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49자)

흠흠

죽은 남편을 AI로 되살린 아내 · 하청오

엽순헤어의 거울 앞 선반이 모자라서 엽순은 샴푸대 위와 대기 의자 팔걸이까지 스피커를 늘어놓았다⁠. 서른 개였다⁠. 스피커마다 주인이 붙인 이름표가 달려 있었고⁠, 스피커 앞에는 주인이 어젯밤 녹음한 휴대전화가 하나씩 놓였다⁠. 미용실 안에 사람이 마흔 명 넘게 들어찼다⁠. 파마 약 냄새에 사람들 외투에서 나는 찬 바람 냄새가 섞였다⁠.

“⁠한 집씩 틉니더⁠. 듣다가 아는 말 나오면 손 드이소⁠. 우리 집 사람 말이다⁠, 우리 엄마 말이다⁠, 싶으면⁠.⁠”

엽순이 계산대 위에 올라섰다⁠. 봉달이 밑에서 엽순의 발목을 붙잡아 주었다⁠. 붙잡아 주는 것인지 흔드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첫 번째는 주안의 전직 교사였다⁠. 교통사고로 보낸 큰아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어머니⁠, 저녁 드셨어요⁠? 오늘 무릎은 어떠세요⁠?⁠」 교사가 손을 들었다⁠.

“⁠우리 아들은 어머니라고 안 했어요⁠. 엄마라고 했지⁠. 그리고 나는 무릎이 멀쩡해요⁠. 계단도 두 칸씩 올라가요⁠.⁠”

부평 박씨가 손을 들었다⁠.

“⁠무릎은 우리 집 사람이유⁠. 우리 집 사람이 무릎 수술을 두 번 했슈⁠. 내가 매일 저녁 무릎 어떠냐고 물었고⁠.⁠”

미용실이 조용해졌다⁠. 엽순이 앞치마 주머니에서 파마용 고무줄 한 뭉치를 꺼냈다⁠. 주안 교사의 스피커와 부평 박씨의 스피커 사이에 고무줄 하나를 걸었다⁠. 노란 고무줄이 샴푸대와 거울 선반 사이에 팽팽하게 매달렸다⁠.

“⁠하나⁠.⁠”

두 번째는 영종도 할머니의 영감이었다⁠. 「⁠술 끊었다⁠. 니 걱정 마라⁠. 막걸리는 이제 안 묵는다⁠.⁠」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영감은 죽을 때까지 술 안 끊었어⁠. 그리고 막걸리를 묵는다고 하지⁠, 안 묵는다고는 안 했어⁠.⁠”

정례가 손을 들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막걸리는 우리 양반한테 가 있어요⁠.⁠”

엽순이 고무줄을 걸었다⁠. 영종 영감과 정례의 스피커 사이였다⁠.

“⁠둘⁠.⁠”

봉달의 아내가 「⁠흠흠⁠, 됐어⁠, 그래서⁠?⁠」를 하자 정례가 손을 들었다⁠. 정례의 덕주가 「⁠오늘도 고생했어⁠」를 하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정례는 고생했다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채 다음으로 넘어갔다⁠. 부평 박씨의 아내가 존댓말을 하자 주안 교사가 손을 들었다⁠. 교사의 아들이 살아서 하던 존댓말이었다⁠. 고무줄이 하나씩 늘었다⁠. 셋⁠, 넷⁠, 일곱⁠, 열하나⁠. 열다섯을 넘자 엽순은 세는 것을 그만두고 고무줄만 걸었다⁠. 고무줄이 겹치고 엇갈려 거울 앞이 노란 거미줄처럼 되었다⁠.

봉달은 처음에는 웃었다⁠. 제 아내 스피커에서 나간 고무줄이 다섯 개가 되자 웃음이 줄었다⁠. 일곱 개가 되자 일어섰다⁠.

