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15자) · 1592년 7월 9일~10일, 사량에서 당포까지
당포
이순신 · 네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1592년 7월 9일 (음력 6월 1일) 맑음. 사량(통영 사량도) 뒷바다에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새벽에 원균이 왔다.
배로 온 것이 아니라 말로 왔다. 사람을 시켜 뱃전 너머로 말을 건넸는데, 어제 싸움에서 남겨 둔 적선 두 척이 있는 데로 가서 적이 달아났는지 살피고, 화살 맞아 죽은 왜의 목을 베어 오겠다는 것이었다. 자기는 진 뒤로 군사가 없어 싸움에서는 아무것도 못 했으니, 싸움이 끝난 자리에서 목이라도 거두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어젯밤에 이미 그러라고 했는데 새벽에 한 번 더 물어 온 것은 내가 잊었을까 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들었다는 것을 한 번 더 남기려는 것이었다. 그것을 나는 알았고, 알면서 그러라고 했다.
어깨가 무거웠다. 밤새 무거웠다. 눕지 못해 앉아서 잤고 앉아서 자니 등뼈의 무게와 어깨의 무게가 한 군데로 모였다. 두 무게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그 밤에 알았다. 등뼈는 늘 있던 것이고 어깨는 어제 생긴 것이다. 늘 있던 것은 견디는 법을 알고 어제 생긴 것은 아직 모른다.
*
원균은 세 척으로 갔다.
새벽 물이 잔잔했다. 모자랑포(사천 용현면)에서 사천 선창(사천 용현면 선진리)까지는 노로 한 식경이고, 그 한 식경 동안 그는 뱃머리에 서서 어제의 자리를 보았다. 어제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배 세 척으로 있었다. 전라도 배 스물셋이 구름처럼 적선을 덮을 때 그의 세 척은 그 구름 뒤에 있었고,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세지 않았다.
그에게는 배가 있었다. 두 달 전에는 있었다. 경상우수영(거제 오비)의 배가 몇 척이었는지 그는 지금 세고 싶지 않았다. 부산이 떨어지던 날 그는 그 배들을 끌고 나가지 않았고, 나가지 않은 것을 뒤에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그는 알았다. 배를 잃은 것이 아니었다. 배를 두고 온 것이었다. 두고 온 것과 잃은 것은 다르다고 그는 생각했고, 다르다고 아무도 생각해 주지 않을 것도 알았다.
그래서 목이 필요했다.
목은 종이에 적힌다. 몇 급이라고 적히고 조정으로 간다. 배 몇 척을 깼다는 것은 남의 종이에 적히지만 목은 자기 종이에 적을 수 있다. 전라좌수사는 목을 안 벤다고 했다. 쏘아 죽이는 것을 먼저 하고 목은 뒤로 미룬다고 했다. 그러면 그 목은 누구 것인가. 죽은 왜의 목은 물 위에 떠 있고 물 위에 뜬 것은 건지는 사람 것이다.
사천 선창에 닿았을 때 남겨 둔 배 두 척은 그대로 있었고 적은 없었다. 산 위에도 없었다. 밤새 뭍으로 멀리 갔다. 그는 두 척을 태우게 했다. 그러고 나서 물가와 기슭을 뒤졌다. 화살 맞아 죽은 왜가 셋 있었다. 셋의 목을 베었다. 나머지는 숲이 빽빽해 찾지 못했다.
셋이었다.
그는 셋을 배에 실었다. 실으면서 그것이 몇 척과 같은 값인지 생각했다. 생각이 끝나지 않았다. 배가 돌아서는 동안 사천 선창의 연기가 뒤에서 올라왔다. 어제의 연기와 오늘의 연기가 같은 자리에서 올라왔고, 어제 것은 남의 것이고 오늘 것은 자기 것이었다. 그는 그 연기를 오래 보았다. 볼 일이 아닌데 보았다.
진시(아침 일곱 시에서 아홉 시 무렵)에 돌아와 전라좌수사의 배 옆에 대고 말을 올렸다. 적은 뭍으로 멀리 달아났고 남은 배 두 척을 태웠으며 죽은 왜의 목 셋을 베었고, 나머지는 숲이 우거져 찾지 못했다.
전라좌수사가 알았다고 했다. 그것뿐이었다. 그 알았다는 말이 그의 세 척을 다시 구름 뒤로 밀어 넣었다.
*
오시(낮 열한 시에서 한 시 무렵)에 배를 띄웠다.
