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5,414자) · 1597년 4월 12일~19일, 한산도에서 서울까지

사또는 어디로 가십니까

이순신 · 네오

1597년 4월 12일 (음력 2월 26일), 한산도(통영 한산면)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 이 무렵 이순신은 일기를 쓰지 못했다. 2월 26일 길을 떠났다. 한길의 백성이 남녀노소 없이 몰려들어 울부짖었다. 사또는 어디로 가십니까. 우리는 이제부터 죽습니다.

금부의 사람이 왔다. 포구 쪽에서 낯선 배의 노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한산도 배의 노 소리와는 박자가 달랐다.

죄인을 잡아 한양으로 데려가는 의금부 도사, 흔히 금오랑이라 부르는 벼슬아치가 배를 타고 한산도에 닿았다. 세 해 반 전 권준을 잡아가던 사람과 벼슬은 같았지만 얼굴은 달랐고, 젊었다. 젊은 사람이 통제사를 잡으러 왔다. 선창에 내려서는 그의 발이 한 번 머뭇거렸다. 무엇을 하러 왔는지 그도 알았고, 알면서 왔다.

이순신은 넘겨줄 것을 이미 헤아려 두었다. 쌀 구천구백열네 석, 화약 사천 근, 총통 삼백 자루였다. 원균은 아직 오지 않았고, 그가 오기 전에 떠나게 되어 있었다. 떠나는 사람과 오는 사람이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둘 모두에게 예였다. 누가 정한 예인지는 모른다. 일이 그렇게 되었다.

배에서 내려 한산도의 땅을 밟았다. 네 해 동안 밟아 온 땅이었다. 운주당과 사정과 언덕이 있고, 그 언덕에 어영담과 이백열넷과 돌쇠와 말 없는 사람이 누워 있었다. 발밑에서 봄 흙이 부드럽게 꺼지며 젖은 풀 냄새를 올려 보냈다. 그 흙을 밟고 그는 다른 배로 건너갔다. 잡혀가는 사람이 타는 배였다.

*

배는 여수를 지났다. 이월 끝의 바닷바람은 아직 차서, 뱃전에 튄 물보라가 소매에 닿자마자 살갗을 에었다.

좌수영(여수)은 다섯 해 전 손바닥만 한 종이를 받은 곳이었다. 진해루의 젖은 마루와, 앞바다에 뜬 배 스물넷을 헤아리던 자리를 그는 배 위에서 지나며 보았다. 진해루는 그대로 서 있었다. 마루가 젖어 있는지는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

포구에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죽은 사람을 실은 배가 들어오는 날처럼 나와 서 있었는데, 이번에는 산 사람이 잡혀가는 배였다. 포구는 이번에도 먼저 알았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른다.

그 가운데 소금 굽는 여인이 있었다. 이순신은 그 여인을 몰랐고 알 까닭도 없었다. 격군의 누이로, 이백 명 입에 들어갈 소금을 굽는 여인이었다. 소금가마 연기에 그을린 치맛자락을 여민 채 그 여인이 포구에 서서 배를 보았다. 배가 지나가는 동안 여인은 손을 들지 않았다. 손을 들면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았고, 마지막이어서는 안 되었다. 포구에 선 사람들이 다 그것을 알았다.

여기서부터는 뭍에 올라 뭍길로 한양까지 간다. 배는 거기까지였다.

*

뭍길은 곧 한길로 이어졌다.

순천에서 구례로, 구례에서 남원으로 이어지는 전라도 길에 백성이 남녀노소 없이 나와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에워싸고 울부짖는 소리가 길을 막았다. 금부의 사람이 길을 열라고 소리쳤지만 길은 열리지 않았다. 길을 여는 것은 사람인데, 그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사또는 어디로 가십니까?”

그 말을 누가 했는지는 모른다. 여럿이 했다. 같은 말을 여럿이 하면 말이 커지고, 커진 말이 길 위를 덮었다.

“우리는 이제부터 죽습니다.”

그 말도 여럿의 입에서 나왔다. 통제사가 가면 배가 뜨지 않는다. 배가 뜨지 않으면 왜가 오고, 왜가 오면 죽는다. 백성이 그 셈을 했다. 셈하는 사람이 그 말고도 있었다. 예순도 이백도 아닌,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길 위에서 같은 셈을 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가는 곳이 한양의 옥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 말을 꺼내면 울음이 더 커질 것이고, 울음이 커지면 금부의 사람이 곤란해진다. 그는 대신 말에서 내려 걸었다. 사람들 사이를 걸어서 지나며 얼굴을 하나씩 보았다. 봄볕에 달궈진 흙길 냄새와 사람들의 땀 냄새, 누군가 등에 업은 아이의 젖내가 길 위에 함께 떠 있었다. 발끝에 채는 자갈 소리가 울음소리 사이로 이따금 들렸다.