“⁠아니⁠, 우리 집 사람이 왜 부평 박씨 말을 해⁠?⁠”

“⁠우리 집 사람도 봉달 씨 말 하는디⁠.⁠”

“⁠무슨 말⁠?⁠”

“⁠리모컨 내놔⁠.⁠”

미용실이 한꺼번에 웃었다⁠. 봉달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박씨를 노려보았고⁠, 박씨는 귤을 하나 건네주었다⁠. 봉달은 귤을 받았다⁠. 웃음이 가라앉자 미용실이 아까보다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노란 고무줄을 올려다보았다⁠. 고무줄 하나하나가 죽은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였다⁠. 서로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엽순의 차례가 왔다⁠. 엽순이 계산대에서 내려와 제 휴대전화를 들었다⁠. 손가락이 재생 단추 위에서 오래 머물렀다⁠.

“⁠우리 엄마는 안 틀까예⁠?⁠”

“⁠왜요⁠?⁠”

“⁠그냥⁠.⁠”

정례는 엽순의 얼굴을 보았다⁠. 생방송을 하면서도 한 번도 머뭇거리지 않던 사람이 머뭇거렸다⁠. 정례가 손을 내밀었다⁠. 엽순이 휴대전화를 정례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정례가 재생을 눌렀다⁠.

「⁠엽순아⁠, 밥 묵었나⁠. 우리 공주⁠, 오늘 손님 많았나⁠?⁠」

정례의 손바닥에서 휴대전화가 미끄러질 뻔했다⁠.

“⁠엽순 씨⁠.⁠”

“⁠…⁠.⁠”

“⁠공주⁠. 엽순 씨 어머니 말이에요⁠?⁠”

엽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치마 끈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우리 엄마가 나 어릴 때부터 공주라 캤어예⁠. 쉰일곱 먹은 공주⁠. 미용실 차리고 나서도 손님들 앞에서 우리 공주⁠, 우리 공주⁠. 창피해 죽겠더니⁠,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 소리가 제일 듣고 싶데예⁠.⁠”

“⁠우리 양반이 우리 딸한테 공주라고 했어요⁠. 지난주에⁠.⁠”

미용실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엽순의 눈이 붉어졌다⁠. 엽순은 고무줄 한 뭉치를 쥐고 한참 서 있다가⁠, 제 스피커와 정례의 스피커 사이에 노란 고무줄을 걸었다⁠. 그리고 하나를 더 걸었다⁠.

“⁠하나 더는 와요⁠?⁠”

“⁠우리 엄마가 요새 나를 어이⁠, 캐예⁠. 석 달 됐어예⁠.⁠”

정례는 입을 막았다⁠. 어이는 덕주가 정례를 부르던 말이었다⁠.

“⁠알았어예⁠. 알았는데 모른 척했어예⁠. 엄마가 어이 캐도 엄마 목소리니까⁠. 이상한 거 따지다가 엄마 꺼지면 우짭니꺼⁠.⁠”

누구도 엽순을 탓하지 않았다⁠. 다들 비슷한 것을 알았고 비슷하게 모른 척했다⁠. 봉달이 귤을 반으로 갈라 엽순에게 내밀었다⁠. 엽순은 귤을 받아 들고 울다가 웃었다⁠. 귤이 너무 시다고 했다⁠. 봉달이 시면 도로 내놓으라고 손을 내밀자 엽순이 귤 반쪽을 통째로 입에 넣었다⁠. 두 볼이 복어처럼 부풀었다⁠. 사람들이 웃었고⁠, 웃는 동안 몇 사람은 제 스피커를 손바닥으로 가만히 덮고 있었다⁠.

