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6,749자) · 1597년 10월 14일~25일, 벽파진에서 우수영까지

반드시 죽고자 하면

이순신 · 네오

1597년 10월 14일 (음력 9월 4일) 북풍이 크게 붊. 각 배가 겨우 보전했다.

10월 16일 (9월 6일) 바람이 잠깐 그쳤으나 물결이 가라앉지 않음.

바람이 불었다.

북풍이 사흘을 내리 불었다. 진 앞바다가 밤낮으로 허옇게 일어섰고, 열세 척은 닻줄을 두 겹으로 매고도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고 밤새 삿대로 뱃전을 밀어냈다. 넘어온 물이 갑판에 고였다가 발목을 감을 때마다 뼈가 시렸다. 초고에는 한 줄을 더 남겼다. 찬 기운이 사람을 핍박하고, 격군 때문에 걱정이 많다.

격군은 배 밑에서 노를 잡는 사람들이다. 변변한 옷 한 벌 없이 젖은 노 손잡이를 밤새 쥐고 있어야 했다. 새벽에 내려가 보면 그들은 서로 등을 붙이고 무릎을 끌어안은 채 이를 딱딱 부딪치고 있었고, 좁은 선창 안에 입김이 뿌옇게 고여 있었다.

다섯 해 전 겨울 한산도(통영 한산면)에서도 격군의 옷을 걱정했다. 그때는 백 척이 넘는 배의 격군이었고 지금은 열세 척의 격군이다. 수가 줄었다고 걱정이 줄지는 않았다. 하나가 얼어 쓰러지면 노 하나가 비고, 노 하나가 빈 배는 물살에 머리가 돈다. 열셋에서 한 척이 돌면 열둘이 된다.

*

10월 17일 (9월 7일) 바람이 비로소 잦음. 탐망 군관 임중형이 와서 알렸다. 적선 쉰다섯 척 가운데 열세 척이 이미 어란(해남 송지면 어란) 앞바다에 이르렀다. 그 뜻은 수군에 있다고 했다. 각 배에 엄히 일렀다. 신시(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 무렵)에 적선 열세 척이 곧장 우리 배를 향해 왔다. 우리 배도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 맞아 쳤다. 적이 배를 돌려 달아났다. 먼바다까지 쫓았으나 바람과 물이 다 거슬러 배를 몰 수 없었다. 벽파진(진도 고군면 벽파리)으로 돌아왔다. 이 밤에 야경이 있을 것 같아 각 배에 정돈하고 기다리게 했다. 이경(밤 아홉 시에서 열한 시 무렵)에 적선이 포를 쏘며 야경을 했다. 여러 배가 겁내는 듯했다. 다시 엄히 영을 내렸다. 내가 탄 배가 곧장 적선을 맞아 포를 쏘았다. 적이 범할 수 없음을 알았다. 삼경(밤 열한 시에서 새벽 한 시 무렵)에 물러갔다.

열셋이 왔다.

저쪽도 열셋이고 이쪽도 열셋이었다. 쉰다섯 가운데 열셋을 떼어 보냈고 그 뜻이 수군에 있다고 했으니, 우리가 몇 척이고 어떤 배인지 보러 온 배들이었다. 보러 온 자에게는 보여 주면 된다. 신시(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 무렵), 해가 기울어 물빛이 누렇게 바뀔 무렵 그들이 곧장 뱃머리를 들이밀었다.

닻을 올리고 나가 맞았다. 젖은 닻줄이 감기며 물을 짜내는 소리가 뱃전마다 났고, 노꾼들의 구령이 바람을 거슬러 올라갔다. 열셋이 열셋에게 나가자 저쪽이 먼저 배를 돌렸다. 먼바다까지 쫓았으나 바람과 물이 한꺼번에 뱃머리를 때려서, 노를 저어도 배가 제자리에서 꿈틀거리기만 했다. 복병이 있을까 싶어 더 쫓지 않고 돌렸다. 나가서 치고 쫓다가 멈추고 돌아오는 순서는 옥포(거제 옥포동)에서 처음 싸우던 날과 같았다. 달라진 것은 수뿐이었다.

