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75자) · 1592년 6월 16일, 옥포 앞바다

옥포

이순신 · 네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1592년 6월 16일 (음력 5월 7일) 이날 이순신은 일기를 쓰지 못했다. 5월 7일 새벽에 일제히 배를 띄워 적선이 머무는 천성(부산 강서구 천성동)과 가덕(부산 강서구 가덕도)으로 향했다. 오시(낮 열한 시에서 한 시 무렵)에 옥포 앞바다에 이르렀다.

끝동은 앞이 안 보였다.

판옥선의 격군 자리는 갑판 아래다. 위에 판자를 덮고 그 아래에서 노를 젓는데, 옆으로 난 노 구멍으로 바다가 손바닥만큼 보이고, 그 손바닥만 한 바다가 그가 아는 바다의 전부였다. 나흘째 그랬다.

그는 여수 사람이다. 아버지가 고기를 잡았고 아버지가 죽은 뒤로 그가 잡았다. 누이 순덕은 소금을 굽는다. 수군에 뽑혔을 때 순덕이 소금 한 줌을 종이에 싸서 주면서 손에 물집이 잡히면 소금물에 담그라고 했는데, 물집은 첫날 잡혔고 소금은 아직 종이에 있었다. 담글 물이 없었다. 노 자리에서는 바닷물도 손에 닿지 않는다.

한 자리에 다섯이 젓는다. 끝동은 왼쪽 여섯째 노의 셋째였다. 앞의 둘은 여수 사람이고 뒤의 둘은 순천에서 온 사람이었는데, 순천 사람 하나는 말이 많았고 하나는 말이 없었다. 말이 많은 쪽 이름이 돌쇠였다. 돌쇠는 노를 저으면서도 말을 했다.

“군호가 뭐라고 했지?”

“용호.”

“용이라고 하면?”

“호.”

“산이라고 하면?”

“수.”

“호라고 하면?”

끝동이 답을 못 했다. 호라고 하면 뭐라고 하는지 아무도 안 가르쳐 줬다. 돌쇠가 웃었다. 말 없는 쪽이 노를 젓는 채로 말했다.

“호라고 하면 적이다.”

돌쇠가 웃음을 그쳤다.

*

새벽에 송미포(거제 남부면)에서 배를 띄웠다.

북소리에 맞춰 젓는다. 북은 갑판 위에 있고 소리는 판자를 뚫고 내려온다. 한 번 울리면 한 번 당긴다. 판옥선 노는 어른 둘 길이고 다섯이 붙어 당겨야 물이 밀리는데, 첫날에는 물이 안 밀리고 노만 밀렸고, 나흘째에는 물이 밀렸다. 손바닥이 그만큼 두꺼워졌다.

배가 몇 척인지 끝동은 몰랐다. 스물넷이라는 말을 들었다. 원균의 배가 몇 척 더 붙었다고 했는데 몇 척인지는 노 자리마다 말이 달라서 셋이라는 사람도 있고 여섯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노 구멍으로 보이는 것은 옆 배 하나뿐이었다. 그 배가 우리 배와 같은 속도로 가는 것을 보고 다 같이 가는 줄 알았다.

오시(낮 열한 시에서 한 시 무렵)쯤 북소리가 달라졌다.

빨라진 것이 아니었다. 한 번 울리고 멈췄다. 노를 멈추라는 것이었다. 노를 물에 담근 채로 멈추면 배가 스스로 미끄러지다가 서는데, 배가 서고 나서 위에서 사람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났고, 그 사이로 신기전이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척후선에서 쏜 것이다. 쇳소리가 길게 하늘로 올라갔다가 끊겼다.

돌쇠가 말했다.

“왔다.”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전령이 판자 틈으로 내려왔다. 갑판 위에서 아래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었다. 사도첨사 배의 군관이었다. 소리가 노 자리마다 옮겨졌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 태산같이 무겁게 있으라.”

끝동은 그 말을 옆 노 자리에 옮겼다. 옮기면서 그 말이 자기 것이 되었다. 태산같이 무겁게. 그는 태산을 본 적이 없고 무거운 것은 아는데, 노가 무거우니 노만큼 무겁게 있으라는 말로 들었다.

*

옥포 앞바다는 넓었다. 그것을 끝동은 나중에 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노 구멍으로 본 것은 포구 쪽 연기였다. 산이 온통 연기였고 적이 포구를 불태우고 있었고, 연기가 바람을 타고 바다로 나와 노 구멍으로 들어왔다. 나무 타는 냄새가 났다. 나무만이 아니었다. 무슨 냄새인지 그는 알았고 알고 싶지 않았다.

