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5,917자) · 1597년 10월 26일 아침, 명량

별망

이순신 · 네오

1597년 10월 26일 (음력 9월 16일) 맑음. 이른 아침에 별망이 와서 알렸다. 적선이 수를 알 수 없이 곧장 우리 배를 향해 온다고 했다. 곧 여러 배에 영을 내려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갔다. 적선 삼백삼십여 척이 우리 여러 배를 에워쌌다. 여러 장수가 스스로 많고 적음을 헤아려 대적할 수 없다고 여기고 문득 피할 계책을 냈다. 우수사 김억추는 물러나 아득한 데 있었다.

별망이 왔다.

해가 오르기 전이었다. 바닷바람에 소금기와 밤새 젖은 나무 냄새가 섞여 있었고, 갑판에 내린 이슬이 발바닥에 차게 밟혔다. 우수영(해남 문내면) 앞바다는 먹빛이었고, 동쪽 명량(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에서만 어제 건널 때 들은 그 울음이 쉬지 않고 건너왔다. 그 소리 사이로 급한 노 소리가 끼어들더니 작은 배 하나가 뱃전에 붙었다. 따로 세워 둔 망꾼, 별망이었다. 초고에는 망군이라고도 썼다. 그는 뱃전을 붙든 채 숨도 고르지 못하고, 적선이 수를 알 수 없이 명량으로 들어와 곧장 진 친 데로 온다고 했다. 이백여 척이라는 말과 수를 알 수 없다는 말이 그 아침에 함께 들어왔고, 둘 다 틀리지 않았다.

곧 닻을 올리라고, 바다로 나가라고 영을 내렸다. 열세 척의 닻이 한꺼번에 감겨 오르면서 젖은 닻줄이 도르래에 끌리는 소리가 새벽 물 위를 건너왔다. 배 밑에서 자던 격군들이 거적을 걷어차고 제 노 자리로 기어들었는데, 밤새 식은 노 손잡이가 손바닥에 얼음처럼 달라붙어 몇은 입김을 불어 가며 손을 녹였다. 나는 그 소리가 열세 번 다 나는 것을 귀로 헤아린 뒤에야 뱃머리를 돌렸다.

*

새벽에 피난선을 물렸다.

닻을 올리기 전의 일이었다. 진 아래에는 남도의 선비와 백성이 탄 피난선이 빽빽이 모여 있었다. 고깃배와 나룻배에 보따리와 아이들을 싣고 여기까지 따라온 사람들이었다. 뒤에 이항복은 그들이 나에게 목숨을 걸었다고 했고, 이민서는 그 배를 백여 척으로 헤아렸다.

그 배들을 차례로 먼바다에 물려 늘어세웠다. 멀리서 보면 돛은 다 같은 돛이다. 고깃배든 전선이든 수평선에 서면 흰 점 하나가 되고, 점이 많으면 적은 우리 뒤에 군사가 더 있다고 여긴다. 조카도 그 셈을 알아보고, 여러 배를 먼바다에 늘어세워 의심스러운 원군으로 삼았다고 했다. 수를 세지 못한 적은 머뭇거리지 않고 명량의 좁은 물로 밀고 들어온다. 새벽의 셈은 거기까지였다.

피난민들은 떠나려 하지 않았다. 다들 나를 버리고 가려 하지 않았다. 먼바다에 늘어선 것이 그들이 버티는 방식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들은 열셋이 싸우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게 된다. 열셋이 지면 그들은 갈 데가 없었다. 물러나는 배 한 척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났고, 누군가 그 입을 손으로 막는 기척까지 물을 건너 들려왔다. 동이 트면서 먼바다의 돛들이 잿빛 속에서 하나씩 희게 떠올랐다. 그것을 보고 닻을 올렸다.

내 배에는 큰아들 회가 있었다. 항복한 왜 준사와 무상 김돌손과 군관들도 있었다. 나는 그 얼굴들을 한 번 둘러보았는데, 회의 얼굴에서는 눈을 비켰다. 아들을 보면 아비가 된다. 아비는 아들이 탄 배를 적 속으로 몰지 못하고, 통제사는 몰아야 했다.

