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5,515자) · 1597년 4월 27일, 서울 의금부

공초

이순신 · 네오

1597년 4월 27일 (음력 3월 12일), 한양 의금부 이 무렵 이순신은 옥에 있어 일기를 쓰지 못했다. 12일 공초를 바쳤다. 처음 공이 잡혀갈 때 한양에 있는 수군 장수들의 친속이 공이 죄를 장수들에게 돌릴까 두려워 떨지 않는 이가 없었다. 공이 옥에서 대답할 때 다만 일의 처음과 끝을 차례대로 진술하고 조금도 옆으로 끌어대는 말이 없었다.

옥에는 종이가 없었다.

흙바닥에 거적 한 장을 깐 방이었다. 거적은 눅눅해서 앉으면 바지 무릎이 먼저 젖었고, 낮에도 어두워 벽 틈으로 들어오는 빛 한 줄이 흙벽을 타고 내려오는 것으로 시간을 짐작했다. 다섯 해 동안 붓을 놓은 날이 없었다. 병으로 뒤척이던 날에도 정사립을 불러 대신 적게 했는데, 여기서는 부를 사람조차 없었다.

바닥에는 먼저 갇혔던 사람들의 땀과 오줌 냄새가 배어 있었다. 밤이 되면 그 냄새 위로 찬 기운이 흙에서 올라왔다. 삼월 한양의 밤은 한산도의 밤보다 추웠다. 바다 위에서는 바람이 불어도 물이 품은 온기가 뱃바닥으로 올라왔는데, 흙벽 안의 추위는 옷을 지나 뼈로 곧장 들어왔다. 손가락이 자꾸 무언가를 쥐려고 오므라들었다. 붓대 굵기만큼 굽은 손을 펴 보면 빈손이었다.

이레째 되는 날 공초를 하라고 했다.

공초는 죄인이 제 입으로 진술하는 것이다. 묻는 사람이 묻고 죄인이 답하면 옆에서 옥의 서리가 받아 적었다. 서리의 붓이 벼루에 먹을 찍을 때마다 작게 긁히는 소리가 났다. 내 말이 남의 손을 거쳐 종이로 가고, 그 종이가 임금에게 가서 임금이 읽고 정한다. 다섯 해의 마지막 종이가 될 수도 있었다.

공초를 받는 방은 옥보다 밝았다. 창호지에 걸러진 빛이 서리의 책상 위에 뿌옇게 고여 있었고, 나는 그 빛이 끝나는 자리 마룻바닥에 꿇어앉았다. 무릎 아래 마루가 차가웠고, 옹이 하나가 정강이뼈를 눌렀다. 옥에서 젖은 바지가 마루에 닿자 금세 식었다.

*

묻는 사람이 물었다.

가토가 온다는 것을 언제 들었는가. 정월 스무하루 원수에게서 들었다. 원수가 무엇이라 했는가. 요시라의 약속을 따르라 했다. 따랐는가. 따르지 않았다. 왜 따르지 않았는가.

명이 있는 일은 하고 명이 없는 일은 안 하며 다섯 해를 살았다. 그런 사람이 명이 있는 일을 안 했으니 이 물음이 올 줄은 알고 있었다.

“왜의 말이었습니다.”

묻는 사람은 나를 보지 않고 서리의 종이 쪽으로 눈을 내린 채 다음 말을 했다.

“조정의 명이었다.”

“조정의 명이 왜의 말에서 나왔습니다. 바다 가운데서 배 한 척을 가려 가리킨다는 것은 될 일이 아닙니다. 가토의 배를 요시라가 어떻게 압니까? 안다면 고니시가 가르친 것이고, 고니시가 가르친 것은 우리를 그리로 부르는 것입니다. 부르는 데로 가면 부른 사람이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데로 배 백 척을 몰고 갈 수 없었습니다.”

한산도에서 원수에게 한 말을 그대로 했다. 그때 원수는 조정의 명이라고 두 번 말했는데, 오늘 묻는 사람은 한 번만 말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말하는 동안 목이 말랐다. 옥에서 물을 넉넉히 받지 못한 목은 긴 말을 할 때마다 갈라졌고,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나서 날짜를 댔다.

“가토는 정월 열닷새에 왔습니다. 원수가 오신 것이 스무하루입니다. 요시라가 정확히 안다던 날은 원수가 오시기 엿새 전이었습니다. 나갔어도 가토는 이미 성 안에 있었습니다. 성 안의 배를 바다에서 잡을 수 없습니다.”

묻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여 서리에게 적게 했다. 열닷새와 스무하루와 엿새가 붓끝을 따라 종이 위로 내려앉았다. 말은 흩어져도 날짜는 종이에 오래 남는다.

*

장수들을 묻지 않았다.

