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96자)

2군 구장

AI 감독의 구단 라인업 · 여오령

강화대교를 건너자 차창으로 거름 냄새가 들어왔다⁠. 6월 첫 월요일⁠, 1군은 쉬는 날이었다⁠. 우철은 운전대를 왼손으로만 잡고 오른팔을 무릎에 얹었다⁠. 논마다 물이 차 있었고⁠, 물 위로 모가 한 뼘씩 올라와 바람에 같은 방향으로 누웠다⁠. 개구리 소리가 차 안까지 들렸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미강이었다⁠. 차 스피커로 목소리가 쩌렁쩌렁 나왔다⁠.

“⁠어디야⁠? 쉬는 날이면 배팅장 기계 3번 좀 고쳐 준다며⁠.⁠”

“⁠강화⁠.⁠”

“⁠강화⁠? 2군 가⁠? 말소됐어⁠?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놀러 가⁠.⁠”

“⁠2군에 놀러 가는 사람이 어딨어⁠. 거기 논밖에 없잖아⁠.⁠”

“⁠논 보러 가⁠.⁠”

“⁠당신 요즘 대답이 다 두 글자야⁠. 강화⁠, 놀러⁠, 논 보러⁠. 연애할 때는 세 글자는 했어⁠.⁠”

“⁠사랑해⁠.⁠”

“⁠세 글자 채우려고 그거 쓰지 마⁠.⁠”

전화가 끊겼다⁠. 우철은 웃으면서 2군 구장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주차장 바닥이 자갈이라 바퀴 밑에서 자글자글 소리가 났다⁠.

*

해무 2군 구장은 논 한가운데 섬처럼 있었다⁠. 낡은 철제 관중석이 1루 뒤에만 있었고⁠, 관중석에는 밀짚모자를 쓴 동네 어르신 넷이 앉아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있었다⁠. 외야 펜스 너머로 경운기 한 대가 털털거리며 지나갔다⁠.

그라운드 한가운데에서 경팔이 밀짚모자를 쓰고 호루라기를 물고 있었다⁠. 열아홉⁠, 스무 살짜리 선수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번호 붙여⁠! 하나⁠!⁠”

“⁠둘⁠!⁠”

“⁠셋⁠!⁠”

“⁠목소리가 그게 뭐냐⁠! 논에 개구리가 너희보다 크다⁠!⁠”

관중석 어르신들이 껄껄 웃었다⁠. 경팔이 우철을 발견하고 호루라기를 뱉었다⁠.

“⁠배 병장⁠! 휴가 나왔냐⁠?⁠”

“⁠외박입니다⁠, 감독님⁠.⁠”

“⁠총괄이다⁠. 육성 총괄⁠.⁠”

경팔이 해바라기씨 봉지를 내밀었다⁠. 우철은 하나를 받아 앞니로 깨물었다⁠. 딱⁠. 1군 덕아웃에서 사라진 소리였다⁠.

1루 불펜에서 공 받는 소리가 났다⁠. 탕⁠, 탕⁠. 우철은 고개를 돌렸다⁠. 곰이었다⁠. 4월에 방출된 왼손 고참이 반바지에 해무 반팔 티를 입고⁠, 열아홉 살 투수의 공을 쪼그려 앉아 받아 주고 있었다⁠.

“⁠형⁠, 여기서 뭐 해요⁠?⁠”

“⁠일없지 뭐⁠. 집에 있으면 마누라가 일 시켜⁠. 여기 오면 공 시키잖아⁠. 공이 낫다⁠.⁠”

곰이 일어나 무릎을 털었다⁠.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났다⁠.

“⁠돈은 안 받아⁠. 총괄이 밥은 사 준다⁠.⁠”

“⁠밥은 구단 돈이다⁠.⁠”

경팔이 뒤에서 소리쳤다⁠. 곰이 손을 휘휘 저었다⁠.

*

경팔이 연습 경기를 하나 붙였다⁠. 2군 청팀과 백팀이었다⁠. 우철은 백팀 대타로 들어갔다⁠. 경팔은 밀짚모자를 쓴 채 포수 뒤에서 주심을 봤다⁠. 주심 마스크가 없어서 선글라스를 꼈다⁠.