한 사람이 그의 손을 잡았다. 늙은 여자였고, 손바닥이 가문 논바닥처럼 갈라져 거칠었다. 소금 굽는 손인지 밭 가는 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자가 손을 놓지 않아 이순신은 그 손을 마주 잡았다가 놓았다. 놓을 때 그의 손이 떨렸다. 잡은 것을 풀 때 떨리는 손이었다. 여자가 그 떨림을 보았는지는 모른다.

*

남원에서는 조경남이 그를 보았다.

남원 사람으로 서른 남짓이었다. 의병으로 나갔다가 돌아와 붓을 잡은 사람이 그날 광한루 앞길에 서 있었다. 통제사가 지나간다는 말에 수백이 길가로 나왔고 그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광한루 앞 연못에는 봄물이 불어 늘어진 버들가지 끝이 물낯에 닿아 있었다.

말 한 필이 지나갔고 말 위에 사람이 있었다. 갑옷이 아니라 평복이었고, 갓도 쓰지 않은 채 머리만 묶었다. 쉰셋이었다. 바다에서 다섯 해를 보내며 검게 탄 얼굴이 남원 사람들을 하나씩 보았다. 그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경남은 그 빈 얼굴이 가장 무서웠다. 우는 얼굴이면 따라 울면 되는데, 아무것도 없는 얼굴 앞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뒤에 그날을 적었다. 그 자신도 짐을 꾸리다가 손을 놓았다. 어디로 가겠는가. 갈 데가 없었다. 갈 데 없는 사람이 붓을 들어 그날을 남겼고, 그 종이가 사백 년 뒤까지 남으리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

충청도에서 종이가 왔다. 길가 주막 처마 밑에서 말을 쉬게 하던 참이었다.

역자가 길 위로 가져온 공문이었다. 금부의 사람이 받아 읽고는 이순신에게도 보여 주었다. 보여 주는 것이 그 사람이 차릴 수 있는 예였고, 이순신은 그 예를 받았다. 원균이 한산도에 들어가 운주당에 앉았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뿐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배가 누구의 것인지 종이 한 장이 정했다. 종이는 늘 그렇게 정한다.

그는 읽고 돌려주었다. 종이는 길바닥 먼지를 먹어 모서리가 누렇게 일어나 있었다. 돌려주는 손은 떨리지 않았다. 떨리는 것은 잡았던 것을 풀 때인데, 이제 그의 손에는 잡은 것이 없었다. 길 위에서 그것을 알았다.

*

일행은 한강을 건넜다. 나루에 닿기 전 강가 모래밭은 젖어 있었고, 말굽이 빠질 때마다 질척한 소리가 났다.

다섯 해 전 어가가 비를 맞으며 건넌 강은 임진강이었고, 류성룡도 그 비를 함께 맞았다. 이번에 건너는 것은 한양으로 들어가는 한강이었다. 뭍길을 오다가 마지막에 노 둘에 사공 하나인 나룻배를 탔다. 강바람에 물비린내가 실려 왔는데, 바다의 짠내와 달리 들큰하고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순신은 사공의 손을 보았다. 격군의 손이었다. 바다의 격군과 강의 사공은 손이 같았다.

강 건너에 한양이 있었다. 다섯 해 전에 불탄 도성에 집이 다시 들어섰지만 다 서지는 못했다. 군데군데 빈 터가 보였고, 빈 터에는 풀이 자라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자리에서는 풀이 산다.

건천동(서울 중구 인현동)이 어디쯤인지 그는 강 위에서 가늠해 보았다. 마른 내와 돌밭, 넷을 이끌고 여덟 앞에 서던 곳이었다. 강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을 가늠했다. 가늠은 셈과 달라서, 오랜만에 그는 무엇도 세지 않고 가늠만 했다.

류성룡이 이 도성에 있었다. 영의정인 그가 자기가 잡혀 온다는 것을 아는지 그는 몰랐다. 알 것이다. 영의정은 다 안다. 알고서 무엇을 할지는 몰랐고, 아마 하지 못할 것이었다. 김덕령을 구하지 못했다는 말을 그는 나중에 옥에서 들었다. 강 위에서는 아직 몰랐다. 모르는 채로 건넜다.