그때 어느 장수가 나가기를 꺼렸는가. 어느 장수가 요시라의 말을 믿자고 했는가. 묻는 사람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죄를 여럿에게 나누면 한 사람의 몫이 가벼워진다. 그는 나를 위해 묻고 있었다.

서리의 붓이 벼루 위에서 멈추었다. 방 안에서 먹 냄새만 났고, 누군가 이름을 부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창호지 너머로 참새 몇 마리가 지붕을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장수들은 내 명을 따랐습니다. 나가지 않은 것은 내가 정한 것입니다. 정하는 사람이 통제사입니다. 통제사가 나였습니다.”

이름을 대지 않았다. 이름을 대면 그 사람이 종이 안에 생기고, 종이 안에 생긴 사람은 잡혀 오고, 잡혀 온 사람은 또 다른 이름을 댄다. 김덕령의 옥이 그렇게 흘러갔다는 말을 여기 와서 들었다. 한현이 이름을 댔고, 그 이름이 옥으로 끌려와 죽었다.

묻는 사람은 더 묻지 않았다. 그가 소매에서 손을 꺼내 서리에게 다음 장으로 넘기라는 시늉을 했고, 종이 넘기는 소리가 방 안에서 유난히 크게 났다.

한양에 있는 장수들의 친속이 내가 죄를 떠넘길까 봐 떨었다는 것은 나중에 들었다. 처음과 끝을 차례대로 말하고 옆으로 끌어대는 말이 없어 사람들이 탄복했고, 얼굴을 한번 보고 싶어 한 사람도 있었다고 조카가 뒤에 적었다. 그 얼굴은 그때 거적 위에서 젖은 무릎을 세우고 있었다.

*

형신은 한 번이었다.

매를 치며 묻는 것을 한 번 겪었다. 며칠째였는지는 모른다. 아픈 날은 세지 않기로 했다.

형틀에 엎드리자 손목을 묶은 새끼줄이 살을 파고들었다. 나무판에서 오래된 피 냄새와 쇠 비린내가 올라왔고, 얼굴을 대고 있는 자리가 먼저 엎드렸던 사람들의 숨으로 번들거렸다.

물음은 같았다. 왜 나가지 않았는가. 매가 등에 떨어지는 소리가 방 안에서 둔하게 울렸고, 그 소리가 멎을 때마다 같은 물음이 왔다. 나는 매 사이에도 같은 답을 했다. 부르는 데로 가면 부른 사람이 기다립니다. 매 없이 한 답과 매 사이의 답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매가 답을 만든 것이 된다. 입안에 피 맛이 돌았지만 말은 한 자도 바꾸지 않았다.

끝나고 옥에 돌아와 누웠다. 옥졸 둘이 양쪽 겨드랑이를 끼고 끌었는데, 발끝이 문지방에 걸려 두 번 멈췄다. 흔들리지 않는 흙바닥에 등을 대자 다리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욱신거리는 자리마다 몸이 있었다. 어깨에 박혔던 탄환, 다리를 긁고 간 화살, 그리고 이번에는 매였다.

*

어사가 다녀갔다.

임금이 한산도(통영 한산면)의 일을 살피라고 어사를 내려보냈는데, 그 어사는 나를 함정에 넣으려 했다. 돌아가서 이렇게 아뢰었다. 가토가 바다를 건너올 때 섬에 걸려 이레 동안 움직이지 못했는데 이 아무개가 치지 못했습니다.

그날 경림군 김명원이 경연에 들어가 말했다. 왜적은 배에 익숙합니다. 섬에 걸려 이레라는 말은 거짓인 듯합니다. 임금이 답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옥에서 그 말을 전해 들었다. 밥그릇을 들이미는 옥졸이 낮은 목소리로 흘려 준 말이었고, 나는 식은 조밥을 씹으며 그 말을 들었다. 임금이 어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해서 옥문이 열리지는 않았다. 다만 매가 한 번에서 멈췄다. 그날 밤에는 등의 상처가 거적에 들러붙어, 돌아누울 때마다 마른 피가 떨어지며 살이 당겼다. 덜 죽는 것도 사는 것이라는 걸 나는 옥에서 배웠다.

그 어사가 뒤에 옥당에 들었을 때 동료 하나가 물었다고 한다. 섬에 걸려 이레라는 말은 어디서 들었는가, 나는 그때 호남을 순찰했는데 전혀 못 들었다. 어사의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돌았다고 했다.

*

이억기의 편지가 왔다.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었고, 늦지 않으려고 누구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그가 사람을 보내 옥으로 안부를 물었다. 편지를 들고 온 사람은 이억기가 울면서 보냈다고 전하고, 보내면서 한 말도 전했다. 수군은 오래지 않아 반드시 진다. 우리는 죽을 데를 모른다.

