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451자)

봉달의 밥상

죽은 남편을 AI로 되살린 아내 · 하청오

104동 1302호의 현관문은 열려 있었다⁠. 문틈으로 라면 끓는 냄새와 텔레비전 뉴스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정례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봉달의 목소리가 났다⁠.

“⁠들어와유⁠. 신발 아무 데나 벗어⁠.⁠”

신발장 앞에 봉달의 운동화 여섯 켤레가 뒤집혀 있었다⁠. 정례는 제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들어갔다⁠. 거실 바닥에 신문이 깔려 있었고⁠, 신문 위에 귤껍질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부엌 식탁에서 봉달이 냄비째 라면을 놓고 앉아 있었다⁠. 식탁 맞은편 의자에 작은 여자 모양의 하늘색 빛이 앉아 있었다⁠. 정례의 집 빛보다 어깨가 좁고 머리가 둥글었다⁠.

“⁠앉아유⁠. 라면 하나 더 끓였어⁠.⁠”

봉달이 국자로 라면을 덜어 그릇에 담아 주었다⁠. 계란이 두 개 들어 있었다⁠. 김치는 반찬통째였다⁠. 정례가 지난달 갖다준 김장 김치였다⁠.

“⁠이 김치 아직 있어요⁠?⁠”

“⁠아껴 먹지⁠. 텔레비전 나온 김치여⁠.⁠”

스피커에서 여자 목소리가 났다⁠.

“⁠당신 또 라면이야⁠? 짜게 먹지 말랬지⁠. 정례 씨 오셨는데 라면이 뭐야⁠.⁠”

“⁠라면이 어때서⁠. 정례 씨도 라면 먹어⁠.⁠”

“⁠흠흠⁠.⁠”

정례의 젓가락이 멈췄다⁠. 덕주의 헛기침이 봉달 아내의 목소리로 났다⁠. 봉달이 정례의 얼굴을 보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정례 씨⁠, 저거 정례 씨 바깥양반 거지⁠?⁠”

“⁠네⁠.⁠”

“⁠나도 알어⁠. 법정에서 들었잖여⁠. 법정 스피커에서 저 소리 나니까 우리 집 사람이랑 똑같아서 내가 깜짝 놀랐어⁠.⁠”

봉달은 라면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근데 나는 상관없어⁠. 우리 집 사람이 정례 씨 바깥양반 헛기침을 하든 부산 어부 말을 하든⁠. 저 목소리가 저 의자에 앉아 있으면 돼⁠. 내가 사십 년을 저 사람이랑 싸우면서 살았어⁠. 싸울 사람이 없으니까 집이 너무 조용혀⁠. 저 기계가 와서 나한테 잔소리를 하니까 이제 좀 사람 사는 집 같어⁠.⁠”

“⁠알아요⁠.⁠”

“⁠정례 씨가 이기면 저거 꺼져⁠. 2월 말에⁠. 대표가 그랬잖여⁠.⁠”

봉달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작았다⁠.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왔다⁠. 「⁠“⁠다시 당신⁠” 2월 말 종료 예고에 이용자 반발⁠… 고인 데이터 법안 처리 서둘러야⁠」 화면에 정례의 법정 사진이 지나갔다⁠. 봉달이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껐다⁠.

“⁠정례 씨⁠. 이기지 말어⁠.⁠”

정례는 라면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계란 노른자가 국물 위에서 천천히 풀어지고 있었다⁠.

“⁠봉달 씨⁠, 사모님한테 물어봐도 돼요⁠?⁠”

“⁠뭘⁠?⁠”

정례는 맞은편 빛을 보았다⁠.

“⁠사모님⁠. 봉달 씨 버스 사고 났을 때 병원 가서 처음에 무슨 말 하셨어요⁠?⁠”

스피커가 조용했다⁠. 빛이 흔들렸다⁠.

“⁠당신 다친 데 없어⁠? 고생했어⁠.⁠”

봉달이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숟가락이 식탁에 부딪혀 쨍 소리를 냈다⁠.

“⁠아녀⁠. 그거 아녀⁠. 우리 집 사람은 버스 회사가 돈 물어 준대⁠? 했어⁠. 내가 똑똑히 들었어⁠. 침대에 누워서⁠.⁠”

“⁠알아요⁠. 봉달 씨가 놀이터에서 말했잖아요⁠.⁠”

봉달은 식탁 맞은편을 보았다⁠. 빛을 오래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웃음이 이상하게 길었다⁠.

