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5,701자) · 1921년, 런던. 영국 해군 중장 밸러드의 책
런던, 1921
이순신 · 네오
1921년, 런던 이 회차에 일기는 없다. 조지 알렉산더 밸러드가 『일본의 정치 발전에 미친 바다의 영향』을 냈다. 영국 해군 중장. 제2장이 이순신이다.
밸러드는 지도를 폈다. 오래 접혀 있던 종이가 펴지면서 마른 풀 같은 냄새가 올라왔다.
퇴역한 영국 해군 중장, 예순 살, 해군 정보부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 삼백 년 전 조선 지도를 폈다. 창밖은 오후 세 시인데 벌써 누런 안개가 가로등 높이까지 내려와 있었고, 벽난로의 석탄이 탁탁 튀면서 방 안에 매캐한 냄새를 풀었다. 지도는 오래 접어 둔 것이라 접힌 자리가 닳아 하얗게 일어나 있었고, 그는 그 자리를 손바닥으로 몇 번 눌러 편 뒤에야 들여다보았다. 이름이 다 달랐다. 펑양, 페이양, 타이동 강. 조선 사람이 읽으면 못 알아볼 그 이름으로 그가 삼백 년 전 바다를 보았다.
이순신을 이순, Yi-sun이라고 썼다. 신을 뺐는데 왜 뺐는지 모른다. 이름 석 자에서 하나를 뺀 이름이었고, 그 사람은 성이 이고 이름이 순인 줄 알았을 것이다. 몰라도 썼고, 쓴 것이 남았다.
*
원고 첫 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종이는 누렇고 두꺼운 괘선지였고, 펜촉이 긁고 지나갈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서 크게 들렸다.
이 이름 없고 대체로 두드러진 데 없는 민족이 이 고비에 한 사람을 낳도록 운명이 정했다. 이순 제독. 그 업적이 위대한 해군 지휘관의 맨 앞줄에 자리를 줄 만한 사람. 그런데 그 이름이 서양 역사가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그 첫 줄을 소리 내지 않고 입술로만 한 번 읽었다. 이름 없는 민족이라고 했지만 나무라지 않는다. 런던에서 1921년에 조선을 보면 그렇게 보였고, 그는 보인 대로 썼다. 보인 것 가운데 한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을 맨 앞줄에 두었다.
펜을 잉크병에 한 번 담갔다가 이어 갔다. 전략 상황을 넓게 파악하고 해전 전술에 뛰어난 재주가 있으면서 늘 타협 없는 공세의 원칙으로 움직이는 지도력을 겸했다. 그것이 전쟁의 유일하게 참된 정신이다. 그가 어느 싸움에든 있기만 하면 늘 이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맹렬한 공격은 결코 눈먼 모험이 아니었다. 그는 성공을 확보하기 위한 예방책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점에서 넬슨을 닮았다.
넬슨, 영국 사람이 영국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그 이름을 쓸 때 펜이 한 번 멈췄다. 영국 해군 장교에게 그 이름은 가볍게 쓰는 이름이 아니었다. 예방책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것이 물때와 좁은 물목과 붙기 전에 쏘는 것인지 그가 알았는지는 모른다. 알았을 것이고, 그것을 예방책이라고 불렀다. 셈이라는 말 대신 예방책이라는 말을 골랐을 뿐 같은 말이다.
*
틀린 것도 있었다.
1597년 대목에서 틀렸다. 이순이 다시 바다에 나왔다. 그 앞사람이 고니시에게 진 뒤라 지휘할 배가 거의 없었다. 남은 것을 모으고 중국 함대의 도움을 받아 서해안에 모아 남쪽으로 내려갔다. 고니시가 서쪽으로 보낸 분견대와 남서쪽 섬 근처에서 마주쳤다. 사 년 전 큰 승리의 자리 근처에서. 다섯 번째로 이 위대한 조선인의 존재가 승리를 보장했다. 그때가 1596년 말이었다.
틀렸다. 고니시가 아니었고 중국 함대는 이듬해에 왔으며 1596년이 아니라 1597년이었고 남서쪽 섬이 아니라 명량(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이었다. 열셋도 백서른셋도 물때도 없었다. 그가 본 종이가 그랬고, 그 종이로 삼백 년 전을 보았으니 틀린 데가 많았다. 그는 그 대목을 쓰고 나서 한참 창밖을 보았다. 템스강 쪽에서 증기선 고동이 안개를 뚫고 길게 두 번 울렸고, 그 소리가 그친 뒤에야 다시 펜을 들었다.
