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5,838자) · 1597년 9월 30일~10월 12일, 이진에서 벽파진까지
어란
이순신 · 네오
1597년 9월 30일 (음력 8월 20일) 맑음. 앞 포구가 좁아 이진으로 진을 옮겼다.
10월 1일 (8월 21일) 맑음. 새벽에 곽란이 나서 몹시 앓았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밤새 앉아 새벽을 맞았다.
10월 2일 (8월 22일) 맑음. 곽란이 점점 심해져 일어나 움직이지 못했다.
10월 3일 (8월 23일) 맑음. 병세가 매우 심해 배에 머무는 것이 편치 않았다. 배에서 내려 바다 밖에서 잤다.
몸이 무너졌다.
앞 포구가 좁아 이진(해남 북평면)으로 진을 옮긴 이튿날이었다. 곽란은 토하고 설사하는 병인데, 그것이 새벽에 왔다. 초고에는 더 자세히 썼다. 찬 기운이 닿을까 걱정해 소주를 마시고 다스렸는데, 도리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어 거의 구하지 못할 뻔했다. 열 번 넘게 토하며 밤새 괴로웠다. 전서본은 소주 이야기를 뺐다. 나는 빼지 않는다. 약으로 마신 술에 내가 쓰러졌다.
선실 바닥에 깐 거적에서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누가 물을 떠 와 입술을 적셔 주었는데, 그 얼굴이 누구인지 끝내 알아볼 수 없었다. 누우면 속이 뒤집혀서 밤새 앉은 채로 새벽을 맞았다. 등을 기댄 뱃벽이 식은땀에 젖어 미끄러웠다.
이튿날은 더 심해져 아래 기운도 통하지 않았다. 일어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흗날에는 병세가 매우 위태로워 배에 머무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배에서 내려 포구 밖에서 잤다. 초고에는 그날 넉 자가 더 있다. 실로 싸움터가 아니다. 이진은 싸울 자리가 못 되었다. 열에 들떠 누워서도 물목의 폭과 포구의 깊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통제사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동안 열둘은 그런 통제사를 지켜보았다. 그 사흘 동안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알아볼 수 없었으니 모르는 것이 맞다. 아는 것은 하나다. 사흘 뒤 눈을 떴을 때 열둘이 그대로 있었다. 아무도 달아나지 않았고, 배설도 그때는 달아나지 않았다. 포구 쪽에서 닻줄이 물결에 끌려 삐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한참 누운 채로 그 소리를 세었다.
*
10월 4일 (8월 24일) 맑음. 일찍 도괘 땅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어란 앞바다에 이르니 이르는 곳마다 이미 텅 비었다. 바다 가운데서 잤다.
10월 5일 (8월 25일) 맑음. 당포(통영 산양읍 삼덕리)의 어부가 피난민의 소를 훔쳐 끌고 가면서 적이 온다고 헛소문을 냈다. 나는 이미 그것이 거짓임을 알았다. 헛소문 낸 둘을 잡아 곧 목을 베게 했다. 군중이 크게 안정되었다.
목을 베었다.
어란(해남 송지면) 앞바다에 이르니 닿는 곳마다 사람이 떠나 텅 비어 있었다. 빈 포구에는 버려진 그물이 말뚝에 걸려 바람에 펄럭였다. 뭍에 오르지 않고 바다 가운데 닻을 내리고 잤다. 밤새 뱃전을 치는 물소리가 고르게 이어졌고, 병을 앓고 난 몸은 그 소리에 기대어 겨우 잠이 들었다.
이튿날 당포에서 흘러온 어부들이 피난민의 소 두 마리를 끌고 갔다. 잡아먹으려면 사람들이 흩어져야 했고, 사람을 흩으려면 적이 온다고 외치면 되었다. 그들은 그 셈으로 헛소문을 냈다. 적이 온다는 소리가 포구를 타고 번지자 배마다 사람들이 뱃전으로 몰려나와 바다 쪽을 살폈다.
나는 이미 거짓임을 알았다. 초고에는 배를 굳게 매어 두고 움직이지 않았다고 썼다. 적이 온다는 말에 열둘이 뿔뿔이 흩어지면 그날로 수군은 끝이었다. 사람을 보내 잡아 오게 하니 과연 짐작대로였다. 코뚜레를 잡힌 소 두 마리가 음매 울며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헛소문 낸 둘의 목을 베어 배마다 돌려 보였다. 소 두 마리 때문에 두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열두 척 때문에 죽었다. 칼이 떨어지는 소리는 짧았고, 그 뒤로 포구가 한참 조용했다. 군중이 크게 안정되었다. 초고에는 한 줄이 더 있다. 배설은 이미 달아나 나갔다. 헛소문 한마디에 가장 먼저 배를 뺀 것이 경상수사였다. 그가 언제 돌아왔는지는 쓰지 않았다. 다만 그 뒤에도 열둘은 열둘이었다.
