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5,721자) · 1597년 5월 28일~6월 19일, 아산에서 순천까지
통곡
이순신 · 네오
1597년 5월 28일 (음력 4월 13일) 맑음. 아침을 먹은 뒤 마중 나가려고 바닷가 길로 나섰다. 길에 홍 찰방 집에 들어 잠깐 이야기하는 사이에 울이 애수를 보내 아직 배가 온 소식이 없다고 했다. 또 황천상이 흥백의 집에 왔다고 들어 홍과 작별하고 흥백의 집에 이르렀다. 얼마 뒤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니의 부고를 알렸다. 뛰쳐나가 가슴을 치고 발을 굴렀다. 하늘의 해가 캄캄했다. 곧 해암으로 달려가니 배가 이미 와 있었다.
배가 온 소식이 없었다.
아침을 먹고 바닷가 길로 나섰다가 홍 찰방 집에 잠깐 들렀다. 마루에 앉아 몇 마디 나누는 사이에 울이 보낸 애수가 와서, 아직 배가 온 소식이 없다고 했다. 나는 아직이라는 말을 곧 온다는 말로 들었다. 홍 찰방의 마루는 볕을 받아 따뜻했고, 처마 밑으로 제비가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그 마루에 앉은 잠깐이 그날의 마지막 잠깐이었다.
짐이 무겁다고 말을 내주었던 황천상이 흥백의 집에 와 있다고 했다. 홍 찰방과 작별하고 흥백의 집으로 갔다. 그 길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얼마 뒤에 순화가 왔다.
어머니 배에 딸린 종이었다. 배에서 곧장 뛰어온 듯 바짓가랑이가 젖어 있었고 숨이 턱에 닿아 있었다. 그가 한 말을 나는 그날 일기에 옮겼다. 어머니의 부고라는 그 몇 글자를 쓰는 데 얼마가 걸렸는지 모른다.
뛰쳐나가 가슴을 치고 발을 굴렀다. 손바닥이 가슴뼈에 부딪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렸다. 몸이 먼저 그렇게 했고, 나는 그것을 뒤에 알았다. 하늘의 해가 캄캄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한낮이어서 해는 바로 머리 위에 있었는데, 마당의 흙도 담장도 빛을 잃고 잿빛으로 가라앉았다. 그날 쓸 수 있었던 것은 그 캄캄함뿐이었다.
해암으로 달려갔다. 바닷가에 배가 이미 닿아 있었고, 돛은 내려져 있었다.
*
배가 와 있었다.
이틀을 세며 기다렸는데 배는 이틀 만에 왔다. 안흥에서 아산(충남 아산)으로 오는 그 이틀 사이에 어머니는 배 위에서 돌아가셨다. 여든셋의 몸으로 남해를 돌고 서해를 올라 아들을 보러 오시던 길이었다.
배에 올랐다. 배 바닥은 젖어 있었고 갯내와 젖은 거적 냄새가 한데 섞여 올라왔다. 널빤지가 발밑에서 삐걱였다. 물 빠진 갯벌에서 짠 바람이 불어와 천 자락 끝을 한 번 들썩였다가 내려놓았다. 뱃사람들은 뱃전에 붙어 선 채 아무도 내 쪽을 보지 않았다. 어머니는 천에 덮여 계셨다. 정운을 덮었고 어영담을 덮었던 그 천이 이번에는 어머니를 덮고 있었다. 천 밖으로 손이 나와 있지 않았다. 천 끝을 들추려던 내 손이 거기서 멈췄고, 나는 끝내 어머니의 손을 보지 못했다. 보지 못한 손이 오래 남았다.
잘 가라,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으라. 세 해 전 고음천(여수 시전동 웅천)에서 하신 말이었다. 그 뒤로 두 번을 더 뵈었지만 내 귀에 남은 마지막 말은 그것이었다. 마지막 말이 그 말이라서 다행인지 아닌지 나는 가리지 못했다. 다행이라는 말은 그날 쓰지 못했다.
배 위에서 나는 아무것도 세지 못했다. 고음천 북쪽 방에서 한 번, 어영담이 떠난 밤에 한 번 그랬고, 이번이 세 번째였다. 세 번이면 알 만도 했다. 알면서도 세지 못했다.
*
5월 29일 (4월 14일) 맑음. 홍 찰방과 이 별좌가 들어와 곡하고 관을 짰다. 관은 본영에서 마련해 온 것이라 조금도 흠이 없다고 했다.
관이 있었다.
여수 본영에서 마련해 배에 싣고 온 관이었다. 옻칠을 하지 않은 흰 나무라 대패 자국이 그대로 보였고, 손을 대면 송진이 끈적하게 묻어났다. 나무 냄새가 아직 살아 있었다. 여든셋을 배에 태우면서 관까지 함께 실은 사람이 있었다. 누가 실었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물으면 그 사람이 무엇을 각오하고 실었는지까지 알게 될 것이었다. 알아도 되는 일인데 묻지 못했다.
