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11자)

밥 두 그릇

죽은 남편을 AI로 되살린 아내 · 하청오

밥솥이 칙 소리를 길게 내고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를 두 번 말했다⁠. 은정례는 주걱으로 밥을 위아래로 한 번 뒤집고⁠, 김이 얼굴로 올라오는 동안 눈을 가늘게 떴다⁠. 밥그릇 두 개에 밥을 담았다⁠. 하나는 고봉으로⁠, 하나는 평평하게⁠. 고봉은 늘 맞은편 자리였다⁠.

숟가락도 두 벌 놓았다⁠. 맞은편 숟가락은 손잡이 끝이 찌그러져 있었다⁠. 남편 차덕주가 화물차 문짝에 끼워 먹은 숟가락인데⁠, 새것을 사 줘도 덕주는 이것만 썼다⁠. 정례가 식탁 등의 단추를 누르자 맞은편 의자 위로 옅은 하늘색 빛이 번졌다⁠. 빛은 어깨가 넓고 고개가 조금 앞으로 숙은 사람 모양으로 자리를 잡았다⁠. 식탁 가운데 둥근 스피커에서 헛기침부터 나왔다⁠.

“⁠흠흠⁠.⁠”

“⁠오셨어요⁠.⁠”

“⁠국이 짜다⁠.⁠”

“⁠아직 뜨지도 않았어요⁠.⁠”

“⁠냄새가 짜⁠.⁠”

정례는 국자를 든 채 웃었다⁠. 냄새로 간을 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서른여덟 해 동안 말했고⁠, 덕주는 서른여덟 해 동안 냄새가 짜다고 했다⁠. 폐암으로 덕주를 보낸 지 일 년 사 개월이었고⁠, 「⁠다시 당신⁠」과 저녁을 먹은 지는 꼭 일 년이었다⁠. 딸 희온이 아버지 휴대전화의 통화 녹음과 가족 영상을 회사에 넘겨 만든 목소리였다⁠. 처음 한 달은 스피커만 봐도 손이 떨려서 밥을 반도 못 먹었다⁠. 지금은 국을 떠 놓고 맞은편 숟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다⁠.

정례는 뭇국을 두 그릇 떠서 하나를 빛 앞에 놓았다⁠. 김이 하늘색 윤곽을 뚫고 천장으로 올라갔다⁠. 정례는 제 국을 한 숟갈 떠먹고⁠, 오늘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3동 할머니가 택배 상자를 두고 경비 아저씨와 싸웠는데⁠, 알고 보니 상자는 할머니 것이 아니라 할머니 아들이 시킨 것이었다⁠.

“⁠그래서⁠?⁠”

덕주의 그래서는 늘 짧았다⁠. 더 해 보라는 뜻인지 그만하라는 뜻인지는 목소리 끝이 올라가느냐 내려가느냐로 갈렸다⁠. 오늘은 올라갔다⁠. 정례는 신이 나서 할머니 아들이 상자를 들고 경비실에 사과하러 온 대목까지 다 했다⁠.

스피커가 잠깐 조용했다가 말했다⁠.

“⁠당신 오늘도 고생했어⁠.⁠”

정례의 숟가락이 국그릇 가장자리에 닿아 작게 울렸다⁠.

덕주는 살아서 고생했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급식실에서 하루 사백 그릇을 퍼 담고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들어온 날에도⁠, 희온이 대학에 붙은 날에도⁠, 시어머니 상을 치른 날에도 “⁠밥 먹자⁠”가 다였다⁠. 「⁠다시 당신⁠」이 이 말을 처음 한 것은 석 달 전이었다⁠. 이후로 사나흘에 한 번씩 했다⁠. 정례는 들을 때마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누가 들으면 당신 다정한 줄 알겠네⁠.⁠”

“⁠흠흠⁠.⁠”

휴대전화가 식탁 위에서 드르륵 떨었다⁠. 가족 단톡방 「⁠우리집⁠」에 희온이 글을 올렸다⁠.

