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5,187자) · 1597년 4월, 한산도 · 격군 끝동

통제사 없는 진

이순신 · 네오

1597년 4월 (음력 3월), 한산도(통영 한산면) 이 무렵 이순신은 옥에 있었다. 조정이 이순신을 잡아다 문초하고 전라병사 원균으로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게 했다. 남도 백성들이 기댈 데가 없어서 짐을 꾸렸다.

끝동은 노 자리에서 그것을 들었다.

통제사가 한양의 옥으로 잡혀갔다는 말이 판자를 뚫고 내려왔다. 갑판 위에서 누가 말했고 노 자리마다 옮겨졌다. 옮기는 것이 격군의 일이고, 옮기면서 끝동은 그 말이 자기 것이 되는 것을 느꼈다. 다섯 해 전 옥포(거제 옥포동)로 가던 배에서 태산같이 무겁게 있으라는 말이 자기 것이 되던 것처럼.

노를 잡고 있었고 젓지 않았다. 진에 있는 날은 젓지 않고 잡고만 있는데, 잡은 노가 무거웠다. 삼월 바닷물이 아직 차서 노 구멍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손등이 시렸고, 노 손잡이는 다섯 해 동안 손때가 먹어 검게 번들거렸다. 다섯이 다 잡고 있는데도 무거웠다. 무거운 것이 노가 아니었다.

흙 손이 물었다.

“그러면 누가 정하나.”

“원균.”

“원균이 누군데.”

끝동이 답을 못 했다. 원균이 누구인지 끝동은 알았다. 뒤에 있던 사람, 배 셋으로 있던 사람, 어채인의 목을 노리던 사람, 스물다섯을 내보내고 일고여덟으로 가자던 사람, 뭍으로 갔던 사람. 그 사람이 정한다는 것을 흙 손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그 사람이 이 노 자리에 생기고, 생기면 안 된다. 아직은.

*

원균이 왔다.

충청병사가 통제사가 되어 뭍에서 배를 타고 왔다. 배가 포구에 닿는 것을 끝동은 노 구멍으로 보았다. 큰 배였고 사람이 많이 탔고 갑판 위에 붉은 것이 보였다. 통제사의 기였다. 다섯 해 동안 다른 사람 배에 있던 기가 그 배에 있었다. 뱃전에 늘어선 군관들의 갑옷이 새것이라 햇빛을 받아 번쩍였고, 거멓게 삭은 한산도 배들 사이에서 그 배만 새 칠 냄새가 났다.

운주당에 들어갔다고 했다. 들어가서 무엇을 했는지 노 자리에는 오지 않았고 대신 명령이 왔다. 배를 손보라, 노를 갈라, 군량을 세어 올려라. 명령은 누가 내리든 같은 말로 온다. 다른 것은 명령 뒤에 있는 것인데, 뒤에 무엇이 있는지 노 자리에서는 안 보인다. 사이에 판자가 있다.

병방이 내려왔다. 얼굴이 달랐는데 무엇이 다른지 끝동은 몰랐다. 병방이 말했다. 군량을 다시 센다. 지난번에 센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구천구백열네 석을 통제사가 두 번 헤아렸다고 끝동은 들었다. 두 번 헤아려 넘긴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세는 사람이 센 것을 안 세는 사람이 믿지 않았다. 그것이 첫 명령이었고, 끝동은 그것을 받아서 어디 둘 데가 없어 노 자리에 두었다. 노 자리는 좁다.

*

원균이 판자 밑으로 내려왔다.

통제사가 노 자리에 내려온 것은 처음이었다. 사다리가 그의 무게에 삐걱거렸다. 다섯 해 동안 앞의 통제사는 한 번도 안 내려오고 갑판에서 이름을 불렀고, 판자 밑은 병방의 데였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내려왔다. 몸이 커서 판자 밑에서 허리를 굽혔고, 굽힌 채로 노 자리를 하나씩 보았다. 보는 얼굴이 두 해 동안 뭍에 있던 뭍의 얼굴이었다. 판자 밑의 땀 냄새와 젖은 나무 냄새 속에 그 얼굴이 있었고,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죽신 밑창이 바닥에 고인 물을 밟아 철벅거렸다.

“저어 봐라.”

진에 있는 날인데 저으라고 했다. 다섯이 한 몸으로 저었고 박자는 끝동이 냈다. 하나, 둘. 노가 물을 밀었고, 배가 닻줄에 걸려 앞으로 못 가고 옆으로 조금 흔들렸다. 흔들리는 것을 원균이 보고 말했다.