*
10월 6일 (8월 26일) 맑음. 임준영이 말을 타고 달려와 적병이 이진에 이르렀다고 알렸다. 우수사가 왔다.
10월 7일 (8월 27일) 맑음. 배설이 와서 보았다. 두려워 흔들리는 기색이 많았다. 내가 말했다. 수사는 피해 옮기려 하는가.
수사는 피해 옮기려 하는가.
앞에 앉은 배설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 두려워 흔들리는 기색이 가득했다. 눈길이 자꾸 문 쪽으로 미끄러졌고, 무릎 위의 손가락은 쉬지 않고 옷자락을 비볐다. 초고에는 내가 갑자기 말했다고 썼다. 미리 마련해 둔 말이 아니었다. 그 얼굴을 보자 생각보다 입이 먼저 움직였다. 피해 옮기려 하는가.
배설이 무엇이라고 답했는지는 남기지 않았다. 답을 못 했을 것이다. 그의 입술이 한 번 달싹이다 만 것만 기억에 남아 있다. 선실 안에는 한동안 등잔 심지 타는 소리만 났고, 그가 일어나 나갈 때까지 나는 그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전날에는 우수사 김억추가 왔다. 그가 끌고 온 배와 격군과 기계는 모양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초고 한옆에 작은 글씨로 놀랄 만하다고 덧붙였다. 크게 쓰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흔들릴 것이었다. 그의 배에 오른 격군들은 노 잡는 손이 서툴러, 노깃이 물을 치지 못하고 수면을 튀기며 헛돌았다. 뱃전의 판자 몇 장은 들떠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삐걱거렸다. 그래도 배는 배였다. 열둘에 한 척이 붙어 열셋이 되었다. 뒤에 임금이 교서에 열세 척이라고 쓴 그 열셋이다.
*
10월 8일 (8월 28일) 맑음. 적선 여덟 척이 뜻밖에 들어왔다. 여러 배가 겁을 냈다. 경상수사가 피해 물러나려 했다. 나는 흔들리지 않고 각을 불고 깃발로 지휘해 쫓게 했다. 적선이 물러갔다. 갈두까지 쫓다가 돌아왔다. 저녁에 장도로 진을 옮겼다.
여덟 척이 왔다.
묘시(아침 다섯 시에서 일곱 시 무렵)에 적선 여덟 척이 뜻밖에 들어왔다. 열셋 앞에 여덟이었다. 아침 안개가 아직 물 위에 낮게 깔려 있었고, 그 안개를 헤치고 검은 뱃머리가 하나씩 드러났다. 여러 배가 겁을 냈다. 노 잡은 손들이 벌써 뒤로 물릴 채비를 했고, 경상수사의 배는 물러나려고 뱃머리를 틀고 있었다.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초고에는 얼굴빛을 바꾸지 않았다고 썼다. 열두 척의 눈이 대장선을 보고 있었다. 내 얼굴이 바뀌면 열셋이 한꺼번에 바뀐다. 나는 각을 불게 하고 쫓으라는 깃발을 올리게 했다. 뿔나팔 소리가 물 위를 낮게 건너갔고, 깃발은 젖은 바람을 머금고 무겁게 펄럭였다.
대장선이 먼저 나갔다. 여러 배가 피할 수 없어 한꺼번에 갈두(해남 송지면 갈두리)까지 쫓았다. 대장선이 앞에 서면 뒤따르는 배는 물러설 수 없다. 다섯 해 전 옥포(거제 옥포동)에서 한 것을 열세 척으로 다시 했다. 여덟 척이 멀리 달아났다. 끝까지 쫓지는 않았다. 그 뒤에 배 쉰여 척이 있다는 말이 있었다. 여덟만 쫓아 보내고 뱃머리를 돌렸다.
그날 활은 한 대도 쏘지 않았다. 각을 불고 깃발을 들었을 뿐인데 적이 물러갔고, 열셋이 그것을 제 눈으로 보았다. 통제사가 깃발을 들면 적이 간다. 그날 얻은 것은 쫓아낸 여덟 척보다 그 장면 하나가 컸다. 돌아오는 뱃길에 격군들의 노 젓는 소리가 아침보다 한결 고르게 맞았다. 저녁에 장도로 진을 옮겼다.
*
10월 9일 (8월 29일) 맑음. 벽파진(진도 고군면 벽파리)에 이르렀다.
10월 10일 (8월 30일) 맑음. 벽파진에 그대로 진을 쳤다.
벽파진.
진도 동쪽, 물빛이 푸르다고 벽파라 부르는 나루였다. 일기에는 이르렀다는 한 줄뿐이고, 초고에는 아침에 건너 진을 쳤다고 썼다. 명량(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을 지나 건넜다. 물이 울어서 울돌목이다. 배가 그 물목에 들어서자 바닥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소리가 뱃바닥을 타고 발바닥까지 울렸고, 노를 잡은 격군들이 저도 모르게 몸을 낮추었다. 좁고 빠른 물이었다. 어영담이 살아 있었으면 손바닥에 그려 보였을 물목이다. 그가 없으니 내 눈으로 물살을 읽으며 지나갔다. 물이 어느 바위에 부딪혀 꺾이는지, 소용돌이가 어디서 일어 어디서 풀리는지를 뱃전에 붙어 서서 끝까지 보았다. 빠져나와 돌아보니 물목은 여전히 하얗게 끓으며 울고 있었다.