편지를 전한 사람은 말을 마치자 옥졸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나갔다. 그의 짚신 소리가 골목 돌길을 따라 멀어지는 동안 나는 편지를 쥔 손을 무릎 위에 올려 둔 채 움직이지 않았다.

편지는 두 번 접혀 있었다. 접힌 자리가 여러 사람의 품을 거치며 부드러워져 있었고, 종이에서 먼 길의 먼지 냄새와 함께 희미하게 바다 냄새가 났다. 한산도의 소금기가 한양까지 따라온 것 같았다.

옥은 좁아서 몸을 눕히면 발끝이 벽에 닿았다. 그 좁은 데에 그 말을 두었다. 이억기가 어디서 죽는지 나는 그해 여름에 알게 된다. 그때는 몰라서, 편지를 접어 품에 넣었다. 종이가 없는 옥에 종이 한 장이 생겼다.

북도의 토병 몇이 과거를 보러 한양에 와 있었다. 함경도 사람들이니 건원보(함경북도 경원)나 녹둔도(두만강 어귀, 지금은 러시아 땅) 근처에서 온 이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내가 갇힌 것을 듣고 분해서, 나를 풀어 북병사로 보내 달라는 상소를 올리려 했다. 다시 그 눈밭으로 데려가겠다는 것이었다. 눈밭이 옥보다 낫다는 것을 그들은 몸으로 알았다. 상소가 올라갔는지는 모른다.

*

밤에 옥에 앉았다.

벽 틈의 빛이 사라지고 순라의 발소리가 골목 끝으로 멀어졌다. 매 맞은 등이 거적에 닿을 때마다 화끈거려서, 벽에 어깨 한쪽만 기대고 모로 앉아 밤을 났다. 종이가 없어서 머릿속으로 날짜를 짚었다. 열닷새, 스무하루, 엿새, 이레. 그 수들이 지금쯤 임금의 책상 위에 있을 것이다. 다섯 해 동안 정하는 사람은 나였는데, 이제는 임금이 정한다. 처음부터 그랬다는 것을 옥에 와서야 몸으로 알았다.

옥 안의 어둠은 바다의 어둠과 달랐다. 바다의 밤에는 물이 뱃전을 치는 소리와 파수꾼의 기침 소리가 있었고, 멀리 다른 배의 불빛이 흔들리며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 주었다. 여기서는 벽이 어디서 끝나는지도 손을 뻗어 봐야 알았다. 손바닥에 닿은 흙벽은 차고 축축했고, 긁으면 손톱 밑으로 흙이 끼었다.

어머니를 생각했다. 여수 고음천(여수 시전동 웅천)의 집, 여든셋. 아들이 잡혀갔다는 말을 들으셨을 것이다. 세 해 전 떠나는 아들에게 잘 가라,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으라고 하신 분이 옥으로 끌려간 아들에게는 무슨 말을 하셨을지 모른다. 아무 말도 안 하셨을 것이다. 그분은 늘 그랬다.

품속의 편지가 가슴께에서 바스락거렸다.

사료 · 3월 12일 공초를 바친 것, 한양에 있는 수군 장수들의 친속이 죄가 자기들에게 돌아올까 떨었으나 공이 「일의 처음과 끝을 차례대로 진술하고 조금도 옆으로 끌어대는 말이 없어 대소가 탄복하고 얼굴을 알고 싶어 하는 이가 있었다」 ― 이분, 이충무공행록 · 어사가 「가토가 섬에 걸려 이레 동안 움직이지 못했는데 치지 못했다」고 아뢰자 김명원이 경연에서 「왜적은 배에 익숙하니 이레라는 말은 거짓인 듯하다」 했고 임금이 「내 생각도 그렇다」 한 것, 뒤에 그 어사가 옥당에서 동료에게 「어디서 들었느냐, 나는 호남을 순찰했는데 못 들었다」는 말을 듣고 부끄러워한 것 ― 같은 행록 · 이억기가 옥으로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묻고 「수군은 오래지 않아 반드시 진다, 우리는 죽을 데를 모른다」며 울며 보낸 것, 북도 토병들이 과거를 보러 왔다가 상소해 북병사로 풀어 달라 하려 한 것 ― 같은 행록 · 한 차례 형신을 겪은 것 ― 정탁의 신구차(「이미 한 차례 형신을 겪었는데 또 가하면 산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형신의 장면은 지어냈다 · 공초의 문답 내용은 행록에 없다. 여기 적은 문답은 행록의 요시라 대목과 원수와의 말을 옮겨 지어낸 것이다. 옥의 서리, 종이 없이 센 것, 어머니 생각도 지어냈다. 어머니의 나이 여든셋은 1515년생으로 센 것이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정유년 4월 1일 이전에는 일기가 없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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