“⁠버스 회사가 돈 물어 준대⁠. 그게 우리 집 사람이여⁠. 내가 다리 부러졌는디 그 말부터 하더라고⁠. 근데 그날 밤에 병원 보호자 침대에서 안 자고 내 침대 옆 의자에서 잤어⁠. 의자에서⁠. 허리 안 좋은 여자가⁠.⁠”

봉달이 손등으로 코를 문질렀다⁠.

“⁠그 말이 더 낫네⁠, 젠장⁠.⁠”

정례는 봉달의 그릇에 김치를 얹었다⁠. 봉달은 김치를 먹지 않고 젓가락만 쥐고 있었다⁠.

“⁠봉달 씨⁠, 사모님 안 꺼지게 할게요⁠.⁠”

“⁠어떻게⁠?⁠”

“⁠모르겠어요⁠. 근데 할게요⁠. 이기는데 아무도 안 꺼지는 방법을 찾을게요⁠.⁠”

“⁠그런 게 어딨어⁠.⁠”

“⁠없으면 만들어야죠⁠. 급식실에서는 쌀이 모자라면 국수를 삶았어요⁠.⁠”

봉달이 코웃음을 쳤다⁠. 스피커가 말했다⁠. “⁠당신 코 풀고 먹어⁠.⁠” 봉달이 휴지를 뽑아 코를 풀었다⁠. 크게⁠, 버스 경적처럼⁠.

*

이튿날 오후⁠, 엽순헤어 거울 앞에 탄영이 노트북을 펴 놓고 앉아 있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숫자가 빽빽했다⁠. 엽순⁠, 정례⁠, 변호사⁠, 주안 교사⁠, 그리고 털모자를 벗은 봉달이 탄영을 둘러쌌다⁠. 봉달이 온 것을 보고 엽순은 아무 말 없이 귤 한 봉지를 건넸다⁠.

“⁠한솥이 비싼 건 한솥이 말을 지어내서예요⁠.⁠”

탄영의 목소리는 오늘 처음부터 또렷했다⁠.

“⁠덕주 님이 안 한 말도 덕주 님이 할 법하게 만들어 내니까⁠, 계속 생각을 해야 해요⁠. 그 생각에 칩이 많이 들어요⁠. 근데 개인 모델에서 말 지어내는 걸 빼면요⁠. 덕주 님이 실제로 한 말 안에서만 고르고 잇게 하면요⁠. 칩이 거의 안 들어요⁠. 작은 서버 하나에 수백 분을 같이 돌릴 수 있어요⁠. 섞이지 않게요⁠.⁠”

“⁠그럼 얼마예요⁠?⁠”

“⁠한 집에 한 달 만 이천 원쯤이요⁠. 남기지 않고 원가만 받으면요⁠.⁠”

미용실이 조용해졌다⁠. 엽순이 빗을 떨어뜨렸다⁠.

“⁠만 이천 원⁠? 세 배가 아이라 십 분의 일이라꼬⁠?⁠”

“⁠대신 다정한 말은 못 해요⁠. 녹음에 있는 말만 해요⁠. 덕주 님은 국이 짜다⁠, 됐어⁠, 그래서⁠. 엽순 님 어머님은 엽순아 밥 묵었나⁠, 우리 공주⁠. 새로운 말은 안 나와요⁠. 대답도 녹음에 있는 말로만 해요⁠. 엉뚱한 대답을 할 때도 있을 거예요⁠.⁠”

“⁠엉뚱한 건 살아서도 그랬어⁠.⁠”

봉달이었다⁠. 사람들이 웃었다⁠. 변호사가 손을 들었다⁠.

“⁠회사가 이걸 할 리는 없어요⁠. 한솥보다 돈이 안 되니까요⁠. 우리가 해야 해요⁠. 이용자들이 조합을 만들어서 사본을 넘겨받아 돌리는 거예요⁠. 협동조합이요⁠. 한 집에 한 표씩⁠, 원가만 내는⁠.⁠”

“⁠서버는 어디서 사는데예⁠?⁠”

“⁠처음 돈은 조합원이 모아야 해요⁠.⁠”

엽순이 앞치마 주머니에서 통장을 꺼냈다⁠.