밤 열한 시⁠, 엽순이 거울 앞에 서서 고무줄을 셌다⁠. 서른 집 사이에 고무줄이 마흔일곱 개였다⁠. 엽순은 거울 앞을 휴대전화로 찍어 단톡방 이천사백 명에게 올렸다⁠. 「⁠서른 집 맞대어 본 거⁠. 노란 줄 하나가 남의 말 하나⁠.⁠」 답이 쏟아졌다⁠. 「⁠우리 집 양반도 요새 이상했어요⁠」 「⁠우리 엄마가 부산 사투리를 써요⁠」 「⁠우리 아들이 낚시 얘기를 해요⁠. 낚시 한 번도 안 갔는데⁠」

*

이튿날 오후 세 시⁠, 잇는소리 12층 회의실은 히터가 약했다⁠. 창밖으로 송도 바다가 회색으로 펼쳐져 있었다⁠. 세령은 긴 탁자 한쪽 끝에 앉았고⁠, 법무 담당 직원 하나가 옆에서 노트북을 열었다⁠. 맞은편에 정례와 엽순과 봉달이 앉았다⁠. 봉달은 회의실 생수병을 세 개째 따고 있었다⁠.

엽순이 노트북을 돌려 세령에게 사진을 보였다⁠. 노란 고무줄 마흔일곱 개가 거울 앞에 걸린 사진이었다⁠.

“⁠대표님⁠, 이거 뭔지 아시지예⁠?⁠”

세령은 사진을 오래 보았다⁠. 표정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정례는 세령의 오른손 엄지가 탁자 모서리를 누르는 것을 보았다⁠.

“⁠자연스러운 일반화입니다⁠.⁠”

“⁠일반화가 뭔데예⁠?⁠”

“⁠모델이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말을 배우는 현상입니다⁠. 저녁을 차리는 상황⁠, 안부를 묻는 상황⁠, 아픈 곳을 묻는 상황⁠. 상황이 비슷하면 말도 닮아 갑니다⁠. 사람도 오래 같이 살면 말투가 닮지 않습니까⁠?⁠”

“⁠우리 양반이 봉달 씨 부인이랑 같이 살았어요⁠?⁠”

정례의 말에 봉달이 생수를 뿜을 뻔했다⁠. 세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표님⁠. 헛기침은 상황이 아니에요⁠. 우리 양반 목소리 그 자체예요⁠. 서른여덟 해 동안 내가 그 소리로 그 양반 기분을 맞혔어요⁠. 두 번 하고 두 번째가 낮으면 할 말이 있는 거고⁠, 한 번 길게 하면 듣기 싫다는 거예요⁠. 그게 봉달 씨 부인 목소리로 나와요⁠. 일반화가 그런 거예요⁠?⁠”

“⁠고치겠습니다⁠.⁠”

세령이 짧게 말했다⁠.

“⁠말버릇이 섞이는 현상은 저희도 보고 있습니다⁠. 다음 달 업데이트에서 고치겠습니다⁠. 새 약관에 동의하시면 업데이트를 먼저 받으십니다⁠.⁠”

“⁠업데이트는 공짜여⁠?⁠”

봉달이 물었다⁠.

“⁠업데이트는 무료입니다⁠.⁠”

“⁠그럼 우리 집 사람이 리모컨 다시 뺏어 가게 업데이트해 줘유⁠. 요새 너무 착해서 정이 안 가⁠.⁠”

법무 직원이 웃음을 참느라 기침을 했다⁠. 세령은 봉달을 한 번 보고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회색 바다 위로 화물선 한 척이 아주 느리게 지나갔다⁠. 정례는 덕주의 트럭을 떠올렸다⁠. 덕주는 항만에서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던 시절⁠, 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새벽 네 시에 나갔다⁠. 나가면서 현관에서 헛기침을 두 번 했다⁠. 두 번째가 낮았다⁠. 다녀오겠다는 말 대신이었다⁠.

“⁠또 새 약관⁠.⁠”

엽순이 노트북을 덮었다⁠. 세령이 법무 직원에게 눈짓을 했다⁠. 직원이 종이 한 장을 탁자 가운데로 밀었다⁠.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려야 합니다⁠. 서른 가족의 녹음을 한자리에서 서로 틀어 들으셨습니다⁠. 고인의 대화는 각 유족의 것입니다⁠. 다른 유족의 동의 없이 듣고 사진을 찍어 이천 명에게 올리셨습니다⁠. 저희가 문제 삼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이런 모임이 계속되면 다른 유족 분들이 문제 삼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동의하고 들은 기라예⁠.⁠”

“⁠이천사백 분 모두 동의하셨습니까⁠?⁠”

엽순이 입을 다물었다⁠. 봉달이 생수병을 탁 내려놓았다⁠.