북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빨랐다. 한 번 울리고 한 번 당기고 그 사이에 숨을 쉴 틈이 없었다. 배가 앞으로 나가면서 노 구멍으로 보이던 옆 배가 뒤로 처졌다가 다시 따라붙었다. 여섯째 노 다섯이 한 몸이 되었다. 돌쇠가 말을 하지 않았다. 말 없는 쪽은 원래 말이 없었다. 소리는 위에서만 났다. 뛰는 소리, 부르는 소리, 활줄 소리.

그다음에 포가 터졌다.

배가 옆으로 밀렸다. 한 뼘쯤이었다. 노를 쥔 손이 그만큼 밀렸다가 돌아왔고, 밀리는 순간 노가 물에서 헛돌아 다섯이 앞으로 쏠렸고, 돌쇠의 이마가 앞사람 등에 부딪쳤다. 다시 잡았다. 다시 당겼다. 두 번째 포가 터졌다. 이번에는 몸이 미리 알았다. 한 뼘 밀리기 전에 손이 먼저 버텼다.

위에서 누가 외쳤다. 대선이다. 큰 배다. 붙여라.

배가 오른쪽으로 돌았다. 오른쪽 노가 물에 잠기고 왼쪽 노가 들려서 끝동의 노가 허공을 저었다. 허공을 젓는 것이 물을 젓는 것보다 힘든 것은 힘을 줄 데가 없어서 힘이 몸 안에 남기 때문이다. 남은 힘이 팔뚝에서 떨었다.

포 소리와 활줄 소리와 사람 소리가 한꺼번에 왔다. 어느 것이 우리 것이고 어느 것이 적의 것인지 소리로는 갈리지 않았다. 갈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적의 총 소리였다. 짧고 마른 소리였고, 그 소리가 나면 판자에 무언가 박혔고, 박히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났다. 판자가 있어서 아래로는 안 내려왔다. 판자 두께만큼 살아 있었다.

노 구멍으로 무언가 지나갔다.

빨간 것이었다. 작은 깃발이었다. 적의 배에 꽂힌 대나무 장대에서 떨어진 것인지, 배와 함께 물에 잠기다가 떠오른 것인지 몰랐다. 빨간 깃발 하나가 노 구멍 앞을 지나 뒤로 갔고, 그다음에 흰 것이 지나갔고, 그다음에 사람 손이 지나갔다.

손이었다. 물 위에 떠 있었다. 손만 보였다. 손이 노 구멍 앞에서 잠깐 멈췄다가 노가 밀어낸 물결에 밀려 뒤로 갔다.

끝동은 노를 놓지 않았다. 놓으면 넷이 그만큼 무거워진다. 놓지 않는 것이 그 손에게 해 줄 수 있는 전부였고, 무엇을 해 줄 일이 있는지도 몰랐고, 적의 손인지 우리 손인지도 몰랐다. 손은 그냥 손이었다.

*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물이 한 번 바뀌는 동안이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북이 멈췄다. 노를 담근 채로 배가 미끄러졌다. 위에서 사람들이 뛰는 소리가 잦아들고 대신 다른 소리가 났는데, 불 타는 소리였다. 나무가 타면서 물에 닿아 내는 소리, 쉭 하고 꺼지다가 다시 타는 소리. 그 소리가 사방에서 났다.

전령이 내려왔다. 이번에는 군관이 아니라 노 자리를 지키는 병방이었다. 그가 노 자리마다 다니며 말했다. 스물여섯 척. 적선 스물여섯 척을 깼다. 우리 배는 하나도 안 잃었다. 다친 사람은 하나다.

하나라고 했다.

끝동은 그 하나가 누구인지 물었다. 병방이 순천 대장선의 사부라고 했다. 이선지라고 했다. 왼팔에 화살 하나. 살은 뺐고 피는 멎었다. 그것뿐이라고 했다.

돌쇠가 말했다. 스물여섯 척에 하나. 그러면 우리가 이긴 거지. 병방이 답하지 않고 다음 노 자리로 갔다. 말 없는 쪽이 노를 놓고 제 손바닥을 보았다. 끝동도 제 손바닥을 보았다. 물집이 터져 있었는데 언제 터졌는지 몰랐고, 소금은 아직 종이에 있었다.

배가 돌았다. 노를 젓지 않고 돌았다. 조류가 돌린 것이다. 노 구멍의 방향이 바뀌면서 포구 쪽이 보였다.

