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587자)

원정 버스

AI 감독의 구단 라인업 · 여오령

원정 버스가 고속도로 휴게소를 빠져나가자 엔진 소리가 한 음 높아졌다⁠. 우철은 창가 자리에서 이어폰 한쪽만 끼고 버스 안 소리를 들었다⁠. 맨 뒷줄 고참들의 코 고는 소리가 셋⁠, 중간 줄에서 누가 컵라면 국물을 후루룩 마시는 소리⁠, 앞줄에서 의찬이 휴대전화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였다⁠.

“⁠여러분⁠, 지금 해무 원정 버스예요⁠. 뒤에 주무시는 분들은 다 연봉 오억 넘는 분들이에요⁠. 조용히 하세요⁠.⁠”

“⁠의찬아⁠, 연봉 얘기는 빼라⁠.⁠”

“⁠선배님⁠, 방송 중이에요⁠! 시청자분들이 선배님 목소리 알아들었어요⁠. 채팅창에 「⁠배대타 등장⁠」 떴어요⁠.⁠”

“⁠채팅창한테 나 자는 중이라고 해⁠.⁠”

의찬이 휴대전화를 들고 몸을 돌려 우철을 비췄다⁠. 우철은 모자를 눈까지 눌러썼다⁠. 채팅창에 글자가 줄줄이 올라갔다⁠. 「⁠모자 각도 영포티⁠」⁠, 「⁠아재 귀 클로즈업 해 주세요⁠」⁠, 「⁠귀 커진다던 그 아재 맞음⁠?⁠」

옆자리에 석배가 앉아 있었다⁠. 원정 버스에서 둘이 나란히 앉은 것은 석배가 은퇴하고 처음이었다⁠. 석배는 태블릿 대신 종이 한 장을 무릎에 놓고 있었다⁠. 구단 원정 일정표였다⁠. 일정표 뒷면에 볼펜으로 숫자 두 줄이 적혀 있었다⁠. 3⁠.1⁠, 3⁠.2⁠.

“⁠형⁠.⁠”

“⁠응⁠.⁠”

“⁠비 오던 날 돈 거⁠, 3월 초에 구단에 들어온 판이에요⁠. 청람이 처음 깔아 준 거요⁠. 개막 직전에 3⁠.2로 올렸다고 들었고요⁠.⁠”

“⁠올리면 뭐가 달라지는데⁠?⁠”

“⁠보통은 오류 고치고 속도 올리는 거죠⁠. 그런데 같은 경기⁠, 같은 투수⁠, 같은 상황인데 형이 1등이었다가 9등이 되는 건 보통이 아니에요⁠.⁠”

석배가 볼펜 끝으로 3⁠.1과 3⁠.2 사이를 톡톡 쳤다⁠.

“⁠두 판을 나란히 놓고 보면 뭐가 바뀌었는지 나와요⁠. 그런데 원본 기록은 단장실이랑 청람만 열 수 있어요⁠. 저는 화면만 띄우는 사람이고요⁠.⁠”

“⁠단장실이라⁠.⁠”

우철은 창밖을 보았다⁠. 방음벽 너머로 모내기를 끝낸 논이 반짝였다⁠. 부사장이 촬영장에서 흘린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7월 말⁠, 연봉 총액⁠.

“⁠석배야⁠. 연봉 총액이라는 말 들어 봤냐⁠? 7월 말까지 맞춰야 한다는⁠.⁠”

석배가 볼펜을 멈췄다⁠.

“⁠그건 몰라요⁠. 진짜로요⁠.⁠”

석배는 진짜로 모르는 얼굴이었다⁠. 안경을 만지지 않았다⁠.

*

부산 호텔에서 구단은 고참도 2인 1실로 방을 줬다⁠. 지난해까지 연차 열 해가 넘으면 혼자 방을 썼다⁠. 프런트 앞에서 고참 포수가 방 열쇠를 받아 들고 투덜거렸다⁠.

“⁠연봉 총액 맞추려고 방도 합치냐⁠?⁠”

“⁠형⁠, 그 말 어디서 들었어요⁠?⁠”

“⁠농담이야⁠, 인마⁠. 왜 정색해⁠?⁠”

우철과 석배가 한방을 쓰게 됐다⁠. 열 해 전과 같았다⁠. 석배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휴대전화를 세워 놓고 영상 통화를 걸었다⁠. 화면 속 석배의 아내가 배를 받치고 소파에 기대 있었다⁠. 칠 개월이었다⁠.

