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550자)

생방송

죽은 남편을 AI로 되살린 아내 · 하청오

십오일 아침 여덟 시 반⁠, 봉달의 낡은 승합차가 정례의 동 앞에서 경적을 두 번 울렸다⁠. 정례가 반찬통 가방을 들고 나가자 봉달이 운전석 창을 내리고 손바닥으로 문짝을 두드렸다⁠.

“⁠어서 타유⁠. 이 차는 정류장에 삼십 초 이상 안 서유⁠.⁠”

정례가 뒷좌석에 오르자 조수석의 엽순이 셀카봉을 접으며 돌아보았다⁠. 엽순은 오늘 앞치마를 벗고 반짝이는 보라색 패딩을 입었다⁠. 귀에는 무선 이어폰을 꽂았다⁠.

“⁠언니야⁠, 설명회 장소 바뀐 거 알지예⁠? 로비 말고 구민회관⁠.⁠”

“⁠대표가 바꿨어요⁠?⁠”

“⁠어젯밤에 문자 왔습니더⁠. 백 명 넘으면 로비가 좁다고⁠.⁠”

“⁠우리 백 명 넘어요⁠?⁠”

“⁠단톡방에 아흔일곱⁠. 봉달 아재가 확인 친 거 빼면 아흔일곱⁠.⁠”

봉달은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자 마이크도 없이 소리쳤다⁠.

“⁠이번 정류장은 연수구 구민회관⁠, 구민회관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요금 동결입니다⁠.⁠”

정례는 웃다가 창밖을 보았다⁠. 겨울 햇빛이 아파트 유리창마다 하얗게 부서져 있었다⁠. 어젯밤 정례는 의견서를 낸 뒤로 밥을 반 그릇만 먹었다⁠. 맞은편 고봉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식었다⁠.

*

구민회관 강당에는 의자가 백이십 개 놓여 있었다⁠. 열 시가 되자 의자가 모자라 벽에 기대 선 사람이 스무 명 넘었다⁠. 지팡이 끝이 나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 보온병 뚜껑 여는 소리⁠, 누군가의 휴대전화에서 트로트 벨소리가 울리다 끊기는 소리가 강당에 가득했다⁠. 강단 위에 잇는소리의 현수막이 매달려 있었다⁠. 「⁠다시 당신 이용자 설명회 — 함께 지키는 목소리⁠」

엽순은 맨 앞줄 끝에 셀카봉을 세웠다⁠. 화면 구석에 빨간 글씨로 「⁠생방송⁠」이 떴다⁠.

세령이 강단에 올랐다⁠. 회색 정장에 흰 운동화였다⁠. 등 뒤 화면에 막대 그래프가 떴다⁠. 로비에서 본 그래프보다 막대가 하나 더 있었다⁠.

“⁠지난주 해외 그래픽 칩 공급가가 또 올랐습니다⁠. 작년에 같은 서비스를 하던 해외 회사 두 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 회사 이용자들은 하룻밤 사이에 가족의 목소리를 잃었습니다⁠. 저는 그 일이 여기서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강당이 조용해졌다⁠. 세령은 숫자를 하나씩 짚었다⁠. 서버 한 대 값⁠, 한 달 전기 요금⁠, 고객 한 분의 목소리를 매일 저녁 한 시간 돌리는 데 드는 연산⁠. 정례는 숫자의 반도 못 알아들었다⁠. 알아들은 것은 하나였다⁠. 세령은 숫자를 말할 때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화면이 넘어갔다⁠. 「⁠동행 할인 — 1년 약정 시 월 69⁠,000원⁠」

“⁠오늘 이 자리에서 일 년 약정을 하시는 분께는 117⁠,000원이 아니라 69⁠,000원을 받겠습니다⁠. 다만 약정은 개인 계약입니다⁠. 외부 단체를 통한 집단 협상과는 함께할 수 없습니다⁠.⁠”

강당 뒤쪽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정례는 세령의 말이 무슨 뜻인지 귀로 먼저 알았다⁠. 모임에서 나가는 사람만 깎아 주겠다는 말이었다⁠. 강당 출구 옆에 직원 둘이 책상을 펴고 서류를 쌓았다⁠. 몇 사람이 벌써 일어나 책상으로 갔다⁠. 영종도에서 온 할머니도 일어났다⁠. 할머니는 정례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서둘렀다⁠.