불이었다.

바다에 배들이 타고 있었다. 세는 것이 안 됐다. 배 모양이 남은 것과 안 남은 것이 섞여 있었고, 연기가 바다에서 올라와 산의 연기와 만났고, 그 아래 물에 온갖 것이 떠 있었다. 판자, 돛, 옷, 궤짝, 빨간 깃발, 흰 깃발. 물건들이 조류를 따라 한 방향으로 천천히 흘렀다. 그 사이에 사람이 있는지 끝동은 보지 않았다. 안 보는 것을 골랐다. 고를 수 있는 것이 그것 하나였다.

병방이 다시 왔다. 적의 배에 우리나라 쌀이 삼백 섬 넘게 실려 있었다고 했다. 격군에게 나누어 준다고 했다. 적이 훔친 쌀을 적의 배에서 꺼내 우리가 먹는다. 끝동은 그 쌀이 어느 고을 쌀인지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쌀은 쌀이다. 먹으면 노가 가벼워진다.

*

배가 영등포(거제 장목면 구영리) 앞바다로 물러났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격군이 교대로 뭍에 내려 나무를 하고 물을 길었는데, 끝동은 다음 차례라 뭍에 내리지 않고 노 자리에 앉아 노 구멍으로 뭍을 보았다. 거제 섬이었다. 산이 험하고 나무가 빽빽했다. 저 산으로 적이 올라갔다고 했다. 사부들이 쫓아가려 했는데 장군이 못 가게 했다고 했다. 산에 들어가면 배가 비고, 배가 비면 뒤가 뚫린다.

돌쇠가 돌아왔다. 물을 길어 온 사람들이 노 자리마다 물을 돌렸다. 끝동은 바가지에 손을 담갔다. 바닷물이 아니라 민물이었다. 물집 터진 데가 아렸다. 순덕이 준 소금을 꺼냈는데 종이가 젖어 있었고 언제 젖었는지 몰랐고 소금이 종이에 붙어 있어서, 그것을 종이째 물에 풀고 손을 담갔다.

아렸다. 아린 것이 살아 있다는 것이라고 순덕이 말했었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신시(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 무렵)쯤이었다. 위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척후가 불렀다. 바다 저쪽에 큰 배 다섯 척이 지나간다고 했다.

북이 울렸다.

끝동은 소금물에서 손을 뺐다. 젖은 손으로 노를 잡았다. 노가 미끄러웠다. 미끄러운 노를 다섯이 잡았다.

사료 · 5월 7일 새벽 출발, 오시 옥포 도착, 사도첨사 김완과 여도권관 김인영이 신기전으로 알린 것,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 태산같이 무겁게(勿令妄動 靜重如山)」 전령 ― 옥포파왜병장, 이충무공전서 권2 · 적선 오십여 척이 옥포 선창에 있었고 사면에 휘장을 둘러 그림을 그리고 대나무 장대에 붉고 흰 작은 깃발을 단 것, 적이 포구를 불태워 연기가 산을 덮은 것, 여섯 척이 먼저 달아나고 나머지가 기슭을 따라 배를 몬 것 ― 같은 장계 · 적선 스물여섯 척 격파, 다친 사람은 순천 대장선 사부 이선지 왼팔 하나뿐 ― 같은 장계. 장수마다 몇 척을 깼는지도 같은 장계에 있다 · 적선에 실린 우리나라 쌀 삼백여 섬을 굶주린 격군과 사부에게 나눠 준 것 ― 같은 장계 · 거제 산이 험해 올라간 적을 쫓지 않고 영등포 앞바다로 물러나 나무하고 물 길은 것, 신시에 큰 배 다섯 척이 지나가 쫓은 것 ― 같은 장계 · 옥포 앞바다에 원균이 데려온 경상도 배가 몇 척이었는지는 사료가 어긋난다. 장계는 원균이 「배 한 척으로 왔다」 하고 경상 장수들의 판옥선 셋과 협선 둘이 뒤에 왔다고 적는다. 징비록은 원균의 배가 「적지 않았다」고 적는다 · 끝동·순덕·돌쇠는 지어낸 인물이다. 격군 자리의 소리와 냄새, 노 구멍으로 본 것, 소금은 지어냈다. 판옥선 격군이 갑판 아래에서 노를 저은 것은 배의 구조가 그렇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이날 일기는 없다(전서본 5월 5일부터 28일까지 결락)

5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옥포 · 이순신 · 나오늘 AI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