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607자)

청문회

AI 감독의 구단 라인업 · 여오령

석배의 차 뒷좌석에는 아기 카시트가 벌써 달려 있었다⁠. 우철은 카시트 옆에 끼어 앉아 부목 댄 오른팔을 무릎에 올렸다⁠. 카시트에 달린 딸랑이가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딸랑딸랑 울었다⁠. 조수석의 경팔이 해바라기씨 봉지를 뜯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배 병장⁠, 거기 자리 좋냐⁠? 신생아석⁠.⁠”

“⁠예약석입니다⁠, 감독님⁠.⁠”

“⁠코치다⁠. 아니⁠, 아직 총괄이다⁠. 오늘 이후에 뭐가 될지 모르지만⁠.⁠”

석배는 운전대를 두 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9월 마지막 금요일 아침⁠, 경인고속도로가 막혔다⁠. 석배는 신호가 바뀔 때마다 휴대전화 화면을 흘끔거렸다⁠. 예정일이 닷새 남아 있었다⁠.

“⁠위 병장⁠, 앞이나 봐⁠. 애가 아빠 얼굴은 봐야지⁠.⁠”

“⁠총괄님⁠, 저 상병 제대라니까요⁠.⁠”

“⁠오늘 청문회 들어가면 병장 달아 준다⁠.⁠”

차가 한강을 건넜다⁠. 우철은 창밖의 강물 소리를 들으려고 창문을 조금 내렸다⁠. 강물 소리는 안 들렸다⁠. 차 소리만 들렸다⁠. 서울은 인천보다 바닷바람이 없었다⁠.

*

해동리그 회관은 광화문 근처 낡은 빌딩 11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복도 끝 창문 밖으로 빌딩 사이에 낀 하늘이 보였다⁠. 청문회장 앞 복도에 남색 해무 모자를 쓴 사람들이 스무 명쯤 서 있었다⁠. 손에 손으로 쓴 종이를 들고 있었다⁠. 「⁠사람 카드 지켜라⁠」⁠, 「⁠배대타 팔 돌려내라⁠」⁠, 「⁠연안부두에서 왔습니다⁠」

맨 앞의 남자가 우철을 보고 종이를 흔들었다⁠. 「⁠연안부두 늙은 갈매기들⁠」 단톡방 방장이었다⁠. 예순은 넘어 보였다⁠.

“⁠배대타⁠! 우리 아침 일곱 시 전철 타고 왔어⁠! 경로우대로⁠!⁠”

“⁠감사합니다⁠.⁠”

“⁠팔 괜찮아⁠? 아니⁠, 안 괜찮은 거 알아⁠. 우리도 뉴스 봤어⁠.⁠”

방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단톡방에 백이십 명인데⁠, 반은 단장 욕하고 반은 단장 불쌍하대⁠. 해무해운 다니는 사람들이 단톡방에 열 명 넘게 있거든⁠. 그 사람들은 단장 편이야⁠. 월급 때문에⁠.⁠”

“⁠그분들 말도 맞습니다⁠.⁠”

“⁠그러니까 미치겠다는 거지⁠.⁠”

*

청문회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긴 탁자 하나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의자가 놓였다⁠. 탁자 맨 끝에 규정위원장이 앉았다⁠. 일흔 살 넘은 전직 심판이었다⁠. 귀에 보청기를 끼고 있었다⁠. 위원장 옆에 위원 둘이 있었다⁠.

탁자 오른편에 청람의 변호사와 부사장⁠, 그리고 세겸이 앉았다⁠. 세겸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부상자 명단 종이를 들고 응급실 복도에 왔던 밤 이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탁자 왼편에 석배와 경팔과 우철이 앉았다⁠.

청람의 변호사가 먼저 일어났다⁠. 회색 정장이었고⁠, 목소리가 낭랑했다⁠.

“⁠구단은 AI 감독에게 운영 방침을 넣을 권리가 있습니다⁠. 선수의 나이⁠, 연봉은 구단이 늘 따지는 것들입니다⁠. 사람 감독이라면 머릿속으로 했을 계산을 항로에 넣었을 뿐입니다⁠. 이것은 조작이 아니라 경영입니다⁠. 오히려 문제는 위석배 씨입니다⁠. 청람의 장비에 허락 없이 들어가 기록을 빼냈습니다⁠.⁠”

위원장이 보청기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위석배 씨⁠. 할 말 있습니까⁠?⁠”

석배가 일어났다⁠. 안경을 만지려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가 내려갔다⁠.