봉달이 정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속삭임이 세 줄 앞까지 들렸다⁠.

“⁠육만 구천이면 괜찮은디⁠. 우리 집 사람이 요새 리모컨도 안 뺏어 가고⁠.⁠”

“⁠봉달 씨⁠.⁠”

“⁠아니⁠, 그냥 해 본 말이여⁠.⁠”

정례는 일어났다⁠. 무릎이 뚝 소리를 냈다⁠. 통로를 따라 강단 앞까지 걸어가는 동안 엽순의 셀카봉이 정례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강단 아래 질문용 마이크가 서 있었다⁠. 정례가 마이크를 잡자 스피커에서 귀를 찢는 소리가 났다⁠. 강당 사람들이 한꺼번에 귀를 막았다⁠.

“⁠아⁠, 아⁠. 이거 왜 이래요⁠?⁠”

직원 하나가 뛰어와 마이크를 한 뼘 떼어 주었다⁠. 정례는 마이크를 두 손으로 쥐었다⁠. 급식실에서 국자를 쥐던 손이었다⁠.

“⁠대표님⁠. 숫자는 잘 들었어요⁠. 반은 못 알아들었는데⁠, 대표님이 거짓말 안 하는 건 알겠어요⁠.⁠”

세령이 강단 위에서 정례를 내려다보았다⁠.

“⁠근데 하나 물어볼게요⁠. 우리 집 양반이 요새 살아서 안 하던 말을 해요⁠. 서른여덟 해 동안 고생했다는 말 한 번 안 한 사람이 요새 사나흘에 한 번씩 고생했대요⁠. 딸한테는 공주라고 하고요⁠. 대표님네가 가르친 거예요⁠?⁠”

강당이 술렁였다⁠. 정례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우리 집 사람도 존댓말을 해유⁠.⁠” 다른 자리에서 또 누가 말했다⁠. “⁠우리 영감은 술을 끊었다 카대⁠.⁠” 웃음이 터졌다가 금방 가라앉았다⁠. 웃음이 가라앉은 자리에 사람들의 눈이 강단으로 모였다⁠.

세령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고인의 녹음으로 학습한 모델은 고인의 말투 안에서 새로운 문장을 만듭니다⁠. 녹음에 없던 말도 고인이 할 법한 말이면 만듭니다⁠. 그게 이 기술입니다⁠.⁠”

“⁠우리 양반이 할 법한 말이 아니니까 묻는 거예요⁠.⁠”

“⁠사람은 살아 있었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모델은 그 가능성을⁠…⁠.⁠”

“⁠가능성이요⁠.⁠”

정례는 마이크를 고쳐 쥐었다⁠.

“⁠대표님⁠, 나는 서른여덟 해를 그 양반 옆에서 밥을 먹었어요⁠. 그 양반이 할 법한 말은 내가 대표님네 기계보다 잘 알아요⁠. 그 양반은 죽어도 고생했단 말 못 해요⁠. 근데 나는 그 말이 듣고 싶어서 그걸 매일 저녁 기다려요⁠. 그게 무서워서 묻는 거예요⁠.⁠”

강당이 조용했다⁠. 셀카봉 화면에서 하트가 폭포처럼 올라가는 것이 정례의 눈 끝에 보였다⁠.

“⁠그리고 요금이요⁠. 십일만 칠천 원이면 나는 겨울에 보일러 안 틀어요⁠. 보일러 안 틀고 죽은 양반하고 밥 먹는 거⁠, 그게 대표님네가 말하는 함께 지키는 목소리예요⁠? 우리 아는 사람 저기 서류 쓰러 간 사람들⁠, 다 그렇게 내요⁠. 죽은 사람 목소리로 할부 하지 마세요⁠.⁠”

뒤쪽에서 누가 박수를 쳤다⁠. 박수가 번졌다⁠. 서류 책상 앞에 줄을 섰던 사람들 몇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영종도 할머니는 볼펜을 쥔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세령은 박수가 다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보일러는 트셔야 합니다⁠.⁠”