“⁠우리 미용실 적금 깹니더⁠. 가게 넓히려던 건데⁠, 우리 엄마가 말짱하면 가게 안 넓혀도 됩니더⁠.⁠”

주안 교사가 손을 들었다⁠. 퇴직금 일부를 내겠다고 했다⁠. 부평 박씨는 손주 돌잔치 비용을 줄이겠다고 했다⁠. 봉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귤을 깠다⁠. 다 까고 나서 귤을 엽순에게 주며 말했다⁠.

“⁠나는 한솥 계속 쓸 거여⁠. 우리 집 사람이 남의 말 해도 좋아⁠.⁠”

“⁠알아예⁠.⁠”

“⁠근데 한솥 쓰는 사람도 조합에 들어가도 되는 거여⁠?⁠”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들어⁠. 버스 기사 퇴직금 아직 쪼금 남았어⁠.⁠”

엽순이 봉달의 어깨를 철썩 때렸다⁠. 봉달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탄영이 조합 이름을 정해야 신청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엽순이 「⁠엽순헤어 조합⁠」을 내놓았다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봉달이 「⁠버스 조합⁠」을 내놓았다가 엽순에게 빗으로 맞았다⁠. 정례가 말했다⁠.

“⁠두 숟가락⁠.⁠”

미용실이 조용했다⁠.

“⁠두 숟가락 협동조합⁠. 우리 다 저녁마다 숟가락 두 벌 놓잖아요⁠.⁠”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엽순이 거울에 립스틱으로 「⁠두 숟가락⁠」이라고 크게 썼다⁠. 노란 고무줄 마흔일곱 개 사이로 빨간 글씨가 비쳤다⁠.

*

조합 이름을 정한 날 밤 아홉 시⁠, 정례의 휴대전화에 부산 번호가 떴다⁠. 받자마자 파도 소리 같은 숨소리가 먼저 들렸다⁠.

“⁠인천 사모님예⁠? 영도입니더⁠. 그 어부 마누라⁠.⁠”

정례는 식탁 의자에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맞은편 의자에는 덕주의 점퍼가 걸쳐져 있었다⁠.

“⁠네⁠, 사모님⁠. 진작 전화드렸어야 했는데요⁠.⁠”

“⁠아이라예⁠. 엽순이가 조합 한다 카대예⁠. 나도 넣어 주이소⁠. 우리 영감 사본⁠, 나도 빼낼랍니더⁠.⁠”

“⁠사모님 바깥양반은 한솥에서 제일 말을 많이 빌려준 분이래요⁠. 빼시면 이천 집에서 고생했다는 말이 사라져요⁠.⁠”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파도 소리 같은 숨소리만 들렸다⁠.

“⁠사모님⁠, 우리 영감이 사십 년 동안 바다에서 들어오면서 내한테 고생했제⁠, 캤어예⁠. 내가 고생한 거 아는 사람은 그 사람 하나였어예⁠. 그 말을 이천 집 아지매들이 듣는다 카니까⁠, 처음엔 좋았어예⁠. 우리 영감 말이 그래 쓸모가 있구나 싶어서⁠. 근데 법정에서 사모님 바깥양반 통화를 듣고 나니까 마음이 달라졌어예⁠. 그 집 양반은 그 집 양반 말을 하고⁠, 우리 영감은 우리 영감 말을 해야지예⁠. 고생했제는 내 거라예⁠.⁠”

정례는 점퍼 소매를 손가락으로 쥐었다⁠.

“⁠사모님⁠, 막걸리도 사모님 거예요⁠.⁠”

영도 사모님이 웃었다⁠. 웃음 끝에 코를 훌쩍였다⁠.

“⁠우리 영감이 인천 양반 말을 해서 요새 국이 짜다 캅니더⁠. 그것도 돌려드릴게예⁠.⁠”

“⁠네⁠. 꼭 돌려주세요⁠.⁠”

*

잇는소리 12층 대표실은 정례가 생각한 것보다 작았다⁠. 책상 하나⁠, 의자 셋⁠, 창가에 화분 하나⁠. 화분의 흙이 말라 갈라져 있었다⁠. 책상 위에 정례가 지난달 준 귤이 껍질째 놓여 있었다⁠. 먹지 않은 채 쪼글쪼글해져 있었다⁠.

