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5,828자) · 1598년 3월~8월, 고금도. 일기가 없는 여름
고금도
이순신 · 네오
1598년 3월 23일 (음력 2월 17일) 이 무렵 이순신은 일기를 쓰지 못했다. 무술년 일기는 정월 초나흘에서 끊겨 9월 보름까지 없다. 조카 이분이 적었다. 2월 17일 고금도(완도 고금면)로 진을 옮겼다. 섬은 강진 남쪽 삼십여 리에 있다. 봉우리가 겹겹이 쌓이고 형세가 더욱 기이하다. 곁에 농장이 있어 매우 편했다. 공이 백성을 모아 농사짓게 하니 군량이 그것에 힘입어 넉넉했다.
고금도, 강진 남쪽이었다.
겨울을 보화도에서 나고 봄이 오자 진을 남쪽으로 옮겼다. 고금도는 강진 남쪽 삼십여 리 바다에 떠 있었고, 봉우리가 겹겹이 쌓여 형세가 기이했다. 그러나 공이 이 섬을 고른 까닭은 봉우리보다 그 곁의 농장이었다. 배를 숨길 데가 아니라 곡식이 나는 데를 골랐다. 배에서 내린 격군들이 선창에 발을 디디자 겨우내 흔들리던 몸이 땅 위에서도 한동안 흔들렸다. 몇은 뱃멀미하듯 비틀거리다 웃었다.
이월의 바닷바람은 아직 찼다. 공이 백성을 모아 농사를 짓게 하자, 쟁기 날이 겨우내 언 흙을 뒤집을 때마다 검고 축축한 속흙에서 비릿한 흙냄새가 올라왔다. 밭둑에서 소가 코로 허연 김을 뿜었다. 흙 묻은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친 사람들이 저녁이면 갯가에 나가 손을 씻었다. 군량이 그 밭에 힘입어 넉넉해졌다.
다섯 해 전 한산도(통영 한산면)에서 한 둔전을 다시 한 것인데, 이번에는 백성이 스스로 왔다. 조카는 남도 백성 가운데 통제사에게 목숨을 의지하는 사람이 수만 집에 이르렀고 군사의 위세가 한산도 진의 열 배였다고 썼다. 배 위를 떠돌던 남도가 섬으로 내려와 집을 짓고 밭을 갈았다. 열 배는 조카가 어림한 수다. 나무랄 것은 없다. 열셋에서 시작한 사람이 여기까지 왔다.
*
1598년 8월 17일 (7월 16일) 천조 수병 도독 진린이 수병 오천을 거느리고 왔다. 공이 진린의 군사가 곧 온다는 것을 듣고 술과 고기를 성대히 마련하고 군의 의장을 갖추어 멀리 나가 맞아 크게 잔치했다. 여러 장수 이하 취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군졸이 서로 말했다. 과연 좋은 장수다.
명나라 수병 도독 진린이 오천의 군사와 수백의 배를 거느리고 왔다.
광동 사람이었다. 오래 벼슬을 했고, 가는 데마다 탐욕스러웠다. 명나라 역사는 그를 그렇게 기억한다. 여러 번 탄핵을 받았고 파직된 적도 있었다. 그런 사람이 조선 수군을 지휘하러 왔다. 그의 배들은 조선 배보다 몸체가 가늘고 돛이 높았다. 뱃전마다 낯선 말씨의 고함이 오갔고, 물 위에 떠 있는 그 수백 척이 섬 앞바다를 가렸다. 도독이 위였고 통제사가 아래였다.
임금이 그것을 걱정했다. 진린은 사람됨이 사납고 오만하니 후하게 대접하고 노하게 하지 말라는 유지가 먼저 내려와 있었다. 임금은 통제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 원균을 두고 흉험하다고 종이에 쓰고, 조정의 잘못을 거리낌 없이 짚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에게 노하게 하지 말라고 일렀다.
공은 진린의 군사가 곧 온다는 말을 듣고 술과 고기를 성대히 마련했다. 군의 의장을 갖추고 멀리 바다로 나가 맞았다. 깃발이 뱃전마다 줄지어 섰고, 북소리가 물 위를 건너갔다. 그날 섬 곳곳에서 고기 굽는 기름 연기가 올라 바닷바람에 섞였다. 여러 장수 이하 취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취한 군졸들이 서로 말했다. 과연 좋은 장수다.
첫날 공은 그 한마디를 얻었다. 임금의 명대로 도독을 노하게 하지 않았다. 잔치가 끝난 밤, 선창 여기저기에 쏟아진 술이 달빛에 번들거렸고 취해 쓰러진 군졸들의 코 고는 소리가 파도 소리와 섞였다.
*
도독의 군사가 처음 와서 약탈을 많이 해 군민이 괴로워하자, 공은 집을 헐었다.
하루는 공이 군중에 영을 내렸다. 크고 작은 집을 한꺼번에 헐어 치우라고 했다. 공도 자기 옷과 이불을 실어 배에 내리게 했다. 도끼가 기둥을 찍는 소리가 섬 곳곳에서 한꺼번에 울렸고, 이엉이 뜯겨 나간 지붕에서 묵은 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봄내 새로 엮어 올린 지붕들이었다. 도독이 곳곳에서 집을 허는 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가정을 보내 물었다.
