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240자) · 1592년 7월 10일 밤 · 1572년 훈련원

버드나무 껍질

이순신 · 네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1572년 (선조 5년) 가을, 한양 훈련원(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운동장 자리) 임신년 가을에 훈련원 별과에 나갔다. 말을 달리다 넘어져 왼쪽 다리뼈가 부러졌다. 보는 사람들이 이미 죽었다고 했는데 한 발로 일어서서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겨 싸매니 과장이 장하게 여겼다.

창신도(남해 창선도)의 밤에 나는 왼쪽 다리를 만졌다.

어깨가 아픈데 다리를 만졌다. 정강이 가운데쯤에 손가락으로 짚으면 뼈가 조금 솟은 데가 있다. 스무 해 전에 부러졌다가 붙은 자리다. 붙은 뼈는 원래 뼈보다 두껍다고 했다. 두꺼운 것이 더 세다고도 했다. 세다는 것은 모르겠고 비 오기 전에 먼저 아는 것은 맞았다.

어깨도 그렇게 붙을 것이다. 붙으면 두꺼워질 것이고, 두꺼워지면 비 오기 전에 알 것이다. 그때까지가 문제다. 그때까지는 어제 생긴 무게다.

다리가 부러지던 날을 나는 다리로 기억한다. 머리로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머리는 그날 땅에 부딪쳤다.

*

스물여덟이었다.

무예를 배우기 시작한 지 여섯 해였다. 글 읽는 집 셋째가 스물둘에 활을 잡았을 때 형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버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안 하는 것이 그 집의 말이었다. 여섯 해 동안 팔 힘과 말 타기와 활쏘기에서 같이 노는 무인 가운데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그는 성품이 높고 꼿꼿해서 같이 노는 무인들이 종일 되는대로 말하며 서로 놀려도 그에게만은 감히 너나들이를 못 하고 늘 존경을 더했다. 그것이 그가 아는 자기였다. 남이 그렇게 대하는 것으로 자기를 알았다.

훈련원 별과는 무인을 뽑는 과거다. 활을 쏘고 말을 달린다.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쏜다.

그날 말이 넘어졌다.

왜 넘어졌는지 그는 뒤에도 몰랐다. 발을 헛디뎠거나 땅이 꺼졌거나 앞의 말이 남긴 자국에 걸렸을 것이다. 말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그가 말 위에서 떨어졌고, 떨어지면서 왼쪽 다리가 말 몸 아래로 들어갔고, 말이 일어나면서 다리를 밟고 갔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그는 들었다. 남의 소리처럼 들었다.

땅에 누워 있었다. 하늘이 있었다. 가을 하늘이었고 높았다. 높은 하늘 가장자리로 사람들 얼굴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죽었다. 누가 그렇게 말했다. 죽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그는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죽은 사람은 그 말을 못 듣는다.

일어섰다.

한 발로 일어섰다. 오른발로 땅을 딛고 왼발은 들었다. 들린 왼발 아래로 무언가 흘러내렸다. 보지 않았다. 보면 앉는다. 앉으면 못 일어난다.

과장 가장자리에 버드나무가 있었다. 훈련원 담을 따라 심긴 나무였다. 그는 그쪽으로 갔다. 한 발로 갔다. 가는 데 시간이 걸렸고, 가는 동안 아무도 그를 잡지 않았다. 잡을 생각을 못 한 것이다. 죽었다고 한 사람이 걸어가는 것을 보면 잡을 생각이 안 난다.

버드나무 가지를 꺾었다. 가을 가지는 질기다. 두 번 비틀어 꺾었다. 껍질을 벗겼다. 버드나무 껍질은 세로로 길게 벗겨지고 벗기면 안쪽이 희고 미끄럽다. 그 미끄러운 쪽을 안으로 하여 다리를 감았다. 부러진 데 위아래로 감았다. 감을 때 손이 안 떨렸다. 풀 때가 없어서 풀 때 떨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감고 나서 다시 일어섰다. 이번에는 두 발이었다. 왼발에 힘을 주지는 않았다. 두 발로 서 있기만 했다.

과장이 조용했다.

조용한 것은 늘 제일 크게 들린다. 그 조용함 속에서 누가 장하다고 했다. 장하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났다. 그는 그 말을 들었고 듣지 않았다. 다리가 뜨거워서 다른 것이 잘 안 들렸다.