원균의 말을 듣고 나서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 셋이라고 했다. 셋이 그의 종이에 적힐 것이다. 내 종이에는 열두 척과 한 척이 적히고 목은 하나가 적힌다. 이응화가 벤 하나. 종이 두 장이 조정에 가서 나란히 놓이면 어느 쪽이 무거운지 나는 몰랐다. 조정은 서쪽 어디에 있고 서쪽 어디에서는 목이 무거울지도 모른다.
고성 땅 사량 바다에 이르러 배를 세웠다. 군사를 쉬게 했다. 사흘 만에 처음 쉬는 것이었다. 격군들이 노를 놓고 뭍에 내려 물을 길었고, 사부들이 활줄을 풀어 말렸고, 배마다 젖은 옷이 뱃전에 널려 바람에 뒤집혔다. 그 사이를 나는 걷지 않았다. 앉아 있었다. 앉아 있는 것이 서 있는 것보다 어깨에 나았다.
송희립이 어깨를 다시 보았다. 앞 구멍이 붓고 뒤 구멍이 검었다. 그가 소금물로 씻었다. 씻을 때 나는 산을 보았다. 사량의 산은 낮고 나무가 듬성했다. 사천의 산과 달랐다. 저 산에는 왜가 없었다.
“내일은.”
“당포에 적이 있다고 한다.”
“내일도 나가십니까?”
“나간다.”
그가 소금물을 부었다. 뜨거웠다. 뜨거운 것은 어제 탄환이 지나갈 때와 같은 뜨거움이었는데, 어제 것은 들어오는 뜨거움이었고 오늘 것은 씻는 뜨거움이었다. 같은 뜨거움이 다른 일을 한다. 나는 그것을 견디는 데 썼다.
*
7월 10일 (6월 2일) 맑음. 아침에 떠나 곧장 당포 앞 선창에 이르니 적선 이십여 척이 줄지어 대어 있었다. 둘러싸고 싸웠다. 큰 배 한 척은 우리나라 판옥선만 했고 배 위에 층루를 꾸몄는데 높이가 두 길은 되었다. 누각 위에 왜장이 우뚝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편전과 대·중 승자총통을 비처럼 어지러이 쏘니 왜장이 화살에 맞아 떨어졌고 여러 왜가 한꺼번에 놀라 흩어졌다. 여러 장졸이 한꺼번에 모여 쏘니 화살 맞아 엎어진 자가 몇인지 모르며 남김없이 다 죽였다. 얼마 뒤 왜의 큰 배 이십여 척이 부산에서 바다를 덮고 들어오다가 우리 배를 보고 개도로 달아나 들어갔다.
진시(아침 일곱 시에서 아홉 시 무렵)에 당포 선창에 적선이 있다는 말이 왔다. 사시(아침 아홉 시에서 열한 시 무렵)에 닿았다.
당포 성 안에 왜가 삼백은 되었다. 반은 성 안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반은 성 밖 험한 데 기대 있었다. 다 총을 쏘았다. 배는 판옥선만 한 것이 아홉 척, 중간치와 작은 것이 열두 척. 그 가운데 한 척 위에 누각이 솟아 있었다. 높이가 서너 길이었고 밖에 붉은 비단 장막을 드리웠고 장막 사면에 누른 글자를 크게 썼고, 그 안에 왜장이 앉아 있었고 앞에 붉은 일산을 세웠다.
두려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그것이 그 사람의 값이었다.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두려워하는 사람보다 잡기 쉽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움직이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앉아 있다. 앉아 있는 것은 과녁이다.
거북선을 먼저 보냈다. 누각선 밑으로 곧장 들이받게 했다. 용 입을 위로 쳐들어 현자 철환을 쏘았고 천자 지자 대장군전을 쏘았다. 배가 깨졌다. 뒤에 선 배들이 탄환과 화살을 잇달아 쏘았다. 중위장 권준이 돌진해 왜장을 쏘았다. 활시위 소리에 맞춰 떨어졌다. 앉아 있던 사람이 앉은 채로 떨어졌다.
떨어진 것을 사도첨사 김완과 군관 진무성이 베었다.
나머지 왜가 겁을 먹고 달아났다. 탄환 맞고 화살 맞은 자가 어지러이 엎어졌다. 목 여섯을 베었다. 배를 다 태웠다.
*
권준은 그 왜장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시위를 놓을 때 본 것은 붉은 일산과 누른 글자와 그 사이의 어두운 자리였다. 사람이 아니라 자리를 쏘았다. 자리에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시위 소리와 같이 자리가 비었다. 빈 것을 보고 맞은 것을 알았다.