“⁠변호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구단은 숫자를 넣을 수 있어요⁠. 문제는 넣은 걸 숨긴 겁니다⁠. 덕아웃 화면에는 「⁠작성⁠: 항로⁠」라고만 떴습니다⁠. 선수들은 항로가 판단한 줄 알았어요⁠. 팬들도⁠, 방출된 선배님들도요⁠. 곰 선배님은 항로가 자기를 잘랐다고 믿고 짐 쌌습니다⁠. 사람이 자른 줄 알았으면⁠, 최소한 그 사람한테 이유라도 물어볼 수 있었을 겁니다⁠.⁠”

석배가 앉았다⁠.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위원장이 세겸을 보았다⁠.

“⁠한세겸 단장⁠.⁠”

세겸이 일어나지 않고 앉은 채로 말했다⁠. 목소리가 고르고 낮았다⁠.

“⁠제가 바꾸라고 했습니다⁠. 3월 28일 밤에 한 번⁠, 8월 2일 오전에 한 번⁠. 숨긴 것도 맞습니다⁠. 위 코치 말씀이 다 맞습니다⁠.⁠”

청람의 변호사가 세겸을 돌아보았다⁠. 미리 맞춘 말이 아니었다⁠. 세겸은 변호사를 보지 않았다⁠.

“⁠해무해운에 배가 열 척 남았습니다⁠. 지난달에 한 척 팔았고요⁠. 그 배에 타던 선원 스물두 명은 지금 일자리가 없습니다⁠. 남은 열 척에 이백여 명이 탑니다⁠. 육지 직원까지 이천사백 명입니다⁠. 채권단 시한이 다음 주 목요일⁠, 9월 30일입니다⁠. 구단을 팔아야 합니다⁠. 비싸게 팔아야 합니다⁠. 제가 고참을 직접 자르면 인천은 해무를 버립니다⁠. 항로가 자르면 인천은 시대를 욕합니다⁠. 저는 시대 뒤에 숨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후회합니까⁠?⁠”

위원장이 물었다⁠. 세겸이 처음으로 잠깐 말을 멈췄다⁠.

“⁠아니요⁠. 3월 28일 밤으로 돌아가도 똑같이 하겠습니다⁠. 다만 다음에는 덕아웃 밑 상자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복도에서 누가 웃음을 터뜨렸다가 입을 막았다⁠. 위원 하나가 헛기침을 했다⁠. 위원장은 웃지 않았다⁠. 보청기를 한 번 더 눌렀다⁠.

“⁠배우철 선수⁠.⁠”

우철은 왼손으로 탁자를 짚고 일어났다⁠. 오른팔의 부목이 의자 팔걸이에 부딪혀 둔한 소리가 났다⁠.

“⁠지난 토요일에 끝까지 휘둘렀다고 들었습니다⁠. 팔이 그런 줄 알면서⁠. 왜 그랬습니까⁠?⁠”

“⁠반만 휘두르면 동점이었고⁠, 끝까지 휘두르면 역전이었습니다⁠.⁠”

“⁠그건 계산입니다⁠. 항로도 할 수 있는 계산이에요⁠.⁠”

“⁠네⁠. 그래서 하나 들려드려도 되겠습니까⁠?⁠”

우철은 왼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냈다⁠. 어젯밤 석배가 개막전 중계 녹화에서 잘라 준 소리였다⁠. 포수 뒤에 붙은 중계 마이크가 잡은 소리였다⁠. 우철은 화면을 눌렀다⁠. 작은 스피커에서 소리가 났다⁠.

탕⁠.

삼 초 쉬고⁠, 다시⁠.

퍽⁠.

