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6,228자) · 1597년 11월 9일~22일, 우수영에서 발음도까지
통곡 두 글자
이순신 · 네오
1597년 11월 9일 (음력 10월 1일) 맑음. 병조 역자가 공문을 가지고 내려왔다. 아산(충남 아산) 고향이 적에게 불탔다고 전했다.
11월 10일 (10월 2일) 맑음. 아들 회가 배를 타고 올라갔다. 잘 가는지 알 수 없다. 마음을 말로 할 수 있으랴.
아산이 불탔다.
병조의 역자가 배에 올랐을 때 그의 짚신은 바닷물에 절어 허옇게 소금꽃이 피어 있었다. 그는 공문을 두 손으로 건넨 뒤에, 공문에는 없는 말을 입으로 보탰다. 아산 고향이 적에게 불탔다고 했다.
아산에는 어머니의 빈소가 있었다. 장사를 지냈는지 못 지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7월 27일과 8월 초나흘 가운데 하루로 날을 잡았을 것이고, 지냈다면 무덤이 섰을 것이다. 무덤은 타지 않는다. 집은 탄다.
집이 탔다.
역자가 내려간 뒤에도 나는 공문을 쥐고 있었다. 손바닥의 땀이 배어 종이 귀퉁이가 물렀다.
이튿날 큰아들 회를 배에 태워 아산으로 올려 보냈다. 그 어머니와 여러 가족을 보고 오라고 했다. 회의 어머니, 곧 내 아내가 불탄 아산에 있었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회는 보퉁이 하나를 등에 지고 작은 배로 내려섰다. 노꾼이 삿대로 뱃전을 밀자 두 배 사이의 물이 검게 벌어졌고, 배는 섬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잘 가는지 알 수 없다. 마음을 말로 할 수 있으랴. 그날 일기에는 그 두 줄만 남겼다.
명량(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에서 회는 내 곁에 있었다. 물살에 배가 기울 때마다 그 애의 어깨가 내 팔꿈치에 닿았다. 배 위에서 내 속이 편치 않다는 것을 말 없이 알던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가고 나니 옆이 비었다. 저녁 바람이 그 빈자리로 곧장 들어왔다.
*
11월 17일 (10월 9일) 맑음. 일찍 떠나 우수영(해남 문내면)에 이르니 성 안팎에 인가가 하나도 없고 사람 자취도 없었다. 보기에 참담했다. 흉한 적이 해남에 진을 치고 있다고 들었다.
11월 19일 (10월 11일) 맑음. 사경(새벽 한 시에서 세 시 무렵)에 바람 기운이 그친 것 같아 닻을 올려 바다 가운데 이르렀다. 정탐하는 사람 이순과 박담동과 박수환과 태귀생을 해남으로 보냈다. 해남에 연기가 하늘에 가득하다고 했다. 반드시 적이 달아나며 불을 지른 것이다. 낮에 발음도에 이르렀다. 바람이 좋고 날이 온화했다. 뭍에 내려 맨 꼭대기에 올라 배 감출 데를 살펴보았다. 동쪽에 앞섬이 있어 멀리 바라볼 수 없었다. 북쪽으로 나주와 영암 월출산이 통하고 서쪽으로 비금도가 통했다. 눈길이 탁 트였다.
우수영이 비었다.
배를 대고 성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문짝은 떨어져 나가 길가에 엎어져 있었고, 그을린 서까래가 내려앉은 지붕 사이로 검게 삐져나와 있었다. 비가 한 번 지나간 뒤라 재가 굳어서, 밟으면 발밑에서 떡처럼 뭉개졌다. 개 한 마리 짖지 않았다. 성 안팎에 인가가 하나도 없었고 사람 자취도 없었다. 보기에 참담했다. 이 말을 올해 들어 세 번째 쓴다. 부유창의 재 앞에서 한 번, 순천에서 한 번이었다.