조금도 흠이 없는 관이라고 했다. 흠 없는 관에 어머니를 모셨다. 홍 찰방과 이 별좌가 들어와 곡하고 관을 짜는 동안 나는 손을 대지 않았다. 상주는 남이 하는 일을 지켜보는 자리에 앉는다.
이튿날 입관했다. 관 뚜껑이 닫히며 나무와 나무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고, 나는 그 소리를 눈을 감지 않고 들었다. 오종수가 마음을 다해 상을 돌보았고, 뼈가 가루가 되어도 잊기 어렵다고 그날 썼다. 천안현감이 와서 행차를 준비했고 전경복이 잇달아 상복을 지었다. 바늘이 삼베를 뚫는 소리가 밤늦게까지 방 안에서 났다. 슬프고 고마움을 어찌 말하겠는가. 슬픔과 고마움이 한꺼번에 와서 한자리에 앉았다.
*
5월 31일 (4월 16일) 흐리고 비. 배를 끌어 중방포로 옮겨 대고 영구를 상여에 올려 본가로 돌아왔다. 마을을 바라보며 애통함이 찢어지는 것을 어찌 말하겠는가. 집에 이르러 빈소를 차렸다. 비가 크게 왔다. 남쪽 길도 급했다. 부르짖어 울고 부르짖어 울었다. 다만 빨리 죽기를 기다릴 뿐이다.
상여가 마을로 들어갔다.
배를 끌어 중방포로 옮겨 대고 영구를 상여에 올렸다. 열네 해 전 아버지 상에 두 달 만에 달려왔던 그 아산 마을로, 이번에는 어머니의 상여가 들어갔다. 상여꾼의 발이 진흙에 빠질 때마다 상여가 한 번씩 기우뚱했다. 마을을 바라보니 애통함이 찢어지는 듯했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없다고 썼다.
집에 이르러 빈소를 차렸다. 향을 피우자 젖은 옷에서 오르는 김과 향 연기가 한데 엉겨 방 안이 뿌옜다. 비가 크게 왔다. 가문 들에 내리면 반갑던 비였고, 열에 들뜬 몸을 식혀 주던 비이기도 했다. 오늘은 그냥 비였다. 빗줄기가 지붕을 두드렸지만 빈소 안으로는 들이치지 않았다.
남쪽 길이 급했다. 나는 원수 막하로 가야 하는 흰 옷의 죄인이어서 상을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 금오랑이 재촉했다. 삼년상은커녕 빈소를 차리고 사흘 만에 떠나야 했다.
부르짖어 울었다. 문틈으로 든 바람에 빈소의 촛불이 누웠다가 일어났다. 부르짖어 울고 부르짖어 울었다고 두 번을 이어 썼는데, 두 번으로는 모자랐다. 모자란 것을 다음 줄에 이었다. 다만 빨리 죽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 밤의 나는 세는 사람이 아니라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이었고, 그것도 나였다.
*
이튿날 금오의 서리가 공주에서 와서 재촉했다.
떠나라는 말이었다. 빈소에 곡하고 물러나 종 금수의 집으로 왔다. 온몸에 기운이 없어 벽에 기대앉았고, 종일 비가 왔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물이 댓돌 옆에 작은 웅덩이를 팠다. 젖은 상복이 어깨를 눌렀다. 빈소 앞에서 곡하고 물러나는 것이 그날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라에 충성을 다하려 했는데 죄가 이미 이르렀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려 했는데 어버이가 또한 돌아가셨다.
뒤에 조카 분이 그 말을 행록에 남겼다. 누구 앞에서 한 말인지는 모른다. 통곡 끝에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옥과 흰 옷과 배 위의 어머니가 그 한마디 안에 다 들어 있었다.
*
6월 3일 (4월 19일) 맑음. 일찍 나와 길에 오르며 영연에 곡하고 하직했다. 천지에 어찌 나 같은 일이 있는가. 일찍 죽는 것만 못하다. 뇌의 집에 이르러 선묘에 하직을 고했다. 보산원에 이르니 천안현감이 먼저 와 있었다. 냇가에서 말을 내려 쉬었다. 회와 면과 봉과 해와 분과 완과 변 주부가 함께 천안까지 따라왔다.
영연에 곡하고 하직했다.
상복을 입은 지 사흘 만에, 죄인이라 떠났다. 떠난다는 말을 쓰고 그다음 줄을 썼다. 천지에 어찌 나 같은 일이 있는가. 물음이었지만 답해 줄 사람이 없었다. 일찍 죽는 것만 못하다. 사흘 전에는 빨리 죽기를 기다린다고 썼고 오늘은 일찍 죽는 것만 못하다고 썼다. 죽는다는 말을 두 번 쓰고 붓을 멈췄다. 세 번째로 쓰면 붓이 그 말을 참말로 만들 것 같았다.
