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5,352자) · 1595년 2월 9일~4월 6일, 한산도
교대
이순신 · 네오
1595년 2월 9일 (음력 1월 1일) 맑음.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나라 일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 또 여든의 병든 어버이를 생각하니 뒤척이며 밤을 새웠다. 새벽에 여러 장수와 여러 색군이 와서 새해를 고했다. 원전, 윤언심, 고경운 등이 와서 보았다. 여러 색군에게 술을 먹였다.
새해 첫 밤, 운주당에는 나 혼자였다.
촛불 하나를 밝혀 두고 앉으니 심지 타는 냄새가 방 안에 가늘게 번졌다. 문풍지가 바닷바람에 한 번씩 떨었고, 떨 때마다 불꽃이 옆으로 누웠다가 일어섰다. 저녁에 지핀 온기는 진작 구들에서 빠져나가 무릎 아래가 서늘했고, 섬 뒤쪽 벼랑에 파도가 부딪는 소리가 벽을 타고 낮게 울려 왔다. 나라 일을 생각하다가 눈물이 떨어졌다.
깨어 있을 때 흘린 눈물을 일기에 남긴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두 해 전 팔월 초하루에 꿈속에서 류성룡과 마주 앉아 운 적은 있다. 그때는 꿈이었다. 이번에는 눈을 뜬 채였고, 손등에 떨어진 것이 식어 가는 감촉까지 또렷했다.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는 나라 일이라고만 썼다. 그 말 안에 다 들어 있었다. 명나라와 왜가 강화한다며 해를 넘기는 동안 적은 바닷가에 성을 쌓았고, 그 성을 치지 말라는 공문은 위에서도 오고 뭍에서도 왔다. 권준은 잡혀갔다. 원균은 뭍으로 갈 참이었고, 어영담은 이제 없었다.
그리고 여든 된 어머니가 있었다. 지난해 정월 고음천(여수 시전동 웅천)에서 뵈었을 때 숨이 실낱같았다. 그 뒤로 한 해 동안 몇 번이나 찾아뵈었는지 손가락으로 꼽아 보다가 그만두었다. 이불을 끌어당겨도 어깨가 시려 몸을 이쪽으로 누였다가 저쪽으로 누였고, 그때마다 요 밑의 짚이 바스락거렸다. 뒤척이는 사이 촛농이 흘러내려 받침에 하얗게 굳었다.
새벽이 되자 장수들과 색군들이 마당에 들어와 새해 인사를 했다. 원전과 윤언심, 고경운도 얼굴을 보였다. 색군들에게 술을 한 잔씩 돌렸다. 잠을 못 이룬 눈이 새벽 햇빛에 시큰거려 나는 댓돌 위에서 한참 눈을 가늘게 뜨고 서 있었다. 독 뚜껑을 열자 시큼한 술 냄새가 찬 공기 속으로 확 퍼졌고, 사람들이 내쉬는 입김이 마당 위에 하얗게 엉겼다. 지난해 정월에도 이 마당에서 칠백마흔두 명에게 술을 먹였는데, 술은 같은 독에서 떴어도 잔을 받는 얼굴은 많이 달랐다. 손이 곱아 잔을 두 손으로 받는 젊은 격군이 있었고, 한 모금에 비우고 소매로 입을 훔치는 늙은 사부가 있었다.
창호가 희어질 무렵 촛불이 새벽바람에 꺼졌고, 심지 끝에서 가느다란 연기 한 줄이 곧게 올라가다 흩어졌다. 마당에서 잔 부딪는 소리가 올라왔다. 지난해의 얼굴 가운데 몇이 오늘 이 마당에 없는지는 세지 않았다.
*
2월 18일 (1월 10일) 맑음. 순천부사 박진이 교서에 숙배했다. 경상수사 원균이 선창에 왔다고 들어서 불러들여 함께 이야기했다. 순천, 우우후, 흥양(고흥), 광양, 웅천(창원 진해구 웅천동), 고성, 거제가 와서 돌아간다고 고했다.
순천부사가 새로 왔다. 권준이 잡혀간 자리에 온 박진이었다. 배를 타고 막 건너온 참이라 그의 어깨와 모자 챙에는 바닷바람이 뿌린 물기가 아직 마르지 않았고, 대청에 오르는 발걸음마다 젖은 신이 마루에 둥근 자국을 남겼다.