명량을 등지고 진을 옮겨 왔던 자리였다. 열셋으로 백서른셋을 막았더니, 바다에서 진 적이 뭍으로 올라와 분풀이를 하고 갔다. 법성포에서 본 연기를 우수영에서 다시 보았다. 이기고 돌아온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틀 뒤 사경(새벽 한 시에서 세 시 무렵)에 바람이 자는 것 같아 닻을 올렸다. 닻줄이 물을 끌고 올라오며 찬 물방울을 갑판에 흩뿌렸다. 이순과 박담동과 박수환과 태귀생을 해남으로 보냈더니, 해남 하늘에 연기가 가득하다고 했다. 적이 달아나면서 불을 질렀다.
낮에 발음도에 닿아 뭍에 내렸다. 맨 꼭대기까지 오르는 동안 마른 억새가 바짓가랑이에 스치며 버석거렸고, 꼭대기에 서자 바람이 소매 속으로 파고들었다. 날이 온화해서 북쪽으로 나주 들판 너머 영암 월출산의 바위 능선이 톱니처럼 또렷했다. 서쪽으로는 비금도가 물 위에 낮게 엎드려 있었다. 눈길이 탁 트였다.
트인 데 서 본 것이 오랜만이었다. 명량은 좁았고, 벽파진(진도 고군면 벽파리)은 등 뒤에 물목을 지고 있었다. 여기서 겨울을 날 수 있을까. 배를 어디 숨기고 격군을 어디 재우고 망은 어디 세울지, 꼭대기에 선 채로 헤아렸다. 앞섬이 동쪽을 가리고 있었다. 동쪽을 못 보는 자리에 배를 둘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섬을 버리고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니 조계종이 와 있었다. 왜들이 수군을 깊이 싫어한다고 그가 전했다. 싫어하는 것이 좋았다.
*
11월 21일 (10월 13일) 맑음. 배 조방장과 경상우후가 와서 보았다. 얼마 있다가 탐선이 임준영을 태우고 왔다. 적의 기별을 들으니 해남에 들어와 웅거하던 적이 초이렛날 수군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열하룻날 남김없이 달아났다. 해남 향리 송언봉과 신용 등이 적 속에 들어가 왜를 이끌고 다니며 선비를 많이 죽였다고 했다. 통분함을 이기지 못했다.
향리가 왜를 이끌었다.
탐선에서 내린 임준영은 뱃전에 손을 짚고 숨부터 골랐다. 해남에 들어와 웅거하던 적이 초이렛날 수군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열하룻날 남김없이 달아났다고 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전했다. 해남 향리 송언봉과 신용이 적 속에 들어가 왜를 이끌고 다니며 선비를 많이 죽였다.
송언봉과 신용은 고을의 아전이었다. 관아 마루에서 장부를 넘기고 세금을 매기던 손이, 이번에는 왜에게 어느 집이 선비 집인지 가리켰다. 다섯 해 동안 나는 왜를 미워했다. 그날은 조선 사람을 미워했다.
그들이 왜 그랬는지 나는 모른다. 살려고 그랬을 것이고, 살자면 사람이 그렇게도 된다는 것을 안다. 알면서도 통분을 이기지 못했다. 아는 것과 통분하는 것이 따로 서 있어야 통제사다. 알기만 하면 벌을 주지 못하고, 통분만 하면 엉뚱한 목을 벤다. 나는 둘 다 쥐고 있었다.
그날로 순천부사 우치적과 김갑만호 이정표, 제포(창원 진해구 제덕동)만호 주의수, 당포(통영 산양읍 삼덕리)만호 안이명, 조라만호 정공청, 군관 임계형과 정상명과 태귀생과 박수환을 해남으로 보냈다. 아홉이었다. 떠나는 사람들이 칼집을 허리에 고쳐 차는 소리가 선창 판자 위에서 잇달아 났다. 나는 그 아홉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 가며 종이에 올렸다. 잡으러 가는 사람의 이름과 잡혀 올 사람의 이름이 같은 날 같은 종이에 올랐다.