“⁠여보⁠, 형이랑 한방이야⁠.⁠”

“⁠어머⁠, 우철 오빠⁠. 저 사람 코 골면 베개로 눌러 주세요⁠.⁠”

“⁠예전에 많이 눌렀어요⁠.⁠”

“⁠아기도 오빠 목소리 알아요⁠. 개막전 때 중계 틀어 놓으니까 배를 차더라고요⁠.⁠”

“⁠아빠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석배가 화면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아내에게 잘 자라고 하고 끊었다⁠. 끊고 나서 한참 휴대전화 검은 화면을 보았다⁠.

우철은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얼음 봉지를 오른쪽 팔꿈치에 댔다⁠. 호텔 제빙기에서 받아 온 얼음이었다⁠. 보호대를 풀자 팔꿈치 안쪽이 붓고 열이 났다⁠. 얼음이 닿자 숨이 저절로 짧게 끊겼다⁠. 거울 속 얼굴의 웃음 주름이 일그러졌다⁠.

화장실 문을 누가 두드렸다⁠.

“⁠형⁠, 얼음 소리 다 들려요⁠. 봉지 버석거리는 소리⁠.⁠”

“⁠컵라면 먹으려고⁠.⁠”

“⁠컵라면에 얼음을 넣어요⁠?⁠”

우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 너머에서 석배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석배는 더 묻지 않고 침대로 돌아갔다⁠. 매트리스 스프링이 끽 하고 울렸다⁠.

*

다음 날 오후⁠, 원정 팀 타격 훈련 시간에 남포 시걸스의 감독이 해무 배팅 케이지 뒤로 슬리퍼를 끌고 왔다⁠. 예순한 살 감독은 리그에서 가장 오래 덕아웃을 지킨 사람이었다⁠. 철망에 이마를 대고 우철이 치는 것을 보다가 말을 걸었다⁠.

“⁠배우철이⁠, 너 아직 하냐⁠?⁠”

“⁠아직 합니다⁠, 감독님⁠.⁠”

“⁠너네 덕아웃엔 감독이 벽에 붙어 있다며⁠. 물도 마시라고 하고⁠.⁠”

“⁠수분 섭취 권장이요⁠.⁠”

남포 감독이 크게 웃었다⁠. 웃음 끝에 기침을 두 번 했다⁠.

“⁠우리 구단주가 시즌 끝나고 표결에서 찬성할 거란다⁠. AI 단독 지휘⁠. 청람이 우리한테도 항로 같은 걸 반값에 준다고 했대⁠. 그럼 나는 내년에 집에서 손주 본다⁠.⁠”

“⁠감독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나는 표가 없어⁠. 표는 돈 내는 사람한테 있지⁠. 감독은 소리 지르는 사람이고⁠.⁠”

남포 감독이 철망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우철의 배트에 맞은 공이 케이지 그물을 출렁이게 했다⁠.

“⁠너네 사람 카드 있잖아⁠. 그거 쓰는 거 보면 우리 구단주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지⁠. 사람이 고른 게 이기면⁠.⁠”

“⁠카드 든 사람이 안 씁니다⁠.⁠”

“⁠그럼 들게 만들어⁠. 감독 삼십 년 하면서 배운 게 그거 하나다⁠. 사람 마음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움직인다⁠.⁠”

남포 감독은 슬리퍼를 끌고 자기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가다가 한 번 뒤돌아보고 소리쳤다⁠.

“⁠오늘은 치지 마라⁠! 우리가 이겨야 돼⁠!⁠”

케이지 안의 배팅볼 투수가 웃다가 공을 엉뚱하게 던졌다⁠. 공이 철망 위를 넘어갔다⁠.

*

저녁 경기가 시작되자 남포 시걸스의 홈 구장은 바다 냄새가 인천보다 짰다⁠. 응원석에서 주황색 비닐봉지를 머리에 쓴 관중들이 노래를 불렀다⁠. 원정 덕아웃 벤치는 홈 덕아웃보다 짧아서 우철은 배트 걸이 옆에 무릎을 붙이고 앉았다⁠.

