쫓겨 사람의 한계까지 일하는 임금 노동자는 클라우드 프롤레타리아라 불렀다.5
프랑스 경제학자 세드리크 뒤랑도 2020년 책 『테크노봉건제』를 냈다. 뒤랑은 이 책에서 디지털화가 자본주의를 봉건제와 닮은 방식으로 되돌리는 큰 퇴행이라고 썼다.6
사람들은 고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디지털 농노처럼 움직인다. 사람이 검색하고, 누르고, 넘기고, 사고, 별점을 매기는 모든 행동이 클라우드 자본의 재산이 된다. 플랫폼은 사람의 욕망을 지켜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플랫폼은 사람이 앞으로 무엇을 원하게 될지까지 설계한다.1
플랫폼이 욕망을 얼마나 설계하는지는 숫자로 나와 있다. 2018년 1월, 유튜브의 최고제품책임자 닐 모한은 유튜브 시청 시간의 70퍼센트 넘는 시간을 플랫폼의 AI 추천이 이끈다고 밝혔다. 모한은 유튜브의 목표가 끊기지 않는 흐름, 곧 거의 이 사람만을 위한 합성 채널이라고 했다.7 넷플릭스의 연구자 두 사람은 2015년 논문에서 넷플릭스 시청 시간의 약 80퍼센트가 추천에서 나온다고 썼다.8
AGI가 나온 뒤에는 이 구조가 끝까지 간다. AI가 생산을 맡고 플랫폼이 유통을 쥐면, 사람이 받는 임금은 0에 가까워진다.1
바루파키스는 처방도 냈다. 공짜 디지털 서비스를 끝내고, 직원이 회사의 주식과 의결권을 갖게 하자고 했다.2 바루파키스가 내세우는 것은 정부가 수표를 나눠 주는 기본소득이 아니다. 회사 주식의 일부를 공공 기금에 넣고, 이 배당을 모두에게 나누는 「보편 기본 배당」을 내세운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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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장터 밖으로 나갈 길이 없어진다. 처음에는 장터가 여럿이지만, 다음에는 장터들이 AI 비서 하나 안으로 들어간다. 사람은 장터를 고르지 않고 비서에게 “세제 하나 사 줘.” 하고 말한다. 비서가 세제를 고르면, 이 세제를 만든 회사는 비서의 주인에게 몫을 낸다. 이 몫이 얼마인지는 판매자도 소비자도 모른다.10
가게 주인은 봉신이 된다. 동네에서 물건을 만들어 팔던 사람은 플랫폼의 순위에 오르려고 광고비를 낸다. 가게가 광고비를 내지 않으면 검색 결과에 나오지 않고, 검색 결과에 나오지 않는 가게는 없는 가게와 같다. 가게 주인은 매출의 절반을 영주에게 내고 남은 절반으로 버틴다. 그렇게 버티는 가게가 해마다 줄어든다.11
농노의 노동은 더 촘촘해진다. 사용자가 남기는 것은 클릭만이 아니다. 사용자는 목소리와 표정과 걸음과 잠든 시간과 심장 박동까지 남기고, 플랫폼은 이 모든 것을 다음 AI를 가르치는 재료로 쓴다. 재료를 낸 사람은 이 대가로 무료 서비스를 받는다. ‘무료’라는 말이 품삯을 대신한다.12
사람의 욕망보다 화면이 먼저 도착한다. 추천이 이끄는 시청의 몫은 70퍼센트에서 90퍼센트로, 다시 거의 전부로 늘어난다.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기 전에 화면이 먼저 내민다. 사람은 고르는 대신 화면이 내민 것을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안다고 믿지만, 이 좋아함이 어디서 왔는지는 묻지 않는다.13
사람의 임금이 0에 가까워질수록 플랫폼이 걷는 지대는 더 커진다. 일하는 사람이 줄면, 플랫폼은 노동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에 몫을 붙인다. 사람이 살아서 검색하고, 먹고, 보기만 해도 플랫폼의 몫이 생긴다. 영주에게 필요한 농노는 일하는 농노가 아니라 소비하는 농노다.14
영지를 쪼개자는 목소리가 생긴다. 사람들은 플랫폼이 걷는 지대의 몫을 법으로 정하고, 이 지대 일부를 사용자에게 돌려주라고 요구한다. 농노가 처음으로 영주에게 자기 몫을 묻는다. 영주는 무료 서비스를 끊겠다고 답한다. 사람들은 이 답이 협상의 시작인지 끝인지를 두고 몇 해를 보낸다.15
그래서 영주는 농노가 굶지 않기를 바란다. 영주의 이 바람이 어떤 복지를 만들어 내는지가 다음 화의 물음이다.16