*
11월 22일 (10월 14일) 맑음. 사경에 꿈을 꾸었다.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를 가는데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에 떨어졌으나 넘어지지는 않았다. 막내아들 면이 붙들어 안는 형상이 있는 것 같더니 깼다. 이것이 무슨 조짐인지 알 수 없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 편지를 전했다. 봉을 뜯기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렸다. 마음과 기운이 어지러웠다. 대강 겉봉을 뜯고 열의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 두 글자가 씌어 있었다. 면이 싸우다 죽은 것을 알았다. 저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지고 목소리를 잃었다. 통곡하고 통곡했다.
겉면에 통곡 두 글자.
사경에 꿈을 꾸었다. 말을 타고 언덕 위를 가는데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로 떨어졌다. 나는 넘어지지 않았고, 막내 면이 나를 붙들어 안는 것 같았다. 거기서 깼다. 뜸 안은 캄캄했고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무슨 조짐인지 알 수 없었다.
저녁에 천안에서 온 사람이 집 편지를 내밀었다. 봉을 뜯기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렸다. 마음과 기운이 어지러웠다. 겉봉을 대강 뜯자 둘째 열의 글씨가 보였고, 겉면에 통곡 두 글자가 씌어 있었다.
열은 그 두 글자를 뜯기 전에 보이는 자리에 썼다. 속을 펴기 전에 아비가 먼저 알게 했다. 그렇게 쓸 줄 아는 아들이었다. 먹이 굵었고, 마지막 획이 종이 끝까지 밀려가 있었다. 싹이 처음 트는 것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겉봉에 통곡이라고 썼다.
꿈이 먼저 알았고, 몸이 그다음에 알았고, 눈이 마지막에 알았다.
면이 싸우다 죽었다. 조카는 뒤에 그 아이를 이렇게 기억했다. 막내는 담력이 있고 말 타고 활 쏘기를 잘해서, 나를 닮았다고 내가 유난히 아꼈다. 어머니를 모시고 아산 집에 있다가 왜가 마을을 불태운다는 말을 듣고 달려 나갔고, 길에 숨어 있던 칼에 맞았다. 그 밤의 나는 그것을 몰랐다. 겉면에 통곡 두 글자가 있었고, 속에 전사 두 글자가 있었다. 나는 그 넉 자만 알았다.
*
간담이 떨어졌다.
간담이 떨어지고 목소리를 잃었다. 통곡하고 통곡했다. 소리가 목으로 나오지 않고 가슴 안에서만 부딪쳤고, 편지를 쥔 손가락이 굳어서 펴지지 않았다. 초고에는 간과 담이 타서 찢어지고 찢어진다고 썼다. 찢어진다는 말을 두 번 썼다. 한 번으로는 모자랐다.
하늘이 어찌 이렇게 어질지 못한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의 떳떳함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사니 무슨 이치가 이렇게 어긋나는가. 천지가 캄캄하고 밝은 해가 빛을 잃었다. 다섯 달 전 어머니의 부고를 받던 날에도 해가 캄캄하다고 썼다. 같은 손이 같은 말을 또 썼다.
슬프다 내 어린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특한 기운이 남달라 하늘이 세상에 남겨 두지 않는 것이냐. 내가 지은 죄가 화가 되어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옥에 끌려갔던 아비의 죄가 아들에게 건너갔는가. 물음은 종이 위에 남았고, 답은 오지 않았다.
이제 내가 세상에 있어도 끝내 누구에게 의지하겠느냐. 초고에서는 거기서 더 나아갔다. 죽어서 너를 따라 지하로 가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으나, 네 형과 네 누이와 네 어머니도 의지할 데가 없으니 우선 참고 목숨을 이어 간다. 마음은 죽고 몸만 남았다. 전서본은 이 대목을 뺐고, 뺄 만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두고 간다. 죽고 싶다고 쓰고 곧바로 죽지 않겠다고 쓴 밤이었다. 그 두 줄 사이에 형과 누이와 어머니가 있었다.
