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5,503자) · 1597년 3월, 한산도
요시라
이순신 · 네오
1597년 3월 8일 (음력 1월 21일), 한산도(통영 한산면) 이 무렵 이순신은 일기를 쓰지 못했다. 정유년 정월 21일 권 원수가 한산도 진에 이르러 공에게 말했다. 청적이 머지않아 다시 올 것이니 수군은 마땅히 요시라의 약속을 따라 삼가 기회를 잃지 말라.
권율이 배를 타고 왔다.
뭍의 군사를 다 맡은 도원수가 뭍에서 배를 타고 한산도에 왔다. 세 해 반 동안 원수가 진에 온 것은 처음이었고, 종이로 할 수 없는 말을 하러 왔다는 것을 이순신은 배가 닿기 전부터 짐작했다. 종이로 할 수 있으면 종이로 하고, 몸이 오는 것은 종이가 못 하는 것이 있어서다. 정월 바닷바람이 선창의 얼음 낀 말뚝을 때렸고, 원수는 배에서 내리면서 한 번 비틀했다가 바로 섰다. 뭍 사람의 다리였다.
운주당에 둘이 앉았다. 화로에 숯이 벌겋게 담겨 있었는데도 문풍지가 떨 때마다 찬 기운이 방바닥을 기어 들어왔고, 원수는 털 배자를 벗지 않은 채 앉았다. 뭍에서 오래 말을 탄 사람의 몸에서 말 냄새와 눅은 가죽 냄새가 났고, 그 냄새가 화로의 숯 냄새와 섞였다. 원수가 말했다.
“청적이 머지않아 다시 온다. 수군은 요시라의 약속을 따르라. 삼가 기회를 잃지 말라.”
요시라, 그 이름을 이순신은 알았다. 고니시의 사람이고 경상우병사 김응서의 진을 드나드는 왜였다. 지난겨울에 그 사람이 김응서를 통해 원수에게 말을 넣었다. 고니시와 가토가 사이가 나빠 고니시가 가토를 죽이고 싶어 하는데, 가토가 지금 일본에 있다가 머지않아 다시 오니 내가 오는 날을 정확히 알아 가토의 배를 가려 가리키겠다. 조선이 통제사에게 수군을 거느리고 바다에서 맞게 하면 백 번 이긴 위세로 못 잡을 리 없고, 조선의 원수를 갚고 고니시의 마음도 시원하다. 요시라의 얼굴을 이순신은 본 적이 없었다. 본 적 없는 사람의 말이 종이에 실려 한양을 한 바퀴 돌아 이 방까지 왔고, 밖에서는 군졸들이 얼음 깬 물을 길어 나르는 두레박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충신인 척하며 간곡하게 권했다고 했다. 조정이 듣고 가토의 머리를 얻을 수 있다고 여겨서 명을 내렸다. 요시라의 계책을 그대로 따르라.
이순신은 그것이 계책에 빠지는 길인 줄 알았다. 종이 사이에서 네 해를 산 사람이 쓰는 종이가 어떤 종이인지 알았는데도 감히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했다. 조정이 원균을 믿고 있었고, 원균이 뭍에서 쓴 종이가 조정에 쌓여 있었다. 수군이 싸우지 않는다. 그 종이 위에 요시라의 종이가 얹혔고 두 종이가 같은 말을 했다. 나가라.
*
원수에게 말했다.
“왜의 말입니다.”
“조정의 명이다.”
“왜의 말을 조정이 명으로 만든 것입니다. 바다 가운데서 배 한 척을 가려 가리킨다는 것은 될 일이 아닙니다. 가토의 배가 어느 배인지 요시라가 어떻게 압니까. 안다면 그것은 고니시가 가르쳐 준 것이고, 고니시가 가르쳐 주는 것은 우리를 그리로 부르는 것입니다. 부르는 데로 가면 부른 사람이 기다립니다.”
원수가 오래 말이 없었다. 화로의 숯이 내려앉는 소리가 두 번 났고, 원수는 그동안 무릎 위의 손을 폈다 쥐었다 했다. 그도 알면서 왔다. 온 것이 조정의 명이었고, 명을 전하는 사람은 명을 정하지 않는다.
“조정의 명이다.”
같은 말을 두 번 했다. 두 번 하면 그 말이 무거워진다. 원수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고, 두 번째에는 처음보다 조금 낮았다. 그 무거워진 말을 이순신이 받았는데 어디 둘 데가 없었다. 세 해 반 동안 명이 있는 일은 했고 명이 없는 일은 안 했는데, 명이 있는데 안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면 배가 없어지고, 배가 없어지면 명이고 무엇이고 없다.
