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5,675자) · 1597년 10월 26일 한낮부터 밤까지, 명량에서 당사도까지

마다시

이순신 · 네오

1597년 10월 26일 (음력 9월 16일) 맑음. 항복한 왜 준사는 안골포(창원 진해구 안골동) 적진에서 항복해 온 자다. 내 배 위에 있다가 내려다보고 말했다. 그림 그린 붉은 비단옷을 입은 자가 안골포 진의 적장 마다시입니다. 내가 김돌손을 시켜 갈고리로 뱃머리에 끌어 올리게 하니 준사가 펄쩍 뛰며 말했다. 이것이 마다시입니다. 곧 토막 내어 베게 했다.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준사가 내려다보았다.

준사는 뱃전을 붙잡고 허리를 굽혀 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항복한 왜였다. 뱃전을 쥔 손등에 힘줄이 불거져 있었다. 다섯 해 전 우리가 들이친 그 안골포 진에서 죄를 짓고 넘어와, 한산도(통영 한산면)에서 몇 해를 살았다. 내가 옥으로 끌려갈 때도 거기 있었고 원균이 진을 맡았을 때도 거기 있었다. 칠천량(거제 하청면 칠천도 앞)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모른다. 그는 살아서 오늘 내 배에 있었다. 왜가 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 위에는 부서진 판자와 거적과 시체가 뒤엉켜 떠 있었다. 모두 물을 먹어 거무스름한 가운데 붉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림을 그린 붉은 비단옷이었다. 물살에 떠밀리던 그것이 부서진 판자 모서리에 걸려 잠깐 멈추자, 소매에 그려진 무늬가 젖은 채로 햇빛에 번들거렸다. 준사는 그것을 알아보았다. 안골포 진의 적장 마다시. 나는 모르는 이름이었다. 모르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내 배 위에 있었다.

*

갈고리가 올라왔다.

무상 김돌손에게 갈고리로 끌어 올리게 했다. 무상은 배의 잡일을 맡은 사람이다. 긴 장대 끝의 쇠갈고리가 물속을 두어 번 더듬다가 비단 자락에 걸렸다. 김돌손이 두 발을 뱃전에 버티고 당기자 장대가 활처럼 휘었고, 붉은 것이 물을 줄줄 흘리며 뱃머리로 끌려 올라왔다. 물 먹은 비단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판자 위에 떨어질 때 철벅 소리를 냈다. 소금물과 피가 섞인 비린내가 뱃머리에 훅 끼쳤다. 뒤에 조카는 그자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적었다. 일기에는 없는 말이다. 나는 거기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는다.

준사가 펄쩍 뛰며 말했다. 이것이 마다시입니다. 조카는 진짜 마다시라고 옮겼고, 나는 이것이 마다시라는 말만 남겼다. 왜 한 사람이 왜 적장의 시체 앞에서 펄쩍 뛰었다. 기뻐서인지, 묵은 원한이 풀려서인지, 무서워서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뛰었다는 것만 안다.

곧 토막 내어 베게 했다. 뱃머리에서, 적이 다 보는 자리에서였다. 갈고리로 굳이 뱃머리까지 끌어 올린 것도 보이려고 한 일이었다. 칼이 판자를 찍는 소리가 몇 번 났고, 판자 틈으로 스민 붉은 물이 뱃머리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군사들 가운데 고개를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가까이 붙던 배들이 노를 거꾸로 저으며 물러섰다. 초고에는 여러 배가 범할 수 없음을 알았다는 말이 따로 있다. 저쪽 배들이 더는 덤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물이 바뀌었다.

해가 머리 위에 오자 물이 멈췄다. 아침 내내 명량(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 바위 사이에서 울던 소리가 잦아들었고, 뱃전을 치던 물살이 힘을 잃었다. 한동안 바다가 숨을 멈춘 것처럼 잔잔했다. 부서진 판자 하나가 뱃전 곁에서 제자리를 맴돌았다. 뱃전 판자에 손바닥을 대면 그 너머에서 물이 방향을 고르는 기척이 전해졌다. 콸콸 쏟아지던 소리가 끊기고, 한참 낮게 웅웅거리다가, 이윽고 굵게 다시 차올랐다. 그러다 물이 반대로 울기 시작했다. 서쪽으로 밀던 물이 몸을 돌려 동쪽 바다로, 적선이 몰려 있는 명량의 좁은 목으로 빠져나갔다. 느슨해졌던 닻줄이 반대편으로 다시 팽팽해지며 뱃머리가 끙 하고 돌아섰다.

아침에는 적이 물을 탔고 이제는 물이 적을 끌고 갔다. 백서른셋이 좁은 목으로 한꺼번에 밀려 들어가자 뱃전이 뱃전을 들이받고, 노가 노에 걸려 부러지는 소리가 물 건너까지 들렸다. 칠천량의 밤에 우리 배끼리 서로 들이받던 바로 그 소리였다. 오늘은 저쪽이 그 소리를 냈다. 좁은 목 안에서 누군가 길게 외치는 소리가 났지만 곧 물소리에 묻혔다.