“⁠감독님⁠, 선글라스 끼고 주심 보면 안 보이지 않아요⁠?⁠”

“⁠나는 귀로 본다⁠. 너한테 배웠다⁠.⁠”

마운드의 열아홉 살 투수는 키가 컸고 팔이 길었다⁠. 2군 신인 가운데 공이 제일 빨랐다⁠. 연습 투구 하나가 미트에 꽂히는 소리가 1루 관중석까지 탕 하고 갔다⁠. 막걸리를 마시던 어르신들이 고개를 들었다⁠.

우철은 타석에 들어가 눈을 반쯤 감았다⁠. 투수가 와인드업을 하는 순간 작은 소리가 났다⁠. 흡⁠.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였다⁠. 공이 날아왔고⁠, 우철은 그냥 보냈다⁠. 직구⁠. 시속 155킬로미터⁠.

두 번째 공에는 흡 소리가 없었다⁠. 투수가 숨을 참고 던졌다⁠. 공이 바깥으로 휘었다⁠. 슬라이더⁠. 우철은 또 보냈다⁠. 볼⁠.

세 번째 공⁠. 흡⁠.

우철은 미리 배트를 꺼냈다⁠. 공보다 배트가 먼저 나갔다⁠. 오른쪽 팔꿈치가 찌릿했지만 이번에는 반만 휘둘러서 참을 만했다⁠. 공이 투수 옆을 스치고 중견수 앞에 떨어졌다⁠. 관중석의 어르신 하나가 막걸리 잔을 들어 올렸다⁠.

“⁠잘한다⁠, 아재⁠!⁠”

1루에 나간 우철에게 열아홉 살 투수가 마운드에서 소리쳤다⁠.

“⁠선배님⁠! 어떻게 알았어요⁠? 직구인 거⁠!⁠”

“⁠너 직구 던질 때 흡 한다⁠.⁠”

“⁠제가요⁠?⁠”

“⁠해⁠. 슬라이더 던질 땐 숨 참고⁠.⁠”

투수가 글러브로 입을 가렸다⁠. 곰이 불펜에서 배를 잡고 웃었다⁠.

“⁠얘가 그거 고치면 내년에 1군 간다⁠!⁠”

경기가 끝나고 열아홉 살 투수가 우철을 따라와서 물었다⁠. 숨을 안 들이마시고 직구를 던지는 법을 아냐고⁠. 우철은 모른다고 했다⁠. 대신 곰을 가리켰다⁠. 곰은 커브 던질 때 늘 혀를 깨무는 버릇을 고친 투수였다⁠. 열아홉 살 투수가 곰에게로 뛰어갔다⁠. 곰이 귀찮다는 얼굴로 공을 집어 들었다⁠.

*

오후 세 시⁠, 주차장 자갈 위로 검은 승합차가 들어왔다⁠. 세겸이 운영팀장과 함께 내렸다⁠. 운동화가 자갈을 밟는 소리가 사락사락 났다⁠. 세겸은 2군 덕아웃으로 곧장 걸어왔다⁠. 손에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

“⁠코치님⁠, 아니 총괄님⁠. 잠깐 시간 되시죠⁠.⁠”

“⁠안 돼도 할 거잖아⁠.⁠”

세겸이 태블릿 화면을 켰다⁠. 이름 셋이 떠 있었다⁠. 2군에서 다섯 해 넘게 뛴 스물일곱⁠, 스물아홉⁠, 서른한 살 선수들이었다⁠.

“⁠6월 정리입니다⁠. 오늘 통보하겠습니다⁠. 그리고 방출된 선수가 구장에 드나드는 건 보험 문제가 있어서요⁠. 곰 선배님은 오늘부터 출입 안 됩니다⁠.⁠”

경팔이 해바라기씨를 깨물었다⁠. 딱⁠. 껍질을 세겸의 운동화 옆에 뱉었다⁠.

“⁠세겸아⁠.⁠”

“⁠단장입니다⁠, 총괄님⁠.⁠”

“⁠세겸아⁠. 너 열한 살 때 해무 어린이 야구 캠프 왔지⁠? 그때 3루 코치가 나였다⁠. 번트 가르쳐 줬잖아⁠. 너 번트 하나는 기막히게 댔다⁠.⁠”

세겸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졌다⁠. 금세 다시 돌아왔다⁠.