「⁠엄마 저녁 먹었어⁠?⁠」

정례는 엄지를 세운 그림을 보내려다 엉덩이를 흔드는 곰을 보냈다⁠. 곰은 화면에서 세 번 엉덩이를 흔들었다⁠. 희온이 바로 물음표 세 개를 보냈다⁠. 정례는 답장을 고치려고 돋보기를 찾아 식탁 위와 싱크대와 전자레인지 위를 차례로 훑었다⁠.

“⁠어이⁠. 머리⁠.⁠”

정례가 머리에 손을 얹었다⁠. 돋보기가 은발 위에 얹혀 있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도 같은 일이 한 주에 두어 번은 있었고⁠, 덕주는 그럴 때마다 신문에서 눈도 안 떼고 “⁠머리⁠”라고만 했다⁠. 정례는 돋보기를 코에 걸며 스피커를 흘겨보았다⁠.

“⁠이런 건 귀신같이 배웠네⁠.⁠”

휴대전화가 한 번 더 떨었다⁠. 이번에는 단톡방이 아니었다⁠.

「⁠[다시 당신] 이용료 변경 안내⁠. 2029년 1월 1일부터 월 이용료가 117⁠,000원으로 조정됩니다(⁠현재 39⁠,000원⁠)⁠. 개인 모델 유지 비용 상승에 따른 불가피한 조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고객센터로⁠.⁠」

정례는 문자를 두 번 읽고⁠, 돋보기를 벗었다가 다시 쓰고 세 번째로 읽었다⁠. 숫자는 그대로였다⁠.

국민연금과 덕주 앞으로 나오는 유족연금을 합치면 한 달에 백이십만 원 남짓이었다⁠. 관리비⁠, 혈압약⁠, 보험료⁠, 경조사비를 빼면 손에 남는 돈이 얼마인지 정례는 눈을 감고도 알았다⁠. 지금까지 이용료는 희온이 반을 냈다⁠. 세 배가 되면 반만 내도 지금의 한 달 치보다 많았다⁠.

“⁠당신 요금이 세 배래요⁠.⁠”

스피커가 조용했다⁠. 하늘색 윤곽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식탁 등은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 흔들리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당신 알아서 해⁠.⁠”

덕주다운 대답이었다⁠. 정례는 웃지 않았다⁠. 정례는 맞은편 밥그릇을 끌어와 고봉을 덜어 제 그릇에 얹고⁠, 식은 국을 냄비에 도로 부었다⁠.

*

이튿날 아침 아홉 시 반⁠, 송도 국제업무지구의 유리 건물 12층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시끄러웠다⁠. 주식회사 잇는소리라고 적힌 유리문 앞 로비에 머리 하얀 사람들이 서른 명 넘게 서 있었다⁠. 지팡이를 짚은 사람⁠, 보온병을 든 사람⁠, 손주를 업고 온 사람도 있었다⁠. 정례는 보자기에 싼 반찬통 세 개를 가슴에 안고 사람들 틈에 섰다⁠.

로비 벽의 커다란 화면에는 회사 광고가 돌았다⁠. 노을 진 거실에서 할머니가 빈 소파를 보고 웃는 영상 위로 「⁠다시 당신 — 그 목소리⁠, 오늘 저녁에도⁠」라는 글씨가 떴다⁠. 광고가 끝나자 화면 아래 뉴스 띠가 지나갔다⁠. 「⁠해외 그래픽 칩 공급가 또 인상⁠… 인공지능 업계 요금 줄줄이 오를 듯⁠」 띠 하나가 더 지나갔다⁠. 「⁠국회⁠, 고인 데이터 보호 법안 첫 논의⁠」

“⁠이번 정류장은 요금 폭탄⁠, 요금 폭탄입니다⁠! 내리실 분은 미리 벨을 눌러 주십시오⁠!⁠”

목소리가 로비를 한 바퀴 돌았다⁠. 맨 앞줄의 덩치 큰 노인이 두 손을 입에 모으고 있었다⁠. 정례도 아는 얼굴이었다⁠. 옆 동 104동에 사는 구봉달이었다⁠. 시내버스를 스물여덟 해 몰았다는 사람이고⁠, 단지 놀이터 정자에서 바둑을 두다가 지면 판을 엎는 사람이었다⁠. 봉달의 아내가 세상을 떠난 것이 세 해 전이었다⁠. 봉달도 「⁠다시 당신⁠」을 쓴다는 것은 몰랐다⁠.