“⁠앞에 건 개막전 8회⁠, 한양 마무리 투수의 공입니다⁠. 뒤에 건 9회⁠, 같은 투수의 공이고요⁠. 공 속도는 둘이 같았습니다⁠. 항로 화면에도 같은 숫자로 떴습니다⁠. 소리는 다릅니다⁠. 뒤엣것은 공이 포수 손바닥 아래로 빠지는 소리입니다⁠. 지친 공입니다⁠. 저는 이 소리 듣고 낮은 공만 기다렸습니다⁠.⁠”

위원장이 보청기를 귀에서 빼서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우철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 번 더⁠.⁠”

우철이 휴대전화를 위원장 귀 가까이 들고 다시 틀었다⁠. 탕⁠. 퍽⁠. 위원장이 눈을 감았다⁠. 탁자 오른편에서 청람의 부사장이 뭔가를 적었다⁠. 세겸은 아무것도 적지 않고 우철의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청람 쪽에서는 이 소리를 잡음이라고 하셨습니다⁠. 4월에 설명회에서요⁠. 구장마다 달라서 못 쓴다고⁠. 맞는 말씀입니다⁠. 다 다릅니다⁠. 그래서 그 구장 덕아웃에 앉은 사람이 들어야 합니다⁠. 사람 카드가 없어지면 덕아웃에서 이 소리를 듣는 사람이 없어집니다⁠. 항로가 틀려서가 아닙니다⁠. 항로는 듣지 않으니까요⁠.⁠”

우철은 앉았다⁠. 부목이 다시 의자 팔걸이에 부딪혔다⁠. 위원장이 보청기를 귀에 다시 끼우고⁠,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삼십 분 쉬겠습니다⁠.⁠”

*

삼십 분은 한 시간이 됐다⁠. 복도의 팬들은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김밥을 나눠 먹었다⁠. 방장이 우철에게도 한 줄을 내밀었다⁠. 우철은 왼손으로 받아 한 개를 먹었다⁠. 경팔은 해바라기씨를 깨물며 창밖을 보았고⁠, 석배는 복도 끝을 왔다 갔다 했다⁠.

복도 끝 자판기 앞에서 청람 부사장이 우철을 불렀다⁠. 회색 운동화 끈이 또 새것이었다⁠. 부사장은 자판기에서 캔 커피 두 개를 뽑아 하나를 우철의 왼손에 쥐여 주었다⁠.

“⁠선수님⁠, 아까 그 소리요⁠. 탕⁠, 퍽⁠.⁠”

“⁠네⁠.⁠”

“⁠저희도 해 보려고 했어요⁠. 3년 전에요⁠. 구장마다 마이크를 달고 미트 소리를 넣어 보려고요⁠. 바다 건너 리그에서 먼저 해 봤는데⁠, 관중 함성이 다 섞여서 안 되더라고요⁠. 구장마다 다시 배워야 하고⁠. 돈이 너무 들어서 접었어요⁠.⁠”

“⁠그럼 언젠가는 듣겠네요⁠. 항로도⁠.⁠”

“⁠언젠가는요⁠. 한 사오 년⁠.⁠”

부사장이 캔 커피를 땄다⁠. 칙 소리가 났다⁠.

“⁠그때까지는 선수님 같은 분이 필요하다고⁠, 저는 회사에 보고서 쓸 겁니다⁠. 근데 회사는 사오 년을 안 기다려요⁠. 표결은 다음 주고요⁠.⁠”

“⁠부사장님은 어느 편이세요⁠?⁠”

“⁠저요⁠? 저는 파는 사람이에요⁠. 파는 사람은 사는 사람 편이죠⁠.⁠”

부사장이 웃었다⁠. 처음으로 회사 사람 같지 않은 웃음이었다⁠. 부사장은 캔을 들고 청문회장으로 돌아갔다⁠. 우철은 왼손에 쥔 캔 커피를 땄다⁠. 한 손으로 따느라 손톱이 꺾였다⁠.

청문회장 문이 열리고 위원 하나가 종이를 들고 나왔다⁠. 복도에 선 사람들 앞에서 읽었다⁠.

