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62자) · 1592년 6월 17일~18일, 적진포에서 여수까지

적진포

이순신 · 네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1592년 6월 17일 (음력 5월 8일) 이날 이순신은 일기를 쓰지 못했다. 5월 8일 이른 아침, 진해 고리량(창원 진해구와 거제 사이 물목)에 왜선이 머문다는 소식을 듣고 곧 배를 띄우게 했다.

끝동이 처음으로 갑판에 올라간 것은 전날 저녁 합포(창원 마산합포구)에서였다.

큰 배 다섯 척을 쫓아 웅천(창원 진해구 웅천동) 땅 합포 앞바다까지 갔다. 적은 배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갔고 빈 배 다섯 척이 물가에 있었다. 위에서 사람을 불렀다. 배를 태울 사람이 모자라서 노 자리에서 셋씩 올라오라고 했고, 여섯째 노에서는 끝동과 돌쇠와 말 없는 쪽이 올라갔다.

판자 밑에서 나흘 만에 나온 하늘은 컸다. 너무 커서 끝동은 잠깐 눈을 감았고, 눈을 뜨니 바다가 사방에 있었고, 노 구멍으로 보던 손바닥만 한 바다가 아니었다. 바다가 이렇게 넓은 것을 그는 어부인데도 잊고 있었다.

적의 배에 올랐다.

빈 배였다. 사면에 비단 휘장이 둘러져 있고 휘장에 꽃인지 짐승인지 모를 그림이 있었고, 대나무 장대에 작은 깃발이 붙어 있었다. 빨간 것과 흰 것. 옥포(거제 옥포동)에서 노 구멍 앞을 지나가던 것이 이것이었다. 갑판에 밥그릇이 뒹굴고 있었다. 밥이 남아 있었다. 먹다가 간 것이다. 끝동은 그 밥그릇을 오래 보았다. 볼 일이 아닌데 보았다.

군관이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마른 배는 잘 탔다. 휘장이 먼저 타고 장대가 타고 깃발이 탔는데, 빨간 깃발이 타서 검게 되는 것을 끝동은 끝까지 보고 나서 제 배로 돌아와 판자 밑으로 내려갔다. 노 자리에 앉으니 노 구멍이 다시 손바닥만 했다. 그 손바닥에 불빛이 들어왔다.

밤에 노를 저어 창원 남포(창원 마산합포구 구산면) 앞바다까지 갔다. 거기서 잤다. 자는 것은 노 자리에서 잔다. 노를 베고 잔다.

*

아침에 북이 울렸다.

진해 고리량에 적의 배가 있다고 했다. 안팎의 섬을 끼고 뒤졌고, 저도(창원 마산합포구 구산면 저도)를 지나 고성 땅 적진포에 이르렀는데, 적선 열세 척이 포구에 줄지어 있었다. 적은 마을을 분탕하고 나서 우리 배를 보고 산으로 올라갔다고 했다.

이번에는 끝동이 포 소리를 알았다. 배가 한 뼘 밀리기 전에 손이 먼저 버텼다. 옆 배들이 같이 밀렸다가 같이 돌아왔다. 판자 위에서 총 소리가 나지 않았다. 적이 산에 있어서였고, 산에서 쏘는 총은 배에 안 닿았고, 그래서 이번에는 소리가 우리 것뿐이었다. 우리 것뿐인 소리는 이상하게 컸다.

열한 척을 깼다. 병방이 내려와 그렇게 말했다. 두 척은 남겨 두었다고 했다. 왜 남겼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아침을 먹으라고 했다.

노 자리에서 먹었다. 옥포에서 나온 쌀로 지은 밥이었다. 적의 배에 실려 있던 우리 쌀. 밥이 노 자리로 내려왔을 때 돌쇠가 그릇을 받아 들고 잠깐 가만히 있다가 먹었고, 말 없는 쪽은 그릇을 받자마자 먹었다. 끝동은 어제 적의 배에서 본 밥그릇을 생각했다. 먹다가 간 밥. 지금 그것을 자기가 먹고 있었다. 밥은 밥이다. 먹었다.

*

밥을 먹는 중에 위에서 소리가 났다. 사람 소리였다. 우는 소리.

노 구멍으로 산이 보였다. 산꼭대기에서 사람이 하나 등에 아이를 업고 내려오고 있었는데, 내려오면서 울고 있었고, 우는 소리가 산을 타고 바다까지 왔다. 우리 배를 보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작은 배가 나가서 그를 실어 왔다.