*

적선이 에워쌌다.

해가 오를 즈음 명량 물목에서 적선이 쏟아져 나왔다. 좁은 목을 빠져나온 배들이 넓은 물에서 좌우로 퍼지며 우리를 감쌌고, 뱃머리마다 꽂힌 깃발 아래로 창끝이 아침 햇빛을 받아 물 위에 흰 점을 수없이 흩었다. 저쪽 배들에서 북과 징이 한꺼번에 울렸고,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이 물을 건너와 뱃전에 부딪쳤다. 나는 그 배를 셌다. 초고 한 권에는 백서른셋, 다른 권에는 백삼십여라고 남겼다. 뒤에 나온 전서본은 삼백삼십여라고 한다. 백을 누가 더했는지는 모른다. 그날 뱃머리에서 하나하나 짚어 센 수는 백서른셋이었고, 끝자리 셋까지 센 수라서 나는 그 수를 믿는다. 열셋 앞에 백서른셋, 열 배가 넘었다.

여러 장수가 스스로 많고 적음을 헤아렸다. 대적할 수 없다는 셈이 나왔고, 그 셈은 틀리지 않았다. 맞는 셈을 한 사람들이 피할 계책을 냈다. 뒤를 돌아보니 몇몇 배의 노가 거꾸로 물을 긁고 있었다. 뱃머리는 여전히 앞을 보는데 배는 뒤로 미끄러졌다.

김억추는 물러나 아득한 데 있었다. 초고에는 두 마장 밖이라 했으니 팔백 걸음쯤 되는 거리다. 아침 햇빛 속에 그 배의 돛이 손톱만 하게 서 있었다. 만호 하나쯤에 맞는 사람이 우수사 자리를 받아 거기 떠 있었다. 두 마장이면 목소리가 닿지 않아서, 불러도 못 들을 자리였다.

*

닻을 내렸다.

조카는 공이 닻을 내리고 배를 세웠다고 했고, 이민서는 비문에 배를 잇대어 닻을 내리고 흐름 한가운데를 끊어 적을 기다렸다고 새겼다. 나는 닻을 올렸다고 썼다. 서로 다른 말 같지만 한 아침의 앞뒤다. 올려서 나갔고, 물목 앞에 이르러 내렸다. 둘을 이어 붙이면 그날 아침이 된다. 물목 앞에서 닻돌이 뱃머리를 떠나 물속으로 떨어졌고, 줄이 풀려 나가는 동안 배가 앞으로 한 번 크게 쏠렸다가 이윽고 버티고 섰다.

물이 밀고 있었다. 아침 밀물이 명량을 빠져나와 서쪽으로, 우리 쪽으로 쏟아졌다. 뱃전 아래로 흰 거품이 소용돌이치며 지나갔고, 팽팽하게 당겨진 닻줄 때문에 뱃머리 나무가 삐걱거렸다. 닻을 풀면 배는 그 물에 떠밀려 우수영 뭍에 붙는다. 뭍에 붙은 열셋은 길목이 아니다. 어제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킨다고 말했는데, 이 물에서 길목을 붙드는 것은 닻이었다. 닻을 내린 배는 달아나지 못하고, 달아나지 못하는 배에서는 쏘는 수밖에 없다.

*

노를 재촉했다.

노를 재촉해 백서른셋 속으로 곧장 들어갔다. 열셋 가운데 앞으로 나간 배는 내 배 하나였고, 열둘은 뒤에 남았다. 초고 한 권에는 대장선이 홀로 적선 속에 들어갔다고 남겼다. 선창에서는 격군들이 북소리에 맞춰 허리를 꺾었다 폈다 하며 노를 당겼고, 노깃이 물을 떠낼 때마다 찬 물보라가 노 구멍으로 튀어 들어와 그들의 맨 어깨를 적셨다. 그들은 앞을 보지 않았다. 앞은 뱃머리가 보는 것이었다.