돌아와 장수들을 불렀다. 오늘 밤 반드시 야경이 있을 것이니 각 장수는 미리 알고 대비하라, 조금이라도 영을 어기면 군법이 따른다고 두 번 세 번 밝히고 파했다. 야경은 밤중에 포를 쏘고 소리를 질러 잠든 진을 흩어 놓는 수다. 미리 들은 사람은 덜 놀란다.

*

이경(밤 아홉 시에서 열한 시 무렵)에 적이 왔다.

과연 왔다. 어둠 저편에서 불이 번쩍하고, 한 박자 늦게 포 소리가 물을 건너와 가슴뼈를 울렸다. 불이 연달아 튀었다. 여러 배가 겁내는 듯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배는 보였다. 몇 척이 닻줄을 늦추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앉으려는 것이 별빛 아래 돛 그림자로 드러났다.

다시 엄히 영을 내리고 내 배를 곧장 앞으로 내었다. 지자총통을 쏘았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뱃전에 낮게 깔렸고, 소리는 벽파진 뒷산에 부딪쳐 한 번 더 돌아왔다. 강산이 흔들렸다. 적은 범할 수 없음을 알고 네 번 나왔다 물러갔다 하며 포만 쏘다가, 삼경(밤 열한 시에서 새벽 한 시 무렵) 끝에 아주 달아났다.

밤이 조용해지자 파도 소리만 남았다. 칠천량(거제 하청면 칠천도 앞)에서 백 척 넘는 배가 깨진 것도 밤이었다. 어둠 속에서 놀라게 하고, 놀란 배끼리 서로 들이받게 하는 수였다. 뒤에 조카는 적이 그 야경으로 한산에서 이득을 보았다고 한다는 말을 적었다. 같은 수가 벽파진에서 다시 왔고, 이번에는 먹히지 않았다. 열세 척의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그것을 보았다.

*

10월 18일 (9월 8일) 맑음. 적선이 오지 않았다. 여러 장수를 불러 계책을 논했다. 우수사 김억추는 겨우 만호 하나쯤에 맞는데 곤임을 줄 수 없다. 좌의정 김응남이 두터운 정으로 함부로 임명해 보냈다. 탄식할 만하다.

10월 19일 (9월 9일) 맑음. 이날은 중양절이다. 장수와 군사에게 먹일 때 적선 두 척이 감보도에 곧장 들어와 우리 배의 많고 적음을 살폈다. 영등포(거제 장목면 구영리)만호 조계종이 끝까지 쫓았으나 미치지 못했다.

중양절, 구월 초아흐레였다.

일 년 가운데 좋은 명절이다. 나는 상복을 입은 사람이라 명절을 쇨 수 없지만, 장수와 군졸까지 굶길 수는 없었다. 제주에서 실어 온 소 다섯 마리를 녹도(고흥 도양읍 녹동)와 안골 두 만호에게 주어 잡게 했다. 뭍에 솥을 걸자 비릿한 피 냄새가 가시고, 곧 고기 삶는 김이 바람에 실려 배까지 건너왔다. 사흘 북풍에 떨던 격군들이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 가며 마시는 동안 나는 뱃전에 앉아 먹지 않고 그것을 보았다. 흰 상복 소매가 바람에 자꾸 들렸다.

그 틈에 적선 두 척이 감보도에 들어와 우리 배의 많고 적음을 살폈다. 조계종이 끝까지 쫓았으나 미치지 못했다. 초고를 보면 적은 실었던 잡물을 황망히 바다에 다 던지고 달아났다. 궤짝과 거적이 한동안 물 위에 떠서 까딱거렸다. 세러 왔다가 세지 못하고 간 배였다. 저쪽은 아직 우리가 열셋뿐인 줄 몰랐고, 그들이 모르는 동안은 그 모름이 우리 편이었다.

*

10월 21일 (9월 11일) 흐리고 비. 홀로 배 위에 앉으니 그리움에 눈물이 흘렀다. 아들 회가 내 마음이 몹시 편치 않은 것을 알았다.

홀로 앉았다.

비가 뜸 지붕을 두드렸다. 어머니를 여읜 지 넉 달이 지났고 명절이 지나갔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명절이 명절이었는데, 이제는 지나가고 나서야 그날이 명절이었던 줄 안다. 이틀 늦게 눈물이 났다. 젖은 거적 냄새 속에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었는데 어깨가 먼저 흔들렸다. 초고에는 아산(충남 아산)에서 쓴 말을 여기 다시 옮겨 놓았다. 천지간에 어찌 나 같은 사람이 있으랴.

