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5,654자) · 1595년 겨울 한산도 · 1587년 두만강 어귀

녹둔도

이순신 · 네오

1587년 (선조 20년) 가을, 두만강 어귀 녹둔도(두만강 어귀, 지금은 러시아 땅) 정해년 가을에 녹둔도 둔전의 소임을 겸했다. 섬이 외딴 데 있고 지키는 군사가 적은 것을 걱정하여 병사 이일에게 여러 번 보고하여 군사를 더해 달라고 청했으나 이일이 따르지 않았다. 8월에 적이 과연 군사를 일으켜 공의 목책을 에워쌌다.

안개였다.

두만강 어귀의 가을 안개는 아침에 강에서 올라와 섬을 덮고, 덮이면 지척이 안 보인다. 안 보이는 데서 벼를 벤다. 벨 때가 되어서 군사가 갈아 먹는 밭인 둔전의 벼를 베러 목책 안 군사가 다 나가고, 안에 열 남짓 남았다. 멀리 논 쪽에서 낫이 벼 포기를 끊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렸는데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소리만 안개 속을 떠다니다 끊겼다.

조산(함경북도 경흥 조산)만호 이순신은 목책 위에 서 있었다. 마흔셋이었고, 젖은 통나무 목책에서 올라오는 찬 나무 냄새와 강 냄새가 안개와 함께 갑옷 속으로 스몄다. 사복시 주부 열엿새 만에 조산으로 왔고 조산에 온 지 두 해째에 녹둔도 둔전을 겸했다. 겸했다는 것은 두 데를 지킨다는 것인데 두 데를 지킬 군사가 없었다. 병사 이일에게 여러 번 글을 보냈다. 섬이 외딴 데 있고 지키는 군사가 적으니 군사를 더해 달라. 이일이 따르지 않았다. 안 따른 것을 나는 종이로 가지고 있었다. 보낸 글의 초본이었고, 그것이 뒤에 쓸 데가 생겼다. 그때는 몰랐다.

안개 속에서 말발굽 소리가 났다. 오랑캐 기병이 사방에서 왔고, 안개가 소리를 감추었다가 한꺼번에 놓았다. 목책 기둥에 손을 얹고 있었는데 땅이 울리는 것이 나무를 타고 손바닥까지 올라왔다.

*

문을 닫았다.

빗장 나무가 젖어 불어 있어서 둘이 어깨로 밀어 넣어야 했다. 목책 문을 닫으면 안에 열 남짓이고 밖에 기병이다. 열 남짓으로 기병을 막는 것은 막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버는 일이다. 벼 베러 나간 군사가 돌아올 때까지, 돌아올 수 있으면.

활을 잡았다. 안개에 젖은 시위가 손가락에 차게 감겼고, 촉이 버들잎 모양인 가는 화살 유엽전을 목책 안에서 잇달아 쏘았다. 안개 속에 말이 보였다가 안 보였고, 보일 때 쏘았다. 말 머리가 흰 김 속에서 불쑥 나왔다가 사라지는 사이가 숨 한 번이 안 되었고, 그 사이에 시위를 놓았다. 맞은 자가 말에서 떨어졌다. 수십이었고, 그때도 세는 것은 했다. 수십이 떨어지자 오랑캐가 놀라 물러났다.

물러나는 것을 보고 문을 열었다.

혼자 말을 탔고 이운룡이 뒤에 붙었다. 열 남짓 가운데 둘이 말을 타고 나가서 크게 소리치며 쫓았다. 말굽 밑에서 벤 벼 그루터기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고, 안개 속으로 들어가자 앞서 가는 오랑캐의 말 엉덩이와 흙탕물 튀는 것만 보였다. 오랑캐가 크게 달아나면서 잡아간 것을 다 버렸다. 벼 베러 나갔다가 잡혀가던 군사 예순 남짓을 되찾았다. 징비록은 다 되찾았다고 하고 행록은 예순여 명이라고 한다. 김개동이 그 안에 있었고 이언세가 그 안에 있었다. 왼쪽 귀 없는 왜가 그 오랑캐 사이에 있었다는 것을 나는 다섯 해 뒤에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왼쪽 다리가 뜨거웠다.

오랑캐의 화살이 왼쪽 허벅지에 박혀 있었다. 언제 맞았는지 몰랐고 쫓을 때였을 것이다. 뜨거운 것만 알았다. 뒤에 어깨에 탄환을 맞을 때와 같은 뜨거움이었는데, 그때는 그것이 처음이었다. 바지가 피에 젖어 허벅지에 들러붙었고, 말 등이 오르내릴 때마다 박힌 살대가 안장에 닿아 속에서 무엇이 긁혔다.

남이 안 보는 데서 몰래 뽑았다. 보이면 군사가 놀란다. 열 남짓 가운데 만호가 다치면 남은 사람이 흔들리고, 흔들리면 안 되니까 몰래 뽑았다. 뽑을 때 손이 안 떨렸고 뽑고 나서 떨렸다. 당길 때 안 떨리고 풀 때 떨리는 손이 화살을 뽑을 때도 그랬다. 김개동이 그것을 보았다는 것을 나는 뒤에 들었다. 본 것을 그가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은 것이 그의 예였다.