6회 초⁠, 해무가 1 대 2로 지고 있었다⁠. 1사 2루⁠. 남포의 선발은 리그에서 체인지업이 제일 좋은 투수였다⁠. 화면이 깜박였다⁠.

“⁠대타⁠, 도의찬⁠. 기대 출루 0⁠.29⁠.⁠”

의찬이 헬멧을 쓰다가 손을 멈췄다⁠. 손이 다시 떨렸다⁠. 개막전 이후 처음이었다⁠. 우철은 의찬의 헬멧 끈을 대신 잡아 주며 귀에 대고 말했다⁠.

“⁠저 포수⁠, 체인지업 부르기 전에 혀를 찬다⁠. 쯧⁠, 하고⁠. 아까부터 다섯 번 다 그랬어⁠.⁠”

“⁠진짜요⁠? 그게 들려요⁠?⁠”

“⁠타석에선 더 잘 들린다⁠. 혀 차는 소리 나면 기다렸다가 쳐⁠. 빠른 공 생각하고 일찍 나가면 그게 체인지업 먹는 거다⁠.⁠”

“⁠선배님 이거 항로가 알아요⁠?⁠”

“⁠항로는 혀가 없다⁠.⁠”

의찬이 타석에 들어갔다⁠. 초구는 직구였는데 의찬이 그냥 보냈다⁠. 스트라이크⁠. 두 번째 공도 직구⁠, 의찬이 또 보냈다⁠. 투 스트라이크⁠. 의찬의 어깨가 굳었다⁠. 배트를 쥔 손등에 핏줄이 돋았다⁠.

“⁠얼었다⁠.⁠”

석배가 중얼거렸다⁠. 화면에는 의찬의 기대 출루가 0⁠.29에서 0⁠.14로 떨어져 있었다⁠. 의찬이 타석에서 한 발 빠져나와 덕아웃을 보았다⁠. 우철은 덕아웃 그물 앞으로 나가 자기 귀를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그러고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시늉을 했다⁠.

의찬이 따라서 숨을 쉬었다⁠. 어깨가 내려갔다⁠.

세 번째 공과 네 번째 공은 바깥으로 빠졌다⁠. 투 볼 투 스트라이크⁠. 투수가 사인을 보았다⁠. 포수가 미트를 내리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응원가 사이로 아주 작은 소리였는데⁠, 원정 덕아웃까지는 안 들렸다⁠. 우철은 의찬의 무릎을 보았다⁠. 의찬의 무릎이 한 박자 늦게 접혔다⁠.

체인지업이 들어왔다⁠. 의찬은 끝까지 기다렸다가 배트를 밀었다⁠. 공이 유격수 머리를 넘어 좌중간에 떨어졌다⁠. 2루 주자가 홈을 밟았다⁠.

2 대 2⁠.

의찬이 1루에서 덕아웃을 향해 귀를 두 번 두드렸다⁠. 덕아웃이 웃음바다가 됐다⁠. 석배가 고개를 들어 화면을 보았다⁠. 「⁠대타 결과⁠: 성공 · 기여⁠: 도의찬⁠」

“⁠기여 도의찬이래요⁠, 형⁠.⁠”

“⁠도의찬이 친 거 맞잖아⁠.⁠”

“⁠형이 들은 거는요⁠?⁠”

“⁠그건 화면에 칸이 없지⁠.⁠”

해무는 9회에 한 점을 더 내서 3 대 2로 이겼다⁠. 경기 뒤 원정 라커룸에서 의찬이 우철 사물함 앞에 와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선배님⁠, 저 다음에도 혀 차는 소리 같은 거 알려 주세요⁠.⁠”

“⁠알려 주면 너 나보다 먼저 1군에서 오래 남는다⁠.⁠”

“⁠그게 싫으세요⁠?⁠”

“⁠아니⁠. 그래서 알려 주는 거다⁠.⁠”

*

밤 열한 시⁠,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휴대전화들이 한꺼번에 울렸다⁠. 알림 소리가 버스 천장에 부딪혀 돌아왔다⁠. 우철도 휴대전화를 열었다⁠.