그해 과거는 떨어졌다. 말에서 떨어진 사람이 붙을 리 없다. 떨어졌다는 것을 그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다리가 붙는 데 석 달이 걸렸고, 석 달 동안 활을 앉아서 쏘았다.

*

네 해 뒤에 붙었다.

서른둘이었다. 식년 무과 병과였다. 병과는 갑을병 세 등급 가운데 끝이다. 늦었고 끝이었다. 무경을 강론하는데 다 통했다. 황석공 소서에 이르러 시험관이 물었다.

“장량이 적송자를 따라 놀았다고 하니, 장량은 과연 죽지 않았는가?”

“나면 반드시 죽습니다. 통감강목에 임자년 여섯 해에 유후 장량이 죽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신선을 따라 죽지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핑계 삼아 한 말일 뿐입니다.”

시험관들이 서로 돌아보며 탄식했다. 이것이 어찌 무인이 알 것인가.

무인이 알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을 그는 칭찬으로 들었고 칭찬이 아닌 것으로도 들었다. 글 읽는 집 셋째가 밤에 읽은 것이 낮에 무인이 알 것이 아니라는 말로 돌아왔다. 낮에 여덟이 왔고 밤에 읽었다. 그 둘이 한 사람 안에 있는 것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겼다.

새로 급제한 사람은 조상 무덤에 절을 하러 간다. 아산(충남 아산)으로 갔다. 무덤 앞에 돌로 깎은 사람이 넘어져 있었다. 아랫사람 수십 명을 시켜 일으키게 했는데 돌이 무거워 못 일으켰다. 그가 아랫사람들을 물리고 푸른 도포를 벗지 않은 채 등으로 졌다. 돌이 일어섰다. 보는 사람들이 힘으로 될 일이 아니라고 했다.

힘으로 될 일이었다. 힘으로 안 될 일을 힘으로 한 것이다. 그것을 사람들은 다른 말로 부른다.

*

그해 겨울에 함경도 동구비보(함경북도 경원) 권관으로 갔다.

급제한 첫 벼슬이 변방의 작은 보였다. 서른둘이 처음 받은 자리가 두만강 가까운 눈밭이었고, 그 눈밭에서 그는 처음으로 군사를 거느렸다. 거느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는 책으로 알았고 눈밭에서 다시 배웠다. 책에는 추위가 없다.

감사 이후백이 여러 진을 돌며 변방 장수들에게 활을 쏘게 했다. 쏘아서 못 맞히면 곤장을 쳤다. 곤장을 면한 장수가 드물었다. 그것이 감사의 법이었고, 그 법이 동구비보까지 왔다. 감사는 이순신의 이름을 미리 들었는지 그를 매우 정답게 맞았다. 정답게 맞는 자리에서 그가 조용히 말했다.

“사또의 형장이 자못 엄하십니다. 변방 장수들이 손발을 둘 데가 없습니다.”

감사가 웃었다.

“그대 말이 옳다. 그러나 내가 어찌 옳고 그름 없이 그러겠는가?”

그것으로 끝이었다. 곤장이 줄었는지 늘었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그는 그날 자기 활을 쏘았고 몇 대가 맞았는지는 적지 않았다. 적을 종이가 없었다. 대신 다른 것이 남았다. 윗사람에게 형장이 엄하다고 말하는 종구품 권관. 그 말을 웃으며 받은 감사. 둘 다 그 자리에서 무엇도 잃지 않았다. 잃지 않고 끝나는 자리가 있다는 것을 그는 눈밭에서 하나 배웠다. 뒤에 그런 자리는 드물었다.

*

훈련원에 봉사로 들어간 것은 그 뒤였다.

봉사는 종팔품이다. 훈련원에서 제일 낮은 자리 가운데 하나다. 그 자리에서 그는 문서를 맡았다. 낮은 자리가 문서를 맡는다. 문서를 맡은 사람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 문서다.

병조 정랑 서익이 사람을 보내왔다. 훈련원에 자기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를 차례를 뛰어넘어 천거해 올리라는 것이었다.

“안 됩니다.”

“정랑께서 하라시는 일이다.”

“아랫사람이 차례를 뛰어넘으면 올라가야 할 사람이 못 올라갑니다. 그것은 공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법은 고칠 수 없습니다.”