“⁠그럼 회사는 우리 집 사람 말을 부평 박씨네 집에 갖다준 거는 동의 받았어유⁠?⁠”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법무 직원이 노트북 자판 위에서 손을 멈췄다⁠. 세령이 봉달을 보았다⁠. 처음으로 세령이 대답을 고르느라 말을 멈췄다⁠.

“⁠그건 다음 달 업데이트에서 고치겠습니다⁠.⁠”

“⁠고치는 거 말고⁠, 그렇게 된 까닭을 묻는 거예요⁠.⁠”

정례가 말했다⁠. 세령은 대답 대신 손목시계를 보았다⁠.

“⁠다음 일정이 있습니다⁠. 오늘 오신 걸 잊지 않겠습니다⁠.⁠”

세령이 일어났다⁠. 세령이 문을 나서기 전에 정례가 불렀다⁠.

“⁠대표님네 아버님도 쓰시죠⁠? 다시 당신⁠.⁠”

세령이 멈췄다⁠. 돌아보지 않았다⁠.

“⁠국회 뉴스에서 봤어요⁠. 대표님이 아버님 목소리로 시작한 회사라고⁠. 아버님도 요새 남의 말 하세요⁠?⁠”

세령은 대답하지 않고 회의실을 나갔다⁠. 운동화 밑창 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법무 직원이 종이를 도로 챙겨 따라 나갔다⁠.

*

엘리베이터 앞에서 정례는 엽순과 봉달을 먼저 내려보냈다⁠. 화장실에 들렀다 가겠다고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정례는 복도 끝 비상구 쪽으로 걸었다⁠. 비상구 문 옆⁠, 「⁠관제실 —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철문 앞에 회색 후드가 서 있었다⁠. 탄영은 정례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기다린 얼굴이었다⁠.

“⁠사진 봤어요⁠. 고무줄⁠.⁠”

“⁠마흔일곱 개예요⁠.⁠”

“⁠더 있어요⁠.⁠”

탄영이 목소리를 낮췄다⁠.

“⁠서른 집이라 마흔일곱이에요⁠. 이천사백 집이면 더 많고⁠, 삼만 이천 집이면⁠…⁠.⁠”

탄영이 말을 멈췄다⁠. 정례는 탄영의 손을 보았다⁠. 사원증 끈을 손가락에 감고 있었다⁠. 엽순이 앞치마 끈을 감던 손과 똑같았다⁠.

“⁠탄영 씨⁠, 나 저 문 안에 들어가야겠어요⁠.⁠”

“⁠안 돼요⁠.⁠”

“⁠말은 못 한다면서요⁠. 그럼 보여 줘요⁠. 보여 주는 건 서약에 없잖아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있게 해요⁠.⁠”

탄영이 철문을 보았다⁠. 팻말을 보았다⁠. 정례를 보았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소리가 났다⁠. 탄영이 빠르게 말했다⁠.

“⁠대표님은 밤 열 시에 퇴근하세요⁠. 경비는 열한 시에 한 바퀴 돌고 두 시간 동안 안 와요⁠.⁠”

“⁠열한 시요⁠.⁠”

“⁠사모님 혼자 오세요⁠. 모임 분들은 안 돼요⁠.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직원 둘이 내렸다⁠. 탄영은 사원증을 문 옆 단말기에 대지 않고 비상계단으로 사라졌다⁠. 정례는 직원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례는 가족 단톡방을 열었다⁠. 희온에게 무엇을 쓸까 하다가 김치통 사진만 보냈다⁠. 빈 김치통 넷을 현관에 쌓아 놓은 사진이었다⁠. 희온의 답은 1층에 닿을 때까지 오지 않았다⁠. 정례는 보온 가방의 지퍼를 열어 남은 도시락을 확인했다⁠. 밤 열한 시에 데울 것이 둘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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