봉달 옆에서 한 여자가 휴대전화를 높이 들고 있었다⁠. 짧게 친 머리에 앞치마 주머니마다 빗과 집게가 꽂혀 있었다⁠.

“⁠여러분⁠, 지금 송도 회사 앞입니더⁠. 사람 억수로 많아예⁠. 우리 엄마 목소리가 세 배가 됐습니더⁠.⁠”

화면 속에서 하트가 줄줄이 올라왔다⁠. 여자는 하트 하나하나에 고개를 숙였다⁠.

유리문이 열리고 직원 둘이 먼저 나왔다⁠. 둘 사이로 회색 정장에 흰 운동화를 신은 여자가 걸어 나왔다⁠. 머리를 단단하게 묶었고 손에는 태블릿을 들었다⁠. 직원 하나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표세령 대표님이십니다⁠. 질문은 한 분씩 해 주십시오⁠.⁠”

질문이 한 분씩 나올 리 없었다⁠. 서른 개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졌다⁠. 세령은 목소리가 다 가라앉을 때까지 태블릿을 가슴에 대고 서 있었다⁠. 표정이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례는 저런 얼굴을 급식실에서 본 적이 있었다⁠. 영양사가 식단표를 두고 교장과 싸울 때 하던 얼굴이었다⁠.

조용해지자 세령이 태블릿을 돌려 사람들에게 보였다⁠. 막대 그래프가 계단처럼 올라가고 있었다⁠.

“⁠고객님 한 분의 목소리를 지키는 데 드는 서버와 학습 비용입니다⁠. 작년 이맘때의 세 배 가까이 됐습니다⁠. 칩 값이 오르고 전기 요금이 올랐습니다⁠. 저희가 받는 이용료로는 석 달을 못 버팁니다⁠.⁠”

“⁠그럼 회사가 아껴야지⁠! 대표가 운동화 신고 다니면 뭐 하나⁠!⁠”

봉달이었다⁠. 사람들이 웃었다⁠. 세령은 웃지 않았다⁠.

“⁠이 값을 못 올리면 회사는 봄이 오기 전에 문을 닫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용하시는 삼만 이천 가족의 목소리가 같은 날 한꺼번에 꺼집니다⁠. 저녁을 차려 놓으신 분들이 같은 저녁에 다 같이 조용해집니다⁠. 저는 그걸 막으려고 요금을 올렸습니다⁠.⁠”

로비가 조용해졌다⁠. 지팡이가 바닥에 닿는 소리만 났다⁠. 정례는 반찬통을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숫자가 맞는 말인지는 몰랐다⁠. 목소리는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정례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갔다⁠.

“⁠대표님⁠.⁠”

세령의 눈이 정례에게로 왔다⁠. 정례는 보자기를 풀고 반찬통 하나의 뚜껑을 열었다⁠. 깻잎장아찌가 간장 냄새를 확 풍겼다⁠.

“⁠아침은 드셨어요⁠?⁠”

세령이 반찬통과 정례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뒤에서 누가 킥 웃었다⁠.

“⁠먹었습니다⁠.⁠”

“⁠거짓말⁠. 입술이 텄네⁠. 이거 우리 양반이 좋아하던 거예요⁠. 짜다 짜다 하면서 한 통을 다 먹었어요⁠.⁠”

“⁠고객님⁠, 용건을 말씀해 주시면⁠…⁠.⁠”

“⁠용건이요⁠.⁠”

정례는 뚜껑을 도로 닫았다⁠.