「⁠하나⁠. 해무 마린스는 3월 28일과 8월 2일의 수정 사항을 숨기고 AI 판단으로 공표한 책임으로 벌금을 낸다⁠.⁠」 「⁠둘⁠. 수정 사항은 모두 무효로 하고⁠, 해무의 항로는 시즌 끝까지 3월 초 판으로 운영한다⁠.⁠」 「⁠셋⁠. 사람 카드 사용을 이유로 추경팔 코치를 전보한 것은 리그 규정에 어긋나므로 무효로 하고⁠, 다음 경기부터 1군 벤치 코치로 복귀시킨다⁠.⁠」 「⁠넷⁠. 한세겸 단장에게 경고한다⁠.⁠」 「⁠다섯⁠. 위석배 씨의 고용과 청람테크의 소송은 리그의 권한 밖이다⁠.⁠」 「⁠여섯⁠. AI 단독 지휘안 표결은 예정대로 10월 2일 저녁 이사회에서 한다⁠.⁠」

복도가 술렁였다⁠. 누구는 손뼉을 쳤고⁠, 누구는 「⁠경고가 다야⁠?⁠」 하고 소리쳤다⁠. 경팔이 해바라기씨 봉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접는 손이 느렸다⁠.

“⁠나 돌아간다⁠, 배 병장⁠. 1군으로⁠.⁠”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코치다⁠. 이번엔 진짜 코치다⁠. 카드 든 코치⁠.⁠”

석배는 종이를 다시 읽었다⁠. 다섯 번째 줄에서 오래 멈췄다⁠. 리그의 권한 밖⁠. 석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줄이었다⁠.

석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본 석배의 얼굴이 하얘졌다⁠.

“⁠와이프요⁠. 양수⁠, 양수가⁠…⁠…⁠.⁠”

“⁠뛰어⁠, 위 병장⁠!⁠”

경팔이 소리쳤다⁠. 석배가 엘리베이터 단추를 연달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안 왔다⁠. 석배는 비상계단 문을 열고 뛰어 내려갔다⁠. 11층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한참 동안 울려 올라왔다⁠. 방장이 계단 문 앞에서 「⁠연안부두 늙은 갈매기들⁠」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석배 코치 아빠 됨 진행 중⁠」 휴대전화들이 복도 여기저기서 동시에 울렸다⁠.

*

청문회장 옆 복도 끝⁠, 창가에 세겸이 혼자 서 있었다⁠. 넥타이를 풀어 손에 감고 있었다⁠. 우철이 다가가자 세겸이 창밖을 본 채로 말했다⁠.

“⁠아드님은 안 오셨네요⁠.⁠”

“⁠학교 갔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여긴 아이가 볼 곳이 아니에요⁠.⁠”

빌딩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창문이 조금 떨렸다⁠. 세겸이 넥타이를 손에서 풀었다⁠.

“⁠청람이 어젯밤 매각 대금을 깎았습니다⁠. 의혹 때문에 구단 값이 떨어졌다고요⁠. 표결 통과 조건 오백억은 그대로 두고요⁠. 그러니 저는 이제 표결이 전보다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요⁠?⁠”

“⁠10월 2일 저녁⁠, 이사회에서 찬성하겠습니다⁠. 해무 몫 한 표⁠. 다른 구단주들도 한 분씩 만나고 있습니다⁠. 남포 구단주님은 아직 찬성이시고요⁠.⁠”

세겸이 우철의 부목을 보았다⁠.

“⁠오늘 그 소리⁠, 좋았습니다⁠. 위원장님이 보청기 빼실 때 저도 놀랐습니다⁠. 근데 배 선수님⁠, 그 소리는 다음 표결 때까지 아무도 못 듣습니다⁠. 배 선수님은 부상자 명단에 계시니까요⁠. 10월 2일에 덕아웃에도 못 앉으십니다⁠. 등록 선수만 앉으니까⁠.⁠”

“⁠압니다⁠.⁠”

“⁠아시는데 왜 오셨습니까⁠?⁠”

“⁠들려드리려고요⁠. 단장님께도⁠.⁠”

세겸이 처음으로 창에서 몸을 돌렸다⁠. 우철을 보았다⁠. 웃지 않았다⁠. 웃음을 참는 얼굴도 아니었다⁠. 무언가를 다시 세는 얼굴이었다⁠.

“⁠들었습니다⁠. 탕⁠, 퍽⁠.⁠”

세겸이 넥타이를 주머니에 넣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가 이번에는 바로 왔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세겸이 손으로 문을 막았다⁠.

“⁠다음 주 목요일이 채권단 시한입니다⁠. 그 전에 한 번 더 뵙죠⁠. 배팅장으로 가겠습니다⁠. 사모님 계실 때요⁠.⁠”

문이 닫혔다⁠. 층수 표시가 11에서 하나씩 내려갔다⁠.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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