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718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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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감독의 구단 라인업 · 여오령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날 오전 열한 시였다. 우철은 라커룸 사물함 앞에서 손목 테이프를 감다가 휴대전화 진동 소리를 들었다. 모르는 번호가 아니었다. 남포 시걸스 감독이었다. 받자마자 기침 소리부터 났다.
“배우철이. 너네 단장이 너 공짜로 가져가란다.”
테이프 감던 손이 멈췄다.
“공짜요?”
“현금도 선수도 안 받고 그냥 주겠대. 연봉만 우리가 내면. 아홉 구단에 다 돌렸다더라. 우리 운영팀장이 아침에 웃으면서 말해 주더라고.”
“감독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안 가져간다고 했지. 니 연봉이면 우리 불펜 투수 둘이다. 그리고 너 오면 우리 덕아웃이 시끄러워져. 니가 다 들어 버리니까.”
남포 감독이 기침을 하며 웃었다.
“섭섭하냐?”
“조금요.”
“섭섭해하지 마라. 아무도 안 가져간다는 건, 니가 아직 해무 사람이라는 거다. 오늘 밤 열두 시 지나면 니 단장도 너를 어디 못 보낸다.”
전화가 끊겼다. 우철은 손목 테이프를 마저 감았다. 테이프 끝을 이로 끊었다. 옆 사물함 앞에서 의찬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가 화면을 우철에게 내밀었다. 스포츠 기사였다. 「해무, 마감 앞두고 베테랑 대거 정리 시도 … 연봉 총액 감축 목적인 듯」 기사 아래에 해무해운 소식이 붙어 있었다. 「해무해운, 화물선 한 척 매각 … 싱가포르 선원 스물두 명 귀국」
“선배님, 배가 팔려서 선원들이 집에 왔대요. 이건 좋은 거죠?”
“배가 팔렸잖아.”
의찬이 화면을 다시 보았다. 한참 보다가 휴대전화를 내렸다.
*
점심때 우철은 구장에서 걸어서 칠 분 거리의 배팅장에 갔다. 계단을 올라가기도 전에 미강의 목소리가 2층 창문 밖으로 흘러나왔다. 손님에게 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공짜로? 우리 남편을? 스무 해를 공짜로?”
미강이 계산대 뒤에서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있었다. 우철을 보더니 손가락으로 의자를 가리키고 통화를 계속했다.
“아니, 언니. 나 화난 거 아니야. 나 지금 계산하는 거야. 스무 해 동안 우리 남편이 친 안타가 몇 갠데? 그걸 공짜로 준다는 건 그 단장이 산수를 못 하는 거라고.”
전화를 끊은 미강이 우철을 노려보았다.
“선수회 언니들 단톡방에 기사 돌았어. 당신 공짜래.”
“아무도 안 가져갔대.”
“당연하지. 공짜면 의심부터 해야지. 그 구단들이 바보야?”
미강이 기계 공 바구니를 계산대에 쾅 내려놓았다. 4번 철망 앞에서 탄우가 미트를 낀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방학이라 아침부터 배팅장에 나와 있었다.
“엄마, 아빠 공짜야?”
“아니야. 아빠는 비싸. 너무 비싸서 아무도 못 사.”
탄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기계 쪽으로 돌아앉았다. 미트에 공이 꽂혔다. 탕.
미강이 목소리를 낮췄다.
“당신, 단장님이 은퇴하라고 할 때 했으면 이런 기사 안 났어.”
“알아.”
“아는데 왜 안 했어?”
“아직 탄우 앞에서 못 친 타석이 있어서.”
미강이 한참 우철을 보았다. 그러고는 계산대 서랍에서 파스 한 봉지를 꺼내 우철 앞에 던졌다.
“오른쪽 팔꿈치. 냄새 나게 붙이지 말고 보호대 안에 붙여. 경기 중에 파스 냄새 나면 상대 포수가 눈치채.”
“파스 냄새로?”
“당신이 미트 소리 듣듯이, 걔들은 냄새 맡아.”
우철은 파스 봉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미강은 더 묻지 않았다. 봉지를 왜 미리 사 두었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
오후 다섯 시, 경기 전 덕아웃에 세겸이 내려왔다. 우철은 벤치 끝에서 배트 손잡이를 사포로 문지르고 있었다. 사포가 나무를 긁는 소리가 사각사각 났다. 세겸은 우철 앞에 서서 사포 소리가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들으셨죠?”
“공짜로 내놓으셨다고요.”
“아무도 안 데려가네요. 연봉 때문에요. 다들 계산은 할 줄 압니다.”
“단장님은 왜 저한테 직접 말 안 하고 남포 감독님한테 듣게 하셨습니까?”
“데려가는 구단이 있었으면 말씀드렸을 겁니다. 없었으니 말씀드릴 일도 없었고요.”