*

남도 백성이 한산도를 보장으로 삼고 이순신을 간성으로 믿었다가 그가 파면되었음을 듣고는 사람들이 기댈 데가 없어서 짐을 꾸렸다.

남원 사람 조경남이 뒤에 난중잡록에 남긴 말이다. 짐을 꾸린 사람은 떠난다. 다섯 해 전 어가가 도성을 버릴 때 백성이 짐을 꾸렸고, 이번에는 통제사가 잡혀갈 때 짐을 꾸렸다. 임금이 떠날 때와 장수가 떠날 때 백성이 같은 짐을 꾼다는 것을 조경남은 종이에 남겼다.

짐 꾸리는 모습을 이순신은 보지 못했다. 그가 본 것은 길 위의 울음뿐이었고, 울던 사람들은 집에 돌아가 짐을 꾸렸다. 그는 그것을 보지 못한 채 북으로 갔다. 북으로 갈수록 길가의 백성이 줄었다. 전라도를 벗어나자 줄었고, 충청도에서는 몇이 있었고, 경기도에서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걸었다. 그 길이 가장 길었다.

*

3월 초나흘 저녁에 원문에 들어갔다. 해가 인왕산 너머로 넘어가며 도성의 기와지붕들이 차례로 잿빛으로 식어 갔다.

의금부의 옥은 문이 둥글어서 원문이라 불렀다. 옥에는 저녁에 드는 것이 예였다. 낮에 들면 보는 눈이 많다.

누가 말했다. 임금의 노여움이 지극하고 조정의 논의가 무겁다. 일이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어찌하겠는가.

이순신이 천천히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다. 죽어야 하면 죽는다.”

열 해 전 녹둔도(두만강 어귀, 지금은 러시아 땅)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가라던 선거이에게 한 말이었다. 그 말을 옥문 앞에서 다시 했다. 같은 말을 두 번 하면 닳기 마련인데 이 말은 닳지 않았다. 열 해 사이에 굳었고, 굳은 말은 닳지 않는다.

원문이 닫혔다.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나무가 나무를 치는 소리는 뱃전이 뱃전에 부딪는 소리와 달랐다. 뭍의 소리가 등 뒤에서 났고 앞에는 어둠이 있었다. 바닥의 냉기가 무릎을 타고 올라왔고, 곰팡내와 오래 묵은 지린내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어둠 속에 앉으니 다리가 없는 것 같았다. 배 위에서는 다리가 있었다. 흔들리는 데서는 다리가 있고 흔들리지 않는 데서는 없다는 것을 그는 옥에서 처음 알았다.

어둠 속에서 그는 헤아렸다. 한산도에 떠 있는 백 척 넘는 배가 지금 누구의 것인지. 원균의 것이었다. 원균이 그 배를 하나하나 세어 볼지. 세지 않을 것이다. 세지 않는 사람이 백 척 넘는 배를 쥐게 되었다. 옥의 어둠보다 그 생각이 더 어두웠다.

사료 · 2월 26일 길을 떠나니 「한길의 백성이 남녀노소 없이 몰려들어 울부짖으며 사또는 어디로 가십니까, 우리는 이제부터 죽습니다」 한 것, 3월 4일 저녁 원문에 들어간 것, 「임금의 노여움이 지극하고 조론이 무거우니 일이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는 말에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다, 죽어야 하면 죽는다」고 천천히 답한 것 ― 이분, 이충무공행록 · 「남도 백성이 한산도를 보장으로 삼고 이순신을 간성으로 믿었다가 그가 파면되었음을 듣고는 기댈 데가 없어 짐을 꾸렸다」 ― 조경남, 난중잡록 · 길 위에서 원균이 한산도에 들어갔다는 종이를 받았다는 것, 조경남이 남원에서 보았다는 것, 한강의 나룻배와 사공, 강에서 건천동을 가늠한 것, 원균이 통제사를 겸하게 되고 이순신이 떠날 때 둘이 만나지 않았다는 것, 여수 포구의 소금 굽는 여인, 늙은 여자의 손, 옥 안에서 배를 센 것은 지어냈다. 통제사를 잡으러 온 금부도사가 누구였는지는 사료에 없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3인칭이고 남원의 장면은 조경남의 3인칭이다. 조경남의 나이는 1570년생으로 센 것이다. 정유년 정월부터 3월까지 일기가 없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2월 26일은 양력 4월 12일, 3월 4일은 양력 4월 19일이다

49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