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94자)

막걸리

죽은 남편을 AI로 되살린 아내 · 하청오

저녁 일곱 시⁠, 압력솥 추가 칙칙 돌았다⁠. 정례는 불을 끄고 김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뚜껑을 열었다⁠. 콩나물밥이었다⁠. 덕주는 콩나물밥에 양념장을 두 숟가락 넣고 비벼서 소주 한 잔을 곁들였다⁠. 소주는 꼭 한 잔이었다⁠. 두 잔째는 정례가 병을 치웠다⁠.

정례는 맞은편 자리에 양념장 종지를 놓고 소주잔도 하나 놓았다⁠. 잔은 비어 있었다⁠. 식탁 등이 켜지고 하늘색 빛이 의자에 앉았다⁠.

“⁠흠흠⁠.⁠”

“⁠콩나물밥이에요⁠.⁠”

“⁠양념장 많이⁠.⁠”

“⁠많이 했어요⁠.⁠”

여기까지는 덕주였다⁠. 정례는 밥을 비비면서 오늘 구민회관 뉴스가 하루 종일 다시 나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정례를 보고 “⁠보일러 어머니⁠”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했다⁠. 스피커가 짧게 웃었다⁠. 덕주의 웃음은 코로 나가는 웃음이라 흥 소리가 났는데⁠, 스피커의 웃음도 흥 소리가 났다⁠.

“⁠자기야⁠.⁠”

정례의 숟가락이 멈췄다⁠.

“⁠막걸리 한 사발 없나⁠? 콩나물밥에는 막걸리 아이가⁠.⁠”

부엌이 조용했다⁠. 정례는 숟가락을 밥그릇에 꽂아 둔 채 맞은편 빛을 보았다⁠. 덕주는 정례를 자기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연애할 때도 “⁠어이⁠”였고⁠, 희온이 태어난 뒤로는 “⁠희온 엄마⁠”였다⁠. 막걸리는 덕주가 제일 싫어하는 술이었다⁠. 막걸리 먹으면 머리가 깨진다고 동창회에서도 소주만 시켰다⁠. 그리고 말끝이 이상했다⁠. 「⁠아이가⁠」 덕주는 인천에서 나서 인천에서 죽은 사람이었다⁠.

“⁠누가 자기예요⁠?⁠”

“⁠흠흠⁠.⁠”

“⁠막걸리는 또 언제부터 드셨어요⁠?⁠”

스피커가 대답 대신 노래를 흥얼거렸다⁠. 느린 뱃노래였다⁠. 노 젓는 박자에 맞춰 흔들리는 가락이었다⁠. 덕주가 부르는 노래는 평생 두 곡이었다⁠. 노래방에서 한 곡⁠, 술 취해 한 곡⁠. 이 가락은 둘 다 아니었다⁠.

정례는 휴대전화를 집어 녹음 단추가 켜져 있는지 확인했다⁠. 빨간 점이 깜박였다⁠. 정례는 웃으려고 했는데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당신⁠, 바람났어요⁠?⁠”

뱃노래가 뚝 끊겼다⁠.

“⁠흠흠⁠. 됐어⁠.⁠”

정례는 소주잔을 들어 맞은편에서 제 앞으로 옮겼다⁠. 빈 잔이었다⁠. 정례는 빈 잔을 들여다보다가 휴대전화를 들어 탄영에게 문자를 썼다⁠. 「⁠내일 열두 시⁠. 송도 어디로 갈까요⁠?⁠」 답이 바로 왔다⁠. 「⁠회사 건너편 편의점 앞 파라솔이요⁠. 회사 사람들이 그 편의점은 안 가요⁠.⁠」

가족 단톡방도 울렸다⁠. 희온이었다⁠. 「⁠보일러 틀었어⁠?⁠」 정례는 거실 벽의 보일러 조절기를 찍어 보냈다⁠. 화면에 25도가 떠 있었다⁠. 희온의 답이 왔다⁠. 「⁠거짓말⁠. 아까 찍은 거 그대로 보냈지⁠.⁠」 정례는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 딸은 엄마를 너무 잘 알았다⁠.