그가 교서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을 뒤에서 보았다. 무릎을 꿇을 때 새 관복 자락이 마루에 끌리며 사각거렸고, 이마가 바닥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동안 등이 곧았다. 관복에서는 아직 풀 먹인 냄새가 났다. 권준이 두 해 반 동안 앉던 자리에 오늘부터 이 사람이 앉는다. 비었던 자리 넷 가운데 하나가 찼다. 사람까지 찬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원균이 선창에 와 있다기에 불러들였다.
그는 소금기에 허옇게 얼룩진 도포 자락을 털며 들어와 내 앞에 앉았다. 문턱을 넘을 때 바깥의 찬 기운이 그를 따라 한꺼번에 방으로 밀려들었다.
그가 충청병사로 간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둘 다 그것을 알고 마주 앉았고, 그런 자리에서는 오히려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날씨와 배와 군량 이야기를 했다. 올겨울 바람이 유난히 차다는 것, 판옥선 밑판을 언제 갈아야 하는지, 둔전 소출이 얼마나 될지. 그의 목소리는 거칠고 컸는데 그날은 반쯤 낮춰져 있었다. 두 해 반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떠날 사람과 비로소 나누었다.
그는 말하는 내내 무릎 위에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셌다. 무엇을 세는지는 묻지 않았다. 화로의 숯이 한 번 툭 갈라지며 불티를 올렸을 때도 그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돌아간 뒤 그 자리에 놓인 찻잔이 반쯤 남은 채 식어 있었다.
*
3월 30일 (2월 20일) 맑음. 우수사, 장흥, 신 조방장이 와서 이야기했다. 원공의 흉패한 일을 많이 전했다. 놀랍고 놀랍다.
이억기와 장흥부사, 그리고 조방장 신호가 찾아왔다.
신호는 어영담의 자리에 온 사람이다. 어영담처럼 물길을 손금 보듯 읽지는 못했지만, 대신 사람을 부릴 줄 알았다. 격군이 노를 놓으면 소리치기 전에 먼저 그 옆에 가 앉는 사람이었다. 두 해 반 동안 그것을 지켜본 끝에 조방장을 맡겼다.
셋은 앉자마자 원균 이야기를 꺼냈다. 이레 뒤면 떠날 사람이 떠나기 전까지 저지른 흉하고 패악한 일들이었다. 봄볕이 마루 끝까지 들어와 셋의 무릎을 데웠는데, 이야기가 길어지는 동안 그 볕이 조금씩 물러나 신호의 발끝에서 멎었다. 이억기는 말하는 동안 두 번 고개를 저었다. 신호는 한마디도 거들지 않고 제 무릎만 내려다보았다. 장흥부사는 식은 차를 두 번이나 입에 댔다가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나는 그 일이 무엇인지 일기에 옮기지 않았다. 놀랍고 놀랍다, 그 말만 두 번 썼다.
떠나는 사람의 허물을 종이에 남겨 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놀란 것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무엇에 놀랐는지는 빼고 놀랐다는 것만 남기는 것, 두 해 반 동안 원균을 두고 일기를 쓰며 익힌 방식이다. 읽는 사람은 빈자리를 보고도 안다.
*
4월 6일 (2월 27일) 맑음. 한식. 원균이 포구에서 교대했다. 배 수사 설이 여기 와서 교서에 숙배하라고 하니 불평한 기색이 많았다. 두 번 세 번 타이른 뒤에 억지로 따랐다고 한다. 우습다. 그 무지함이 극에 달했다.
한식날, 원균이 포구에서 배를 넘겨주었다.
새 경상우수사는 배설이었다. 이름만 듣던 사람이 얼굴을 달고 나타났다. 포구에 배 두 척이 나란히 붙었고, 걸쳐 놓은 널판 위로 사람들이 건너갔다 건너왔다. 널판이 사람 무게에 휘었다 펴질 때마다 삐걱 소리가 물 위로 퍼졌다. 이윽고 밧줄이 풀리고 두 뱃전 사이로 검푸른 물이 한 뼘, 두 뼘 벌어지더니 한 척이 떨어져 나갔다. 원균이 탄 배였다.
나는 조금 떨어진 언덕에서 그 배의 고물을 보았다. 두 해 반 동안 내 앞에 있다가 뒤에 있다가 하던 사람이 고물이 되어 멀어졌다. 한식이라 어느 집에서도 불을 피우지 않아 포구에는 연기 한 줄 없었고, 물비린내 사이로 멀어지는 노 소리만 한동안 들렸다. 언덕의 마른 풀이 바람에 눕는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소리가 끊기고 나서도 나는 한참 서 있었다.
그날 일기에는 원균이 포구에서 교대했다는 한 줄만 썼다.