“⁠번트는 비효율입니다⁠. 아웃 하나를 주고 한 베이스를 사는 거니까요⁠. 항로도 그렇게 계산합니다⁠. 지난 시즌 리그 번트 득점 기여는 마이너스입니다⁠.⁠”

“⁠그래서 번트를 안 대냐⁠?⁠”

“⁠안 대는 게 맞습니다⁠.⁠”

“⁠그럼 아웃 하나 주고 한 베이스 사는 건 못 하겠네⁠. 너도⁠.⁠”

“⁠무슨 뜻입니까⁠?⁠”

“⁠사람 하나 주고 구단 하나 사는 건 하잖아⁠. 그건 번트 아니냐⁠?⁠”

덕아웃 안이 조용해졌다⁠. 바깥에서 경운기가 다시 털털거리며 지나갔다⁠. 세겸이 태블릿을 내렸다⁠.

“⁠총괄님⁠, 저도 이 일 좋아서 하는 거 아닙니다⁠. 해무해운에 배 열한 척 있습니다⁠. 한 척은 싱가포르에 묶여 있고요⁠. 채권단은 9월 30일까지 빚 갚으라고 합니다⁠. 못 갚으면 회사가 넘어가고⁠, 넘어가면 구단도 같이 넘어갑니다⁠. 그땐 정리할 사람이 셋이 아니라 전부입니다⁠.⁠”

“⁠알아⁠. 너 힘든 거⁠.⁠”

경팔이 일어났다⁠. 쉰여덟 살 무릎이 뚝 소리를 냈다⁠.

“⁠근데 세겸아⁠, 나를 잘라도 덕아웃에 사람은 남는다⁠. 카드 한 장이라도⁠. 그 카드 없애려고 표결 붙인 거 나도 안다⁠. 표결 통과되면 청람이 너희한테 돈 더 얹어 주는 것도⁠.⁠”

세겸이 처음으로 대답하지 못했다⁠. 운영팀장이 세겸의 옆구리를 슬쩍 보았다⁠. 세겸은 태블릿을 옆구리에 끼고 덕아웃을 나갔다⁠. 나가다가 우철을 보았다⁠. 우철은 덕아웃 끝 배트 걸이 옆에 앉아 있었다⁠. 1군에서와 같은 자리였다⁠.

“⁠배 선수님은 왜 여기 계십니까⁠?⁠”

“⁠논 보러 왔습니다⁠.⁠”

세겸은 대꾸하지 않고 그라운드로 나갔다⁠. 이름 셋을 부르는 소리가 외야까지 들렸다⁠. 곰은 불펜에서 공을 내려놓고⁠, 열아홉 살 투수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반팔 티 차림으로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자갈 밟는 소리가 길었다⁠.

*

해 질 녘⁠, 우철은 외야 펜스 밑 그늘에 앉아 영상 통화를 걸었다⁠. 화면에 갈매기 리틀야구단 연습장이 비쳤다⁠. 인천 학교 운동장 한 귀퉁이였다⁠. 탄우가 포수 장비를 다 차고 마스크만 머리 위로 올린 채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코치가 휴대전화를 쥐어 주었는지⁠, 화면이 자꾸 하늘을 비췄다⁠.

“⁠아빠⁠, 오늘 우리 번트 연습했어⁠. 한 시간 동안⁠.⁠”

“⁠한 시간이나⁠?⁠”

“⁠코치님이 다음 대회는 번트로 이긴대⁠. 우리 팀 애들이 다 키가 작아서⁠.⁠”

탄우가 휴대전화를 친구에게 넘기고 타석에 들어가 배트를 눕혔다⁠. 투수가 던진 공이 배트에 톡 맞아 3루 선상으로 굴렀다⁠. 공이 흙 위에서 죽었다⁠. 친구가 화면에 대고 소리쳤다⁠. 「⁠탄우 번트 짱이에요⁠!⁠」 탄우가 다시 휴대전화를 받아 얼굴을 들이밀었다⁠. 볼이 흙투성이였다⁠.