지자와 현자 총통을 어지러이 쏘았다. 바람과 우레 같았다. 총통이 불을 뿜을 때마다 배 전체가 한 번씩 뒤로 들썩였고, 매운 화약 연기가 뱃전에 낮게 깔려 눈을 찔렀다. 연기가 걷히는 틈으로 적선의 뱃전이 쪼개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군관들이 배 위에 빽빽이 서서 비 오듯 쏘았다. 초고에는 삼처럼 섰다고 했다. 삼대처럼 어깨를 붙이고 선 사람들이 시위를 당겼다 놓을 때마다 활줄 튕기는 소리가 총통 소리 사이를 빗소리처럼 메웠다.

적은 당하지 못했다. 가까이 붙었다가 물러가고 다시 붙었다. 창 자루 두어 개 거리까지 다가왔던 배 하나가 현자 총통을 맞고 기우뚱하더니, 부서진 뱃전으로 물을 먹으며 뒤로 처졌다. 올 때마다 쏘았다. 그 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하나였다.

*

그러나 에워싼 것이 겹겹이었다.

몇 겹인지 셀 수 없었다. 다섯 해 동안 바다에서 형세를 헤아리지 못한 날이 없었는데, 이 아침에 처음으로 헤아려지지 않았다. 앞을 보아도 적이고 좌우를 보아도 적이었다. 연기가 걷힐 때마다 새 뱃머리가 그 자리를 메웠다. 조총 소리가 콩 볶듯 이어졌고, 탄환이 돛폭을 뚫고 지나가며 머리 위에서 쉭쉭 울었다. 뱃전에 세운 방패판에 박힌 화살 하나가 한참을 부르르 떨다가 멎었다.

한 배의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잃었다. 삼대처럼 서 있던 군관들이었다. 누구는 입술이 하얗게 질렸고 누구는 시위를 당긴 채 손이 굳어 있었다. 그 얼굴들이 하나둘 나를 향했다. 나는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 어란(해남 송지면 어란)에서 적을 기다리던 날과 같은 얼굴로 서 있었다. 말보다 서 있는 것이 먼저였다.

그다음에 종용(차분하고 태연하게)히 말했다. 초고에는 부드럽게 풀어 말했다고 했다. 소리를 지르면 내 얼굴이 먼저 무너지니 낮게, 적이 비록 천 척이라도 우리 배를 당하지 못한다, 마음을 조금도 흔들지 말라, 힘을 다해 적을 쏘라, 그렇게 말했다. 초고에는 그 끝말을 두 번 겹쳐 쏘라 쏘라고 썼다.

천 척이라고 했다. 눈앞의 백서른셋을 천이라 불렀다. 백서른셋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세기 시작하고, 세면 셈이 나오고, 셈이 나오면 피할 계책이 선다. 천은 세어지지 않는다. 셀 수 없는 수 앞에서는 쏘는 일만 남는다. 다섯 해 동안 끝자리까지 세던 사람이 그날 아침 처음으로 수를 부풀렸다. 말을 마친 입 안이 화약 연기로 쓰고 텁텁했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누구의 얼굴도 더 보지 않은 채 다시 적 쪽으로 돌아섰다.

*

얼굴빛이 돌아왔다.

손끝에서 먼저 보였다. 굳어 있던 손이 다시 시위를 당겼고, 화살이 다시 연기 속으로 날아갔다. 나는 뱃머리 기둥을 한 손으로 쥐고 서 있었는데, 총통이 터질 때마다 손바닥 밑 나무가 짐승의 등처럼 떨었다. 기둥을 쥔 손에 힘을 빼지 않았다.