뇌의 집에 들러 선묘에 하직을 고했다. 보산원에 이르니 천안현감이 먼저 와 있어서, 냇가에서 말을 내려 쉬었다. 냇물이 돌에 부딪는 소리가 쉬지 않고 났다. 길은 며칠 내린 비에 아직 질어서, 상복 자락에 진흙이 튀어 누렇게 얼룩져 있었다. 회와 면, 봉과 해와 분과 완, 그리고 변 주부가 천안까지 따라왔다가 거기서 돌아갔다. 담략이 있고 활을 잘 쏘아 나를 가장 닮은 막내 면이 할머니 빈소 쪽으로 돌아서 걸어갔다. 나는 그 등을 오래 보았다. 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등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모르고 보았다.
*
6월 18일 (5월 4일) 비. 이날은 어머니 생신이다. 슬프고 애통함을 어찌 견디랴. 닭이 울 때 일어나 앉아 눈물을 흘릴 뿐이다.
순천이었다. 원수가 순천에 있다고 해서 그리로 내려와 정원명의 집에 묵었고, 그 집에서 어머니 생신을 맞았다. 빌린 방의 이불에서 남의 집 냄새가 났다. 살아 계셨으면 여든넷이 되시는 날이었는데 비가 왔다. 닭이 울 때 일어나 앉아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처마에서 떨어진 빗물이 마당 돌을 두드리는 동안 닭이 두 번 울었고, 나는 두 번 다 앉아 있었다.
이튿날은 단오였다. 하늘 끝에서 종군하며 영연을 멀리 떠나 장사도 못 지냈으니 이것이 무슨 죄인가. 이번 물음에는 답이 있었다. 나가지 않은 죄, 요시라의 말을 따르지 않은 죄였다. 그 죄로 어머니를 묻지 못했다. 답은 쓰지 않고 물음만 남겼다. 물음이 답보다 오래 간다.
원수가 군관을 보내 조문했는데 위로가 간절했다. 순천부사가 다녀갔고, 정사준이 와서 원공이 패망하고 전도된 모습을 많이 이야기했다. 한산도(통영 한산면)의 원균 소식을 나는 상중에 순천에서 들었다. 그 사람에게 붙인 말은 여섯에서 끝난 줄 알았는데, 패망전도라는 넉 자가 일곱 번째로 상복 입은 귀에 들어왔다. 막을 힘이 없었다.
충청우후 원유남이 한산도에서 와서 원균의 패망을 또 많이 전했다. 진중의 장졸이 떠나고 배반해서 형세를 헤아릴 수 없다고 했다. 다섯 해 동안 배를 짓고 사람을 채웠다. 배는 나무로 짓지만 사람은 나무로 짓지 못한다. 사람이 빠져나간 배는 빈 배고, 그런 배가 백이 넘었다. 상중이라 세지 않으려 했는데 손가락이 먼저 꼽혔다. 세어지는 것이 사는 것이었다.
사료 · 4월 13일 마중 나가려다 홍 찰방 집에서 잠깐 이야기하는 사이에 울이 아직 배가 안 왔다고 전한 것, 흥백의 집에서 종 순화가 어머니의 부고를 알려 「뛰쳐나가 가슴을 치고 발을 굴렀다, 하늘의 해가 캄캄했다」, 해암에 달려가니 배가 와 있던 것 ― 난중일기 정유년 4월 13일(전서본) · 14일 홍 찰방·이 별좌가 곡하고 관을 짠 것과 「관은 본영에서 마련해 온 것이라 흠이 없다」, 15일 입관과 오종수의 「뼈가 가루가 되어도 잊기 어렵다」, 전경복이 상복을 지어 「슬프고 고마움을 어찌 말하겠는가」, 16일 영구를 본가로 옮기며 「마을을 바라보며 애통함이 찢어진다」, 빈소를 차리고 「부르짖어 울고 부르짖어 울었다, 다만 빨리 죽기를 기다릴 뿐이다」, 17일 금오 서리의 재촉, 19일 「영연에 곡하고 하직했다, 천지에 어찌 나 같은 일이 있는가, 일찍 죽는 것만 못하다」, 아들과 조카들이 천안까지 따라온 것 ― 난중일기 4월 14~19일 · 「나라에 충성을 다하려 했는데 죄가 이미 이르렀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려 했는데 어버이가 또한 돌아가셨다」 ― 이분, 이충무공행록 · 4월 27일 순천에서 원수가 군관을 보내 조문한 것과 정사준이 원균의 패망전도를 말한 것, 5월 4일 어머니 생신에 「닭이 울 때 일어나 앉아 눈물을 흘릴 뿐」, 5일 단오에 「하늘 끝에서 종군하며 장사도 못 지냈으니 무슨 죄인가」와 원유남이 「진중 장졸이 떠나고 배반해 형세가 헤아릴 수 없다」고 전한 것 ― 난중일기 4월 27일·5월 4~5일 · 배 위에서 손을 보지 못한 것, 관을 실은 사람을 묻지 않은 것, 면의 등, 죽는 것을 세 번 적지 않은 셈은 지어냈다. 어머니의 나이는 1515년생으로 센 것이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