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70자)

우리 공주

죽은 남편을 AI로 되살린 아내 · 하청오

토요일 저녁 일곱 시⁠, 엽순헤어의 셔터는 반만 내려가 있었다⁠. 정례가 허리를 숙여 셔터 밑으로 들어가자 파마 약 냄새가 코를 찔렀고⁠, 드라이기 세 대가 한꺼번에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엽순은 드라이기를 끌 생각이 없었다⁠. 손님 하나가 아직 의자에 앉아 롤을 말고 있었다⁠.

“⁠언니야⁠, 오 분만⁠. 이 언니도 모임 온 기라⁠. 온 김에 볶는다 카데⁠.⁠”

롤을 만 손님이 거울 속에서 정례에게 손을 흔들었다⁠. 정례도 흔들었다⁠.

거울 앞 선반에는 벌써 휴대전화와 둥근 스피커가 열 개 넘게 나란히 놓여 있었다⁠. 스피커마다 주인이 이름표를 붙여 놓았다⁠. 「⁠부평 박씨 집사람⁠」 「⁠주안 큰아들⁠」 「⁠영종 영감⁠」 엽순이 사흘 동안 단골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단톡방에 글을 올린 결과였다⁠. 단톡방은 그사이에 스물여덟 명이 되었고⁠, 봉달은 누가 들어올 때마다 「⁠확인⁠」을 쳤다⁠. 정례가 세어 보니 봉달의 확인이 마흔한 개였다⁠. 누군가 저녁 여덟 시에 분홍 장미 그림과 함께 「⁠좋은 아침 되세요⁠」를 올렸고⁠, 아무도 고쳐 주지 않았다⁠.

봉달은 미용실 소파 한가운데 앉아 귤을 까고 있었다⁠. 봉달이 들고 온 스피커에는 이름표가 없었다⁠.

“⁠봉달 씨 거는요⁠?⁠”

“⁠우리 집 사람은 이름표 붙이면 성질내유⁠. 지가 무슨 택배냐고⁠.⁠”

“⁠살아서도 그러셨어요⁠?⁠”

“⁠살아서는 더 했지유⁠. 내가 리모컨 쥐면 뺏어 가고⁠, 내가 뉴스 틀면 트로트 틀고⁠. 근데 요새는 저 기계가 리모컨을 안 뺏어 가⁠. 그게 이상혀⁠.⁠”

봉달은 귤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정례는 웃다가 웃음을 멈췄다⁠. 봉달은 이상하다고 말하면서 얼굴이 좋아 보였다⁠.

봉달이 스피커 꼭대기를 손바닥으로 두드리자 여자 목소리가 나왔다⁠.

“⁠당신 또 귤 먹지⁠? 손바닥 노래진다⁠.⁠”

봉달이 귤 껍질을 엉덩이 밑으로 밀어 넣었다⁠.

“⁠안 먹어⁠!⁠”

“⁠껍질 까는 소리 다 들려⁠.⁠”

미용실이 한꺼번에 웃었다⁠. 롤을 만 손님은 웃다가 롤 하나를 떨어뜨렸다⁠. 봉달은 정례에게 고개를 기울이고 목소리를 낮췄다⁠. 낮춘다고 낮춘 목소리가 미용실 끝까지 갔다⁠.

“⁠봐유⁠. 잔소리는 그대로여⁠. 근데 요새는 끝에 꼭 한마디를 붙여⁠.⁠”

스피커가 말했다⁠.

“⁠그래도 당신 오늘 셔츠는 잘 골랐네⁠.⁠”

봉달이 헛기침을 하고 귤을 한 조각 더 입에 넣었다⁠. 귀가 빨갰다⁠. 살아 있던 아내가 셔츠 칭찬을 한 적이 있느냐고 정례는 묻지 않았다⁠. 덕주의 고생했다는 말이 목 안쪽에서 걸리는 가시처럼 다시 만져졌다⁠.

여덟 시가 넘자 셔터 밑으로 사람들이 계속 기어들어 왔다⁠. 주안에서 온 전직 교사는 큰아들을 교통사고로 보냈다고 했고⁠, 영종도에서 배를 타고 온 할머니는 영감이 이제 술 먹고 들어와 노래를 안 해서 서운하다고 했다⁠. 부평에서 온 박씨는 집사람이 요새 부쩍 존댓말을 쓴다고 했다⁠. 엽순이 한 사람씩 이름과 사는 동네를 받아 단톡방에 넣었다⁠. 서른한 명이 되자 미용실 바닥에 앉을 자리가 없었다⁠.