원수가 뭍으로 돌아갔다. 문을 나설 때 그는 한 번 돌아보려다 말았고, 털 배자 자락이 문지방에 걸렸다가 풀렸다. 돌아가는 배를 뱃전에서 보았다. 돛이 바람을 받아 한쪽으로 눕고, 흰 물살이 배 꼬리에서 길게 풀려 나가다가 잿빛 물에 묻혀 사라질 때까지 이순신은 난간을 잡고 서 있었다. 난간의 나무가 얼어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하루 뒤에 웅천(창원 진해구 웅천동)에서 보고가 왔다.
*
가토가 왔다.
정월 열닷새에 장문포(거제 장목면)에 닿았다. 원수가 온 것이 스물하루였으니 원수가 오기 엿새 전에 가토는 이미 와 있었다. 요시라가 정확히 안다던 날은 지난 날이었고, 요시라가 가리키겠다던 배는 이미 성 안에 있었다. 종이가 몸보다 늦었고 몸이 종이보다 늦었다. 다 늦었다. 늦은 것을 누구 탓으로 하는가. 웅천에서 온 보고는 바닷물에 젖은 종이였다. 가장자리의 먹이 번져 흐려 있었는데 가운데 날짜만은 또렷했고, 이순신은 그 날짜를 손가락으로 한 번 짚고 종이를 접었다.
조정이 정했다. 이순신이 잡아 치지 못했다는 것이 조정의 답이었다. 대간의 논의가 크게 일어났고, 한양에서 내려오는 파발마다 말이 더 거칠어졌다. 적을 놓아준 죄, 종적죄로 다스리라. 잡아다 국문하라는 명이 내렸다.
그 명이 오기 전에 이순신은 배를 거느리고 가덕(부산 강서구 가덕도) 바다에 나가 있었다. 겨울 바다는 물빛이 검고 무거워서 노가 들어갈 때마다 격군들의 어깨가 한 번씩 더 굽었고, 뱃전을 넘은 물보라가 갑판에서 금세 살얼음이 되어 발밑이 미끄러웠다. 나가지 않은 사람이라고 조정이 말하는 동안 나가 있었고, 나가 있다가 잡으라는 명을 들었다. 바다 위에서 자기를 잡으라는 종이를 들었다. 읽는 동안 물보라가 두 번 얼굴을 적셨는데 그는 얼굴을 닦지 않았다. 다 듣고 나서 뱃머리를 본진 쪽으로 돌리라고 했고, 그 목소리가 평소와 같아서 곁의 군관이 오히려 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본진으로 돌아왔다. 선창에 닿았을 때 해는 이미 졌고, 횃불 아래 격군들이 언 손을 겨드랑이에 끼운 채 줄을 받았다. 돌아와서 셌다.
*
진중의 것을 다 세었다.
원균에게 넘기려고 센 것이다. 뭍으로 갔던 사람이 통제사가 되어 배로 돌아온다. 그것도 조정이 정했고, 이순신은 그것을 받아 넘길 것을 헤아렸다.
군량 쌀 구천구백열네 석, 바깥에 있는 곡식은 넣지 않은 수였다. 화약 사천 근, 총통 삼백 자루, 배마다 나누어 실은 것은 뺀 수였다. 그 밖의 물건도 그만큼이었다.
구천구백열네 석.
그 수를 두 번 헤아렸고 두 번 다 같았다. 세 해 반 전 겨울에 이백열넷이 굶어 죽고 옷 없는 사람이 거북이처럼 움츠렸는데, 그 겨울에서 여기까지 왔다. 돌산도(여수 돌산읍)의 절반과 둔전과 소금과 왜선에서 꺼낸 쌀을 다 합쳐 구천구백열네 석이 되었고, 되는 데 세 해 반이 걸렸다. 그것을 하루에 넘긴다. 쌀 한 섬 한 섬에 누가 허리를 굽혔는지 다 알지는 못했지만, 돌산도 둔전에서 모를 내던 사람들이 정강이까지 진흙에 빠져 있던 것은 보았다. 그 진흙 냄새가 이 창고 안에 있었다.
창고 문짝은 소금기에 삭아 경첩이 뻑뻑했고, 열 때마다 끼익 하는 소리가 길게 났다. 창고는 바닷가 비탈에 붙여 지은 것이라 바닥에 거적을 두 겹 깔았는데도 습기가 올라와 아래쪽 섬이 눅눅했다. 이순신은 섬 하나에 손을 넣어 쌀을 한 줌 쥐었다가 놓았고, 낱알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며 서걱거렸다. 세면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는 것이 말이었고 군관이 붓으로 옮겼다. 창고 문을 열 때마다 묵은 쌀 냄새와 화약의 매운 냄새가 번갈아 나왔고, 옮겨진 것이 종이가 되어 원균에게 간다. 원균은 그 종이를 읽고 아무 말도 안 할 것이다. 받는 사람은 아무 말도 안 한다.
*
원균이 왔다는 말이 뒤에 왔다.