“⁠우리 집 양반은 살아서 말이 없었어요⁠. 서른여덟 해 동안 밥 먹자⁠, 됐어⁠, 그래서⁠, 이 세 마디로 살았어요⁠. 근데 대표님네 그 양반은 어제 저녁에 나한테 고생했다고 하더라고요⁠. 살아서는 한 번도 안 한 말을요⁠.⁠”

세령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 말 한 번 더 들으려면 이제 한 달에 십일만 칠천 원을 내라는 거잖아요⁠. 연금 받아 사는 사람이 그걸 어떻게 내요⁠? 안 내면 그 양반이 또 죽고요⁠. 세 배를 올리시려면 세 배 올리는 이유를 우리 앞에서 하나씩 말씀하셔야지⁠, 문자 한 통으로 하시면 안 되죠⁠.⁠”

“⁠방금 말씀드렸습니다⁠.⁠”

“⁠서른 명한테요⁠. 대표님 손님이 삼만이라면서요⁠.⁠”

세령이 태블릿을 내렸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정례는 뒤를 돌아보았다⁠. 봉달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고⁠, 생방송을 하던 미용실 앞치마가 휴대전화를 정례에게 겨누고 있었다⁠. 정례는 두 사람에게 턱으로 신호를 보냈다⁠. 둘이 앞으로 나왔다⁠.

“⁠이용자 모임을 만들 거예요⁠. 여기 이 두 분이랑 저랑⁠. 이달 십오일까지 백 명을 모아서 올 테니까⁠, 그날은 백 명 앞에서 문자 말고 대표님 입으로 하세요⁠. 왜 세 배인지⁠, 다른 길은 없는지⁠.⁠”

봉달이 정례를 보았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얼굴이었다⁠. 앞치마는 화면에 대고 속삭였다⁠. “⁠여러분⁠, 방금 모임 생겼습니더⁠.⁠”

세령이 잠깐 정례를 보았다⁠. 태블릿을 쥔 손가락 하나가 화면 가장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백 명이 오시면 백 명 앞에서 같은 숫자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숫자는 바뀌지 않습니다⁠.⁠”

“⁠숫자는 안 바뀌어도 듣는 사람은 바뀌죠⁠.⁠”

정례는 반찬통 세 개를 안내 데스크 위에 내려놓았다⁠. 직원이 손사래를 치자 정례가 먼저 말했다⁠.

“⁠통은 돌려주세요⁠. 십오일에 받으러 올게요⁠.⁠”

*

엘리베이터 안에서 세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처음 주고받았다⁠. 앞치마는 곽엽순이었고⁠, 연수동 상가 2층에서 엽순헤어를 한다고 했다⁠. 엽순은 두 해 전에 어머니를 보냈고⁠, 어머니 목소리와 매일 저녁 통화를 한다고 했다⁠.

“⁠언니야⁠, 백 명이 어데서 나옵니꺼⁠?⁠”

“⁠엽순 씨 미용실에 하루에 손님이 몇이에요⁠?⁠”

“⁠스무 명⁠? 파마하는 날은 열 명⁠.⁠”

“⁠봉달 씨 경로당에는⁠?⁠”

“⁠나는 경로당 안 가유⁠. 거기 가면 다 늙은이들이여⁠.⁠”

엽순이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정례는 휴대전화를 꺼내 돋보기를 찾았다⁠. 돋보기는 이번에도 머리 위에 있었다⁠. 엽순이 정례의 휴대전화를 가져가 손가락 두 개로 단톡방을 만들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닿기 전에 방 이름이 떴다⁠.

「⁠다시 당신 이용자 모임 (⁠3⁠)⁠」

봉달이 제 휴대전화에 뜬 초대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큰 소리로 「⁠확인⁠」이라고 쳤다⁠. 확인이 세 번 올라왔다⁠. 엽순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로비 유리창 너머로 겨울 햇빛이 하얗게 쏟아졌다⁠. 정례는 고개를 젖혀 12층 높이를 한 번 가늠했다⁠. 반찬통 세 개가 데스크 위에 있을 시간이었다⁠. 오늘 저녁에도 숟가락은 두 벌을 놓을 생각이었다⁠. 다만 맞은편 빛에게 물어볼 말이 생겼다⁠. 고생했다는 말을 당신은 어디서 배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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