세겸이 화면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라인업이 떠 있었다. 대타 후보 맨 아래에 우철의 이름이 있었다. 「9. 배우철 · 기대 출루 0.08」
“0.08이네요. 개막전엔 0.11이었는데.”
“단장님은 숫자를 다 기억하시니까요.”
“네. 그래서 오늘 밤 열두 시가 지나면 배 선수님은 시즌 끝까지 해무 사람입니다.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끝까지 같이 가시죠.”
세겸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우철은 사포를 쥔 손을 들어 보였다. 손바닥에 나무 가루가 묻어 있었다. 세겸은 손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 한참 뒤에 주머니에 넣었다.
*
8회 말, 해무는 1 대 2로 지고 있었다. 5위와 한 경기 차였다. 2사 1루와 3루. 상대는 무등 썬더스였고, 마운드에는 4월 비 오던 날 로진을 세 번씩 묻히던 왼손 투수가 올라와 있었다.
화면이 깜박였다.
“대타, 도의찬. 기대 출루 0.30.”
우철은 화면 대신 마운드를 보았다. 투수가 로진 가루를 두 번 묻혔다. 세 번이 아니라 두 번이었다. 7월 밤이라 손에 땀이 많았다. 커브를 던질 손이었다. 왼손 투수의 커브는 오른손 타자 무릎으로 파고들고, 왼손 타자에게서는 도망간다. 의찬은 왼손 타자였다.
우철은 석배 옆으로 갔다. 이번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석배의 조끼를 보기만 했다.
석배가 조끼 지퍼를 내렸다. 지익, 하는 소리가 길게 났다. 빨간 카드 모서리가 지퍼 사이로 보였다. 덕아웃이 조용해졌다. 의찬이 헬멧을 쓰다 말고 석배를 보았다. 고참 포수가 숨을 참았다.
석배의 손가락이 카드 모서리를 잡았다. 카드가 반쯤 올라왔다.
스피커가 말했다.
“대타 도의찬. 확인 바랍니다.”
석배의 손가락이 멈췄다. 카드가 다시 조끼 안으로 내려갔다. 지퍼가 올라갔다. 짧게, 지익.
의찬은 타석에 들어갔다. 투수가 로진을 두 번 묻혔다. 의찬은 첫 공 커브에 헛스윙했고, 두 번째 커브에 또 헛스윙했다. 세 번째 공도 커브였다. 의찬의 배트가 바깥으로 도망가는 공을 쫓아가다 허공을 휘저었다. 삼진.
해무는 9회에 점수를 못 냈다. 1 대 2로 졌다. 5위와 두 경기 차가 됐다.
*
라커룸 문이 쾅 열렸다. 의찬이 헬멧을 사물함에 던졌다. 헬멧이 철문에 부딪혀 둔하게 울렸다. 석배가 뒤따라 들어오다가 걸음을 멈췄다.
“코치님, 왜 안 들었어요?”
의찬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이었다. 라커룸에서 신인이 코치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은.
“저 커브 못 쳐요. 왼손 커브. 저도 알고 항로도 알고 코치님도 알잖아요. 선배님은 오른손이잖아요. 왜 안 들었어요?”
“의찬아.”
“카드 반쯤 꺼냈잖아요! 저 봤어요! 꺼냈다가 왜 넣어요!”
석배는 안경을 만지지 않았다. 손을 조끼 주머니에 넣은 채 서 있었다. 지퍼 너머로 카드의 모서리가 손가락에 닿아 있을 자리였다.
“나도 몰라. 왜 넣었는지.”
석배가 그렇게 말하고 라커룸을 나갔다. 고참들이 의찬의 어깨를 잡았다. 의찬은 사물함에 이마를 대고 숨을 몰아쉬었다. 우철은 의찬의 헬멧을 주워 사물함 위에 올려 두었다. 헬멧 귀덮개에 흠집이 하나 생겨 있었다.
“선배님은 화 안 나요?”
“난다.”
“근데 왜 가만있어요?”
“석배가 나보다 더 화났거든. 자기한테.”
휴대전화가 줄줄이 떨렸다. 「연안부두 늙은 갈매기들」 단톡방이었다.
「석배 코치 카드 반만 꺼냄 ㄷㄷ」 「반만 꺼낼 거면 경매에 내놔라 내가 산다」 「카드 지퍼 소리 중계 마이크에 잡힘 실화」 「지퍼 열 때 우리 집 고양이도 일어남」
맨 아래에 기사 링크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해동리그 이사회, ‘AI 단독 지휘’ 표결 10월 2일 저녁으로 확정 … 해무 성적이 변수」
*
밤 열한 시 반, 구장 조명이 꺼진 뒤 우철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석배였다.
“형, 아직 구장이죠? 분석실로 와요. 지금.”