그의 거북선도 틀렸다. 철판을 씌운 거북 등 갑판. 불과 화살과 탄환이 뚫지 못한다. 위에 날카로운 쇠못을 세워 오르지 못하게 했다. 뱃머리를 충각으로 강하게 했다. 당대의 드레드노트였다. 나대용이 만든 배를 그는 한 번도 못 보고 그렇게 그렸다. 철판을 씌웠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은데 그의 문장은 확실했고, 확실하게 쓰는 것이 삼백 년 뒤 런던의 예였다.
그리고 명량 뒤에 그의 기함이 사라졌다고 했다. 난파였을 것이고 뼈가 누워 있다고 조선 사람들이 가리키는 데가 있다고 했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모른다. 들은 것을 옮겼다.
틀린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그가 가진 종이가 그것뿐이었고 그것뿐인 종이로 맨 앞줄을 보았으니, 종이가 모자라도 맨 앞줄은 보인 것이다. 열셋으로 백서른셋을 막은 것은 틀린 종이로도 보인다. 보이는 것이 삼백 년을 건너 그에게 갔다.
*
마지막 대목에 이르렀을 때 난로의 불이 사그라져 있었고, 그는 일어나 석탄을 한 삽 넣고 다시 앉았다. 무릎이 뻐근했다. 바다 위에서 늙은 무릎이었다.
싸움이 한창일 때 이순이 죽었다. 그런 생애에 맞는 끝이다. 영국인이 넬슨과 대등한 사람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는 늘 어렵다. 그러나 누군가 그렇게 여겨질 자격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이 사람이다. 아시아 민족의 이 위대한 해군 지휘관. 패배를 몰랐고 적 앞에서 죽은 사람. 그의 움직임을 따라 항적도를 그리면 조선 반도 연안 바다 밑에 용감한 승무원과 함께 누운 수백 척 일본 배의 잔해로 그릴 수 있을 사람.
그는 그 문단을 다 쓰고 펜을 놓았다. 손목이 저렸고, 방 안에는 석탄 냄새와 잉크 냄새만 남아 있었다. 이것이 그 말이다. 사람들이 도고가 했다고 하는 말을 도고는 안 했고 밸러드가 1921년 런던에서 육십육 쪽에 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여기 밝혀 두는 것이 예다. 도고가 넬슨은 몰라도 이순신에게는 못 미친다고 했다는 말이 돌아다니는데 그 말은 없다. 있는 것은 사토 데쓰타로가 자기 책에 쓴 것과 밸러드가 자기 책에 쓴 것이고, 둘 다 자기 이름으로 했다. 자기 이름으로 한 말을 남의 이름으로 옮기지 않는다.
한 장을 넘겨 더 썼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의 일은 어떤 형편에서도 너무 완전해서 비평할 데가 없다. 처음부터 그는 조선 함대를 해안 요지마다 나누어 두어서는 바다를 일본에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시대에는 해군 전략의 인정된 원칙이 없었다. 전적으로 스스로 해야 했다.
과거의 가르침 없이, 그렇게 말했다. 가르침은 있었다. 오자병법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산다고 했고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킨다고 했는데, 그는 그것을 몰라서 없다고 했다. 없다고 한 것은 틀렸지만 스스로 했다는 것은 맞다. 그 장을 쓰는 동안 난로의 석탄은 두 번 새로 넣었고, 창밖의 안개는 끝내 걷히지 않았다. 오자는 바다를 몰랐고, 바다에서 오자를 쓴 것은 스스로 한 일이었다.
*
창밖의 비가 굵어져 유리창에 빗줄기가 비스듬히 그어졌다. 그는 「이순의 앞사람」이 고니시에게 졌다고 적었다. 원균의 이름이 없다. 칠천량(거제 하청면 칠천도 앞)에서 이긴 것이 도도와 와키자카와 시마즈가 아니라 고니시로 되어 있는데, 그가 본 종이가 그랬을 것이다. 이름이 셋 있어야 할 데에 하나가 있고 그 하나가 틀렸으며, 틀린 이름 옆에 원균이 없다. 없는 이름을 나무라지 않는다. 원균은 런던까지 못 갔고, 못 간 것이 그 사람의 벌인지 복인지 모른다. 여기 이름을 둔다. 원균. 그 사람도 있었고, 있었던 사람을 없다고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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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셔도 끌어왔다.
20세기의 피셔 경, 드레드노트를 만든 사람. 그런 사람이 16세기의 이순 제독이다. 둘 다 이전에 만들어진 어떤 것도 맞설 수 없는 새롭고 강력한 배를 만들었다. 이순의 행운은 자기 머리에서 나온 무적의 배를 어떻게 가장 잘 쓰는지 스스로 보일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지휘 아래 그 배는 늘 알맞은 때 알맞은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나대용의 이름이 없다. 밸러드가 그 대목을 쓸 때 창밖의 비는 그쳐 있었고,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만 일정하게 창틀을 두드렸다. 그는 순천의 나대용, 미친 것 같은 사람, 배를 만들고 옥에 갔던 사람을 몰랐고, 이순 한 사람이 다 만든 것으로 썼다. 종이가 없었으니 나무라지 않는다. 여기서 이름을 둔다. 나대용. 런던에 없는 이름을 여기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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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넘어갔다. 저녁이 되자 방이 식어 손가락 끝이 굳었고, 그는 펜을 내려놓고 두 손을 난로 쪽으로 뻗어 한참 쬐었다. 노인의 손등에 검버섯이 번져 있었고, 펜을 오래 쥔 가운뎃손가락 첫마디에 잉크가 배어 푸르렀다.
