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5,761자) · 1598년 12월 6일~15일, 왜교 앞바다

마지막 일기

이순신 · 네오

1598년 12월 6일 (음력 11월 8일) 도독부에 가서 위로 잔치를 베풀고 어두워져 돌아왔다. 얼마 있다가 도독이 보자고 청했다. 곧 가니 순천 왜교(순천 해룡면 신성리)의 적이 초열흘 사이에 물러나 달아난다는 기별이 뭍에서 급히 왔다. 급히 군사를 나아가게 해 돌아가는 길을 끊자고 했다.

붓이 스무엿새 만에, 두 번째로 돌아왔다.

11월 초여드레인데 간지가 없다. 이 달은 처음부터 끝까지 간지 없이 날짜만 남았다. 안 쓴 것이 아니라 없어졌을 것이고, 없어진 것은 없어진 채 둔다. 그날 도독부에 가서 위로 잔치를 베풀었다. 사선 열아홉을 잃고 뱃전에서 거꾸러졌던 사람을 위로하는 자리였다. 명나라 장수들이 돌리는 잔에서 독한 누룩 냄새가 올라왔고, 화로 곁에 앉은 무릎이 뜨거워질 무렵에야 자리가 파했다. 웃으며 잔을 받는 것도 싸움의 한 가지였다. 그 사람을 붙들어 두어야 바다에서 나란히 설 수 있었다.

어두워져 돌아왔는데 얼마 있다가 도독이 보자고 했다. 벗어 둔 겉옷을 다시 걸치고 횃불을 앞세워 갔다. 송진 타는 불꽃이 바람에 찢기며 발밑 자갈 위로 그림자를 어지럽게 흔들었다. 왜교의 적이 초열흘 사이에 물러나 달아난다는 기별이 뭍에서 급히 왔으니, 급히 군사를 나아가게 해 돌아가는 길을 끊자고 도독이 말했다. 뇌물을 받고 길을 열어 주려던 사람이, 그날 밤만은 끊자고 했다.

*

12월 7일 (11월 9일) 도독과 함께 한꺼번에 군사를 움직여 백서량에 이르러 진을 쳤다.

12월 8일 (11월 10일) 좌수영(여수) 앞바다에 이르러 진을 쳤다.

12월 9일 (11월 11일) 유도에 이르러 진을 쳤다.

12월 11일 (11월 13일) 왜선 열 몇 척이 장도에 모습을 보였다. 곧 도독과 약속하고 수군을 거느리고 쫓았다. 왜선이 물러나 움츠려 종일 나오지 않았다. 도독과 함께 장도에 돌아와 진을 쳤다.

12월 12일 (11월 14일) 왜선 두 척이 강화하는 일로 바다 가운데로 나왔다. 도독이 왜 통역을 시켜 왜선을 맞았다. 술시(저녁 일곱 시에서 아홉 시 무렵)에 왜장이 작은 배를 타고 도독부에 들어와 돼지 두 마리와 술 두 그릇을 도독에게 바쳤다고 했다.

돼지 두 마리와 술 두 그릇.

왜장이 작은 배를 저어 도독부에 들어와 바친 것이 그랬다. 강화하는 일이었다. 사정은 조카가 뒤에 적었다. 고니시는 빨리 돌아가고 싶은데 수군이 길을 막고 있는 것이 걱정이어서, 도독에게 뇌물을 많이 쓰며 진을 물려 달라고 했다. 도독은 들어주려 했다.

그 밤의 바다는 캄캄했다. 도독부 쪽 물가에만 등 몇 개가 흔들렸고, 작은 배 하나가 그 불빛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돼지 멱따는 소리가 물 위로 건너왔다가 곧 그쳤다. 돼지 둘과 술 둘이 뇌물의 처음이었다. 남의 뇌물까지 헤아리는 것도 통제사의 일이어서, 그 수를 머릿속에 넣어 두었다가 뒤에 다시 꺼내 보았다.

그 사흘 동안 백서량과 좌수영 앞바다와 유도로 진을 옮겨 가며 내려왔다. 밤마다 닻을 내린 자리에서 물살이 뱃바닥을 긁는 소리를 들으며 잤고, 새벽이면 갑판에 내린 서리가 짚신 밑에서 버석거렸다. 장도에 왜선 열 몇 척이 모습을 보였을 때는 곧 도독과 약속하고 쫓았다. 적은 움츠러들어 종일 나오지 않았다. 나오지 않는 배를 바라보며 물 위에서 하루를 보내고, 해가 지자 장도로 돌아와 진을 쳤다.

*

12월 13일 (11월 15일) 이른 아침에 도독을 가서 보고 잠깐 이야기하고 돌아왔다. 왜선 두 척이 강화하는 일로 도독 진중을 두세 번 드나들었다.

12월 14일 (11월 16일) 도독이 진문동을 왜 진영에 들여보냈다. 얼마 있다가 왜선 세 척이 말과 창과 칼 등의 물건을 가지고 도독에게 바쳤다.

말과 창과 칼.