“⁠예⁠?⁠”

“⁠어머님은 보일러를 트셔야 합니다⁠. 그건 제가 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요⁠.⁠”

세령이 화면을 넘겼다⁠. 새 글씨가 떴다⁠. 「⁠새 이용 약관 — 12월 31일까지 동의하시는 모든 분께 1월 한 달 무료⁠」

“⁠모임에 계시든 안 계시든⁠, 이달 안에 새 약관에 동의하시는 분은 1월 요금을 받지 않겠습니다⁠.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한 약관입니다⁠. 오늘 책상에서 받으시거나 앱에서 누르시면 됩니다⁠.⁠”

강당이 다시 술렁였다⁠. 이번 술렁임은 박수보다 컸다⁠. 공짜 한 달은 박수보다 힘이 셌다⁠. 서류 책상 앞에 줄이 다시 생겼고⁠, 이번에는 봉달도 엉덩이를 들썩였다⁠.

*

설명회가 끝난 구민회관 주차장은 바람이 찼다⁠. 봉달은 승합차 문을 열어 놓고 운전석에 앉아 약관 서류를 무릎 위에 펼쳐 놓고 있었다⁠. 글씨가 개미만 했다⁠. 봉달은 서류를 눈앞으로 가져갔다가 팔을 쭉 뻗어 멀리 떼었다가 하면서 한 줄도 못 읽었다⁠.

“⁠봉달 씨⁠, 그거 받아 왔어요⁠?⁠”

“⁠공짜라잖여⁠. 받는 건 공짜여⁠.⁠”

“⁠읽지도 못하면서요⁠.⁠”

“⁠그러니께 정례 씨가 읽어 줘유⁠.⁠”

정례는 돋보기를 머리에서 내려 쓰고 서류를 받았다⁠. 일곱 장이었다⁠.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한 모델 구조 개선⁠」 「⁠이용자 간 학습 자원의 효율적 공유⁠」 같은 말이 한 장 걸러 나왔다⁠. 정례는 세 번째 장에서 읽기를 멈췄다⁠.

“⁠공유가 뭘 공유한다는 거예요⁠?⁠”

“⁠몰러⁠. 와이파이 같은 거 아녀⁠?⁠”

엽순이 셀카봉을 접으며 다가왔다⁠. 엽순도 서류를 한 부 들고 있었다⁠. 엽순은 서류를 접어 패딩 주머니에 넣었다⁠.

“⁠일단 아무도 서명하지 마라 캅시더⁠. 모르는 거는 안 하는 기라⁠.⁠”

“⁠한 달 공짜를 버려⁠?⁠”

“⁠아재⁠, 공짜 파마 해 주는 미용실 봤어예⁠? 공짜 파마는 다음 달에 염색 값이 두 배라예⁠.⁠”

봉달이 입을 삐죽이는 사이에 주차장 저편에서 세령이 걸어왔다⁠. 세령의 차는 회사 대표가 탈 것 같지 않은 작고 오래된 흰 차였다⁠. 세령은 세 사람 앞을 지나다 멈췄다⁠. 정례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님 말씀⁠, 맞습니다⁠.⁠”

“⁠어떤 말이요⁠?⁠”

“⁠덕주 님은 고생했다고 할 분이 아니셨겠죠⁠. 녹음을 들어 보면 압니다⁠.⁠”

“⁠녹음을 들어 봤어요⁠? 우리 양반 녹음을⁠?⁠”

세령은 대답하지 않고 차 문을 열었다⁠. 차에 오르기 전에 한마디를 더 했다⁠.

“⁠그래도 어머님은 그 말을 기다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기다리시는 걸 드렸습니다⁠.⁠”

작은 흰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봉달이 서류를 무릎에서 내려놓았다⁠. 정례는 차 꽁무니를 오래 보았다⁠. 귀가 따끔했다⁠.