그때 여러 배가 한꺼번에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나란히 나아갔다. 먼바다에 떠 있던 배들이 달려와, 이제 열셋이 한 줄이었다. 격군들이 새벽부터 당긴 노를 다시 당겼는데, 이번에는 물이 뱃고물을 떠밀어 주어서 노깃이 가볍게 물을 떠냈다. 열세 척의 북이 한꺼번에 울리자 뱃바닥까지 떨려 왔다. 지자와 현자를 쏘고 화살이 비처럼 날았으며, 그 소리가 강산을 흔들었다.

적선 서른 척을 깼다. 깨진 배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판자와 노를 붙들고 좁은 목 쪽으로 떠내려갔다. 초고에는 서른하나라고 끝자리까지 셌다. 뒤에 이민서는 비문에 오백 척이라고 새겼다. 오백은 아무도 세지 않은 수다. 나는 끝자리까지 짚어 센 서른하나를 믿는다.

*

뒤에 온 종이들이 이 오후를 적었다.

이항복의 글은 이렇게 전한다. 이른 물때가 막 빠지고 항구의 여울이 사나웠다. 거제현령 안위가 물을 따라 내려가니 바람이 순해 배가 화살처럼 빨랐고, 곧장 적진 앞을 찔렀다. 적이 사면으로 에워쌌으나 안위가 죽음을 무릅쓰고 돌격해 싸웠고, 공이 여러 군사를 독려해 뒤를 이었다. 먼저 적선 서른한 척을 깼다. 그의 수도 서른하나였다. 아마 내 장계를 읽었을 것이다. 한양에 앉은 사람이 물이 빠졌다는 한 가지를 잊지 않고 짚어 두었다.

이민서의 비문은 더 크게 말한다. 명량은 땅이 좁고 물때가 한창이어서 물이 더욱 급했다. 적이 상류에서 물때를 타고 덮쳐 오니 형세가 산이 누르는 것 같았고, 군사들은 살 뜻이 없었다. 공의 의기가 더욱 떨쳐 기회를 타고 쳤다. 배가 나는 듯 드나들고 포화가 사방에서 일어나 바닷물이 다 끓었다. 그날 물이 끓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들은 물은 울었다. 백 년이 지나자 우는 물이 끓는 물이 되었는데, 나무랄 일은 아니다. 산이 누르는 것 같았다는 말도 살 뜻이 없었다는 말도 맞다. 그가 기회라고 부른 것은 물때였다.

*

적이 물러갔다.

물에 밀려 물러갔고, 다시는 감히 우리 수군에 가까이 오지 못했다. 나는 뱃머리에 서서 그들이 멀어지는 것을 오래 지켜보았다. 돛이 작아지고 점이 되더니 명량 너머로 하나씩 사라졌다. 물 위에는 그들이 남기고 간 판자와 깃대와 빈 투구가 떠서 천천히 동쪽으로 흘러갔다. 그제야 군사들이 활을 내려놓았다. 몇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몇은 뱃전에 매달려 바닷물을 떠서 얼굴에 끼얹었다. 시위를 수백 번 당긴 손가락 끝이 갈라져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도도 다카토라의 집안사람들이 남긴 기록에는 아침 다섯 시쯤부터 유시(오후 다섯 시에서 일곱 시 무렵)까지 싸웠다고 되어 있다. 그 종이를 나는 볼 수 없었고, 뒤에 누가 그것을 여기 옮겨 붙였다. 그 말대로라면 해 뜰 녘부터 해 질 녘까지 꼬박 싸운 하루였다.

이것은 실로 하늘이 준 다행이다. 그날 일기는 그렇게 맺었다. 다행이라는 말은 전에도 여러 번 썼다. 비가 그쳤을 때, 어머니 소식을 들었을 때, 배설이 배를 끌고 가지 않았을 때. 오늘은 그 말을 하늘에 붙였다. 그 줄을 쓸 때 붓을 쥔 손가락이 아직 떨려서 글자 끝이 조금씩 흔들렸다. 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물때와 좁은 목과 붙기 전에 쏘는 것, 이름을 두 번 부른 것과 키를 앞으로 돌린 것과 붉은 옷을 뱃머리에 올린 것이 다 셈이었다. 셈을 다 한 사람만 하늘을 말할 수 있다. 셈을 하지 않은 사람이 하늘을 말하면 그것은 핑계가 된다.

*

물살이 매우 험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바람이 차가워졌고, 땀에 젖은 속옷이 갑옷 안에서 등에 들러붙어 식었다. 형세가 또 외롭고 위태로웠다. 이기고도 우리는 열셋이었다. 백서른셋에서 서른하나가 깨졌으니 백 척이 남았고, 그 백 척이 어느 물굽이에서 숨을 고르는지 알 수 없었다. 밤에 다시 올 수도 있었다. 이긴 날 저녁에 그 셈을 하지 않은 장수들이 칠천량 물 밑에 누워 있다.