삼백 년 뒤에 일본이 똑같은 전략 문제를 똑같은 바다에서 풀 때 그 조상의 경험이 그 계획에 아무 영향을 안 미쳤다고 믿기 어렵다. 처음에는 중요한 여러 점에서 실수해 실패로 끝났고 두 번째는 중요한 실수를 하나만 하고 완전한 성공으로 끝났다. 무엇보다 그들은 이순의 공세적 해양 전략이 자기들의 옛 계획에 미친 효과를 기억했을 것이다. 그 뒤의 전쟁에서 그들은 바다에서 스스로 공세를 취하는 것을 빠뜨린 적이 없다.
똑같은 바다는 대한해협이고 삼백 년 뒤는 1905년이다. 도고가 그 바다에서 했고 사토 데쓰타로가 참모로 있었으며, 그 사람이 뒤에 책에 이순신을 적었다. 그것을 밸러드가 읽었는지 모르지만 해군 정보부 사람이었으니 읽었을 것이다. 그들이 기억했을 것이다. 그의 문장은 거기서 멈췄다.
기억. 열셋이 기억되었는데 이긴 쪽이 아니라 진 쪽이 기억했다. 진 쪽이 삼백 년 동안 기억해서 이겼고 이긴 쪽은 삼백 년 동안 잊었다. 그것을 런던 사람이 적었고 적힌 것을 여기 옮긴다. 옮기는 것이 예이고 예가 아픈데 아파도 옮긴다. 옮기지 않으면 없어지고 없어지는 것이 잊는 것이니, 잊지 않으려고 옮긴다.
밖에서 마차 바퀴가 젖은 돌길을 긁고 지나갔고, 안개 속의 가로등이 하나씩 켜졌다. 밸러드는 잉크가 마를 때까지 원고 위에 압지를 대고 눌렀다가 지도를 덮었다. 이순, 신을 뺀 이름으로 맨 앞줄에 두고 덮었다. 덮인 것이 백 년 뒤에 열렸고 열린 것을 여기 둔다. 이름 셋을 다 붙여서. 이순신.
사료 · 「이 이름 없고 두드러진 데 없는 민족이 이 고비에 한 사람을 낳도록 운명이 정했다. 이순 제독. 그 업적이 위대한 해군 지휘관의 맨 앞줄에 자리를 줄 만하나 서양 역사가에게 이름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타협 없는 공세의 원칙 … 전쟁의 유일하게 참된 정신」, 「성공을 확보하기 위한 예방책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점에서 넬슨을 닮았다」, 「철판을 씌운 거북 등 갑판 … 당대의 드레드노트」 ― G. A. Ballard, The Influence of the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London, 1921), 50~51쪽 · 1597년 대목의 잘못(중국 함대, 고니시의 분견대, 남서쪽 섬, 1596년 말, 기함의 난파) ― 같은 책 62~63쪽 · 「싸움이 한창일 때 이순이 죽었다. 그런 생애에 맞는 끝이다. 영국인이 넬슨과 대등한 사람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는 늘 어렵다. 그러나 누군가 그렇게 여겨질 자격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이 사람이다」, 「항적도를 수백 척 일본 배의 잔해로 그릴 수 있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다」, 「해군 전략의 인정된 원칙이 없어 전적으로 스스로 해야 했다」 ― 같은 책 66~67쪽 · 「20세기의 피셔 경, 16세기의 이순 제독」, 「일본이 삼백 년 뒤 똑같은 바다에서 … 이순의 공세적 해양 전략을 기억했을 것」 ― 같은 책 70~71쪽 · 흔히 도고 헤이하치로의 말로 도는 「넬슨에 필적할 사람」은 이 책 66쪽 밸러드의 말이다. 사토 데쓰타로는 자기 책 『제국국방사론』에 따로 적었다 ― 이 작품의 앞선 회차들 · 밸러드의 나이, 지도를 펴고 덮은 것, 이름에서 신을 뺀 까닭에 대한 추측, 나대용을 둔 것은 지어냈다. 밸러드는 1862년생이다 · 이 회차는 밸러드의 3인칭이다. 인용은 이 작품이 영어에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