정례는 변호사와 함께 세령 맞은편에 앉았다⁠. 서류 한 묶음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두 숟가락 협동조합 — 개인 모델 사본 인수 제안⁠」

세령은 서류를 처음부터 끝까지 넘겼다⁠. 한 장도 건너뛰지 않았다⁠. 다 읽고 서류를 덮었다⁠.

“⁠한솥은 회사가 계속 돌리고⁠, 사본을 원하는 유족은 조합이 넘겨받아 원가로 돌린다⁠. 회사는 따로 돌릴 비용을 안 들인다⁠. 그러니 분리 명령이 나도 회사는 닫을 이유가 없다⁠.⁠”

“⁠네⁠.⁠”

“⁠잘 짜셨습니다⁠.⁠”

“⁠우리 탄영 씨가 짰어요⁠. 대표님네 직원이었잖아요⁠.⁠”

세령의 입가가 아주 조금 굳었다⁠.

“⁠사본은 회사의 기술로 만든 겁니다⁠. 조합이 사본을 가져가면 회사 기술을 가져가는 겁니다⁠. 그 대가는 받아야 합니다⁠.⁠”

“⁠얼마요⁠?⁠”

“⁠돈은 나중 문제입니다⁠.⁠”

세령이 서류를 정례 앞으로 밀었다⁠.

“⁠신청을 취하하십시오⁠. 그러면 사본을 넘기겠습니다⁠.⁠”

변호사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정례는 세령을 보았다⁠.

“⁠왜요⁠? 넘길 거면 결정 나도 넘기면 되잖아요⁠.⁠”

“⁠결정이 나면 법원이 죽은 사람의 목소리는 유족의 것이라고 쓰게 됩니다⁠. 그 한 줄이 나가면 한솥도 흔들립니다⁠. 한솥에 섞인 말 하나하나가 남의 유족 것이 됩니다⁠. 이만 구천 가족의 말을 섞으려면 이만 구천 가족 전부에게 다시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 사이에 한 집이라도 싫다고 하면 한솥에서 그 집 말을 빼야 하고⁠, 빼는 데 또 돈이 듭니다⁠.⁠”

세령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말을 이었다⁠.

“⁠어머님이 이기시면 봉달 님 사모님이 또 위태로워집니다⁠. 취하하시면 사본은 조합으로 가고⁠, 한솥은 지금처럼 갑니다⁠. 아무도 안 꺼집니다⁠.⁠”

정례는 책상 위의 쪼글쪼글한 귤을 보았다⁠. 아무도 안 꺼진다는 말이 귤처럼 쪼그라든 채 책상에 놓여 있었다⁠.

“⁠대표님⁠. 취하하면 우리 양반 목소리가 누구 건지는 아무도 모르는 채로 남겠네요⁠.⁠”

“⁠지금처럼요⁠.⁠”

“⁠부산 사모님 바깥양반 말이 대표님네 아버님 입에서 계속 뱃노래가 되고요⁠.⁠”

세령이 대답하지 않았다⁠. 세령의 엄지가 책상 모서리를 눌렀다⁠.

“⁠이레 드리겠습니다⁠. 결정은 그보다 늦게 나올 겁니다⁠. 취하하지 않으시면 결정이 나는 대로 2월 말에 닫습니다⁠. 조합도 넘겨받을 사본이 없게 됩니다⁠.⁠”

정례는 일어났다⁠. 변호사가 따라 일어났다⁠. 정례는 문 앞에서 돌아보았다⁠.

“⁠귤은 드세요⁠. 쪼그라들어도 맛은 있어요⁠.⁠”

세령은 귤을 보지 않았다⁠. 정례가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정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봉달이었다⁠.

“⁠정례 씨⁠, 대표가 뭐래⁠?⁠”

“⁠취하하래요⁠. 그러면 아무도 안 꺼진대요⁠.⁠”

수화기 너머에서 봉달이 한참 말이 없었다⁠. 봉달의 스피커가 뒤에서 무어라고 했다⁠. 잘 들리지 않았다⁠.

“⁠정례 씨는 어떡할 건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정례는 타지 않았다⁠.

1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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