물은 여전히 밀고 있었다. 적은 그 물을 등에 업고 명량을 지나 우리에게 붙으려 했다. 칠천량(거제 하청면 칠천도 앞)에서 그들은 배를 붙이고 기어올라 이겼고, 오늘도 그 수였다. 붙기 전에 총통과 활로 떼어 내야 했다. 붙으면 진다. 다섯 해 동안 그렇게 싸웠고 오늘도 그렇게 했다.

물이 언제 뒤집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어제 건너오며 뱃전 아래로 그 물을 들었다. 하루에 네 번, 아침에는 이쪽으로 밀고 낮이면 바다 쪽으로 빠진다. 낮까지만 붙지 않으면 물이 돌아서고, 돌아선 물은 적을 좁은 목으로 도로 끌고 간다. 좁은 목에 몰린 배는 서로 부딪친다. 나는 그 셈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다들 낮만 기다리고, 기다리는 손은 쏘지 않는다. 그래서 천 척이라고만 했다.

돌아보았다. 여러 장수의 배가 먼바다에 물러나 바라보며 나오지 않았다. 열둘은 멀리 떠 있고 하나는 백서른셋 속에 있었다. 연기 너머로 열둘의 돛이 흐릿했고, 그 뒤로 피난선의 돛들이 더 흐릿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 하나에서 열둘을 돌아보는 것으로 아침이 끝났다. 이제 깃발을 올릴 차례였다.

사료 · 9월 16일 이른 아침 별망의 보고, 닻을 올려 바다로 나간 것, 「여러 장수가 스스로 많고 적음을 헤아려 대적할 수 없다고 여기고 피할 계책을 낸」 것, 김억추가 「물러나 아득한 데」 있은 것, 「노를 재촉해 돌진하여 지자·현자 총통을 바람과 우레같이 쏘고 군관들이 배 위에 빽빽이 서서 비 오듯 쏜」 것, 「겹겹이 에워싸 형세를 헤아릴 수 없어 한 배의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잃은」 것, 「적이 비록 천 척이라도 우리 배를 당하지 못한다. 마음을 조금도 흔들지 말고 힘을 다해 쏘라」, 「여러 장수의 배가 먼바다에 물러나 바라보고 나오지 않은」 것 ― 난중일기 정유년 9월 16일(전서본) · 「망군이 이백여 척이 명량으로 들어와 곧장 진 친 데로 온다고 알림」, 「백서른셋」, 「대장선이 홀로 적선 속에 들어감」 ― 초고본 책5(정유일기 Ⅰ). 「별망」, 「백삼십여 척」, 「김억추의 배가 두 마장 밖에」, 「군관들이 삼처럼 섰다」, 「부드럽게 풀어 말했다」, 「쏘라 쏘라」 ― 초고본 책6(정유일기 Ⅱ). 전서본의 「삼백삼십여 척」은 두 초고본과 다르다 · 피난선을 차례로 물려 먼바다에 늘어세워 의병으로 삼은 것, 「남도의 선비와 백성이 나에게 목숨을 걸었다」 ― 이항복, 충민사기(전서 권10). 「피난선 백여 척을 먼바다에 나누어 띄워 의병으로 삼았다」 ― 이민서, 명량대첩비. 「여러 배를 먼바다에 늘어세워 의심스러운 원군으로 삼았다」, 「다 공을 버리고 가려 하지 않았다」 ― 이분, 이충무공행록. 회를 안 본 것은 지어냈다 · 아침에 밀물이 우수영 쪽으로 흐르고 낮에 바다 쪽으로 뒤집히는 것 ― 변도성·이민웅·이호정(2011), 국립해양조사원(2010) 등의 재현. 뒤집히는 시각은 연구마다 12시 18분에서 13시 25분 사이로 다르다. 이순신이 그 셈을 하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지어냈다 · 「그 셋이 나를 믿게 한다」는 셈, 얼굴을 안 바꾼 것, 「천이라고 한 까닭」, 활줄 소리는 지어냈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명량은 이 회차부터 네 회차 이어진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정유년 9월 16일은 그레고리력 10월 26일이다. 해양 논문 두 편은 10월 25일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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