큰아들 회가 배에 함께 있었다. 회가 무엇을 했는지는 쓰지 않았다. 알았다는 것 하나만 남겼다. 빗소리뿐인 배 위에, 내 속을 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

10월 24일 (9월 14일) 맑음. 임준영이 뭍을 정탐하고 달려와 말했다. 적선 이백여 척 가운데 쉰다섯 척이 이미 어란 앞바다에 들어왔다. 또 붙잡혔다 도망해 돌아온 김중걸이 전하기를 이달 초엿새 달마산에서 피난하다 왜에게 붙잡혀 왜선에 묶여 실렸는데 김해 사람이 왜장에게 빌어 묶인 것을 풀었고 밤에 김해 사람이 귀에 대고 몰래 말하기를 조선 수군 열몇 척이 우리 배를 쫓아 쏘아 죽이고 배를 태우니 보복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배를 불러 모아 수군을 다 죽인 뒤에 곧장 한강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이 말을 다 믿을 수 없으나 그럴 이치가 없지 않다. 그래서 전령선을 우수영(해남 문내면)으로 보내 피난민에게 알려 곧 올라가게 했다.

한강으로 간다.

임준영의 말은 짧았고 김중걸의 말은 길었다. 달마산에서 붙잡혀 왜선에 묶여 실렸던 사람이다. 그의 손목에는 아직 줄에 쓸린 자리가 벌겋게 남아 있었다. 밤에 김해 사람이 그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인 말이, 도망친 그의 입을 거쳐 이제 내 귀에 닿았다. 수군을 다 죽인 뒤에 한강으로 올라간다는 말이었다.

다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럴 이치가 없지 않았다. 나는 그 두 말 사이에서 정했다. 전령선을 띄워 피난민들에게 곧 올라가라고 알렸다. 이백 척이 지나갈 물길에 피난선이 떠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다음은 수였다. 쉰다섯이 이미 어란에 와 있고 나머지가 뒤따른다. 열셋 앞에 이백여 척이다. 그 수를 세어 보았더니 세어졌고,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일기에는 그 서늘함 대신 그럴 이치가 없지 않다는 말을 썼다. 이치가 있으면 대비한다.

*

10월 25일 (9월 15일) 맑음. 적은 수군으로 명량(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었다. 그래서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여러 장수를 불러 모아 약속했다.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다. 또 이르기를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는 살 마음을 먹지 말라. 조금이라도 영을 어기면 곧 군율을 따른다. 두 번 세 번 엄히 약속했다. 이 밤에 신인이 꿈에 나타나 이르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고 했다.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었다.

벽파진은 명량의 동쪽이고 적은 동쪽에서 온다. 여기서 싸우면 좁은 물이 등 뒤에 놓인다. 등 뒤의 좁은 물은 곧 물러날 길이 되는데, 열셋이 한꺼번에 그리로 물러나면 서로 부딪쳐 칠천량이 된다. 그래서 명량을 건너 서쪽 우수영 앞바다로 옮기기로 했다. 그러면 명량이 앞에 놓인다. 적은 좁은 물을 지나야만 올 수 있고, 좁은 물은 이백 척을 한꺼번에 들여보내지 않는다.

초고에 있는 그대로, 물때를 타고 건넜다. 어영담이 없어도 물때는 있었다. 물이 서쪽으로 쏟아질 때 뱃머리를 들이밀자 배가 저절로 끌려 들어갔다. 양쪽 바위 벼랑이 좁혀 들었고, 바위에 부딪쳐 되돌아 나온 물이 뱃전 곁에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그 아래에서 물이 울었다. 짐승이 목을 놓아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배 바닥 판자를 타고 발바닥까지 올라왔다. 이 물은 하루 네 번 방향을 바꾸고, 바꿀 때마다 그렇게 운다. 내일 다시 들을 소리였다.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오자병법의 말을 했고,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을 두렵게 한다는 말을 했다. 지금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열세 척이 그 한 사람이고 명량이 그 길목이었다. 장수들은 말없이 서 있었고, 누군가의 투구 끈에서 바닷물이 뚝뚝 떨어졌다.