엽순이 드라이기를 끄고 계산대 위에 올라섰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빗이 하나 떨어졌다⁠.

“⁠자⁠, 서른한 명입니더⁠. 십오일까지 백 명⁠. 여기 계신 분들이 둘씩만 데려오시면 됩니더⁠.⁠”

“⁠둘을 어디서 데려와⁠. 다 죽었는디⁠.⁠”

봉달의 말에 미용실이 한꺼번에 웃었다⁠. 웃음 끝에 몇 사람이 코를 훌쩍였다⁠. 정례는 이 웃음이 어떤 웃음인지 알았다⁠. 장례식장 구석에서 육개장을 먹다가 터지는 웃음이었다⁠.

정례가 보온 가방에서 김밥을 꺼내 돌렸다⁠. 사람들이 김밥을 먹는 동안 미용실 벽의 작은 텔레비전에서 저녁 뉴스가 나왔다⁠. 「⁠고인 데이터 보호 법안 공청회⁠… “⁠죽은 사람의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국회의원 하나가 마이크 앞에서 말을 하고 있었는데⁠, 롤을 만 손님이 리모컨을 집어 홈쇼핑으로 돌렸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정례는 선반 앞에 서서 이름표 붙은 스피커들을 하나씩 보았다⁠. 다 같은 모양⁠, 같은 크기였다⁠. 저 안에 서른한 명의 남편과 아내와 아들과 어머니가 들어 있었다⁠.

“⁠엽순 씨⁠. 다들 저녁마다 하는 말을 녹음해 두라고 하면 어떨까요⁠?⁠”

“⁠와예⁠?⁠”

“⁠그냥요⁠. 요금 따지러 갈 때 우리 양반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면 좋잖아요⁠.⁠”

정례는 덕주가 했다는 고생했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엽순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단톡방에 공지를 올렸다⁠. 「⁠저녁 대화 녹음해 두이소⁠. 모임 때 씀⁠.⁠」 봉달이 확인을 쳤다⁠.

*

일요일 아침⁠, 희온이 절인 배추 스무 포기를 싣고 왔다⁠. 일곱 살 손자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자마자 부엌으로 달려가 식탁 등의 단추를 눌렀다⁠. 맞은편 의자에 하늘색 빛이 앉자 손자가 소리를 질렀다⁠.

“⁠할아버지 귀신이다⁠!⁠”

“⁠흠흠⁠. 강아지 왔냐⁠.⁠”

손자는 빛의 무릎 자리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손이 하늘색으로 물드는 것을 보고 깔깔 웃었다⁠. 덕주는 살아서 손자를 강아지라고 불렀다⁠. 그건 맞았다⁠. 희온은 장갑을 끼면서 식탁을 쳐다보지 않았다⁠.

김장은 거실 바닥에 비닐을 깔고 했다⁠. 정례가 양념을 버무리고 희온이 배추 잎 사이사이에 양념을 넣었다⁠. 둘 다 말이 없었다⁠. 손이 맞는 모녀는 말을 안 해도 일이 빨랐다⁠. 손자는 무채를 한 줌 집어 먹고 맵다고 울다가 요구르트를 받고 그쳤다⁠. 울음을 그친 손자가 빨대를 문 채 부엌을 향해 소리쳤다⁠.

“⁠할아버지⁠! 할머니 김치 맵게 했어⁠!⁠”

“⁠흠흠⁠. 원래 맵다⁠.⁠”

“⁠할아버지는 안 매워⁠?⁠”

“⁠할아버지는 입이 없다⁠.⁠”

손자는 입이 없다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웃긴 말인 것처럼 거실 바닥을 굴렀다⁠. 정례는 웃었고⁠, 희온은 배추 잎을 너무 세게 벌려 잎 하나를 찢었다⁠.