「⁠[단독] 해무 마린스 매각 협상 막바지 … 인수 후보는 AI 회사 청람테크⁠」

기사 아래 사진이 붙어 있었다⁠. 해무 파크 덕아웃 화면 앞에 선 세겸과 청람 부사장이었다⁠. 개막전 날 사진이었다⁠. 기사 본문에는 해무해운의 빚이 숫자로 적혀 있었다⁠. 우철은 숫자를 읽다가 0을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버스 안이 웅성거렸다⁠. 「⁠연안부두 늙은 갈매기들⁠」 단톡방에 글이 쏟아졌다⁠.

「⁠구단 판다고⁠?⁠」 「⁠청람이 사면 AI가 구단주 되는 거냐⁠」 「⁠그럼 항로가 항로를 감독하는 거냐⁠」 「⁠인천에서 나가는 거 아니지⁠? 아니라고 해 줘⁠」

맨 뒷줄에서 고참 포수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방을 합쳤구나⁠!⁠”

아무도 웃지 않았다⁠.

*

호텔 로비는 자정이 되자 조명을 반만 남기고 꺼 두었다⁠. 회전문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세겸이 들어왔다⁠. 남색 정장에 운동화였고⁠, 넥타이를 풀어 주머니에 넣었다⁠. 우철은 로비 소파에서 일어났다⁠. 기다리고 있었다⁠.

“⁠단장님⁠, 부산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남포 구단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시즌 뒤 이사회 표결 때문에요⁠.⁠”

“⁠AI 단독 지휘 표결이요⁠?⁠”

“⁠네⁠.⁠”

“⁠구단 파는 것도 그 표결이랑 상관있습니까⁠?⁠”

세겸이 로비 탁자에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화면에 우철이 본 것과 같은 기사가 떠 있었다⁠. 세겸은 휴대전화를 뒤집지 않았다⁠.

“⁠팔립니다⁠. 9월 말에⁠.⁠”

“⁠인정하시네요⁠.⁠”

“⁠기사가 났는데 거짓말하면 다음엔 아무도 제 말을 안 믿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라서요⁠.⁠”

“⁠연봉 총액은요⁠? 7월 말까지 맞춘다는⁠.⁠”

세겸의 눈이 처음으로 한 번 흔들렸다⁠. 금세 돌아왔다⁠.

“⁠청람 부사장님이 말이 많으시네요⁠. 네⁠, 맞습니다⁠. 청람이 사는 구단은 가벼워야 합니다⁠. 가벼운 구단을 사서⁠, 가벼운 구단이 이기는 걸 리그에 보여 줘야 청람이 다른 구단에 항로를 팝니다⁠.⁠”

“⁠가볍게 하려면 무거운 사람들부터 내려야겠네요⁠.⁠”

“⁠배 선수님은 연봉도 무겁고⁠, 몸도 무겁고⁠, 말도 무겁습니다⁠.⁠”

세겸은 웃지 않고 말했다⁠. 로비 구석의 정수기에서 물이 꿀럭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해무해운에는 배가 열한 척 있습니다⁠. 그중 한 척은 지금 싱가포르항에 묶여 있고요⁠. 선원 스물두 명이 석 달째 배에서 삽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집에 데려와야 합니다⁠. 배 선수님 연봉이면 그 배가 한 달 기름을 넣습니다⁠.⁠”

“⁠그 말을 왜 선원들한테 안 하고 저한테 합니까⁠?⁠”

“⁠선원들한테는 날마다 합니다⁠. 배 선수님한테는 오늘 처음 하는 거고요⁠.⁠”

엘리베이터가 띵 하고 열렸다⁠. 석배가 슬리퍼를 끌고 나왔다⁠. 머리가 눌려 있었다⁠. 우철이 방에 없어서 찾으러 내려온 것이었다⁠. 석배는 로비 한가운데에서 세겸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아⁠, 단장님⁠.⁠”

세겸이 석배를 돌아보았다⁠. 휴대전화를 집어 주머니에 넣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위 코치님⁠, 마침 잘 내려오셨습니다⁠. 계약서 성과급 조건 한 번 다시 보세요⁠. 항로 승률 6할입니다⁠. 오늘 이겨서 지금 5할 2푼이고요⁠.⁠”

석배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슬리퍼 바닥이 대리석 위에서 찍 소리를 냈다⁠.

“⁠그 6할에⁠, 사람 카드로 이긴 경기도 들어가요⁠?⁠”

세겸이 회전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멈췄다⁠.

“⁠사람 카드로 이긴 경기는⁠, 항로 승률에서 빠집니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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