서익이 그를 불렀다. 병조 뜰 아래 세워 놓고 꾸짖었다. 목소리를 높이고 기세로 눌렀다. 그는 말과 얼굴빛을 바꾸지 않고 곧게 따졌다. 서익은 원래 기가 세고 남을 업신여겨 같은 벼슬아치들도 그와 다투기를 꺼리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 앞에 종팔품이 서서 안 된다고 했다.

뜰 아래 서 있던 아전들이 서로 돌아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 관원이 감히 본조에 맞선다. 앞길을 돌아보지 않는가.

해가 저물었다. 서익이 부끄러워하며 그를 보냈다.

보내면서 마음에 두었다. 마음에 둔 것은 여섯 해를 돌아 발포(고흥 도화면)까지 왔다. 그것을 그는 그때 몰랐다. 알았어도 같았을 것이다. 안 된다는 것은 앞길과 상관없이 안 되는 것이다.

병조판서 김귀영이 서녀를 첩으로 주려고 했을 때도 같았다. 그는 중매하는 사람을 세운 자리에서 돌려보냈다. 벼슬길에 처음 나와서 어찌 권세 있는 집에 발을 붙이겠는가. 그 말이 김귀영에게 어떻게 들렸을지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면 그 사람이 생긴다.

*

창신도의 밤이 깊었다.

나는 다리에서 손을 뗐다. 붙은 뼈는 두껍다. 두꺼운 것은 비 오기 전에 안다. 스무 해를 그렇게 살았다. 어깨도 그렇게 될 것이다.

버드나무 껍질은 여드레쯤 갔다. 여드레 뒤에 마르고 갈라져서 새것으로 갈았다. 새것도 여드레 갔다. 석 달이면 열 번 남짓 갈았다. 마지막 껍질을 풀 때 다리가 제 다리 같지 않았다. 남의 다리처럼 가벼웠다. 그러다가 제 다리가 되었다.

등뼈의 무게는 남의 것 같다고 늘 생각했다. 그것은 붙은 뼈가 아니다. 부러진 적이 없다. 부러진 적이 없는 것이 왜 무거운지 나는 모른다. 모르는 채로 스무 해를 졌다.

내일은 당항포(고성 회화면)다. 이억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오면 배가 는다. 배가 늘면 어깨가 가벼워지는지 나는 모른다. 알아볼 것이다.

사료 · 1572년 훈련원 별과에서 말이 넘어져 왼쪽 다리뼈가 부러졌고, 보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했는데 한 발로 일어서서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겨 싸맨 것 ― 이분, 이충무공행록 · 1566년 스물둘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한 것, 팔 힘과 말 타기와 활쏘기에서 따를 사람이 없었고 같이 노는 무인들이 너나들이를 못 한 것 ― 같은 행록 · 1576년 식년 무과 병과 급제, 황석공 소서 강론에서 장량이 죽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나면 반드시 죽는다, 강목에 유후 장량이 죽었다고 적혀 있다」고 답해 시험관들이 「무인이 알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 선영의 넘어진 석인을 등으로 져서 일으킨 것 ― 같은 행록 · 훈련원 봉사로 있을 때 병조 정랑 서익이 아는 사람을 차례를 뛰어넘어 천거하라 한 것을 「아랫사람이 차례를 뛰어넘으면 올라갈 사람이 못 올라간다, 법은 고칠 수 없다」며 거절하고 뜰 아래서 낯빛을 바꾸지 않은 것, 아전들이 혀를 내두른 것, 서익이 해 질 녘에 부끄러워하며 보낸 것 ― 류성룡, 징비록. 행록은 상대를 「병부랑」이라고만 적는다 · 1576년 겨울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으로 나가 순행하는 감사 이후백에게 「형장이 자못 엄하시어 변방 장수들이 손발을 둘 데가 없다」고 하고, 감사가 「그대 말이 옳다, 그러나 내가 어찌 옳고 그름 없이 그러겠는가」 하고 웃은 것 ― 이충무공행록 · 병조판서 김귀영이 서녀를 첩으로 주려 하자 「벼슬길에 처음 나와 권세 있는 집에 발을 붙일 수 없다」며 중매를 돌려보낸 것 ― 징비록·행록 · 창신도의 밤에 다리를 만진 것, 말이 넘어진 까닭, 껍질을 여드레마다 간 것은 지어냈다. 1572년의 나이 스물여덟은 1545년생으로 센 것이다 · 이 회차는 1592년 7월 10일 밤(음력 6월 2일, 일기 있음)의 1인칭과 1572~1579년의 3인칭을 장면마다 번갈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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