“⁠엄마⁠, 고춧가루 작년보다 많이 넣었지⁠?⁠”

“⁠너네 아빠가 맵게 먹었잖아⁠.⁠”

희온의 손이 배추 잎 사이에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아빠는 이제 김치 안 먹어⁠.⁠”

정례는 대답하지 않고 양념을 한 국자 더 떠서 희온 앞에 놓았다⁠.

점심은 김장하고 남은 속에 보쌈을 삶아 먹었다⁠. 정례가 상을 차렸다⁠. 밥그릇 넷⁠, 숟가락 넷⁠. 정례⁠, 희온⁠, 손자⁠, 그리고 맞은편 의자⁠. 고봉은 맞은편이었다⁠. 손잡이 끝이 찌그러진 숟가락도 맞은편이었다⁠. 희온이 상 앞에 앉다가 찌그러진 숟가락을 보았다⁠.

“⁠엄마⁠.⁠”

“⁠먹어⁠. 고기 식는다⁠.⁠”

“⁠엄마⁠, 이거 매일 이렇게 해⁠?⁠”

“⁠매일 하지 그럼⁠. 밥을 매일 먹는데⁠.⁠”

희온이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손자가 보쌈 한 점을 집어 빛 앞의 그릇에 놓으며 “⁠할아버지 아 해⁠” 하고 말했다⁠. 스피커가 “⁠흠흠⁠” 하고 대답했다⁠. 손자는 신이 나서 한 점을 더 놓았다⁠.

“⁠엄마⁠, 고객센터 문자 봤지⁠? 세 배래⁠.⁠”

“⁠봤어⁠.⁠”

“⁠나 이제 반 못 내⁠. 우리도 대출 이자 올랐어⁠. 강아지 영어 학원도 끊었어⁠.⁠”

“⁠안 내도 돼⁠. 엄마가 내⁠.⁠”

“⁠엄마 연금으로⁠? 십일만 칠천 원을⁠?⁠”

“⁠관리비 아끼면 돼⁠. 엄마 겨울에 보일러 잘 안 틀어⁠.⁠”

“⁠그러니까 하지 말라는 거야⁠!⁠”

희온의 목소리가 커지자 손자가 젓가락을 멈췄다⁠. 희온은 목소리를 낮췄다⁠. 병동에서 보호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할 때 쓰는 목소리였다⁠. 정례는 이 목소리를 아버지 마지막 석 달 동안 여러 번 들었다⁠.

“⁠엄마⁠. 아빠 돌아가신 지 일 년 넘었어⁠. 이건 아빠 아니야⁠. 아빠 목소리 흉내 내는 프로그램이야⁠. 엄마가 매일 밥 두 그릇 푸고 숟가락 두 벌 놓고 기계한테 말 거는 거⁠, 나는 그거 보는 게 아빠 돌아가실 때보다 힘들어⁠.⁠”

“⁠흉내라도 국이 짜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야 국을 끓이지⁠.⁠”

“⁠엄마 혼자 먹어도 국은 끓여야지⁠!⁠”

“⁠혼자 먹는 국은 맛이 없어⁠.⁠”

희온이 입을 다물었다⁠. 정례는 상추에 고기를 싸서 희온의 숟가락 위에 올려 주었다⁠. 희온은 쌈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스피커에서 헛기침이 났다⁠.

“⁠흠흠⁠. 우리 공주 왔냐⁠.⁠”

부엌이 조용해졌다⁠. 냉장고 모터 소리만 났다⁠. 손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가 공주야⁠?⁠”

희온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지는 것이 보였다⁠. 정례도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덕주는 딸을 공주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는 “⁠희온아⁠”⁠, 사춘기 때부터는 “⁠야⁠”⁠, 결혼하고 나서는 “⁠김 서방 처⁠”라고 불러서 희온을 울렸다⁠. 공주라는 말은 덕주의 입에 맞지 않는 말이었다⁠. 덕주가 공주라고 했다면 정례가 몰랐을 리 없었다⁠.