왜선 세 척에 실어 와 도독에게 바친 것들이었다. 말은 흔들리는 배 위에서 발을 구르며 하얀 콧김을 뿜었고, 창과 칼은 기름 먹인 천에 싸여 있었다. 그날 밤 도독부 쪽에서는 매어 둔 말이 발굽으로 판자를 차는 소리가 이따금 건너왔다. 그 뒤로 왜 사자가 도독부에 드나드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도독은 통제사도 강화를 받아들이게 만들려 했다.

공이 말했다, 대장은 강화를 말하지 않는다. 원수인 적은 놓아 보낼 수 없다. 도독이 부끄러워해 얼굴이 붉어졌다. 술에 달아오른 낯도, 저잣거리에서 값을 흥정하다 붉히는 낯도 아니었다. 목덜미에서 올라온 붉은빛이 귀까지 번졌고,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얼굴이 한 번은 있었다.

왜 사자가 또 오자 도독이 말했다. 내가 너희 왜를 위해 이미 통제사에게 말했다가 거절당했으니 지금 다시 말할 수 없다. 도독은 통제사를 방패로 내세워 왜를 돌려보냈다. 방패가 되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 한마디 덕에 길은 아직 막혀 있었다.

*

고니시가 사람을 보냈다.

이번에는 나에게였다. 조총과 일본도를 들려 매우 간절히 보냈다. 사자는 두 손으로 받쳐 든 것을 장막 바닥에 내려놓고 오래 엎드려 있었다. 총신에는 기름이 반들거렸고 칼집에는 옻칠이 깊었다. 칼을 반 뼘쯤 뽑자 등잔불이 날을 타고 차갑게 미끄러졌고, 조총은 손에 들어 보니 생각보다 가벼웠다. 좋은 물건들이었다. 얼마짜리 뇌물인지 가늠해 보고 물리쳤다.

임진년 이래 적을 잡은 것이 수없고 얻은 총과 칼이 언덕과 산처럼 쌓였는데 원수의 사자가 여기 무엇 하러 왔느냐. 조카는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적었고, 나는 그 말을 했을 것이다. 다섯 해 전 옥포(거제 옥포동)에서부터 총 몇 자루, 칼 몇 자루 하고 헤아려 온 것이 쌓여 언덕이 되었다. 거기 두 자루를 보탠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사자는 말없이 물러갔고, 그가 탄 배의 노 소리가 어둠 속으로 한참 이어지다 끊겼다.

고니시가 또 사람을 보내 물었다. 조선 수군은 명나라 수군과 다른 데 진을 쳐야 하는데 지금 한 데 있는 것은 어째서냐. 공이 말하기를, 우리 땅에 진 치는 것은 오직 내 뜻대로 한다, 적이 알 바가 아니다. 명나라 도독의 그늘 아래 진을 친 몸으로 우리 땅이라고 했고, 내 뜻대로라고 했다. 남겨 둘 만한 말이었다.

*

남해를 치자고 했다.

도독이 뇌물을 많이 받고 그 갈 길을 열어 주려 공에게 말하기를, 나는 우선 고니시를 두고 먼저 남해의 적을 치려 한다고 했다. 공이 답하기를, 남해는 다 붙잡혀 간 사람이지 왜적이 아니다. 도독이 말하기를, 이미 적에게 붙었으면 그도 적이다. 지금 가서 치면 힘들이지 않고 많이 벤다. 도독이 헤아리는 것은 벤 목의 수였다. 힘들이지 않고 많이, 그 두 마디에 그 사람이 다 들어 있었다.

공이 말하기를, 황제가 적을 치라고 명한 것은 작은 나라 사람의 목숨을 구하려는 것이다. 지금 데려오지 않고 도리어 죽이면 황제의 본뜻이 아닐까 두렵다고 했다. 도독이 노해서 황제가 나에게 긴 칼을 내렸다고 했다. 목을 베는 칼이니 통제사의 목도 벨 수 있다는 뜻을 그는 감추지 않았다. 장막 안이 조용해졌고, 화로 속 숯이 무너져 내려앉는 소리만 났다.

공이 말하기를, 한 번 죽는 것은 아까울 것이 없다. 나는 대장으로 결코 적을 두고 우리 사람을 죽일 수 없다며 오래 다투었다.

명량(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에서 열셋을 앞에 두고 살 마음을 먹지 말라고 했던 사람이, 오천 군사를 거느린 도독 앞에서 같은 말을 했다. 도독이 무엇이라 답했는지는 없고, 오래 다투었다는 말뿐이다. 답이 없었으니 도독은 물러섰고, 물러선 자리에 남해가 남았다. 장막을 나서니 물 건너 남해의 산줄기가 검게 엎드려 있었고, 찬 바람에 실려 온 갯내가 코끝을 쏘았다. 붙잡혀 간 사람들이 그 섬에 있었다. 그날 다투어 얻은 것은 하나, 그 사람들의 목이 아무의 셈에도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

12월 15일 (11월 17일) 어제 복병장 발포(고흥 도화면)만호 소계남과 당진포만호 조효열 등이 왜 중선 한 척이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에서 바다를 건너는 것을 한산도(통영 한산면) 앞바다까지 쫓았다. 왜적이 언덕에 의지해 뭍으로 올라 달아났다. 잡은 왜선과 군량은 명나라 사람에게 빼앗겼다. 빈손으로 와서 알렸다.