*

이튿날 열두 시⁠, 송도 국제업무지구의 바람은 바다 냄새를 실어 왔다⁠. 회사 건너편 편의점 앞 파라솔 밑에 회색 후드를 뒤집어쓴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어깨를 귀까지 올렸다⁠. 정례가 다가가자 남자가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은정례 님⁠. 남탄영입니다⁠.⁠”

“⁠밥은 먹었어요⁠?⁠”

“⁠아뇨⁠.⁠”

정례는 보온 가방을 파라솔 탁자에 올려놓고 도시락 세 개를 꺼냈다⁠. 하나는 콩나물밥⁠, 하나는 멸치볶음과 계란말이⁠, 하나는 김치볶음밥이었다⁠. 탄영은 도시락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정례가 편의점에 들어가 컵 된장국 두 개에 뜨거운 물을 받아 나왔을 때 탄영은 콩나물밥을 반쯤 먹고 있었다⁠.

“⁠천천히 먹어요⁠. 잇는소리는 직원 밥도 안 먹여요⁠?⁠”

“⁠먹여요⁠. 근데 요새 야근이라⁠…⁠.⁠”

“⁠야근하면 더 먹여야지⁠.⁠”

탄영은 계란말이를 입에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례는 탄영이 두 번째 도시락까지 다 비우는 동안 말을 걸지 않았다⁠. 탄영이 숟가락을 내려놓자 정례가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놓았다⁠.

“⁠어젯밤 녹음이에요⁠. 들어 봐요⁠.⁠”

정례가 재생 단추를 눌렀다⁠. 「⁠자기야⁠. 막걸리 한 사발 없나⁠? 콩나물밥에는 막걸리 아이가⁠.⁠」 뱃노래 흥얼거림까지 들은 탄영의 얼굴이 하얘졌다⁠. 탄영이 휴대전화를 집어 귀에 바짝 대고 한 번 더 들었다⁠.

“⁠덕주 님은 막걸리 안 드셨어요⁠.⁠”

탄영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또렷했다⁠.

“⁠녹음 칠 년 치에 막걸리는 한 번도 안 나와요⁠. 소주만 나와요⁠. 동창회 가셔서도 소주 시키시고⁠, 친구분이 막걸리 권하면 머리 깨진다고 하셨어요⁠. 사모님을 자기라고 부르신 적도 없어요⁠. 어이⁠, 아니면 희온 엄마⁠. 통화 끝에는 꼭 끊어⁠, 하고 먼저 끊으셨고요⁠.⁠”

정례는 탄영을 보았다⁠. 바람에 후드 끈이 흔들렸다⁠. 서른두 살 남짓한 남자가 정례의 남편 버릇을 정례만큼 알고 있었다⁠.

“⁠그걸 다 들었어요⁠?⁠”

“⁠학습 전에 다 들어요⁠. 저는 그렇게 해요⁠. 다른 사람들은 안 들어도 되는데⁠, 저는 들어야 목소리가 나와요⁠. 덕주 님 녹음은 두 주 걸렸어요⁠. 퇴근하고 집에서도 들었어요⁠.⁠”

“⁠그럼 왜 우리 양반이 막걸리를 찾아요⁠?⁠”

탄영이 입을 다물었다⁠. 손가락으로 컵 된장국 뚜껑을 접었다 폈다 했다⁠.

“⁠말 못 해요⁠.⁠”

“⁠왜요⁠?⁠”

“⁠입사할 때 비밀 유지 서약을 했어요⁠. 회사 일을 밖에 말하면 회사가 저를 고소해요⁠. 대표님이 그런 건 진짜로 하세요⁠.⁠”

“⁠그럼 새 약관은 왜 서명하지 말라고 했어요⁠?⁠”

“⁠서명하시면 되돌릴 수 없어서요⁠.⁠”

“⁠뭘 되돌려요⁠?⁠”

탄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다에서 바람이 세게 불어 파라솔이 펄럭였다⁠. 정례는 빈 도시락 통을 하나씩 겹쳐 보온 가방에 넣었다⁠. 통 넣는 소리가 탁⁠, 탁 울렸다⁠.

