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5,555자) · 1596년 10월 22일, 오사카 후시미성 · 고니시 유키나가
고문
이순신 · 네오
1596년 10월 22일 (음력 9월 2일), 오사카 후시미성 이 무렵 이순신은 일기를 썼으나 이 일은 적지 않았다. 9월 2일 수길이 후시미성에서 명나라 사신을 보았다. 방형이 앞에 서고 유경이 금인을 받들고 섬돌 아래 섰다. 승려 승태에게 명나라 임금의 옥새 찍힌 글을 읽게 했다. 행장이 승태에게 은밀히 말했다. 태합이 고명을 들으면 반드시 크게 노할 것이니 읽을 때 그 글을 바꾸라.
고니시 유키나가는 승려의 소매를 잡았다. 대청으로 이어지는 좁은 복도였고, 발밑의 마루가 두 사람 무게에 낮게 울었다.
승태, 곧 사이쇼 조타이는 태합 곁에서 글을 읽는 승려였고, 이제 명나라 황제의 글을 소리 내어 읽을 참이었다. 고문은 왕으로 봉하는 글이다. 그 안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알았기에 고니시는 소매를 잡았다. 먹물 들인 비단 소매가 손아귀에서 서늘하게 미끄러졌다.
“태합이 이 글을 들으면 크게 노하십니다. 읽을 때 글을 바꾸십시오.”
목소리를 낮추느라 말끝이 목에 걸렸다. 승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승려는 소매를 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승려의 예였다. 글을 바꾸면 더는 승려가 아니라는 것을 고니시도 알았고, 알면서 잡았다. 잡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네 해였다. 조선 땅에서 맞은 겨울이 넷이었고, 남쪽 바닷가 왜성의 찬 돌벽에 등을 기대고 명나라 쪽 답을 기다리던 밤은 셀 수도 없었다. 그 네 해 동안 심유경과 주고받은 종이가 몇 장인지 그는 헤아려 본 적이 없었다. 헤아리면 그만두고 싶어질 것 같았다. 처음에는 화친과 할지와 입공과 봉왕을 비롯해 일곱 조를 냈지만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이루어질 것처럼 명나라에 말하고, 명나라가 받아들인 것처럼 태합에게 전하게 했다. 심유경이 그렇게 했고 고니시도 그렇게 했다. 두 사람은 종이 사이에서 네 해를 살았다.
오늘 그 끝의 종이가 왔다. 명나라 황제가 내린 진짜 글이었고, 그 안에 일본 국왕이라는 말이 있었다. 태합을 일본 국왕으로 봉한다, 그것뿐이었다. 명나라 공주도, 조선 땅 절반도, 무역도 없었다. 일곱 가운데 봉왕 하나만 남았고, 그 하나조차 태합이 바란 것이 아니었다. 태합은 왕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왕을 받고 싶었다.
*
이틀 전에 태합이 사신을 맞았다. 가을볕이 성의 흰 벽에 부딪혀 눈이 부셨고, 해자의 물에서는 비릿한 이끼 냄새가 올라왔다.
후시미성 대청에는 황금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태합이 나오자 시신 둘이 칼을 잡고 좌우에 섰고, 늘어앉은 제후들 사이에서 기침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금박 입힌 벽과 기둥이 불빛을 받아 방 안 전체가 누렇게 달아올라 보였다. 심유경이 겁에 질려 금인을 품에 안고 엎드렸고, 양방형도 그를 따라 태합을 달래는 말을 올렸다. 두 사신이 저희가 꾸지람을 듣는 줄 알고 더 허둥거리자 고니시가 나섰다. 사신은 삼가 예를 행하십시오. 심유경이 금인과 관복을 바치고 제후들에게 내릴 관복도 바쳤다. 예가 끝나자 사신들은 물러가 술과 음식을 받았다.
이튿날 태합이 두 사신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태합은 명나라 관을 쓰고 윗단 가운데 앉았고, 두 사신은 가운뎃단 오른쪽에, 도쿠가와와 마에다 등 일곱은 왼쪽에 앉았다. 모두 명나라 관복을 입었고 잔치의 예도 명나라 예를 따랐다. 태합이 말했다. 아악은 저쪽에서 온 것이라 손님을 즐겁게 하기 모자란다, 우리 난무를 연주하라. 북과 피리 소리가 귀청을 때렸고, 흥이 다한 뒤에야 자리가 파했다.