마지막이다.

이것이 마지막 일기다. 11월 17일, 이틀 뒤에 죽는다는 것을 모르고 썼다. 소계남과 조효열이 군량을 가득 실은 왜 중선 한 척을 남해에서부터 쫓았다. 다섯 해 전 일흔셋을 깨뜨린 한산도 앞바다까지 따라붙었고, 왜는 언덕에 배를 대고 뭍으로 달아났다. 남은 배와 군량을 잡았으나 명나라 사람에게 빼앗겼다. 두 사람은 빈손으로 와서 알렸다.

그 둘이 장막 앞에 섰을 때 옷에는 바닷물이 말라 소금기가 허옇게 앉아 있었을 것이고, 하루 종일 쫓느라 노를 잡은 손바닥은 붉게 부풀어 있었을 것이다. 동짓달 바람이 장막 틈으로 들어와 등잔불을 한쪽으로 눕혔다가 놓아주었다. 무엇을 잡았고 무엇을 빼앗겼는지 듣고 나서, 그것을 한 줄로 받아 적었다.

빈손, 그것이 마지막 일기의 마지막 말이다. 히데요시가 죽은 것도 고니시가 달아날 것도 시마즈가 올 것도 그날 일기에는 없다. 아는 것만 썼다. 잡은 것과 빼앗긴 것. 여섯 해 동안 그렇게 썼고 마지막 날도 그렇게 썼다.

여섯 해 전 임진년 정월 초하루 새벽, 아우와 조카와 아들이 와서 이야기했다는 첫 줄부터 여기까지 한 손이 썼다. 손이 저 혼자 멈춘 것은 아니다. 멈추기 전에 하루가 더 있었다. 종이 끝에 남은 여백이 등잔불 아래 누렇게 비었다. 18일에는 밤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쓰지 못했다. 돌아오지 않은 손은 쓸 수 없다.

그래서 여기서 끊긴다. 빈손으로 와서 알렸다. 그다음은 없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하지 않는다. 다음은 남의 손이다. 조카의 손과 남원 사람의 손, 명나라 사람과 일본 사람의 손, 한양 사람의 손이 이어서 쓴다. 이 손은 여기까지다. 벼루의 먹은 그대로 마르고, 붓은 붓걸이에 걸린 채 끝이 굳어 간다. 이 손의 마지막 글자를 둔다. 알렸다, 고. 그 한 글자.

사료 · 11월 8일 도독부의 위로 잔치, 도독이 「순천 왜교의 적이 초열흘 사이에 물러나 달아난다는 기별이 뭍에서 왔으니 급히 나아가 돌아가는 길을 끊자」고 한 것, 9~11일 백서량·좌수영·유도, 13일 장도의 왜선 열 몇 척, 14일 「왜장이 작은 배로 도독부에 들어와 돼지 두 마리와 술 두 그릇을 바쳤다」, 15~16일 왜선이 강화하는 일로 드나들고 「말과 창과 칼」을 도독에게 바친 것 ― 난중일기 무술년 11월 8~16일(전서본). 이 달의 일기는 간지가 없다 · 「고니시가 빨리 돌아가고 싶어 수군이 길을 막는 것을 걱정해 도독에게 많이 뇌물했다」, 「대장은 강화를 말하지 않는다. 원수인 적은 놓아 보낼 수 없다」에 도독이 부끄러워한 것, 도독이 왜 사자에게 「통제사에게 말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한 것, 고니시가 총과 칼을 보내자 「임진년 이래 얻은 총과 칼이 언덕과 산처럼 쌓였다. 원수의 사자가 여기 무엇 하러 왔느냐」, 「우리 땅에 진 치는 것은 오직 내 뜻대로 한다. 적이 알 바가 아니다」 ― 이분, 이충무공행록 · 「남해는 다 붙잡혀 간 사람이지 왜적이 아니다」, 「황제가 적을 치라고 명한 것은 작은 나라 사람의 목숨을 구하려는 것이다」, 도독의 「황제가 나에게 긴 칼을 내렸다」, 「한 번 죽는 것은 아까울 것이 없다. 나는 대장으로 결코 적을 두고 우리 사람을 죽일 수 없다」, 「오래 다투었다」 ― 행록 · 11월 17일 「어제 소계남·조효열 등이 군량을 실은 왜 중선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쫓았으나 왜적이 뭍으로 달아나고 잡은 배와 군량은 명나라 사람에게 빼앗겨 빈손으로 와서 알렸다」 ― 난중일기 11월 17일. 이것이 난중일기의 마지막 날이다 · 뇌물을 센 것, 도독의 붉은 얼굴에 대한 생각, 「이 손의 마지막 글자」는 지어냈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마지막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무술년 11월 17일은 양력 12월 15일이다

73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