그 말이 왔을 때 이순신은 한양으로 끌려가는 길 위에 있었다. 이월의 들판은 아직 언 채였고, 언 논바닥에 내려앉았던 까마귀들이 행렬 소리에 한꺼번에 떠올랐다. 이순신이 떠난 뒤에 충청병사가 통제사가 되어 뭍에서 배로 한산도에 들어왔다. 들어와서 운주당에 앉아 무엇을 했는지는 뒤에 사람들이 전했는데, 그것을 여기 미리 두지 않는다. 미리 두면 그 사람이 이미 진 사람이 된다. 아직 지지 않았고 지지 않은 사람으로 두어야 한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예다.
구천구백열네 석이 그에게 갔다. 그가 그것을 세었는지 남은 말이 없고, 말이 없는 것은 안 센 것이다. 안 센 사람이 백이 넘는 배를 가졌다. 그 말을 이순신은 뒤에 옥에서 했다. 미리 두지 않기로 했는데 이 한 줄은 둔다. 이 한 줄이 그 봄의 전부였다.
*
체찰사 이원익이 영남에서 그 소식을 듣고 급히 아뢰었다.
왜적이 두려워하는 것은 수군이니 이 아무개를 갈면 안 되고 원균을 보내면 안 된다. 조정이 듣지 않았다. 이원익이 탄식했다. 나라 일을 다시 어찌할 수 없다.
그 말을 이순신은 뒤에 들었다. 들었을 때 배가 없었고, 배가 없는 데서 들은 배 얘기였다. 그 사람이 자기를 위해 말한 것이 아니라 배를 위해 말했다. 배를 아는 사람이 뭍에 하나 있었는데 하나가 조정을 못 이겼다. 하나는 못 이긴다. 그것을 그는 발포(고흥 도화면)에서 배웠고 녹둔도(두만강 어귀, 지금은 러시아 땅)에서 배웠고, 이번에 세 번째로 배웠다.
*
요시라는 김해로 돌아갔다.
김응서의 진을 나오면서 조선이 준 옷과 관을 다 벗어 땅에 던지고 갔다. 겨울 땅은 얼어서 옷이 떨어져도 흙이 묻지 않았고, 비단 도포가 언 흙 위에 구겨진 채 바람에 한쪽 소매만 들썩였다. 조선 옷이 조선 땅에 떨어졌고 떨어진 것을 김응서의 군사가 주웠는데 어디 두었는지 모른다. 김해 쪽으로 난 길은 얼어 있어서, 그 길을 걸어간 사람의 발자국도 얕게밖에 찍히지 않았다. 그 옷이 요시라가 남긴 전부였다. 그리고 종이가 있었고, 종이는 조정에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옷을 던졌는지 남은 말이 없다. 왜의 일기는 여기 없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있는 것은 옷과 종이였다. 옷은 땅에 있고 종이는 조정에 있고 배는 한산도에 있고 통제사는 한양으로 간다. 넷이 네 데에 있었고, 그중 셋을 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셌다. 마지막인 줄 그때는 몰랐다.
사료 · 병신년 겨울 고니시가 요시라를 시켜 김응서를 통해 「고니시와 가토가 사이가 나빠 가토를 죽이려 하니 오는 날을 알아 배를 가리키겠다, 통제사가 바다에서 맞으면 못 잡을 리 없다」고 반간계를 쓴 것, 조정이 가토의 머리를 얻을 수 있다고 여겨 요시라의 계책을 따르라 한 것, 정유년 정월 21일 권율이 한산도에 와서 「수군은 요시라의 약속을 따라 기회를 잃지 말라」 한 것, 「조정이 원균을 믿고 헐뜯음이 그치지 않아 공이 속은 줄 알면서도 감히 앞뒤로 움직이지 못한」 것, 원수가 뭍으로 돌아간 이튿날 「정월 15일 가토가 장문포에 닿았다」는 웅천의 보고, 대간이 적을 놓아준 죄로 잡아 국문하라 한 것, 가덕 바다에서 명을 듣고 돌아와 「군량 쌀 구천구백열네 석, 화약 사천 근, 총통 삼백 자루」를 세어 원균에게 넘긴 것, 체찰사 이원익이 「이 아무개를 갈면 안 되고 원균을 보내면 안 된다」 했으나 조정이 듣지 않아 「나라 일을 다시 어찌할 수 없다」고 탄식한 것 ― 이분, 이충무공행록 · 요시라가 김응서의 진을 나오며 조선이 준 의관을 벗어 땅에 던지고 간 것 ― 난중잡록. 잡록은 이 일을 뒷날의 것으로 적는다. 여기서는 앞당겨 두었다 · 원수와의 대화, 세는 장면, 옷을 주운 군사, 원균이 온 뒤의 한 줄은 지어냈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3인칭이다. 정유년 정월부터 3월까지 일기가 없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