고니시도 그 잔치에 있었다. 상마다 구운 도미와 옻칠 그릇에 담은 떡이 놓였고, 데운 술 냄새가 북소리에 섞여 대청을 가득 채웠다. 풀 먹인 명나라 관복 깃이 목덜미를 쓸 때마다 따끔했다. 명나라 관복을 입고 명나라 예로 잔치하며 명나라 사신이 바친 관을 쓴 사람이, 내일 명나라 글을 들으면서도 그 글에 무엇이 쓰였는지 모르고 있었다. 아는 사람은 고니시와 심유경 둘뿐이었다. 종이 사이에서 네 해를 살고 손에 쥔 것은 그 앎 하나였다.
*
심유경이 밤에 찾아왔다.
네 해 동안 종이를 주고받은 명나라 사신이 후시미의 객관을 빠져나와 고니시의 방까지 왔다. 사신이 밤중에 적국 장수의 방에 드는 것을 누가 보기라도 하면 둘 다 목숨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왔다. 목숨보다 급한 것이 있었다. 문을 닫자 복도의 등불이 창호지 너머로 번져 두 사람 얼굴에 누런 얼룩을 드리웠다.
“읽었는가?”
“내일 읽습니다.”
“글을 아는가?”
“압니다. 봉왕 하나입니다.”
심유경은 한참 말이 없었다. 다리를 고쳐 앉는 그의 비단 옷자락이 다다미를 쓸며 사락거렸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그도 알았고, 알면서 여기까지 왔다. 바다를 건너오는 배 위에서 그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고니시는 묻지 않았다. 물으면 그 배가 이 방 안에 들어앉을 것 같았다.
“태합께서 노하시면.”
“노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종이 사이에서 네 해를 산 값을 치릅니다.”
심유경이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웃음에 가까운 무엇이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명나라로 돌아가면 옥에 갇힌다, 그대는. 고니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합이 자기를 베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았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옥에 갇힐 사람 앞에서 살아남을 사람의 얼굴을 하는 것은 예가 아니었다.
심유경이 돌아갔다. 문을 여는 순간 밤바람이 들이쳐 등잔불이 크게 흔들렸다. 복도를 따라 멀어지는 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등이 객관으로, 머잖아 명나라의 옥으로 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니시는 문밖까지 따라 나가지 않았다. 배웅하면 본 사람이 생긴다.
*
승태가 읽었다. 그가 두루마리의 끈을 풀고 두 손으로 펼치는 동안 대청 안의 숨소리가 한꺼번에 가라앉았고, 누렇게 바랜 비단 위로 붉은 옥새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운이 널리 미치니 하늘이 덮고 땅이 싣는 것이 다 높이고 친하지 않음이 없다. 명나라 황제의 글은 늘 그렇게 시작한다. 하늘이 덮고 땅이 싣는 그 아래 어딘가에 일본이 있다는 글이었다.
고니시는 태합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 승태의 입만 보았다. 그 입이 글자를 하나씩 내보냈는데, 바꾸지 않고 쓰인 그대로였다. 그대 풍신 수길은 바다 나라에서 일어나 중국을 높일 줄 알았다. 서쪽으로 한 사신을 보내 흠모하여 와서 같이하려 하고 북쪽으로 만 리의 관문을 두드려 간절히 내부하기를 구했다.
내부, 안으로 붙는다, 신하가 된다. 그 글자가 나오는 순간 고니시는 눈을 감았다. 그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향 냄새와 촛농 냄새가 대청 바닥에 낮게 깔려 있었고, 승태의 목소리만 그 위를 천천히 지나갔다. 꿇은 무릎이 저려 왔지만 그는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특별히 그대를 일본 국왕으로 봉한다.
그 줄을 끝으로 승태의 목소리가 그쳤고, 두루마리를 되감는 비단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
태합이 무엇이라고 했는지 고니시는 뒤에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가 입을 닫은 자리를 사람들이 저마다 채워 적었다. 관을 벗어 던졌다고도 하고, 고명을 찢었다고도 하고, 나는 왕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하고 소리쳤다고도 했다. 조용히 물러갔다고 쓴 사람도 있었다. 어느 쪽이 맞는지 고니시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밝히면 한쪽만 종이 안에 살아남을 것이었다.
그가 뒤에 입에 올린 것은 하나였다. 밤이 깊어 성안의 등불이 하나둘 꺼져 가던 무렵이었다. 그날 밤 태합이 그를 불러 물었다.
“네가 알았는가?”
“알았습니다.”
“언제부터?”
“처음부터입니다.”
“왜 말하지 않았는가?”