공이 답했다. 작은 나라 군민이 천장이 온다는 말을 듣고 부모를 우러르듯 했는데 지금 천병이 오로지 사납게 약탈만 하니 사람들이 견디지 못해 저마다 피해 달아나려 한다. 나는 대장으로 혼자 남을 수 없어 나도 바다에 떠서 다른 데로 가려 한다.
그 말을 오천 앞에서 했다. 열셋으로 백서른셋 앞에 섰던 사람이 오천의 군사 앞에서 짐을 쌌다. 시늉이 아니었다. 옷과 이불이 정말로 배에 실렸고, 도독은 그것을 제 눈으로 보았다. 명량에서 뱃머리에 붉은 옷을 올린 것처럼, 보라고 내린 짐이었다.
도독이 크게 놀라 곧 거꾸러지며 달려왔다. 숨을 몰아쉬며 공의 손을 잡고 말렸다. 가정들을 시켜 옷과 이불을 도로 실어 오게 하고, 간절히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가정들이 배에 올라 이불 보따리를 도로 지고 내려오는 동안, 선창에 모인 군민들은 멀찍이 서서 말없이 그것을 지켜보았다. 오천을 거느린 도독이 통제사에게 빌었다.
공이 말했다. 대인이 내 말을 따르면 된다. 도독이 말했다. 어찌 따르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공이 말했다. 천병이 우리를 배신이라 하여 조금도 꺼리는 것이 없다. 만일 편의대로 꾸짖고 금하는 것을 허락하면 서로 보전할 수 있다. 도독이 짧게 답했다. 좋다.
그 뒤로 도독의 군사가 죄를 지으면 공이 법대로 다스렸다. 천병이 공을 두려워하기를 도독보다 더했고, 군중이 그 덕에 편안해졌다. 공은 집 몇 채를 헐어 오천을 다스릴 법을 얻었다. 헐린 기둥과 서까래는 선창 한쪽에 가지런히 쌓였다. 뜯긴 이엉에서 떨어진 볏짚이 며칠 동안 바람에 섬 안을 굴러다녔다.
*
1598년 8월 26일 (7월 25일) 이날 절이도(고흥 거금도) 앞바다에서 싸움이 있었다. 18일 적선 백여 척이 녹도(고흥 도양읍 녹동)를 침범한다는 말을 듣고 공과 도독이 각각 전선을 거느리고 금당도에 이르니 적선이 둘뿐이라 우리를 보고 달아났다. 공이 녹도만호 송여종을 남겨 배 여덟으로 절이도에 매복하게 했다. 도독도 배 서른을 남겨 변을 기다리게 했다. 24일 공이 도독을 위해 운주당에서 술을 차렸다. 한창일 때 도독 휘하의 천총이 절이도에서 와서 알렸다. 새벽에 적을 만났는데 조선 수군이 다 잡고 천병은 바람이 순하지 않아 싸우지 못했습니다.
도독이 대노해, 끌어내라고 소리치고 잔을 던지고 상을 밀쳤다.
일은 며칠 전에 시작되었다. 적선 백여 척이 녹도를 노린다는 말에 공과 도독이 각각 배를 이끌고 금당도까지 나갔으나, 바다에 떠 있던 적선은 둘뿐이었고 그마저 우리를 보고 달아났다. 공은 송여종에게 배 여덟을 주어 절이도 그늘에 숨겨 두었다. 배들은 노를 거두고 섬 그림자 속에 붙어, 밤새 물이 뱃전을 핥는 소리만 내며 기다렸다. 도독도 배 서른을 남겨 두었다.
그리고 운주당의 술자리였다. 등잔불 아래 상마다 안주가 놓였고, 술 냄새와 기름 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다. 한창일 때 천총이 절이도에서 달려와 아뢰었다. 새벽에 적을 만났는데, 조선 수군이 다 잡고 천병은 바람이 순하지 않아 싸우지 못했다고 했다.
잔이 벽에 부딪혀 깨지고 상 위의 그릇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조카는 그때 도독의 얼굴에 저잣거리의 낯빛이 있었다고 썼다. 물건 값을 두고 다투는 장사꾼의 얼굴이었다. 공은 그 얼굴을 보았다. 공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흩어진 그릇 사이에서 술이 상 모서리를 타고 바닥으로 똑똑 떨어졌다.
공이 그 뜻을 알고 풀었다. 노야는 천조의 대장으로 바다 도적을 치러 왔으니 진중의 승첩은 곧 노야의 승첩이다. 나는 마땅히 수급을 온전히 노야에게 드리겠다. 노야가 진에 온 지 오래지 않아 황제 조정에 큰 공을 아뢰면 어찌 좋지 않겠는가.
송여종이 잡은 배 여섯과 적의 머리 예순아홉을 모두 도독에게 보냈다. 예순아홉은 하나하나 센 수였고, 공은 그 가운데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도독이 크게 기뻐하며 공의 손을 잡았다. 중국에 있을 때부터 공의 이름을 실컷 들었는데 지금 과연 헛되지 않다. 그날 두 사람은 종일 취하고 배불렀다. 운주당 마루에는 치운 자리에 다시 상이 들어왔고, 깨진 잔 대신 새 잔이 놓였다.