향화인이라고 했다. 이신동이라는 이름이었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는 사람이다. 장군이 직접 물었다고 했다. 병방이 그 말을 노 자리에 옮겼다.

어제 적이 이 포구에 와서 마을을 털었다. 재물과 소와 말을 배에 실었다. 밤 초경(밤 일곱 시에서 아홉 시 무렵)에 배를 물 가운데 띄우고 소를 잡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피리를 불었는데 새벽까지 그치지 않았고, 가만히 들으니 그 곡조가 다 우리나라 것이었다.

우리나라 곡조였다. 적이 우리 소를 잡아먹고 우리 노래를 불렀다.

끝동은 그 노래가 어느 노래였을까 생각했다. 어부 노래였을까. 노 젓는 노래였을까. 적이 그것을 어디서 배웠을까. 배운 것이 아니라 끌려간 사람이 불렀을 것이고, 끌려간 사람이 부른 것을 적이 따라 불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노래가 우리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이신동은 늙은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을 적에게 잃었다고 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했다. 장군이 함께 가자고 했다. 그가 안 간다고 했다. 어머니와 아내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등에 업은 아이만 데리고 다시 산으로 갔다.

그가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끝동은 노 구멍으로 보았다. 등에 업힌 아이가 배 쪽을 보고 있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아이가 울지 않는 것이 제일 오래 남았다.

*

배가 천성(부산 강서구 천성동)과 가덕(부산 강서구 가덕도) 쪽으로 돌았다. 부산 쪽이었다. 적의 배가 거기 있다고 했고 다 태울 것이라고 했고, 장군이 원균과 마주 앉아 계책을 짜고 있다고 했다.

그때 종이가 왔다.

작은 배가 육지에서 나와 우리 배에 붙었다. 전라도 도사 최철견의 첩보라고 했다. 끝동은 그 종이를 보지 못했다. 종이는 갑판 위에 있고 그는 판자 밑에 있었다. 대신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없었다.

한참 동안 갑판 위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뛰는 소리도 부르는 소리도 없다가 소리가 났는데, 사람이 우는 소리였고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었고 장수들이 우는 소리였다. 장군도 울었을 것이다. 우는 소리 사이로 말이 새어 나왔다. 임금이 서쪽으로 갔다. 도성을 버리고 서쪽으로 갔다.

돌쇠가 노를 잡은 채로 말했다.

“임금이.”

말 없는 쪽이 답했다.

“갔다고.”

“어디로.”

“서쪽.”

“서쪽이 어딘데?”

아무도 몰랐다. 서쪽이 어디인지 여수 어부는 모르고 한양이 어디인지도 잘 모르며 북쪽 어디라고만 아는데, 그 북쪽 어디의 임금이 서쪽 어디로 갔다는 것을 노 자리에서 들었다. 들어도 무엇이 달라지는지 몰랐다. 노는 그대로 무거웠다.

위에서 우는 소리가 종일 났다고 뒤에 들었다. 서로 붙들고 하루를 울었다고 했다. 하루가 다 가지는 않았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북이 울렸다.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부산으로 가지 않는다. 여수로 돌아간다.

끝동은 그 북소리를 듣고 처음으로 노가 가벼운 것을 느꼈다. 돌아가는 노는 가볍다. 가벼운 것이 부끄러워서 힘을 더 주었고, 힘을 더 주니 무거워졌고, 무거운 것이 맞는 것 같았다.

*

돌아가는 길에 산골마다 사람이 있었다.

노 구멍으로 보였다. 배가 지나가는 바닷가 산골짜기마다 피난 온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머리 땋은 아이와 머리 흰 노인이 짐을 지고 서로 붙들고 서서 우리 배를 보았다. 손을 흔들었다. 우는 소리가 물 위로 왔다. 다시 살 길을 얻었다는 얼굴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적이 간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싣지 못했다. 싸우러 온 배에 사람을 가득 실으면 노를 못 젓는다. 장군이 사람을 보내 타일렀다고 했다. 깊이 숨어 있으라. 몸을 드러내지 말라. 돌아올 때 데려가겠다. 그 말이 노 자리에도 왔다.