이튿날 배설이 종을 시켜 소지를 올렸다. 병세가 매우 무거워 조리하고 싶다는 글이었다. 초고에는 그 앞의 사정이 더 있다. 배설은 적이 크게 올 것을 걱정해 그 관하 여러 장수를 데리고 달아나려 했다. 나는 그 정상을 알았으나 아직 밝히 드러나지 않았고, 먼저 발하는 것은 장수의 계책이 아니었다. 그렇게 참고 있는 사이에 종이 소지를 들고 왔다.
알면서 참았다. 배설을 먼저 치면 그 밑의 장수들이 흔들리고, 그들이 흔들리면 열셋이 깨진다. 소지 끝에 뭍에 내려 조리하라고 써 주었다. 붓을 내려놓자 종이 그것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뒷걸음으로 나갔다. 배설은 우수영(해남 문내면)으로 내렸다. 그가 탄 작은 배가 물살을 비스듬히 가르며 멀어지는 동안, 뱃머리에 선 그는 한 번도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
10월 12일 (9월 2일) 맑음. 이날 새벽에 배설이 달아났다.
달아났다.
이 새벽에 배설이 달아났다. 일기에는 그 한 줄뿐이다. 앞에는 소지를 써 준 일이 있고,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칠천량(거제 하청면 칠천도 앞)에서 열두 척을 끌고 빠져나온 사람이 이번에는 혼자 새벽 어둠을 타고 갔다. 배는 두고 갔다. 아침에 포구로 나가 보니 배들이 밤사이 그대로 닻줄에 매여 물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배설이 내게 남긴 것 가운데 다행이라 할 만한 것은 그것 하나였다.
그 새벽 포구에는 물안개가 짙게 끼어, 뭍 쪽으로 난 길은 몇 걸음 앞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 하나가 빠져나가기에 알맞은 새벽이었다. 원망하는 말은 쓰지 않았다. 그 한 줄이 원망의 전부였다. 남은 종이는 열셋의 일로 채웠다. 배설이 빠져도 열셋은 열셋이었다. 나는 아침 물빛 위에 떠 있는 배를 끝에서 끝까지 세었고, 수는 어제와 같았다.
사료 · 8월 20일 이진으로 진을 옮긴 것, 21~23일 곽란으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배에서 내려 잔 것 ― 난중일기 정유년 8월 20~23일(전서본). 「찬 기운이 닿을까 소주를 마시고 다스리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거의 구하지 못할 뻔했다, 열 번 넘게 토했다」, 「실로 싸움터가 아니다」 ― 초고본 책6(전서본에는 없다) · 8월 25일 당포 어부가 피난민 소를 훔치며 적이 온다고 헛소문 낸 것, 「이미 거짓임을 알고 둘을 잡아 목을 베니 군중이 크게 안정되었다」 ― 난중일기 8월 25일. 「배를 굳게 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과연 짐작대로였다」, 「배설은 이미 달아나 나갔다」 ― 초고본 · 8월 26일 임준영이 적이 이진에 이르렀다고 알린 것과 우수사 김억추가 온 것, 「배와 격군과 기계가 모양을 이루지 못했다. 놀랄 만하다」(초고본 협주), 27일 배설의 「두려워 흔들리는 기색」에 「수사는 피해 옮기려 하는가」 한 것 ― 난중일기 8월 26~27일. 초고본은 「갑자기 말했다」 · 8월 28일 묘시 적선 여덟 척이 뜻밖에 들어와 여러 배가 겁내고 경상수사가 물러나려 한 것, 「흔들리지 않고 각을 불고 깃발로 쫓게 하니 갈두까지 쫓고 돌아왔다」 ― 난중일기 8월 28일. 「얼굴빛을 바꾸지 않았다」, 「여러 배가 피할 수 없어 한꺼번에 쫓았다」, 「뒤에 배 쉰여 척」 ― 초고본 · 8월 29일 벽파진, 30일 배설이 「적이 크게 올 것을 걱정해 관하를 데리고 달아나려 하는 것을 알았으나 아직 밝히 보지 못했고 먼저 발하는 것은 장수의 계책이 아니라 참고 있는데」 종이 병세가 무겁다는 소지를 올려 뭍에서 조리하라고 써 주니 우수영으로 내린 것 ― 초고본 책6 8월 30일. 9월 2일 「이 새벽에 배설이 달아났다」 ― 난중일기 9월 2일 · 열세 척 ― 이충무공전서 권1 책선무원훈교서(「十三樓櫓」). 명량 물목을 지나며 본 것, 열셋의 사흘, 첫 싸움의 셈은 지어냈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정유년 8월은 30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