“⁠아빠는 번트 몇 개 댔어⁠? 프로에서⁠.⁠”

“⁠한 개도 안 댔어⁠.⁠”

“⁠한 개도⁠?⁠”

“⁠대타는 치라고 내보내는 거야⁠. 번트 대라고 대타 내는 감독은 없어⁠.⁠”

탄우가 입을 다물었다⁠. 미트를 두 번 주먹으로 두드렸다⁠. 화면 너머에서 친구들이 탄우를 불렀다⁠. 「⁠탄우야⁠, 너네 아빠는 번트 잘 대지⁠?⁠」 탄우가 휴대전화를 가슴에 붙여 화면을 가렸다⁠. 화면이 까매졌다⁠. 까만 화면 너머로 탄우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응⁠, 잘 대⁠.⁠”

화면이 다시 밝아졌을 때 탄우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아빠⁠, 나 들어가야 돼⁠. 이따 엄마가 기계 3번 고치래⁠.⁠”

통화가 끊겼다⁠. 우철은 펜스에 등을 기댔다⁠. 철망이 등에 차갑게 닿았다⁠. 논에서 개구리가 울기 시작했다⁠.

*

해가 지고 2군 구장 조명탑은 켜지지 않았다⁠. 전기를 아끼느라 그랬다⁠. 경팔과 우철은 어두운 덕아웃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논에서 개구리 소리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경팔이 해바라기씨 봉지를 털었다⁠. 마지막 몇 알이 손바닥에 떨어졌다⁠.

“⁠배 병장⁠.⁠”

“⁠네⁠.⁠”

“⁠여덟 해 전에 너 3루에서 뺀 거⁠, 나다⁠.⁠”

우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개구리 소리 사이로 경팔의 씨 깨무는 소리만 났다⁠.

“⁠수술하고 돌아온 해였지⁠. 너 3루에서 송구할 때마다 팔꿈치를 한 번씩 털었어⁠. 경기 끝나면 라커룸에서 얼음 대고⁠. 너는 아무한테도 말 안 했지만 나는 봤다⁠. 그래서 벤치에 앉혔다⁠. 대타로 돌리면 한 경기에 한 번만 휘두르니까⁠.⁠”

“⁠그때 왜 말 안 하셨어요⁠?⁠”

“⁠네가 말 안 했잖아⁠. 너도 안 하는데 내가 왜 하냐⁠?⁠”

경팔이 씨 껍질을 손바닥에 모았다⁠.

“⁠지금도 얼음 대지⁠? 보호대 밑에⁠.⁠”

우철은 오른쪽 팔꿈치를 왼손으로 감쌌다⁠. 어둠 속이라 경팔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경팔은 보지 않고도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대답 안 해도 된다⁠.⁠”

경팔이 점퍼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 불빛이 경팔의 얼굴을 아래에서 비췄다⁠. 사진첩을 한참 넘겼다⁠. 손녀 돌잔치 사진⁠, 해바라기씨 봉지 사진⁠, 개막전 날 덕아웃 사진이 지나갔다⁠.

“⁠3월 말에 내가 감독실 짐 싸러 밤늦게 구장에 갔었다⁠. 감독실 비우라고 해서⁠. 열한 시 넘어서 짐 박스 들고 주차장 나오는데⁠, 단장실 불이 켜져 있더라⁠. 그 시간에⁠. 단장실 바로 밑에 청람 승합차가 서 있었고⁠. 이상해서 찍었다⁠. 손녀 사진 찍다 버릇이 돼서⁠, 뭐만 보면 찍는다⁠.⁠”

경팔이 사진 한 장을 띄웠다⁠. 어두운 구장 사무동 위층에 창 하나만 환했다⁠. 창 아래 주차장에 하얀 승합차가 있었고⁠, 옆구리에 청람 로고가 희미하게 보였다⁠. 사진 아래 날짜와 시각이 찍혀 있었다⁠.

「⁠2032년 3월 28일 오후 11⁠:41⁠」

“⁠개막 닷새 전이다⁠. 항로가 3⁠.2로 바뀌었다는 날이 그쯤 아니냐⁠? 석배가 그러던데⁠.⁠”

“⁠석배가 감독님한테도 말했어요⁠?⁠”

“⁠전화 왔더라⁠. 밤에⁠. 혼자 고민하다가 나한테 묻더라고⁠. 숫자를 바꾸면 누가 바꾼 건지 남느냐고⁠.⁠”

경팔이 휴대전화를 우철에게 내밀었다⁠.

“⁠보낸다⁠. 나는 이게 뭔지 모른다⁠. 석배는 알 거다⁠.⁠”

우철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짧게 떨렸다⁠. 사진이 도착했다⁠. 어두운 덕아웃에서 우철은 창 하나만 환한 사진을 오래 보았다⁠. 개구리 소리가 멈췄다가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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