초고에는 그 저녁을 더 남겼다. 싸운 바다에 배를 대려 하니 물이 빠져 댈 수 없었다. 물이 내려간 자리마다 검은 바위가 이빨처럼 솟아 있었다. 건너편 포구로 옮겼다가 달을 타고 당사도(신안 암태면)로 옮겨 댔다. 열엿새 달이 물 위에 길게 깔렸다. 낮 동안 울던 물이 밤에는 달빛을 싣고 조용히 흘렀고, 노를 담글 때마다 은빛이 부서져 뱃전으로 튀었다. 나는 고물에 서서 뒤따르는 배를 세었다. 아침에 열셋이었고 저녁에도 열셋이었다. 하나도 줄지 않았다.

*

당사도에 밤이 내렸다.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달빛이 뜸 틈으로 가늘게 새어 들어와 거적 위에 흰 줄을 하나 그어 놓았다. 뜸 틈으로 찬 바닷바람이 들어왔고, 옷에 밴 화약 냄새가 어둠 속에서 더 짙었다. 하루 종일 키 자루와 기둥을 쥐었던 손가락이 펴지지 않아, 나는 한 손으로 다른 손을 하나씩 펴 주었다. 내 배에서 죽은 사람이 있었다. 순천 감목관 김탁과 본영 종 계생이 탄환에 맞아 죽었고, 박영남과 봉학과 강진현감 이극신도 맞았으나 중상은 아니었다. 그 이름들은 이틀 뒤에야 일기에 올렸다. 오늘 밤은 세지 않았다. 세면 그 사람들이 수가 된다. 하루만은 수가 아닌 채로 두었다. 배 밑에서 누군가 끙끙 앓는 소리가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준사를 생각했다. 왜 한 사람이 왜의 시체를 보고 뛰었다. 다섯 해 전 안골포에서 준사가 무엇이었는지, 마다시가 준사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몰라도 오늘 준사가 없었다면 마다시는 이름 없는 붉은 천으로 물에 떠 있다가 썰물에 실려 나갔을 것이다. 준사가 이름을 붙였고, 이름 붙은 시체가 뱃머리에 올라갔고, 적이 그것을 보았다. 그날 가장 크게 울린 것은 총통이 아니라 그 이름이었다. 다섯 해 전 항복해 온 그를 베었다면 오늘 그 이름도 없었다. 준사는 그 밤 뱃머리 쪽 어둠 속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나는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 셈은 당사도 달빛 아래에서, 싸움이 다 끝난 뒤에야 늦게 나왔다.

사료 · 「항복한 왜 준사는 안골포 적진에서 항복해 온 자로 내 배 위에서 내려다보고 그림 그린 붉은 비단옷을 입은 자가 안골포 적장 마다시라 하니 김돌손을 시켜 갈고리로 뱃머리에 끌어 올렸고 준사가 펄쩍 뛰며 이것이 마다시라 하여 곧 토막 내어 베게 하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여러 배가 한꺼번에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나아가 지자·현자를 쏘고 화살이 비처럼 가고 소리가 강산을 흔들어 적선 서른 척을 깨니 적이 물러가 다시 감히 가까이 오지 못했다. 이것은 실로 하늘이 준 다행이다」, 「물살이 매우 험하고 형세가 또 외롭고 위태로워 당사도로 진을 옮겼다」 ― 난중일기 정유년 9월 16일(전서본) · 「무상 김돌손」, 「여러 배가 범할 수 없음을 알았다」, 「서른하나」 ― 초고본 책6. 「싸운 바다에 대려 하니 물이 빠져 배를 댈 수 없어 건너편 포구로 옮겼다가 달을 타고 당사도로 옮겨 댔다」 ― 초고본 책5 · 「아직 죽지 않았다」, 「진짜 마다시다」 ― 이분, 이충무공행록. 「이날 적선 오백 척을 깼다」 ― 이민서, 명량대첩비. 「아침 다섯 시쯤부터 유시까지」 ― 등당가각서(1641) · 한낮에 밀물이 썰물로 바뀌어 남동쪽 바다로 흐른 것 ― 변도성·이민웅·이호정(2011) 등의 재현(12시 18분~13시 25분 사이). 이항복의 충민사기는 「이른 물때가 막 빠지고 항구의 여울이 사나웠다」고 적는다 · 9월 18일 「김탁과 계생이 탄환에 맞아 죽고 박영남·봉학·이극신도 맞았으나 중상은 아니다」 ― 난중일기 9월 18일 · 물이 바뀌는 순간, 우리가 우리를 치는 소리, 갈고리에 걸린 비단, 하늘과 셈의 관계, 당사도의 밤, 준사에 대한 생각은 지어냈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64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