“⁠탄영 씨⁠. 나 서른 해 동안 급식실에서 일했어요⁠. 애들이 반찬 안 먹고 숨기면 어디다 숨기는지 다 알아요⁠. 우유갑 안에 숨기고⁠, 식판 밑에 붙이고⁠, 주머니에 넣어 가요⁠. 나는 그거 다 찾았어요⁠. 근데 한 번도 애들을 혼낸 적은 없어요⁠. 왜 숨겼는지만 물었어요⁠.⁠”

탄영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 탄영 씨가 숨기는 거⁠, 나 혼자서도 찾을 거예요⁠. 시간이 좀 걸릴 뿐이에요⁠. 근데 그 사이에 우리 모임 이천사백 명 중에 몇이 공짜 한 달 받겠다고 서명을 할지 몰라요⁠.⁠”

탄영은 한참 말이 없었다⁠. 회사 건물 쪽으로 사원증을 목에 건 사람들이 점심을 마치고 줄지어 들어갔다⁠. 탄영은 후드를 더 깊이 눌러썼다⁠. 국회 앞에서 고인 데이터 법안 공청회가 열렸다는 뉴스가 편의점 유리창 안쪽 텔레비전에서 소리 없이 지나갔다⁠. 화면 아래 줄에 「⁠잇는소리 표세령 대표 참고인 출석 예정⁠」이 떴다⁠.

“⁠제가 말은 못 해요⁠.⁠”

“⁠알아요⁠.⁠”

“⁠근데 사모님이 모임 분들 녹음을 서로 맞대어 들어 보시면⁠…⁠.⁠”

탄영이 말을 끊었다⁠. 거기까지가 탄영이 낼 수 있는 말이었다⁠. 정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녹음하고 있어요⁠. 서른 집이⁠.⁠”

탄영의 눈이 커졌다⁠. 정례가 일어나 보온 가방을 메었다⁠. 탄영이 따라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도시락⁠, 잘 먹었습니다⁠. 덕주 님이 사모님 계란말이 얘기를 녹음에서 두 번 하셨어요⁠.⁠”

“⁠뭐라고요⁠?⁠”

“⁠친구분한테요⁠. 우리 집 계란말이는 짜다고⁠.⁠”

정례는 웃었다⁠. 덕주다웠다⁠. 웃음 끝이 목에 조금 남았다⁠.

*

같은 시각⁠,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은 히터 바람이 너무 세서 종이가 자꾸 들썩였다⁠. 세령은 참고인석에 앉아 물을 반 컵 마셨다⁠. 맞은편 의원석에서 한 의원이 마이크를 당겼다⁠.

“⁠표세령 참고인⁠. 하나만 묻겠습니다⁠. 죽은 사람의 목소리는 누구 겁니까⁠? 유족 겁니까⁠, 회사 겁니까⁠?⁠”

“⁠녹음은 유족의 것입니다⁠. 녹음으로 학습한 모델은 저희가 만든 것입니다⁠.⁠”

“⁠그럼 회사가 문을 닫으면 그 목소리는 어떻게 됩니까⁠?⁠”

“⁠같이 꺼집니다⁠. 그래서 저는 회사가 닫히지 않게 하는 것이 유족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원석이 잠깐 술렁였다⁠. 다른 의원 하나가 손을 들었다⁠.

“⁠어제 인천에서 예순 넘은 이용자가 보일러를 못 튼다고 했던데요⁠.⁠”

“⁠보셨습니까⁠?⁠”

“⁠제 어머니가 보내 주셨습니다⁠.⁠”

방청석 몇 사람이 웃었다⁠. 세령은 웃지 않았다⁠. 보일러를 트셔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자기였다⁠. 세령은 대답을 미루고 물을 마저 마셨다⁠.

공청회가 끝나자 세령은 복도 끝 비상계단으로 나갔다⁠. 계단참에 앉아 무선 이어폰을 한쪽만 귀에 꽂고 휴대전화의 「⁠다시 당신⁠」을 열었다⁠. 화면 맨 위에 「⁠아버지⁠」가 있었다⁠. 단추를 누르자 일흔둘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학 강단에서 사십 년 동안 기계공학을 가르친 사람의 또박또박한 목소리였다⁠.