임금이 그 일을 듣고 공이 천장에게 빛이 있다고 가상히 여겼다. 다섯 해 전 원균과 머리를 다투던 통제사가 이번에는 예순아홉을 다 내주었다. 원균은 세지 않는 사람이었고 진린은 세는 사람이었다. 세는 사람에게 주면 그는 받은 것을 세어서 기억한다. 기억하는 사람이 되면 오천이 우리 편에 선다. 셈이 맞았다.
*
도독이 진에 오래 있으면서 공의 호령과 절제를 익히 보고, 자기 배가 많아도 적을 막을 수 없다고 헤아려 반드시 공을 이야라고 불렀다.
그래서 싸울 때마다 도독은 우리 판옥선에 타고 공의 절제를 받기를 원했고, 군호와 지휘를 다 양보했다. 이야는 이 어른이라는 뜻이다. 도독은 공에게 작은 나라 사람이 아니라며 명나라에 들어가 벼슬하라고 여러 번 권했다.
노야는 이쪽에서 도독을 높여 부르던 말이었고, 이야는 도독이 공을 높여 부르는 말이었다. 통역이 두 진 사이를 오가며 그 두 말을 옮겼고, 두 사람은 서로를 어른이라고 불렀다. 통역은 작은 배를 타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건넜고, 그의 소매는 늘 바닷물에 젖어 있었다. 가는 데마다 탐욕스러웠다고 명나라 역사에 남은 사람이 자기 배를 두고 조선 배에 올랐다. 그가 올라탄 것은 배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고금도의 여름은 뜨거웠다. 한낮이면 갑판 이음새의 송진이 녹아 발바닥에 끈적하게 달라붙었고, 바다에서 올라오는 김에 옷이 등에 들러붙었다. 그 여름 공이 무엇을 썼는지는 모른다. 일기가 없는 여름이다. 그 빈 여름에 오천이 왔고, 집이 헐렸고, 예순아홉이 건너갔고, 이야라는 말이 생겼다.
빈자리는 조카의 종이가 채웠다. 취한 군졸의 말과 도독의 낯빛과 이야라는 두 글자가 그 종이에 남았다. 공이 썼다면 다르게 썼을 것이다. 다르게 썼을 것을 지어내지 않는다. 있는 종이로 간다.
사료 · 무술년 2월 17일 고금도로 진을 옮긴 것, 「봉우리가 겹겹이 쌓이고 형세가 기이하며 곁에 농장이 있어 백성을 모아 농사짓게 하니 군량이 넉넉했다」, 「남도 백성으로 공에게 목숨을 의지하는 이가 수만 집이고 군세가 한산도 진의 열 배였다」 ― 이분, 이충무공행록 · 7월 16일 진린이 수병 오천을 거느리고 온 것, 술과 고기와 군의 의장으로 멀리 나가 맞아 「취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과연 좋은 장수다」, 임금이 「진린은 걸오하니 후하게 대접하고 노하게 하지 말라」고 한 것, 도독의 군사가 약탈하자 집을 다 헐고 옷과 이불을 배에 내려 「나도 바다에 떠서 다른 데로 가려 한다」 하니 도독이 거꾸러지며 달려와 손을 잡고 빈 것, 「편의대로 꾸짖고 금하게 허락하라」에 도독이 「좋다」 한 뒤 천병이 도독보다 공을 더 두려워한 것 ― 행록 · 7월 18일 금당도, 송여종의 배 여덟을 절이도에 매복시킨 것, 24일 운주당 술자리에서 천총의 보고를 들은 도독이 잔을 던지고 상을 밀치며 「저잣거리의 낯빛」을 보인 것, 「진중의 승첩은 곧 노야의 승첩이니 수급을 온전히 드리겠다」, 배 여섯과 머리 예순아홉을 도독에게 보낸 것, 「중국에 있을 때부터 공의 이름을 실컷 들었는데 과연 헛되지 않다」, 임금이 「천장에게 빛이 있다」고 가상히 여긴 것 ― 행록 · 「싸울 때마다 우리 판옥선에 타고 공의 절제를 받기를 원해 군호와 지휘를 다 양보하고 반드시 공을 이야라고 불렀다. 공은 작은 나라 사람이 아니라며 명나라에 들어가 벼슬하라고 여러 번 권했다」 ― 행록 · 「진린은 꾀가 있고 군사를 잘 부렸으나 가는 데마다 탐욕스러웠다」, 부하들의 소란으로 문책받은 것, 병 만삼천여와 전함 수백 ― 명사 권247 진린전 · 무술년 일기는 정월 4일에서 9월 14일까지 없다. 「보이라고 하는 것」, 원균과 진린의 셈 비교, 「사람을 탔다」는 지어냈다 · 이 회차는 이순신 쪽 3인칭이다. 일기가 없는 자리라 조카의 기록을 읽는 자리에서 썼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