고니시는 대답했다. 무엇이라 했는지는 뒤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이 이야기도 옮기지 않는다. 옮기면 그 대답이 살아난다. 다만 태합은 그를 베지 않았다. 종이 사이에서 네 해를 산 사람을 베면 종이가 끊어지고, 종이가 끊어지면 다시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건너려면 종이 사이를 살아 본 사람이 있어야 했다. 태합은 그것을 알았다. 고니시가 물러 나올 때 등 뒤에서 미닫이가 닫혔고, 그는 차가운 마루에 발을 디디고서야 자기 발바닥이 땀에 젖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
다시 바다를 건넌다. 후시미의 가을밤은 조용했고, 멀리 강에서 물새 우는 소리만 성벽을 넘어왔다.
그 일이 정해졌다. 그날 밤에 정해졌는지 며칠 뒤였는지 고니시는 알지 못했고, 정해졌다는 것만 알았다. 이번 길은 명나라로 가는 길을 내려는 것이 아니라 조선을 벌하려는 것이었다. 명나라와 강화하는 사이 조선이 예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명분은 종이에 쓰이고, 종이는 사람을 죽인다. 네 해 동안 그가 배운 것이 그것이었다.
바다를 건너면 그 바다에 조선 배가 있다. 소금기 밴 바람과 노 젓는 소리, 멀리서 울리던 북소리를 그는 아직 귀에 담고 있었다.
한산도(통영 한산면), 그 이름을 그는 알았다. 와키자카가 진 곳, 조선 배들이 키 모양으로 벌어져 에워싼 곳이었다. 그 뒤 네 해 동안 일본 배는 부산 서쪽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그래서 그는 명나라와 종이를 주고받아야 했다. 종이로 안 되면 배로 하고 배로 안 되면 종이로 한다. 종이가 끝났으니 배가 남았다.
조선 수사의 이름이 이순신이라는 것도 그는 알았다. 와키자카는 몰랐던 이름이었다. 종이 사이에서 살다 보면 이름을 알게 된다. 배로는 지울 수 없는 이름이니 종이로 지워야 했다. 후시미의 그 밤에 그는 그 생각을 했고, 겨울이 되자 요시라라는 사람을 시켜 그것을 글로 옮겼다.
승태의 소매를 잡던 손을 그는 내려다보았다. 소매를 잡았다가 놓친 손, 종이 한 장 바꾸지 못한 손이었다. 손바닥에는 비단 소매의 서늘한 감촉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 손으로 다음 종이를 쓸 것이다. 이번에는 바꾸는 종이가 아니라 속이는 종이일 텐데, 바꾸는 것과 속이는 것이 다른 일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같은 손이 했다.
사료 · 1596년 9월 2일 히데요시가 후시미성에서 명나라 사신 양방형과 심유경을 본 것, 심유경이 금인을 안고 엎드린 것, 고니시가 「사신은 삼가 예를 행하라」 한 것, 3일 태합이 명나라 관을 쓰고 명나라 예로 잔치하며 「아악은 손님을 즐겁게 하기 모자라니 우리 난무를 연주하라」 한 것, 물러가 승려 승태 등에게 새서를 읽게 할 때 「행장이 승태에게 은밀히 말하기를 태합이 고명을 들으면 반드시 크게 노할 것이니 읽을 때 글을 바꾸라 했으나 승태가 곧이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고명의 글 「성신광운 …」 「그대 풍신 수길은 바다 나라에서 일어나 중국을 높일 줄 알아 … 내부하기를 구했다」 ― 정한위략 권3, 정벌기·수길보 등을 인용 · 처음 강화에 화친·할지·입공·봉왕의 조목을 냈으나 정해지지 않은 것 ― 정한위략 권2. 이듬해 봄 이후 명나라 조정이 심유경의 거짓을 알게 된 것 ― 정한위략 권4 · 심유경이 명나라로 돌아가 옥에 갇힌 것 ― 정한위략 권4(명사 인용). 밤의 방문과 대화는 지어냈다 · 히데요시가 고명을 듣고 무엇을 했는지는 일본 기록마다 다르다. 고니시가 태합에게 불려 가 나눈 대화, 소매를 잡은 손, 요시라를 생각한 것은 지어냈다. 요시라의 반간계는 이듬해 겨울의 일이다(행록) · 와키자카가 한산도에서 진 뒤 일본 배가 부산 서쪽으로 못 간 것 ― 협판가전기·견내량파왜병장 · 이 회차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3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일본 쪽 날짜를 음력으로 보고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