“느리다.”

느리지 않았다. 다섯 해 저은 박자였는데, 느리다고 하면 느린 것이 된다. 끝동이 박자를 빨리하니 넷이 못 따라왔다. 노 손잡이가 손바닥 안에서 미끄러졌고, 어깨가 먼저 나가고 허리가 늦게 따라왔다. 흙 손이 놓쳤고 노가 헛돌았다. 헛도는 것을 원균이 보고 웃었다. 웃는 얼굴이 갑판으로 올라갔고 올라가는 등을 다섯이 보았다. 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자를 도로 다섯 해 박자로 늦추니 넷이 따라왔다. 따라오는 것을 원균은 못 보았다. 위에 있었고, 위에서는 판자가 있어서 안 보인다. 안 보이는 데서 다섯이 한 몸이 되었다. 한 몸이 되는 것은 위에서 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끝동은 그날 그것을 알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

병방이 다시 왔다.

군량을 다시 세었다고 했는데 얼마인지 말하지 않았다. 아마 같았을 것이다. 두 번 센 것은 세 번 세도 같은데, 같은 것을 다시 세게 한 사람이 위에 있었다. 같은 것을 다시 세는 동안 며칠이 갔다. 며칠은 배를 손보는 날이었고, 손보지 않고 셌다. 그동안 판자 틈으로 물이 스며 노 자리 바닥에 발목까지 고였고, 격군들은 번갈아 바가지로 물을 퍼냈다. 퍼낸 물은 노 구멍으로 버렸고, 버린 만큼 다시 들어왔다.

병방이 노 자리에 앉았다. 앉은 것도 처음이었다. 앉아서 작게 말했다.

“앞의 통제사가 언덕에서 물은 이름을 적었다.”

“적었습니까?”

“적었다. 종이에. 돌쇠. 그리고 순천 사람 하나, 이름 모름. 그렇게 적었다. 병사자 명부 끝에.”

끝동은 그 말을 받았다. 이름 모름. 자기가 잊은 이름이 이름 모름으로 종이에 올라 있었다. 잊은 것이 종이에 남았고, 남은 것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것도 남았다.

“그 종이는 어디 있습니까?”

“운주당에. 새 통제사가 보지 않는다. 볼 종이가 아니다. 격군 명부는 안 본다.”

안 본다. 그 말도 받았다. 안 보는 사람이 위에 있고, 이름을 올린 사람이 옥에 있고, 종이는 운주당에 있다. 셋이 세 데에 있는 것을 노 자리에서 끝동이 꼽았다. 세는 일은 장군이 하는데 장군이 옥에 있으니 격군이 셌다.

*

배설이 왔다.

두 해 전에 교서 앞에서 절하기를 꺼리던 경상우수사가 운주당에 자주 들었다. 원균과 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노 자리에는 안 왔고 대신 소문이 왔다. 소문은 판자를 뚫는다. 명령보다 잘 뚫는다. 밤이면 운주당 쪽에서 늦도록 불빛이 새어 나왔고, 바람이 그쪽에서 불면 술 냄새 같은 것이 물 위로 건너왔다.

배설이 원균에게 말했다고 했다. 부산으로 나가면 안 된다, 물길이 멀고 적이 많다. 원균이 듣지 않았다고 했다. 조정이 나가라고 하고, 나가지 않는 것이 앞사람의 죄였고 그 죄로 앞사람이 옥에 갔으니 나간다. 원균은 그렇게 셈한다고 소문이 말했다.

끝동은 그 셈을 받아서 속으로 굴려 보았다. 앞사람이 안 나간 것이 죄가 되어 잡혀갔고 뒷사람이 그 죄를 안 지려고 나간다. 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앞사람이 알아서 안 나갔고, 뒷사람은 몰라서 나간다. 아는 사람이 옥에 있고 모르는 사람이 운주당에 있다. 셈이 맞는지는 여름이 되어야 안다.

흙 손이 물었다.

“나가면 어떻게 되나.”

“모른다.”

“앞의 통제사는 알았다면서.”

“알았다.”

“그러면 우리도 알잖아.”

끝동이 흙 손을 보았다. 밭을 갈던 사람이 노를 잡은 지 세 해였고, 세 해면 안다. 흙 손의 손바닥은 이제 물집 자리가 굳어 누런 굳은살이 되었고, 손톱 밑에 끼었던 흙은 오래전에 빠지고 대신 송진이 검게 박혀 있었다. 앞의 통제사가 안 나간 까닭을 격군이 알고, 아는 격군이 나가는 배를 젓는다. 젓는 것이 격군의 일이다. 아는 것과 젓는 것은 다른 일이고, 다른 일을 같은 손이 한다.