돌아올 때. 끝동은 그 말을 노 구멍 밖의 손들에게 속으로 했다. 손들은 배가 지나가도 계속 흔들리고 있었고, 노 구멍이 지나가서 안 보이게 될 때까지 흔들렸고, 그다음은 몰랐다.

돌아올 때 이 사람들이 있을까. 끝동은 그 물음을 노 자리에 두고 왔다.

*

이튿날 오시(낮 열한 시에서 한 시 무렵)에 여수에 닿았다.

닷새 만이었다. 배는 스물넷이 다 있었다. 하나도 안 잃었다. 다친 사람은 이선지 하나. 적의 목은 둘이었다. 마흔 척 넘게 태우고 목은 둘이라고 장군이 분해했다는 말이 노 자리까지 내려왔는데, 격군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흔 척이면 마흔 척이다. 목이 둘이면 둘이다. 어느 것이 더 큰 수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목 하나에는 사연이 있었다. 낙안군수가 벤 것인데 왼쪽 귀를 잘라 궤에 넣어 봉했다고 했다. 조정에 올린다고 했다. 마흔 척은 궤에 못 넣고 귀는 넣을 수 있어서 귀를 넣었다.

포로도 있었다. 보성군수 배에서 잡은 아이였다. 열넷이었다. 동래(부산 동래구) 사람 윤백련. 머리를 깎여 왜인 모양이 되어 있었고, 적에게 잡혀 배 밑에 갇혀 있다가 옥포에서 우리 화살이 비처럼 쏟아질 때 적이 물에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 아이가 갑판에서 내릴 때 끝동은 노 구멍으로 보았다. 깎인 머리가 햇빛에 희었다. 여수 사람이 아닌데 여수에 내렸다. 보성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어디에도 부모가 없는 아이였다.

노를 놓았다. 닷새 만에 놓았다. 놓으니 손이 노 모양으로 굽어 있었고 펴지지 않았고 펴려고 하니 아팠다.

포구에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순덕이 있었다. 소금 굽는 사람은 손을 보면 안다. 순덕이 그의 손을 보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대신 종이에 싼 것을 내밀었다. 소금 한 줌이었다.

끝동은 그것을 받았다. 지난번 것은 종이가 젖어서 다 풀어 썼는데 이번 것은 종이가 말라 있어서, 마른 종이가 손바닥에 닿았고, 굽은 손이 그 종이를 쥐려고 조금 펴졌다.

그것이 닷새 만에 처음으로 펴진 것이었다.

사료 · 합포에서 적선 다섯 척을 태운 것, 밤에 창원 남포 앞바다에서 잔 것, 5월 8일 아침 고리량 소식을 듣고 저도를 지나 적진포에서 열세 척 가운데 열한 척을 깬 것, 사졸에게 아침을 먹인 것 ― 옥포파왜병장, 이충무공전서 권2 · 향화인 이신동이 아이를 업고 산꼭대기에서 울며 내려온 것, 적이 소를 잡고 술 마시며 노래하고 피리 불었는데 그 곡조가 다 우리나라 것이었다는 것, 늙은 어머니와 처자를 잃고 함께 가기를 마다한 것 ― 같은 장계 · 천성·가덕·부산으로 가려다 전라도 도사 최철견의 첩보로 임금이 관서로 옮겨 갔음을 알고 「서로 붙들고 종일 울었다」, 각자 회군한 것, 5월 9일 오시 무사히 본영에 돌아온 것 ― 같은 장계 · 바닷가 산골마다 피난민이 배를 보고 울며 손짓한 것, 배에 실을 수 없어 숨어 있으라 타이르고 돌아올 때 데려가겠다 한 것 ― 같은 장계 · 마흔 척 넘게 태우고 벤 목이 둘뿐이라 분해한 것, 신호가 벤 목의 왼쪽 귀를 궤에 넣어 봉한 것 ― 같은 장계 · 보성군수 김득광이 잡은 열네 살 동래 사람 윤백련이 머리를 깎여 왜인 모양이었던 것과 그 진술 ― 같은 장계 · 우리 배는 하나도 잃지 않고 다친 사람은 이선지 하나 ― 같은 장계 · 끝동·순덕·돌쇠는 지어낸 인물이다. 격군이 적의 배에 올라 불을 붙인 것, 노 자리의 대화, 순덕의 소금은 지어냈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이날 일기는 없다(전서본 5월 5일부터 28일까지 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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