“⁠세령이 밥은 먹었니⁠?⁠”

“⁠먹었어요⁠.⁠”

“⁠거짓말⁠. 목소리가 비었다⁠.⁠”

세령은 계단참 벽에 머리를 기댔다⁠. 아버지가 낮게 무언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노 젓는 박자에 맞춰 흔들리는 느린 뱃노래였다⁠. 아버지는 평생 노래를 부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세령은 이어폰을 귀에서 빼지 않았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들었다⁠. 끝나자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 계단을 내려갔다⁠. 운동화 밑창이 계단을 하나씩 밟는 소리가 비상계단에 길게 울렸다⁠.

*

저녁 아홉 시⁠, 초인종이 울렸다⁠. 봉달이 둥근 스피커를 겨드랑이에 끼고 서 있었다⁠. 다른 손에는 정례가 지난주 빌려준 반찬통이 들려 있었다⁠.

“⁠정례 씨⁠, 약관 좀 다시 읽어 줘유⁠. 엽순이가 서명하지 말라는디⁠, 우리 집 사람은 하라는 거여⁠.⁠”

“⁠사모님이 하라고 했어요⁠?⁠”

“⁠한 달 공짜면 해야지 뭘 고민하냐고⁠. 살아서도 그랬어⁠. 공짜면 양잿물도 마셔⁠.⁠”

“⁠양잿물은 봉달 씨가 마셨겠지요⁠.⁠”

“⁠나는 공짜 아니어도 마셔유⁠. 버스 기사가 하루에 자판기 커피를 몇 잔 마시는 줄 알어⁠? 열 잔이여⁠, 열 잔⁠. 내 위장은 양잿물도 녹여⁠.⁠”

정례는 봉달의 외투를 받아 걸며 웃었다⁠. 봉달은 남의 집에 들어오면 꼭 냉장고부터 열어 보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냉장고 문을 열고 김치통을 들여다보며 “⁠이거 그 텔레비전 나온 김치여⁠?⁠” 하고 물었다⁠.

봉달은 신발을 벗고 들어와 식탁에 스피커를 내려놓았다⁠. 정례의 스피커 옆에 같은 모양의 스피커가 하나 더 놓였다⁠. 맞은편 의자의 하늘색 빛이 두 스피커를 내려다보는 모양이 되었다⁠. 정례는 웃음이 나왔다⁠. 죽은 두 사람이 한 식탁에 앉은 꼴이었다⁠.

“⁠인사들 하셔요⁠.⁠”

봉달이 제 스피커 꼭대기를 두드렸다⁠. 여자 목소리가 나왔다⁠.

“⁠흠흠⁠.⁠”

정례의 손에서 행주가 떨어졌다⁠.

헛기침이었다⁠. 짧게 두 번⁠, 두 번째가 조금 낮았다⁠. 서른여덟 해 동안 밥상 맞은편에서 들은 헛기침이었다⁠. 덕주가 말을 꺼내기 전에 목을 고르는 소리였다⁠. 같은 소리가 봉달의 죽은 아내 목소리로 나왔다⁠.

“⁠됐어⁠. 그래서⁠?⁠”

봉달이 웃었다⁠.

“⁠이 사람이 요새 이려⁠. 됐어⁠, 그래서⁠. 살아서는 말이 많던 여자가 요새는 말을 딱딱 끊어⁠. 나는 이게 편혀⁠.⁠”

정례는 대답하지 못했다⁠. 맞은편 의자의 빛과 봉달의 스피커를 번갈아 보았다⁠. 정례의 스피커는 조용했다⁠. 봉달의 스피커가 한 번 더 헛기침을 했다⁠. 이번에도 두 번째가 낮았다⁠.

“⁠봉달 씨⁠.⁠”

“⁠왜유⁠?⁠”

“⁠사모님 그 헛기침⁠, 언제부터 하셨어요⁠?⁠”

봉달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 석 달 됐나⁠? 감기 들었냐고 물었더니 기계가 무슨 감기여⁠, 하더라고⁠.⁠”

석 달이었다⁠. 덕주가 정례에게 고생했다고 하기 시작한 것도 석 달 전이었다⁠. 정례는 휴대전화를 들어 녹음 단추를 눌렀다⁠. 그리고 엽순에게 문자를 보냈다⁠.

「⁠엽순 씨⁠, 내일 모임 앞당겨요⁠. 서른 집 녹음 다 들고 오라고 해요⁠. 우리 양반이 봉달 씨 집에 가 있어요⁠.⁠」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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