*

밤에 순덕의 소금을 꺼냈다.

지난가을 것이 마른 종이에 싸여 아직 남아 있었다. 반을 흙 손에게 주었고 남은 반을 손바닥에 놓았다. 손바닥이 두꺼웠다. 다섯 해 저은 손이라 물집이 잡히던 손이 물집이 안 잡히는 손이 되어 있었다. 종이를 펴자 소금 알갱이가 습기를 먹어 서로 엉겨 있었고, 손가락으로 부수니 짠 냄새가 코끝에 올라왔다. 여수 바닷가 염전에서 순덕이 긁어 모으던 냄새였다.

소금을 먹지 않았다. 억만이가 소금을 저녁 대신 먹던 것을 순덕에게 들었는데, 그 아이는 지금 돌산도(여수 돌산읍)에 있다. 밭이 되어서 절반이 나라 몫이 되었고 그 절반이 구천구백열네 석 안에 있었다. 그 석을 지금 믿을 수 없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쌀로 지은 저녁이 나왔다. 쌀은 쌀이어서 먹었다.

노 구멍으로 언덕이 보일 자리였는데 밤이라 안 보였다. 안 보이는 데에 어영담이 있고 돌쇠가 있고 말 없는 사람이 있다. 그 언덕에 통제사가 서서 손가락을 접던 것을 끝동은 생각했다. 그날 언덕의 흙은 차고 비렸고, 삽자루가 손바닥에 끈적하게 붙었다. 병방 말로는 그 이름들이 운주당의 명부 끝에 있다고 했다. 운주당은 여기서 활 두 바탕 거리인데, 그 거리가 한양보다 멀었다. 그것을 생각하니 이상했고, 이상한 것을 그대로 두었다.

*

여름에 나간다고 했다.

나가는 날이 정해졌다는 소문이 왔는데 언제인지는 안 왔다. 여름, 그것만 왔다. 여름에 배 백이 넘게 사람 몇천이 부산으로 간다. 다섯 해 전 부산 앞에서 사백칠십을 두고 온 그 부산으로. 그때는 일흔넷이었고 정운이 앞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백이 넘고 앞에 누가 있는지 몰랐다. 사월로 넘어가자 노 구멍으로 드는 바람에서 비린내가 짙어졌고, 뱃바닥 밑에서 물이 부딪는 소리가 겨울보다 부드러워졌다.

끝동은 노를 잡고 젓지 않았다. 진에 있는 날은 젓지 않는다. 대신 소리 없이 박자를 냈다. 하나, 둘. 다섯이 그 박자를 받았다. 흙 손도 받았고 왜의 노를 젓던 손도 받았고 여수 손 둘도 받았다. 다섯의 숨이 한데 모였다가 한데 나갔고, 노 다섯 자루가 물 위에서 한 번에 조금씩 떨었다. 이 박자로 부산까지 간다. 가서 어떻게 되는지는 앞의 통제사가 알았다. 아는 사람이 옥에 있다.

순덕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어두운 노 자리에서 순덕의 얼굴을 떠올리려 하면 얼굴보다 먼저 소금 긁는 소리가 떠올랐다. 격군은 글을 모르고 모르는 글을 쓸 수 없어서 대신 반 남은 소금을 종이에 다시 싸서 품에 넣었다. 부산에 가지고 간다. 가지고 가서 돌아오면 돌려준다. 돌아오면.

사료 · 조정이 이순신을 잡아다 문초하고 전라병사 원균으로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게 한 것, 남도 백성이 짐을 꾸린 것 ― 조경남, 난중잡록 · 이순신이 원균에게 군량 구천구백열네 석 등을 세어 넘긴 것 ― 이분, 이충무공행록 · 배설이 경상우수사였던 것 ― 난중일기 을미년 2월 27일. 원균이 부산으로 나가기를 꺼리다 조정의 독촉으로 나간 것 ― 행록·징비록의 칠천량 대목 · 원균이 노 자리에 내려온 것, 병방이 명부 얘기를 한 것, 원균이 한산도에 온 날과 운주당에서 한 일, 군량을 다시 세라고 한 것, 배설이 원균에게 한 말, 노 자리의 소문과 대화, 끝동·흙 손·순덕·억만은 지어냈다 · 이 회차는 끝동의 3인칭이다. 이 무렵 이순신은 옥에 있어 일기가 없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50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통제사 없는 진 · 이순신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