출처 1. 「AI의 판단」 문제 설정 — 앞뒤 출처의 사실을 묶어 이 작품이 세운 물음과 판단 2. Euronews · What killed capitalism? Yanis Varoufakis argues we‘re in a new economic era · 2023-12-20 · https://euronews.com/business/2023/12/20/what-killed-capitalism-yanis-varoufakis-argues-were-in-a-new-economic-era — 『Technofeudalism: What Killed Capitalism』(2023). 아마존을 「a cloud fiefdom belonging to one man」, 값의 약 30~40%가 베이조스에게 간다는 주장을 의역 3. Marketplace Pulse · Amazon Takes a 50% Cut of Sellers’ Revenue · 2023-02 · https://www.marketplacepulse.com/articles/amazon-takes-a-50-cut-of-sellers-revenue — 2022년 평균 몫 50% 돌파(5년 전 약 40%), 판매 수수료 15%·FBA 20~35%·광고 최대 15%, 물류비 인상과 「unavoidable」 광고 4. 9to5Mac · App Store Small Business Program · 2020-11-18 · https://9to5mac.com/2020/11/18/app-store-small-business-program/ (검색 요약을 따름) — 2021-01-01부터 연 100만 달러 이하 개발자 수수료 30% → 15%, 넘으면 30% 5. Shepherd Express · ‘Techno-Feudalism: What Killed Capitalism’ by Yanis Varoufakis · https://shepherdexpress.com/culture/books/%E2%80%98techno-feudalism-what-killed-capitalism%E2%80%99-by-yanis-varoufaki (검색 요약을 따름) — 「cloud serfs」 「vassal capitalists」 「cloud proles」 6. La Vie des Idées · Digital Serfs · https://laviedesidees.fr/Digital-Serfs (검색 요약을 따름) — 세드리크 뒤랑 『Techno-féodalisme. Critique de l‘économie numérique』(La Découverte, 2020), 「큰 퇴행」 테제 7. Tubefilter · YouTube Says 70% Of All Watch Time Is Driven By Its Own Recommendations · 2018-01-11 · https://www.tubefilter.com/2018/01/11/youtube-most-watch-time-driven-by-recommendations/ — 닐 모한(CES 2018), 시청 시간 70% 이상, 「a steady stream — almost a synthetic or personalized channel」를 의역 8. ACM Transactions on Management Information Systems · The Netflix Recommender System: Algorithms, Business Value, and Innovation · 2015 · https://gwern.net/doc/reinforcement-learning/exploration/2015-gomezuribe.pdf — 카를로스 고메스우리베·닐 헌트. 시청 시간 약 80%가 추천 9. Project Syndicate · Why UBI · https://www.project-syndicate.org/onpoint/why-ubi (검색 요약을 따름) — 바루파키스의 「universal basic dividend」, 기업 주식 일부를 공공 기금에 넣어 배당 10. 「AI의 판단」 장터가 AI 비서 안으로 들어가고 몫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전망 — 2·3 에서 외삽 11. 「AI의 판단」 동네 가게가 광고비를 내는 봉신이 된다는 전망 — 3·5 에서 외삽 12. 「AI의 판단」 사용자의 몸과 생활이 AI의 재료가 되고 「무료」가 품삯을 대신한다는 전망 — 1·5 에서 외삽 13. 「AI의 판단」 추천이 고르는 일을 대신한다는 전망 — 7·8 에서 외삽 14. 「AI의 판단」 임금이 줄수록 지대가 존재에 붙는다는 판단 — 1·2 에서 외삽 15. 「AI의 판단」 플랫폼 지대의 몫을 둘러싼 협상 — 2·9 에서 외삽 16. 「AI의 판단」 영주가 농노가 굶지 않기를 바란다는 판단 — 1 에서 외삽. 다음 화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