*

희온은 병동 휴게실에서 점심을 먹다가 동료 간호사가 내미는 휴대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이거 선생님 어머니 맞죠⁠? 지금 난리 났어요⁠.⁠”

화면 속에서 크림색 스웨터를 입은 정례가 마이크를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죽은 사람 목소리로 할부 하지 마세요⁠」라는 자막이 화면 아래에서 깜박였다⁠. 생방송 조회 수 옆 숫자가 팔천을 넘어가고 있었다⁠. 댓글 창은 읽을 수 없을 만큼 빨리 올라갔다⁠. 「⁠우리 엄마도 저 서비스 써요⁠」 「⁠보일러 트세요 어머니⁠」 「⁠대표 운동화 어디 거임⁠?⁠」

희온은 화면 속 엄마의 손을 보았다⁠. 마이크를 쥔 손등에 김장할 때 고춧가루에 쓸린 자국이 아직 빨갰다⁠. 희온은 제 휴대전화를 꺼내 가족 단톡방 「⁠우리집⁠」에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다시 썼다⁠.

「⁠엄마 보일러 틀어⁠.⁠」

답이 오지 않았다⁠. 희온은 컵라면 국물을 다 마시고 화장실에 가서 오래 손을 씻었다⁠.

*

저녁이 되자 단톡방이 터졌다⁠. 엽순이 생방송 설명란에 모임 단톡방 주소를 걸어 둔 탓이었다⁠. 정례가 저녁 밥상을 차리는 동안 휴대전화가 쉬지 않고 떨었다⁠. 백 명이 넘었고⁠, 삼백 명이 넘었고⁠, 밥을 푸는 사이에 천 명이 넘었다⁠. 엽순이 방을 다섯 개로 나누고 동네마다 반장을 세웠다⁠. 봉달은 확인 치는 손가락이 아프다며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확인⁠, 확인⁠, 확인⁠. 다 확인이여⁠.⁠」

텔레비전 저녁 뉴스 끝자락에 정례가 나왔다⁠. 「⁠“⁠보일러 안 틀어요⁠” 60대 이용자 발언 화제⁠… 고인 음성 서비스 요금 논란⁠」 화면 속 정례는 마이크를 너무 가까이 대고 있어서 입이 화면의 반을 차지했다⁠. 정례는 리모컨을 들어 소리를 껐다⁠.

“⁠흠흠⁠. 당신 텔레비전 나왔네⁠.⁠”

“⁠봤어요⁠?⁠”

“⁠목소리 들었지⁠.⁠”

“⁠어땠어요⁠?⁠”

“⁠잘했어⁠.⁠”

정례는 숟가락을 든 채 맞은편 빛을 보았다⁠. 덕주는 살아서 잘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덕주가 하던 말은 “⁠시끄럽다⁠”였을 것이다⁠. 정례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말도 어디서 배웠어요⁠?⁠”

빛이 흔들렸다⁠. 대답이 없었다⁠. 정례는 녹음 단추를 눌러 둔 휴대전화를 식탁 가운데로 밀어 놓았다⁠. 빨간 점이 깜박였다⁠.

밤 열 시⁠, 엽순이 마지막으로 숫자를 올렸다⁠. 「⁠이천사백십이 명⁠. 언니야⁠, 우리 동네 아이라 전국이라예⁠.⁠」 숫자 밑에 세령 회사의 공지가 퍼다 붙여져 있었다⁠. 「⁠새 이용 약관 동의 시 1월 무료⁠」 반장들이 벌써 물었다⁠. 「⁠이거 동의해도 됩니꺼⁠?⁠」 「⁠공짜면 해야지⁠.⁠」 「⁠모임이랑 상관없다 했잖아⁠.⁠」

정례가 답을 쓰려고 돋보기를 찾는 사이⁠,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은정례 님⁠,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잇는소리 모델 엔지니어 남탄영입니다⁠. 덕주 님 목소리는 제가 만들었습니다⁠. 새 약관에 서명하지 마세요⁠. 모임 분들도요⁠. 이유는 문자로 못 드립니다⁠.⁠」

정례는 문자를 두 번 읽었다⁠. 돋보기는 머리 위에 있었다⁠. 돋보기를 내려 쓰고 세 번째로 읽었다⁠. 맞은편 빛이 의자 위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정례는 답장을 썼다⁠.

「⁠그럼 얼굴 보고 말해요⁠. 내일⁠. 밥은 내가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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