영상 분석실은 덕아웃 뒤 복도 끝 창문 없는 방이었다. 모니터 여섯 대가 벽에 붙어 있었고, 에어컨이 너무 세서 한여름인데 팔에 소름이 돋았다. 석배는 모니터 앞이 아니라 방 구석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무릎 앞에 회색 금속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신발 상자만 했고, 옆구리에 「비상 복구용 · 덕아웃 전원 연결」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4월에 비 오던 날, 정전 나고 항로가 다시 켜졌잖아요. 그때 이 상자에서 켜진 거예요. 청람이 개막 전에 덕아웃 밑에 설치해 둔 거고요. 서버 끊기면 혼자라도 돌라고.”
“그래서 3.1이었구나.”
“네. 근데 이 상자, 매일 밤 본 서버에서 기록을 받아 와요. 혹시 몰라서 다 복사해 둬요. 판도, 설정도, 누가 언제 뭘 바꿨는지까지. 단장실은 본 서버만 지우면 끝인 줄 알았을 거예요. 이 상자는 덕아웃 거니까, 덕아웃 사람인 제 계정으로 열려요.”
석배가 노트북 화면을 우철 쪽으로 돌렸다. 하얀 바탕에 검은 글자가 줄줄이 내려가 있었다. 석배가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수정 기록 · 2032년 3월 28일 오후 11:43」 「수정자: 단장실 계정 · 청람 기술지원 동석」 「적용 판: 항로 3.2」 「35세 이상 선수 나이 보정: 0.95 → 0.70」 「새 항목 추가: 연봉 부담」
“오후 11시 43분이요. 추 감독님 사진이 11시 41분이고요.”
우철은 화면을 오래 보았다. 숫자는 몇 개 안 됐다. 0.95, 0.70. 바로 밑에 한 줄, 연봉 부담.
“이게 무슨 말이야? 쉽게.”
“서른다섯 넘은 선수는 원래 조금 깎았거든요. 나이 들면 떨어지니까. 그 깎는 폭을 몇 배로 키운 거예요. 그리고 원래 항로는 연봉을 안 봐요. 야구만 보지. 그런데 연봉이 비싼 선수일수록 더 내려가게 하는 항목을 새로 끼워 넣었어요. 둘 다 걸리는 사람이 누구겠어요?”
“나.”
“형, 곰 선배님, 2군 형들 셋. 다요.”
석배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화면이 바뀌었다. 석배는 3.1로 개막전을 처음부터 다시 돌려 놓았다. 9회 말 2사 2·3루. 대타 순위가 떴다.
「1. 배우철 · 기대 출루 0.36 · 대타 권장」 「2. 도의찬 · 기대 출루 0.34」
석배가 안경을 벗었다. 눈가가 붉었다.
“형. 항로는 처음부터 형을 골랐어요. 개막전에도요. 숫자를 바꾼 건 사람이에요.”
*
둘은 분석실을 나와 불 꺼진 불펜으로 갔다. 카메라가 없는 곳이 거기뿐이었다. 불펜 마운드의 흙이 밤이슬에 젖어 있었다. 외야 너머에서 바닷물이 방파제를 치는 소리가 철썩, 철썩 들려왔다. 석배는 불펜 포수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은퇴하기 전에 날마다 앉던 자리였다.
“형, 저 오늘 카드 왜 넣었는지 알아요.”
“말해.”
“카드 들면 성과급 날아가요. 그건 알았어요. 근데 넣은 건 그거 때문이 아니에요. 항로가 맞을까 봐요. 제가 들었는데 형이 못 치면, 그럼 저는 숫자도 사람도 다 틀린 사람이 되잖아요. 그게 무서웠어요.”
“지금은?”
“지금은 숫자가 맞았던 거고, 틀린 건 바꾼 사람이에요.”
석배가 노트북을 품에 안았다. 우철은 불펜 마운드에 올라가 투수판을 밟았다. 스무 해 동안 한 번도 서 보지 않은 자리였다. 홈 플레이트까지가 생각보다 멀었다.
“석배야. 이거 다른 데 복사했냐?”
“아직요. 형한테 먼저 보여 주려고.”
불펜 출입문의 철제 손잡이가 덜컥 돌아갔다. 경첩이 끼익 울었다. 문틈으로 복도 불빛이 길게 들어왔다. 운동화 바닥이 젖은 흙을 밟는 소리가 났다.
세겸이었다. 정장 윗도리를 벗어 팔에 걸고, 넥타이도 없이 셔츠 소매를 걷은 채 불펜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태블릿 대신 휴대전화 하나만 들려 있었다. 화면에 비상 복구 상자의 접속 알림이 떠 있었다. 「덕아웃 복구 장치 · 위석배 계정 접속 · 오후 11:52」
세겸이 불펜 마운드 위의 우철과 포수 자리의 석배를 차례로 보았다.
“보셨으면, 이제 이야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