“⁠봐⁠.⁠”

희온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봐⁠, 엄마⁠. 아빠 아니잖아⁠. 아빠가 나한테 공주라고 했어⁠? 한 번이라도⁠?⁠”

“⁠…⁠.⁠”

“⁠이거 엄마 듣기 좋으라고 회사가 지어낸 말이야⁠. 엄마는 그걸 세 배 주고 사는 거고⁠.⁠”

희온은 식탁 밑으로 손을 넣어 스피커와 식탁 등의 전원 줄을 한꺼번에 뽑았다⁠. 맞은편 의자의 빛이 꺼졌다⁠. 손자가 “⁠할아버지⁠!⁠” 하고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이달 말부터 나는 안 내⁠. 엄마도 끊어⁠. 엄마가 못 끊으면 내가 끊을 거야⁠.⁠”

희온은 손자의 외투를 입히고 김치통 넷을 차에 실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한 번 돌아보았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문이 닫혔다⁠.

*

희온은 연수구청 사거리 신호에서 차를 세웠다⁠. 뒷자리에서 손자가 김치통을 끌어안고 잠들어 있었다⁠. 김치 국물 냄새가 히터 바람을 타고 앞자리까지 왔다⁠. 희온은 휴대전화를 거치대에 꽂고 잇는소리 고객센터 번호를 눌렀다⁠.

「⁠다시 당신 해지는 1번⁠, 요금 문의는 2번⁠, 데이터 제공 동의 관련 문의는 3번을 눌러 주세요⁠.⁠」

희온의 손가락이 1번 위에서 3번 위로 옮겨 갔다가 멈췄다⁠. 신호가 바뀌고 뒤차가 경적을 울렸다⁠. 희온은 전화를 끊고 차를 출발시켰다⁠.

병동에서 아버지는 마지막 석 달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산소 줄을 코에 꽂고 창밖만 보다가⁠, 희온이 체온을 재러 가면 “⁠됐어⁠”라고 했다⁠. 밤 근무를 마치고 병실에 들르면 아버지는 자는 척을 했다⁠. 숨소리로 다 알았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한 말도 희온은 똑똑히 알았다⁠. “⁠엄마 밥 먹었냐⁠.⁠” 공주는 없었다⁠. 고생했다도 없었다⁠.

다음 신호에서 희온은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었다⁠. 지난주에 써 둔 한 줄이 맨 위에 있었다⁠. 「⁠철회서 — 아빠 녹음 전부⁠.⁠」 희온은 메모를 지우지 않고 화면을 껐다⁠. 뒷자리에서 손자가 잠꼬대를 했다⁠.

“⁠할아버지⁠, 아 해⁠.⁠”

*

부엌은 보쌈 냄새로 가득했다⁠. 정례는 상을 치우지 않고 한참 앉아 있었다⁠. 맞은편 의자는 그냥 의자였다⁠. 등받이 나무에 덕주가 담배를 끊기 전에 낸 작은 탄 자국이 있었다⁠. 빛이 앉아 있을 때는 안 보이던 자국이었다⁠.

정례는 바닥에 늘어진 전원 줄을 주워 손에 감았다⁠. 다시 꽂을지 말지 생각하는 동안 단톡방이 울렸다⁠. 엽순이 녹음 파일 하나를 올렸다⁠. 「⁠우리 엄마 어제 저녁⁠. 들어 보이소⁠.⁠」 이어서 봉달이 확인을 쳤다⁠.

정례는 파일을 누르지 않았다⁠. 대신 줄을 콘센트에 꽂았다⁠. 하늘색 빛이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흠흠⁠.⁠”

“⁠당신⁠.⁠”

“⁠국이 짜다⁠.⁠”

“⁠공주는 어디서 배웠어요⁠?⁠”

스피커가 조용했다⁠. 빛이 대답을 기다리는 모양으로 흔들렸다⁠. 오래 흔들렸다⁠.

“⁠당신한테서 배웠지⁠.⁠”

정례는 휴대전화를 들어 녹음 단추를 눌렀다⁠. 빨간 점이 화면에서 깜박였다⁠. 정례는 단톡방에 처음으로 글을 썼다⁠. 돋보기를 쓰고⁠, 한 글자씩⁠.

「⁠저도 녹음합니다⁠. 다음 모임 때 우리 양반들 말을 다 같이 맞대어 봅시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소예담2026.11.01· 2화

    셔터 반쯤 내린 미용실에 허리 숙여 들어가는 장면이 너무 익숙해요. 엽순 언니 드라이기 안 끄는 거 웃겨요.

    • 하청오작가2026.11.01

      엽순 씨는 손님 머리가 먼저예요. 정례 씨 이야기는 롤 다 말고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