*

되찾은 예순 남짓을 목책 안에 들였다.

들이고 두 번 셌다. 해가 기울어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고, 목책 그림자가 마당에 길게 누웠다. 그때도 두 번이었고 둘째 번이 첫째 번과 같았다. 목책 안 마당에 예순이 쪼그려 앉자 젖은 옷에서 김이 올랐고, 누군가 손목에 감긴 오랑캐의 가죽끈을 이로 물어뜯고 있었다. 같은 것이 다행이었는데, 다행이라는 말을 그때는 몰랐다. 그냥 같았다.

*

이일이 나를 죽이려 했다.

군사를 안 보내 준 병사는 목책이 뚫린 것이 자기 죄가 될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를 죽여 입을 막으려 했다. 죽은 사람은 초본을 못 꺼낸다. 그가 나를 잡아 형을 가하려 했다.

들어가기 전에 병사의 군관 선거이가 손을 잡았다. 나에게 후한 사람이었고, 눈물을 흘리며 술을 마시고 들어가라고 했다. 술을 마시면 덜 아프다. 그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었다. 그의 손이 떨려서 사발 안의 술이 가장자리를 넘쳐 내 손등에 흘렀고, 막걸리의 시큼한 냄새가 한동안 손에서 가시지 않았다.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다. 술은 무엇 하러 마시는가?”

“술은 안 마셔도 물은 마시게.”

“목마르지 않다. 물은 무엇 하러 마시는가?”

마시지 않고 들어갔다. 그 말이 뒤에 사람들 입에 남았다. 그날의 나는 목이 마르지 않았다. 마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마르다고 하면 안 되었고, 안 되는 것을 안 했다.

이일이 패군의 정황을 적으라고 했다. 진 군사의 장수가 적는 글을 적으면 패장이 된다. 거절했다.

“나는 군사가 적어 여러 번 군사를 더해 달라고 청했는데 병사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 글의 초본이 여기 있다. 조정이 이 뜻을 알면 죄가 내게 있지 않다. 그리고 나는 힘써 싸워 적을 물리치고 잡혀간 사람을 쫓아 되찾았다. 그것을 패군으로 논하는 것이 옳은가?”

낯빛을 바꾸지 않았다. 이일이 한참 답하지 않았다. 초본이 있으면 죄가 어디 있는지 조정이 안다. 그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고, 다만 가두었다.

가두는 것은 죽이는 것이 아니다. 발포(고흥 도화면)에서 배운 것을 녹둔도에서 썼다. 네 포의 결원 초본을 먼저 얻어 두어 장계를 되돌린 것과 같은데, 그때는 남의 초본이었고 이번에는 내 초본이었다. 겨눈 것이지 쏜 것이 아니었다. 쏘았으면 맞았을 것이다.

갇힌 데는 병영 뒤 창고였고, 흙바닥에서 곡식 썩은 냄새와 쥐 오줌 냄새가 올라왔다. 허벅지의 상처가 밤이 되자 욱신거리며 열을 냈는데, 싸맨 천을 풀어 보지 않았다. 풀면 다시 감을 천이 없었다.

*

조정에 알려졌다.

임금이 말했다. 이 아무개는 패군한 무리가 아니다. 백의로 종군해 공을 세우게 하라.

백의종군.

벼슬 없는 흰 옷으로 군사를 따른다. 벼슬은 없고 몸은 있으니 몸으로 공을 세우고, 세우면 옷을 돌려준다. 조산만호가 마흔셋에 흰 옷이 되었다. 갑옷을 벗을 때 가죽끈이 허벅지의 상처를 스쳐 이를 물었고, 벗은 갑옷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풀을 먹이지 않은 흰 무명은 몸에 닿는 데마다 까슬했다.

그해 겨울에 공이 있어 용서받았다. 무슨 공인지는 전하지 않는다. 오랑캐를 흰 옷으로 쳤을 것인데, 공이 있었다는 말만 남았으니 거기까지만 말한다.

흰 옷을 입고 두만강의 겨울을 났다. 흰 무명 한 겹은 바람을 막지 못해서 속에 짚을 넣어 입었고, 아침마다 소매 끝이 입김에 얼어 뻣뻣했다. 발밑에서 언 강이 밤마다 갈라지는 소리를 냈고, 그 소리가 목책 안까지 왔다. 언 강과 눈밭, 네 해 전에 울지내를 꾀어냈던 그 눈밭이었다. 그때는 권관이었고 이번에는 흰 옷이었다. 같은 눈밭에 다른 옷으로 섰는데, 옷이 달라도 눈은 같다. 눈은 옷을 안 본다.

*

이듬해 윤유월에 집으로 돌아갔다.