흉험하다, 흉휼하다, 가소롭다, 흉하다, 놀랍다, 흉패하다. 그 사람을 두고 두 해 반 동안 쓴 여섯 마디가 그 한 줄로 끝났다. 끝났다고 믿었다. 두 해 뒤에야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
배설은 교서에 절하려 하지 않았다.
이리 와서 통제사 앞에서 교서에 숙배하라고 전하자 얼굴에 불평이 가득했다. 자기도 수사인데 왜 같은 수사 앞에서 절해야 하느냐는 얼굴이었다. 수사 이하로 명을 따르지 않는 자는 군법으로 다스린다는 교서의 그 한 줄을 그는 알지 못했다. 교서를 펼쳐 든 군관의 팔이 저릴 만큼 시간이 흘렀다. 두 번 세 번 타이르고 나서야 그가 마지못해 따랐다.
일기에 우습다고 썼고, 그 무지함이 극에 달했다고도 썼다. 원균에게 쓰던 말을 새 사람에게 첫날부터 쓴 것이다. 그래도 그날은 모르는 것이 흉한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도 두 해 뒤에 알았다.
절을 마친 배설이 몸을 일으키며 나를 보았다. 무릎에 묻은 먼지를 털지도 않은 채였다. 눈에 불평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로 온 사람에게 그것이 예였다. 그가 그 예를 알아보았을 리는 없다. 그는 돌아서서 제 배로 가는 널판을 성큼성큼 밟았고, 널판은 원균이 건너갈 때와 똑같은 소리로 삐걱거렸다.
*
밤에 운주당에 앉아 빈자리를 하나씩 짚어 보았다.
한식날이라 저녁에도 불을 늦게 들였고, 방 안에는 낮에 먹은 찬 밥 냄새와 먹 가는 냄새만 남아 있었다. 정운의 자리에는 새 만호가, 어영담의 자리에는 신호가, 권준의 자리에는 박진이, 원균의 자리에는 배설이 앉았다. 자리 넷이 다 찼다. 자리는 채워도 사람은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두 겨울 동안 배웠다.
원균이 없는 바다를 생각해 보았다. 벼루에 부은 물이 식어 먹이 잘 갈리지 않았고, 나는 먹을 쥔 채 한동안 손을 놀리지 않았다. 그는 두 해 반 동안 내 뒤에 있었고, 때로 앞에 있었고, 배 세 척으로 있었고, 스물다섯 척을 내보낸 뒤 일고여덟 척으로 남아 있었다. 곁에 있는 것은 날마다 세어 왔는데 없는 것을 세는 법은 몰랐다. 그 밤에는 없는 것 하나가 있는 것 백보다 무거웠다.
그는 충청병사가 되어 뭍으로 갔다. 배는 뭍으로 가지 못한다는 말을 나도 했고 류성룡도 했다. 사람은 간다. 창밖에서 밤물이 차오르며 선창 기둥을 철썩철썩 핥는 소리가 들렸다. 빈 말뚝 하나가 어둠 속에서 그 물을 혼자 맞고 있을 것이었다.
새해 첫날 밝혔던 그 촛대에 다시 불을 붙였다. 받침에 굳은 촛농이 그대로 있었고, 새 불꽃이 그 위로 올라서자 굳은 자리 가장자리가 조금씩 다시 녹아 번들거렸다. 그날은 눈물이 떨어졌고 오늘은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지지 않은 것은 일기에 쓰지 않았다.
사료 · 을미년 1월 1일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나라 일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 또 여든의 병든 어버이를 생각하니 뒤척이며 밤을 새웠다」, 새벽에 장수와 색군이 새해를 고하고 술을 먹인 것 ― 난중일기 을미년 1월 1일(전서본) · 1월 10일 순천부사 박진이 교서에 숙배한 것, 원균이 선창에 와서 함께 이야기한 것 ― 난중일기 1월 10일 · 2월 20일 우수사·장흥·신 조방장이 와서 「원공의 흉패한 일을 많이 전했다, 놀랍고 놀랍다」 ― 난중일기 2월 20일 · 2월 27일 한식날 원균이 포구에서 교대한 것, 배설이 교서에 숙배하라 하니 불평한 기색이 많아 두 번 세 번 타이른 뒤에 억지로 따랐다는 것, 「우습다, 그 무지함이 극에 달했다」 ― 난중일기 2월 27일 · 원균이 충청병사로 간 것 ― 이 무렵의 일기와 행록. 신호가 조방장이 된 것 ― 난중일기 을미년 · 새해에 흘린 눈물의 다섯 가지 까닭, 원균과의 마지막 대화, 고물, 배설의 얼굴, 운주당의 밤은 지어냈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