부르짖어 울 뿐이다. 밤을 지내는 것이 한 해 같았다. 초고에는 둘 다 두 번씩 있으니, 여기도 두 번 둔다. 부르짖어 울 뿐이다. 밤을 지내는 것이 한 해 같았다.
그 밤 이경(밤 아홉 시에서 열한 시 무렵)에 비가 왔다. 빗방울이 뜸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틈으로 샌 물이 등잔 곁에 떨어져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나는 그 비도 초고에 적었다. 아들이 죽은 밤에 날씨를 썼다. 손이 붓을 놓지 않았고, 붓을 놓지 않는 동안 목숨이 이어졌다. 우선 참고. 참는 것이 붓이었다. 그 밤에 남은 것은 비라는 한 글자였다.
사료 · 10월 1일 병조 역자가 「아산 고향이 적에게 불탔다」고 전한 것, 2일 회가 배를 타고 올라간 것과 「잘 가는지 알 수 없다. 마음을 말로 할 수 있으랴」 ― 난중일기 정유년 10월 1~2일(전서본). 「그 어머니와 여러 가족을 보게 하려고」 ― 초고본 책6 · 10월 9일 우수영이 텅 비어 「보기에 참담했다」, 11일 해남의 연기, 발음도 맨 꼭대기에서 배 감출 데를 살핀 것과 「눈길이 탁 트였다」, 조계종이 전한 「왜들이 수군을 깊이 싫어한다」 ― 난중일기 10월 9~11일 · 10월 13일 임준영이 전한 해남 적의 도주와 향리 송언봉·신용이 「왜를 이끌고 다니며 선비를 많이 죽인」 것, 「통분함을 이기지 못했다」, 우치적 등 아홉을 해남으로 보낸 것 ― 난중일기 10월 13일 · 10월 14일 사경의 꿈, 「봉을 뜯기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렸다」, 「겉면에 통곡 두 글자」, 「간담이 떨어지고 목소리를 잃었다. 통곡하고 통곡했다」, 「하늘이 어찌 이렇게 어질지 못한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의 떳떳함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사니 무슨 이치가 이렇게 어긋나는가. 천지가 캄캄하고 밝은 해가 빛을 잃었다. 슬프다 내 어린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 내가 지은 죄가 화가 되어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이제 내가 세상에 있어도 끝내 누구에게 의지하겠느냐. 부르짖어 울 뿐이다. 밤을 지내는 것이 한 해 같았다」 ― 난중일기 10월 14일(전서본) · 「간과 담이 타서 찢어지고 찢어진다」, 「죽어서 너를 따라 지하로 가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으나 네 형과 네 누이와 네 어머니도 의지할 데가 없어 우선 참고 목숨을 이어 간다. 마음은 죽고 몸만 남았다」, 「부르짖어 울 뿐이다」와 「밤을 지내는 것이 한 해 같았다」를 두 번 적은 것, 「이 밤 이경에 비가 왔다」 ― 초고본 책6 10월 14일(전서본에는 없다) · 「면은 공의 막내로 담력이 있고 말 타고 활 쏘기를 잘해 공이 자기를 닮았다고 사랑했다. 이해 9월 어머니를 모시고 아산 집에 있다가 왜가 마을을 불태운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치던 중 길에 매복한 칼에 죽었다. 공이 부고를 듣고 통곡해 기절했고 이때부터 정신이 날로 쇠했다」 ― 이분, 이충무공행록 · 무덤과 집의 셈, 빈 옆, 「아는 것과 통분하는 것이 따로」, 「참는 것이 붓이었다」는 지어냈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정유년 10월 14일은 양력 11월 22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