아산(충남 아산), 어머니가 계신 데였다. 흰 옷이 벗겨지고 벼슬은 없었고, 벼슬 없는 사람이 집에 있었다. 그때 조정이 무장 가운데 차례를 뛰어넘어 쓸 만한 사람을 천거하게 했는데 내가 둘째였다. 그 수를 뒤에 들었는데 서용의 명이 안 내려 벼슬을 못 받았다. 종이에 이름이 오르는 것과 자리가 나는 것은 다른 일이었고, 그 사이에서 한 해를 집에 있었다.

집에 있는 동안 마당에서 활을 쏘았다. 여름 마당은 한낮이면 흙이 달아서 맨발로 서 있기 어려웠고, 과녁 뒤 감나무에서 매미가 쉬지 않고 울었다. 어머니가 툇마루에서 보셨고, 보시면서 아무 말도 안 하셨다. 아무 말도 안 하시는 것이 어머니의 예였고 그 예를 나는 받으면서 쏘았다. 몇 대가 맞았는지 적지 않았다. 적을 종이가 없었다. 흰 옷을 벗은 사람의 일기는 없다.

*

한산도(통영 한산면)의 밤이었다.

세 해째 겨울에 나는 그 흰 옷을 생각했다. 열 해 전 옷이었고, 그 옷을 다시 입게 될 것을 그 밤에 몰랐다. 몰랐는데 생각했다. 생각하는 것이 아는 것은 아닌데 생각이 왔고, 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방 안의 화로는 재만 남아 있었고, 창호지 너머로 바람이 대숲을 훑는 소리가 밤새 이어졌다.

원균이 뭍에서 수군이 싸우지 않는다는 종이를 쓴다. 그 종이가 조정에 가고 조정은 종이를 읽고 정한다. 조정이 정하면 나는 받는다. 받는 것이 무엇일지 나는 몰랐다. 흰 옷일 수도 있었다.

이일은 살아 있었다. 상주에서 옷을 벗고 머리를 풀고 맨몸으로 달아난 사람이 지금 어디 있는지 나는 몰랐지만 살아 있었다. 나를 죽이려던 사람이 살아 있고 나도 살아 있는 것이 이 나라였고, 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 내 일이었다. 지키는 일에 이일도 들어갔다. 그래도 지켰다.

화로 곁에서 손을 펴 보니 손바닥의 굳은살이 녹둔도 때보다 두꺼웠다. 녹둔도는 지금 누가 지키는지 몰랐다. 오랑캐가 있을 것이다. 왜가 남쪽에 있는 동안 북쪽은 비었고, 빈 데를 세지 않았다. 세면 그 섬이 종이 안에 산다. 그 섬에 김개동이 있었고 이언세가 있었고 내 화살이 있었다. 뽑은 화살을 어디 버렸는지 모른다. 촉에 묻은 피는 그날 밤 이미 검게 말라 있었다. 강에 버렸을 것이고, 강은 그것을 적지 않는다.

사료 · 1587년 가을 녹둔도 둔전을 겸하고 섬이 외딴 데 있고 군사가 적어 병사 이일에게 여러 번 군사를 청했으나 따르지 않은 것, 8월 적이 목책을 에워싸자 붉은 모전 입은 자들을 쏘아 넘어뜨리고 이운룡 등과 쫓아 잡혀간 군사 예순여 명을 되찾은 것, 왼쪽 다리에 화살을 맞고 군사가 놀랄까 몰래 뽑은 것 ― 이분, 이충무공행록. 징비록은 「안개 속에 군사가 다 나가 벼를 베고 목책 안에 열 남짓 남았을 때 기병이 모여들자 문을 닫고 버들잎 화살로 수십을 쏘아 떨어뜨리고 문을 열어 홀로 말을 달려 쫓아 잡혀간 것을 다 되찾았다」고 적는다 · 이일이 입을 막으려 죽이려 하자 군관 선거이가 술을 권했고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다, 술은 무엇 하러 마시는가」 「물은」 「목마르지 않다」, 패군의 정황을 적으라는 것을 「군사를 청한 글의 초본이 여기 있다, 힘써 싸워 되찾았는데 패군으로 논하는 것이 옳은가」 하고 거절한 것, 임금이 「패군한 무리가 아니다, 백의종군해 공을 세우게 하라」 한 것, 그해 겨울 공이 있어 용서받은 것 ― 행록 · 김개동·이언세가 그때 잡혀갔다 되찾아진 사람들이고 왼쪽 귀 없는 왜가 그 무리에 있었다는 것 ― 부산파왜병장. 이순신이 그것을 다섯 해 뒤에 알았다는 것은 앞서 적은 셈이다 · 1588년 윤6월 집에 돌아갔을 때 무장 천거에서 둘째였으나 서용의 명이 안 내려 벼슬을 못 받은 것 ― 행록. 마당에서 활을 쏜 것은 지어냈다 · 한산도의 밤, 뽑은 화살을 강에 버렸다는 것, 이일이 살아 있는 것을 생각한 것은 지어냈다. 나이 마흔셋은 1545년생으로 센 것이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옛날 대목도 돌아보는 눈으로 썼다 · 양력 날짜 ― 1587년의 일은 달까지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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