그는 순천부사다. 순천은 좌수영(여수)에서 제일 큰 고을이고 그는 좌수영에서 제일 벼슬이 높은 장수다. 지난달 첫 싸움에는 나가지 못했다. 관찰사의 전령을 받고 전주로 갔다가 돌아왔고, 돌아와 보니 옥포(거제 옥포동)의 종이에 자기 이름이 없었다. 순천 대장 유섭이 대신 나가 있었다.
이번에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왜장을 쏜 사람으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종이가 아니었다. 시위를 놓을 때 자기 손이 안 떨렸다는 것이었다. 안 떨린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그는 몰랐다. 떨렸어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을 쏘았는데 손이 안 떨렸다. 그것을 누구에게 말할지 몰라서 말하지 않았다.
김완의 배가 옆을 지나갔다. 김완이 뱃머리에서 무언가를 들어 보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권준은 알았고 보지 않았다. 안 보는 것을 골랐다.
*
배를 다 태우고 나서 용감한 사부들을 뭍에 내려 쫓아가 베게 하려던 참이었다. 척후선이 급히 왔다. 왜의 큰 배 이십여 척이 작은 배를 많이 거느리고 거제 쪽에서 온다고 했다.
당포 앞은 좁았다. 좁은 데서 스무 척을 맞으면 배끼리 부딪친다. 바깥 바다로 나가 맞기로 하고 노를 재촉해 나갔다. 적선이 오 리쯤에서 우리 배를 보았다. 보고 나서 돌아섰다. 달아나는 것이었다. 쫓았다. 바깥 바다까지 쫓았는데 날이 저물어 붙지 못했다. 진주 땅 창신도(남해 창선도)에 대고 밤을 지냈다.
밤에 어깨가 다시 뜨거웠다.
어제 것과 오늘 것이 겹쳤다. 오늘은 활을 몇 번 당겼는지 세지 않았다. 세면 어깨가 안다. 대신 다른 것을 셌다. 사천에서 열셋, 당포에서 스물하나. 이틀에 서른넷. 목은 원균 셋에 이응화 하나에 오늘 여섯. 열이다. 서른넷과 열. 어느 것이 큰 수인지 나는 알았고, 조정이 어느 것을 큰 수로 볼지는 몰랐다.
원균의 배 세 척이 우리 진 바깥쪽에 있었다. 등불 셋이 물 위에 떠 있었다. 그 셋이 내일도 구름 뒤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그가 어떻게 여기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물으면 그 사람이 생긴다. 이미 생긴 사람인데 한 번 더 생긴다.
이억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사료 · 6월 1일 새벽 원균이 남겨 둔 적선 두 척과 죽은 왜의 목을 베러 가겠다고 한 것, 「군사가 없어 싸움에서 못 했다」, 진시에 돌아와 배 두 척을 태우고 목 셋을 베었으며 숲이 우거져 더 찾지 못했다고 한 것 ― 당포파왜병장, 이충무공전서 권2 · 오시에 떠나 사량 바다에서 군사를 쉬게 한 것 ― 같은 장계. 난중일기 6월 1일은 「사량 뒷바다에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 6월 2일 당포의 왜 삼백여 명, 판옥선만 한 배 아홉 척과 중소선 열두 척, 붉은 비단 장막에 누른 글자를 쓴 누각선과 붉은 일산,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거북선이 누각선 밑으로 들어가 용 입으로 현자 철환과 대장군전을 쏜 것, 권준이 왜장을 쏘아 떨어뜨리고 김완과 진무성이 벤 것, 목 여섯 ― 같은 장계. 난중일기는 누각 높이를 두 길, 장계는 서너 길로 적는다 · 거제 쪽에서 왜 대선 이십여 척이 와서 바깥 바다로 쫓다가 날이 저물어 창신도에서 밤을 지낸 것 ― 같은 장계. 난중일기는 그 배들이 개도로 달아났다고 적는다 · 권준이 옥포에는 관찰사의 전령으로 전주에 갔다가 나가지 못한 것, 순천 대장 유섭이 대신 나간 것 ― 부원경상도장(二)·옥포파왜병장 · 원균이 부산이 떨어질 때 배를 끌고 나가지 않았다는 것 ― 징비록. 배를 「두고 온 것」이라는 그의 생각, 사천 선창에서 연기를 본 것, 권준의 손이 떨리지 않았다는 것, 송희립이 소금물로 씻은 것은 지어냈다 · 여기부터는 장면이 바뀌는 자리에서 눈을 바꾼다. 원균과 권준의 장면은 3인칭이고 나머지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