살 마음을 먹지 말라는 말은 전서본에만 있다. 초고에는 영을 어기면 곧 군율을 따른다는 말만 남아 있다. 어느 쪽이 그날 입 밖으로 나온 말인지는 모른다. 아마 둘 다 했을 것이고, 두 번 세 번 되풀이했을 것이다.

*

꿈에 신인이 왔다.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고 했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는 쓰지 않았다. 꿈은 옮겨 쓰는 순간 꿈이 아니게 된다. 신인이 무엇을 가리켰는지는 나만 알고, 나만 아는 채로 두었다.

그러니 여기서도 그 꿈을 짓지 않는다. 대신 하나만 둔다. 그날 밤 나는 잤다. 이백 척이 온다는 밤에 잤다. 자지 않으면 내일 눈이 흐리고, 흐린 눈으로는 물때를 읽지 못한다. 거적 밑에 몸을 모로 누이자 뱃전을 핥는 물소리가 귀에 가까웠다. 잠들었고 꿈을 꾸었으며, 깨어 몇 줄을 쓰고 다시 누웠다. 새벽이 오면 별망이 오고, 별망이 오면 닻을 올린다. 그다음은 내일의 일이었다. 내일 것을 오늘 세지 않는 것으로 다섯 해를 버텼다.

사료 · 9월 4~6일 북풍에 각 배가 겨우 보전한 것 ― 난중일기 정유년 9월 4~6일(전서본). 「찬 기운이 사람을 핍박한다. 격군 때문에 걱정이 많다」 ― 초고본 책6 9월 6일 · 9월 7일 임중형의 보고(쉰다섯 가운데 열셋이 어란 앞바다에), 신시에 열셋이 와서 닻을 올리고 맞아 치니 달아난 것, 바람과 물이 거슬러 돌아온 것, 이경의 야경에 「내가 탄 배가 곧장 적선을 맞아 포를 쏘니 적이 범할 수 없음을 알고 삼경에 물러갔다」 ― 난중일기 9월 7일. 「오늘 밤 반드시 야경이 있을 것이다 … 두 번 세 번 밝히고 파했다」, 「지자총통을 쏘니 강산이 흔들렸다」, 「네 번 나왔다 물러갔다 하며 포만 쏘다 삼경 끝에 아주 달아났다」 ― 초고본. 「야경으로 한산에서 이득을 보았다고 한다」 ― 이분, 이충무공행록 · 9월 8일 김억추에 대한 「겨우 만호 하나쯤에 맞는데 좌의정 김응남이 두터운 정으로 함부로 임명해 보냈다」 ― 난중일기 9월 8일 · 9월 9일 중양절에 장수와 군사에게 먹인 것, 적선 둘이 감보도에서 우리 배의 많고 적음을 살핀 것 ― 난중일기 9월 9일. 「나는 비록 상복을 입은 사람이지만 먹이지 않을 수 없다」, 제주 소 다섯, 「실은 잡물을 다 바다에 던지고 달아났다」 ― 초고본 · 9월 11일 「홀로 배 위에 앉으니 그리움에 눈물이 흘렀다. 아들 회가 내 마음이 몹시 편치 않은 것을 알았다」 ― 난중일기 9월 11일. 「천지간에 어찌 나 같은 사람이 있으랴」 ― 초고본 · 9월 14일 임준영의 보고(이백여 척 가운데 쉰다섯이 어란에), 김중걸이 전한 「수군을 다 죽인 뒤 곧장 한강으로」, 「다 믿을 수 없으나 그럴 이치가 없지 않다」, 전령선으로 피난민을 올려보낸 것 ― 난중일기 9월 14일 · 9월 15일 「적은 수군으로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어」 우수영 앞바다로 옮긴 것,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을 두렵게 한다. 지금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살 마음을 먹지 말라」, 신인의 꿈 ― 난중일기 9월 15일. 「물때를 타고」 ― 초고본 책6. 「살 마음을 먹지 말라」는 전서본에만 있다 · 격군의 셈, 물때 소리, 꿈의 처리는 지어냈다. 꿈에서 본 것은 짓지 않았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정유년 9월 15일은 양력 10월 2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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